최근엔 어쩐지 이 시간대에 방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오늘은 때마침 방에 없었지만, 복도를 지나가다 제 방 앞에 선 누군가를 보며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 그것이었다. 며칠 전에도 방 청소하다가 불청객 하다 받았었다. 그리고 오늘은… 찾아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 왔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는 이미 어제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상태였다. 당시에는 조금 귀찮긴 했어도 토하거나 소리 지르는 것보다야 그 정도면 귀여운 술주정이고, 뭘 더 얘기하기도 전에 마리가 먼저 호다닥 뛰어가버린 다음에는 더 기억에 남을 사건도 없었으니 말이다. …아, 그건 정정해야 할지도. 마리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보고 있으려니 딱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마지막에 괴롭히지 말라면서 빽 외쳤던 거.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왠지 모르게 못된 짓 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도 같다. 그는 작정하고 악독하게 구는 데엔 재주가 없어도 시답잖은 장난질 하기엔 나름 도가 튼 사람이다.
"오, 마리 안녕. 존* 나쁜 새* 오셨다."
정작 마리는 그렇게 말한 적도 없지만 괜히 놀리려고 하는 말이다. 그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복도 한 편을 울리기엔 충분한 목소리로 외치고는 설렁설렁 손 흔들며 걸어왔다. 마리의 앞에 멈춰서서는 짓는 표정은 한결같다고나 할까, 약간의 장난기와 반가움을 담아 실실거리는 낯짝은 여전하다.
똑똑똑 노크를 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내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리는 그 쪽을 올려다봤다. 인사와 함께 제 추태를 떠올리게 하는 말을 하는 것에 마리는 입을 꾹 다문 채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더불어 뺨까지 상기되는 게 영 어제의 일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결국 마리는 이내 승우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웅얼거리듯이 승우에게 말을 건다.
"아니.... 승우는 착해. 내가 존* 나쁜 새*야..... 어제 너무 미안했어."
어린 애 앞에서는 말조심을 해야 한다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물론 마리가 어린애도 아니고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듣는 성인이었기에 마리가 뱉는 욕설은 아무래도 승우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나름의 표시일지도 몰랐다. 승우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서도.
"이건 사과 선물이야."
마리는 겨우 얼굴을 들어 승우를 올려다보며 쿠키통을 건넬 것이었다. 여전히 부끄러운지 얼굴은 빨갰지만. 생각보다 뻔뻔한 마리에게서 이러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건 평소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부끄러워하는 마리의 반응에 그는 으하학, 평소처럼 경박한 소리로 웃기나 한다. 그렇지만 농담으로 한 말에 돌아온 답을 듣고서는 잠시 의아한 기색이 되었다. 한층 더 둥글어진 눈이 마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말았다.
"뭐 어때. 나름 재밌었어."
한동안 말장난 하면 받은 만큼 시비로 돌려주는 새*―유루―랑 놀아서 그런지 이런 반응은 좀 낯설다. 그것도 그렇지만 자기가 '존* 나쁜 새*'라는 소리까지는 너무 저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본인이 그렇게 말하는 건 괜찮지만 남이 그대로 읊는 건 안 된다는 걸까. 그는 웃는 얼굴로 은근하게 한 손을 들어보였다. 손가락 끝이 미묘하게 구부러든다. 잘 보니 저 손짓, 왠지 익숙하다. 바로 회식 당일 마리의 머리를 꾹 죄었던 그 손 모양이다.
"그러니까 존* 마저 갈길까? 너 그러고 보니까 씨* 그때 복창 안 하고 튀었잖아."
일전에 했던 괴롭힘이 훈계였다면, 이번에는 남 보기에 맥락도 없이 이런 소리를 해버리니 영락없이 괴롭히는 짓거리다. 그렇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지만 농담으로 한 말이라 금방 그만두었다. 부끄러워하면서 선물 주는 사람을 정말 괴롭혀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방금까지 실실거리며 장난질이나 해대던 것과는 달리, 마리가 쿠키를 건네주자 그는 조용히 선물을 받아들었다. 표정이 부드럽게 풀려서는 시선이 조금씩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것이, 어쩐지 어색해하는 것도 같다. …그런 것 같은 게 아니라 사실인 모양이다. 그는 "그래, 고맙다."라며 감사를 표하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공연히 제 머리나 대충 흩어대다 쿠키통을 열고 마리에게 휙 내밀어보였다.
"자."
선물 준 사람한테 도로 선물을 권하다니 그림이 영 우습다. 어색해서 하는 짓이 고작 학기 초 마이쮸 먹을래? 수준이라니. 유감스럽게도 그의 사교 능력은 그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어제처럼 제 머리를 움켜질듯한 모양새라 마리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승우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그 손이 사라지자 눈을 깜빡이며 그 기색을 지운다. 사실 승우와는 이야기를 많이 나눠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이름과 능력을 아는 정도일까. 사적인 대화를 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어제의 기억이 썩 나쁘진 않았나보다. 나름 재미있었다니. 그게 과연 괜찮은 걸까 생각하긴 했지만서도. 승우는 선물을 받아들었다가 뭔가 어색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리는 눈을 깜빡이면서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내 뚜껑이 열리고 제 앞에 내밀어지자 마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독 같은 거 안 탔는데. 진짜 선물이야."
