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자리를 벗어나, 초코라떼나 마실까 해서 복도로 나섰다. 기지에는 여기저기에 자판기가 있어서 그다지 멀리 돌아가지는 않아도 괜찮았지만. 계속 한 곳에 있었더니 조금 기분전환도 할 겸 복도를 걷는다. 어디쯤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걷고 있자니. 갑작스레 느껴진 인기척과, 들려오는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와 기억 너머에 반쯤 숨겨져 있던 단어가 귀에 들리자 너는 조금 놀란 듯 뒤돌아보았다.
"아... 네, 마리 씨. 리오랍니다."
자신의 옷자락을 잡은 손을 잠시 내려다보니, 어느새 스르륵 옷자락을 놓아버리곤 제자리로 돌아갔다. 착각이라... 그녀가 평소에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걸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조금 취했나? 짙지는 않지만 풍겨오는 알코올 향기, 살짝 상기된 얼굴과 조금 흔들리는 듯한 초점까지. 아하, 취해 있어서 그런 거였구나. 꽤 잘 어울려서 회식을 즐겼나보다. 라고 생각하면서, 취하지 않고서는 과거에 다가가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다.
"...... 어딘가 다녀오는 길인가요?"
그녀의 뺨에 묻은 흙먼지와, 옷에 붙은 풀잎. 취해있는 모습까지 생각하면 혹시 넘어지거나 한 건 아니겠지... 어디 다친 건 아닐까 걱정이 되면서도 막상 물어보려니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둔다. 손은 뻗어 옷의 풀잎을 떼어 주고, 뺨에 묻은 흙먼지를 소매로 살짝 털어내 주려고는 했지만.
마리는 쥬데카를 빤히 바라봤다. 십년 전의 기억은 흐릿흐릿했다. 사실 기억나는 것도 그렇게 많이 없었다. 그 때는 어렸고, 또 그 이후로 있었던 일들이 너무 많았다. 부모님을 잃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그 조직에 기여해야했다. 인정받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부모님의 기억은 지금은 그리운 기억이었으나 당시에는 잊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억지로 기억을 지워내다보니 더더욱 남는 게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응….”
마리는 쥬데카가 혹시 자신이 아는 쥬드가 아닐까 잠깐 생각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제 기억을 신뢰할 수 없었다. 게다가 만약 쥬데카가 쥬드라면 왜 자신을 모른척 하겠는가. 그럴리가 없다, 라고 마리는 굳게 믿었다. 자신의 모습이나 세븐스는 꽤나 독특하니까 쉽게 잊히지 않을 거라고. 자신이 쥬드를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쥬드는 자신을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지금까지.
“으응. 술 좀 깨려구우….”
이내 아쉬움을 눌러내고는 배시시 웃음을 짓는다. 평소보다 더 쉽게 웃는 모습이 아무래도 취한 것은 맞는 모양이다. 쥬데카가 손을 뻗어 옷의 풀잎을 떼주는 걸 보자 마리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소매가 뺨에 닿자 그 뺨쪽의 눈이 자연히 감겼다. 으윽, 뺨에도 뭐가 묻었던 모양이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모양인 걸 보니 확실히 속을 게워낸 것과 바람을 쐰 보람이 있기는 한 것 같다. 술이 좀 꺴다는 뜻이니까. 여전히 술기운이 남아있지만서도.
“리오는… 으응…. 어디 가던 길이야?”
마리는 쥬데카의 손이 멀어지자 혹시나 옷에 더 묻은 먼지가 없는지 손바닥으로 탁탁 털었다. 그리고는 쥬데카를 올려다봤을 것이었다.
너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그냥 받아넘기기는 조금 어렵다. 저 시선에 어떤 뜻이, 어떤 시간이 담겨있는 것만 같아서였을까. 너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피할 엄두는 못 내고, 살짝 마주볼 뿐이었다.
"그렇군요, 술은 좀 깼나요? 마리."
배시시 웃으며 술을 좀 깨려고 돌아다녔다는 말을 하는 그녀에게, 너는 마찬가지로 웃어주면서 목적은 달성했는지를 물어본다. 그동안 풀잎은 떼어냈고, 뺨에 묻었던 흙먼지도 털어냈다. ...됐다. 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손을 떨어트리니, 그녀는 그제야 옷에 뭔가 묻었나, 하는 감각이었는지 스스로 옷을 털었다.
"음, 달콤한 거라도 마실까- 하고 생각해서요.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려니 좀도 좀 쑤셨거든요."
그래서 그냥 돌아다니던 중이었답니다. 라고 덧붙이면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녀와 눈을 맞추곤 살짝 미소지었다.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역시 네가 누구인지 말하는 건 상황을 나아지게 할 것 같지 않아. 너 역시 과거의 존재일 뿐이니까.
과연 취한 사람은 스스로 취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법인 모양이다. 물론 만취한 상태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취해서 기분이 업되어있는 상태이기는 했다. 물론 기분이 업되었다가 울정도로 가라앉았다가 왔다갔다한 상태였지만서도. 자세히 보면 울었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술기운에 눈가가 발그레해졌구나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구나. 응, 나도 뭔가 마실래.”
눈을 마주하며 웃는 쥬데카를 보면서 마리도 마주 웃었다. 취해서 그런가 웃음이 많아져있는 상태의 마리였다. 마리는 쥬데카가 걸으면 따라 걸음을 옮길 것이었다.
