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깔려있는 어둠을 거스르는 밝은 달빛은 지금 이 순간 사내에게 있어서 가장 방해되는 요소였다. 입고 있는 복장은 가디언즈의 갑옷이고 차고 있는 무장은 가디언즈의 무기였다. 목 뒤에 분명하게 '7'이라는 표식이 박혀있는 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면서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앞으로 달렸을까? 조금은 조용한 풀숲 속으로 몸을 던진 사내는 품에 감추고 있는 USB 장치를 꺼낸 후에 바라봤다. 붉은색 USB 장치가 무사히 자신에게 있는 것을 확인한 사내는 안도의 숨소리를 내며 다시 USB를 품 속에 감췄다.
'반드시 이걸 알려야만 해. 하지만 방송국에 뿌려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어. 분명히 가디언즈가 막을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어디에 알려야 하는 거지. 어지간한 통신망은 다 체크하고 있을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내의 이마엔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주변을 경계하는 것이 정말 보통 수준이 아니었다. 아주 조금의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귀를 쫑긋 세우면서 그는 침을 꿀꺽 삼키는 것조차도 매우 신중했다.
'일단 지금은 안전한 것 같지만 아마 오래 가지 못할거야. 빨리 좋은 곳을 찾아야만 해. 레지스탕스라도...'
분명히 이 나라에는 여러 레지스탕스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본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U.P.G. 더 나아가 가디언즈와 싸우고 있는 이들이 아니던가. 그런만큼 본부의 위치는 철저하게 비밀로 부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가입하는 이들이 있으니 반드시 방법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사내는 머리를 계속 굴렸다. '....거기구나.' '가능하면... 보검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말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그들과 접촉하고 싶은데. 그들이라면... 어지간한 일은 대처할 힘이 있을테니까. 그래. 설사 레이버가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확실하지 않은 소문. 허나 지금 사내는 그것만을 믿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건 한 자리에 계속 있을 순 없었다. 그렇기에 사내는 다시 몸을 일으킨 후에 어둠 속으로 빠르게 발을 굴렸다. 마치 무언가에게서 도망치기 위해서. '...뭘 해도 의미없는데. ...하지만 재밌는 거 떠올랐어.' '반드시 알려야만 해. 이 사실을 반드시.'
그녀가 재차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움직이는 손을 쳐다봤다. 그것은 습관적인 동작이었다. 그녀는 술을 마실 수 없으니까. -그런 몸이니까- 영 알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그런 당신의 대답에서, 그녀 혼자 알아서 사람들이 술을 먹는 이유를 유추하는 수 밖에 없었다.
술은 맛으로 먹는게 아니다. 하지만 맛으로 먹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레레시아는 취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술에 곧잘 취하는 걸로 보였다. 다만 레레시아는 독에 강하다. 그럼 술은 중독을 위해 마시는 건가? '역시 잘 모르겠다.' 당신의 말대로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봐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그녀가 들려오는 말에 시선을 다시 당신에게로 옮겼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엔은 레시를 레시라고 부르겠다. 레시도, 엔을 엔이라고 불러라."
그것 말고 달리 있겠냐만은. (라기보다는 이미 당신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지금의 그녀는 그것이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라는 듯이. 그저 무구한 붉음으로 채워진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알겠다." 하고 당신의 지시에 따라 그녀가 움직인다. 그리고 당신이 노파심에 말을 덧붙이자, 조금의 지연 뒤에 또 다시 "-알겠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쉬워 하는 걸까? 설마 정말로 먹으려고 생각했을지는.
"레시는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문득 그런 목소리가 그녀의 등을 넘어 당신을 향한다. 지금의 그녀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정리의 의미 이상으로 먹잇감이라도 물색 하는 듯한 집요한 눈초리가. 따지자면, 접시보다는 남아있는 먹을 것으로 찾는 모습에 가까워보인다.
들려오는 엔의 목소리에 레레시아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런 거라고. 사람은 누구나 하나의 가닥을 갖는다. 그러나 하나로 보이는 그건 각자 살면서 생기거나 만들어 낸 다양한 가닥이 모여서 만들어낸 하나이다. 오롯이 자신의 것이며 자신 그 자체인 것을 타인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스스로는 알고 있는가. 그럴 리가.
"이미- 그렇게 부르고 있는 걸-? 나도 어떻게든 상관없는데에 이랬다 저랬다만 하지 마아."
레시라면 레시로. 레레시아라면 레레시아로. 어떻게 부를 지는 자유지만 하나로 고정시켜줬으면 한다고 덧붙이며 엔을 보니, 어딘가 아쉬워 보인다. 아. 접시는 먹지 말라고 해서 그런가. 그래도 접시는 좀 그렇지. 뭐 남은게 있으면 줘야겠다. 다시 고개를 돌려 술병을 담기 위한 빈 박스를 찾는다. 적당한 크기의 박스를 집어와 안에 빈 병을 차곡차곡 넣는다. 엔의 말이 들렸을 때, 손이 멈칫하며 담던 병들이 부딪혀 작게 찰랑거렸다.