마리는 눈을 깜빡거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승우의 반응이 믿을 수 없으니 네가 먼저 먹어보고 증명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일까. 마리는 그 통 안에서 쿠키 대신 자신이 넣어둔 딱지모양의 쪽지를 꺼내 승우에게 건넸다.
승우가 그 쪽지를 받아 펼쳐보면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져 있을 것이었다.
'어제는 술주정해서 미안해. 도와줘서 고마웠어. 나중에 승우가 술에 취하면 내가 책임지고 돌봐줄게. - 마리-'
큭.... 엔이랑 마리랑 공통점이 많다니 나는 여한이 없어(네? 이제 둘이 만나기만 하면 완벽한데 말이야 ㅋㅋㅋㅋ!!!! 마리는 엔이 쥐를 먹는다는 사실은 모르지만 지난 전투 때 봤던 엔을 생각하면 쥐를 먹는다고 해서 이상하지는 않다고 생각할 것 같지! 기차도 먹는걸(?
>>859 맞죠! 엔은 기차도 먹을 수 있었죠~! (?) 그리고 마리는 그걸 봤군요...! 목격자는 전부 제거 되어야 하는데요!! (??)
>>860 ㅋㅋㅋㅋㅋ 음~ 쥐잡이 끈끈이를 경쟁자로 여기고 경계하는 엔은 확실히 귀엽겠지만... 엔이 쥐를 잡는 건 배를 채우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러지는 않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놀지 못하는 건 아쉽겠지만요! 여차하면 끈끈이도 고기로 만들면 되구요...! (선넘음)
불쾌함. 저 얼굴을 보면서 드는 기분은 그것 한 가지였다. 주변을 전부 무엇 이하로 보는 눈을 한 주제에 아닌 척을 하는게 불쾌하다. 그것이 불쾌해 파고들려하니 말을 돌리며 자리를 뜨는 것도 불쾌하다. 명치 아래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기분과 달리 머리는 냉랭하다. 몇 걸음 걸어가 레레시아를 돌아보며 선심 쓰듯이 하는 말에 그리 받아쳤다.
"그럼 이참에 나도 말해둘까. 나는 너와 겉치레라도 친해질 생각 따윈 일절 없어. 그러니 한번만 더 똑같은 상황을 만든다면 네가 팀원이고 나발이고 한대 후려치겠어. 그로 인해 내가 불이익을 겪더라도 그렇게 할 거라고 단언하지."
레레시아의 얼굴은 감정을 아주 짙게 눌러담아 눈빛이 뭐라 형용하기 어렵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주먹다짐 하고 싶으면 또 말 걸던가."
짧게 내뱉은 말을 끝으로 레레시아도 돌아섰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아리아와 반대 방행으로 간다. 해소하기 어려운 이 불쾌함을 풀려면 아마 이 밤을 다 써도 모자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만을 머릿속에 띄우며.
무엇이 재밌었냐고 하면, 그러게. 사실 아무렇게나 던진 말이라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럴듯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가벼운 해프닝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말 못할 이유도 없다. 남의 머리 함부로 죄어대며 괴롭힌 걸 그렇게 치부해도 되는지는 확신 못 하겠지만.
"와, 너도 존* 살벌하게 살았나 보네."
일상적인 풍경 속에서 하기엔 꽤나 살벌한 대답에 헛웃음이 나온다. 달리 말하면 제각기 거친 세상을 헤치며 살아온 단원들에 비해 그가 유별나게 경계심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엉뚱한 소리가 나온 덕분에 어색하던 속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그는 피식 웃고는 잽싸게 쿠키 하나를 골라 입 안에 던져넣었다. 나름대로 오해를 해명하려는 행동이다.
"아니, *. 그냥 너도 좀 먹으라고. 존* 혼자 먹기 그렇다."
혼자 먹기 좀 '그렇다'라는 게 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별달리 첨언을 하지는 않았다. 군것질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니 몇 개쯤 줄어들어도 상관 없기도 했고. 이윽고 쪽지를 확인한 그가 눈썹을 까딱이며 고개를 기울인다. 이번에는 평소에 늘 하듯 뚱한 표정이 아니라, 약간의 흥미와 장난기 섞인 표정이다.
"오, 괜찮겠냐? 난 씨* 너만큼 술 못 마시는데. 존* 개떡 돼서 기어다녀도 책임 지는 거다?"
그는 술을 즐기는 성향이 아니었지만 앞날은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는 그도 술을 마시는 때가 한 번쯤 있을 텐데, 그때가 되면 호출해서 진상 부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해준다면 고맙지, 그는 쪽지를 과자 통에서 빼내어 따로 주머니에 챙겨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