“그 때 들었던 게 그거지? 전에 말했던 톤파.”
전에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를 상기하며 임무에 나갔을 때 쥬데카가 들었던 무기를 떠올리고는 말했다.
취하지 않았다며 말을 길게 늘이는 마리를 보며, 너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취했구나. 몸을 아예 못 가눌 정도로 취한 건 아니고. 기분이 썩 괜찮을 정도로 취해있는 걸까. 너는 발그헤한 얼굴을 한 마리를 가만히 보다가, 너를 따라 뭔가 마시겠다며 대답하는 목소리에 고갤 끄덕였다.
"네, 그럼 가까운 자판기까지 가죠."
뭔가 마시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굳이 멀리 있는 자판기로 향할 필요는 없지. 가장 가까운 자판기로 발걸음을 옮기니, 마리 역시 널 따라 걷는 듯, 발소리가 들렸다.
"아, 네. 맞아요, 쥐는 법에 따라서 쓰는 법이 다양한 무기에요."
막아내는 데 쓸 수도 있고, 반대로 찌르거나 후려칠 수도 있죠. 상대가 기계덩어리였던지라 큰 효과는 없었지만요. 라고 덧붙이며 멋쩍게 웃는다.
일상을 자꾸 돌리다 보면 뭔가 찾아낼지도 모르죠? 원래 기억이라는 건 비슷한 상황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법이니까요. 같이 왔다갔다 하는 단순한 과정에서도 과거의 비슷한 기억이 떠오를 수 있으니까! 희망을 가져봅시다? 어... 그래도 숨기던 거였으니 들켰을 때 어떨지는 조금 무섭지만요.
다행히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라 더 큰 민폐를 끼치지는 않았다. 마리는 조금은 비틀비틀 걷기는 했지만 넘어지지는 않고 꿋꿋히 걸었다. 물론 마리는 자신이 제대로 걷는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단지 쥬데카가 보기에 조금 기우뚱 걷고 있는 것 같겠지만서도.
가까운 자판기 까지 걸으며 마리는 쥬데카의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방금 들었던 생각은 뭐였을까. 진짜였을까. 그러고보면 쥬드의 머리색이 초록이었던 것 같기는 했다. 마리는 초록색을 좋아했지만 자신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색이어서 아쉬워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진작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의아하기까지 했다.
“효과 없지 않았는데. 같이 안테나도 부셨었잖아.”
마리는 그때가 생각난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내 쥬데카가 대단한 공격을 했었다는 말을 하자 이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그거언…. 으응…. 확실히 상상의 동물이 더 세니까…. 그런거야. 응…. 어쩔 수 없이….”
마리는 작은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꽤나 쩔쩔매면서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드래곤 마리라는 게 꽤 본인 스스로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동물로 변하는 것은 별로 개이치 않게 생각하면서 드래곤으로 변하는 것은 왜 부끄러워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쨌든 마리는 꽤나 드래곤 마리로 변하는 것에 대해 민망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으로 불을 뿜는 것도 꽤 부끄럽다는 느낌일까.
역시 쥬데카는 먼저 말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구만~! 어쩔 수 없지. 일상을 돌리면서 마리가 알아내는 수밖에...!! 들켰을 때 어떨지는 그 때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고~ 그때의 즐거움을 위해 놔둘까나. 낮에 너무 잤나봐 ㅋㅋㅋㅋ큐ㅠㅠ 그래도 오늘 일정이 있으니까 다시 자는 것에 도전해봐야겠다구~ 그래도 생각보다 핑퐁 많이 했잖아...? 뿌듯
살짝 기우뚱하게 걷는 마리의 모습에, 혹시 넘어지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하면서 언제든 붙잡을 준비를 했다. 다행히 그럴 만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긴 했지만. 네게 향하는 시선을 느끼기는 했지만, 바로 시선을 돌렸다가는 또 눈이 마주치겠지.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들키면 조금 쑥쓰럽거나 무안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내버려두자.
"조금 거들었을 뿐이죠, 뭐... 효과가 있었다니 다행이지만요."
어쨌든 안테나를 부순 건 사실이었으니까. 인정할 건 인정하자며 스스로에게 이야기한 너는, 대단한 공격이라는 네 말에 반응하듯 마리의 얼굴이 빨갛게 변하자 으응? 하고 그녀의 말을 들었다.
"음, 멋있었어요. 드래곤."
대단한 상상력이에요, 마리. 새삼 그녀의 능력이 상상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고 역시 대단하네, 라며 속으로 읊조린다.
"아, 찾았다."
어느새 찾아낸 자판기 앞에 멈춰서서, 부끄러워하는 마리를 잠시 뒤로 하고 음료수들을 살펴보았다.
ㅋㅋㅋㅋㅋ말할 생각이 들수도 있긴 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뭔가 마리가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그런 간절함을 드러낸다면 모르겠지만 일단은 지금 서로 오해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쥬데카는 마리에게 자신을 드러낼 만한 자신감도 없고, 오히려 죄책감이 조금 있는지라... 으음 그래도 역시 주무시려고 노력해보는 게 좋겠죠! 네 맞아요, 벌써 몇 번 주고받았고! 저도 얼마 뒤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