"흐-음. 아닐 걸- 아니, 아닌게 맞아- 난 저언혀 좋은 사람이 아니랍니다아."
그녀는 중간에 정정을 하며 말을 하곤 이제 빈 병으로 가득해진 박스를 조금 밀어놓았다. 그리고 남은 걸 뒤적이다가 오. 소세지 발견. 포장도 뜯지 않은 큼직한 소세지 봉투를 찾아내 그걸 들고 엔을 보았다. 간식 정도는 되겠지. 그렇지만 바로 주진 않고 봉투를 흔들거리며 말한다.
"좋은 사람- 하니까 어떤 얘기가 떠오르는데에. 일단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유를 한 번 들어볼까나아?"
질색하는 꼴을 보면 만족 했다는 듯, 눈이 접혀선 사람 좋은 웃음만 띄고 있다. 방금까지 속 긁어대던 사람이 자신이 아닌 것 마냥 구는게 가식적이다. 바닥에서 조금 붕 뜬듯한 기분이어서, 사공은 제 발로 배에서 나간다. 손의 모양이 주먹의 형태로 바뀌어가는걸 보면 어째 마음이 더 짓궂어지다가도. 시큰둥한 말소리에 이완되는 표정.
“그래? 힘들었겠네.”
재미없고 무난한 답이 나지막히 들려온다.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말에 굳이 캐묻고 싶지는 않은듯, 삭막하게도 들릴수 있는 반응 후 딱히 무언갈 덧붙이진 않는다. 인간성 없이 굴면서 더 물어볼수는 있겠다만, 사람을 너무 내몰면 좋은 취급 받기 힘들다는 건 잘 이해한다. 무엇보다도, 아까 정신이 다른데로 새어서 굳이 이 화재로 잡담을 잇지 않으려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도 있고.
“질투는 보기 안 좋아.”
아까의 혐오하는 듯한 반응에 대한 뒤늦은 조롱.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금은 연민하는듯 하는 분위기였다가도 이러는걸 보면 모순되었고… 스트레이트로 말하자면 진짜 미덕이 없는 듯 하다. 있긴 한데 가끔 따르지 않는다는 것에 가까울 수도. 본인도 이걸 의식하는지, 말 건네는 투가 평소보다 조심스럽고 속삭이는 것에 가까워진다. 아니 의식하면 그냥 닥치고 있지…
그때까지 늙을수 있으면 다행이란 말엔 아무 말 없이 가만 있는다. 침묵은 무언가의 긍정이고, 그도 그 말에 동의하는 바이니. 그도 남이랑 말할때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말 하던 전적이 많았다. “나 치매 걸리면 말상대 해줘야지. 70 까지는 버텨라.” 그러다가 또 실 없는 소리를 하는걸 보면 진자를 보는 기분이다. 뒤척이다가도 천장을 보는 자세로 고정한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눈을 감아버린다.
“사람이 참 한결같았네. 너도 그렇고.”
당장 본인도 승우를 좋게 대해준다고는 입에 침 좀 발라야 나올 말이니까. 답 하는 꼬라지를 보자면 보듬어줄 마음은 조금도 없이, 순전히 자신이 궁금해서 캐물은 것이라고 예상이 가능하다. 그나저나 10분에 한번이라니, 굉장히 규칙적이라고 생각된다. “난 얘기 듣는 재주만 있거든. 니도 안 물어봤으면서 뭘 승내?” 되려 별 뜻 없는 헛웃음만 들려온다. 그러다가 날아온 옷가지들에 그냥 맞는다.
“우와, 코 썩는다. 좀 씻지 그래?”
얼굴에서 옷을 대충 걷으며 말하는 걸 보아하니, 싸울 기력은 없지만 아무말이나 할 의식은 남아있는듯 하다. 좋은 향 풀풀 나던 옷가지들을 무의식적으로 개기 시작한다. 여전히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 채로 팔만 들어 개고 있는지라 속도는 그닥 빠르진 않다만. 침대에 기대는 승우를 보면 다시 정신이 들어선, 개었던 옷과 침대에 던져진 채로 널려있던 옷들을 바닥에 떨군다.
“그럼 니도 쳐 주무시던가.”
본인이 (쳐)잘 것이란 말인가? 여기서 자고 갈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던져 본다. 눈 앞이 가물가물 해지면 다시 눈을 감고 벽을 등져 눕는다. 야…니 방 가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