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자동필터형이라면 알아서 말 바꿔주는 거니까 불편할 것도 없고 정작 본인은 오 언어순화 개쩌네~이러고 땡입니다 딱히 싫어하지 않음... 앗 물론 유루랑은 말 안 하고 싶어질듯(유루미안) 나쁜 말은 아예 못 말하게 되는 쪽이라면 방송편집 당한 것처럼 문장 4개 중 1개밖에 안 나오는 수준이지 않을까... 간단한 긍정, 부정, 단어 몇 개 정도 빼고는 안 돼서 완전 열받음...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나온 반응이 사뭇 꿋꿋하고 장하다. 그것이 우스워 자연히 웃게 되었는데, 엇비슷하게나마 정말로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셈이다. 뭐, 기분도 꽤 괜찮고 어차피 밖으로 갈 생각이기도 했고. 혼자 보냈다가 큰일 나는 것도 싫으니 그는 마리가 이끄는대로 순순히 따라가주었다. 사실 그런 이유는 모두 제쳐두고서, 저런 얼굴로 바라보면 그의 미묘한 양심도 꿈틀대며 일할 수밖에.
"씨, …멀리는 안 된다."
습관처럼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다 만 것도 그래서다. 걷는 걸음이 그리 빠르지 않다. 보폭의 차이와 불안정한 걸음걸이를 고려한 것이다. 그렇게 복도를 지나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선다. 계절이 가을에 가까워짐에 따라 들이닥치는 밤바람이 여름날에 비하면 제법 차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쌓인 열기를 서서히 식혀갔다. 멀리 가는 건 안 된다 했던 말처럼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이번에는 가까이에 있는 벤치로 마리를 이끌었다. 멀리 가면 돌아올 때 번거로우니까.
그리고 그는 벤치 앞에 서서 공연히 제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까지 온 건 좋은데, 그는 지금 조금쯤 난감한 기분에 직면해 있었다. 웃는 마리를 보고 있으려니 종종 어린애나 동물들을 보고 느낀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든다. 싫다거나 귀찮은 건 아닌데. 으음, 그거다. 왠지 모르게 보들보들하고 미묘한 감각. 그러니까 귀여운 데가 있다…? 아하, 그거구만. 지난번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인가? 결국 어렵지 않게 제 기분을 정의하고 나니 개운해졌다. 그렇다면 가릴 것 없지. 덩달아 기분 좋아지기도 했고, 바깥 바람 시원하니 좋다. 그는 벤치에 털썩 기대앉아서 마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킬킬거리며 흔드는대로 얌전히 흔들려주었다. 주정에 당하면서도 표정이 나쁘지 않으니 다행이다. 그야 본인은 맨정신으로도 이것보다 더한 짓 할 수 있고…… 비슷하게 제정신 아닌 놈이랑도 노는데 이 정도는 귀엽게만 보인다.
"아, 알겠어. 마리, 마리, 마-리, 마리, 마리 씨. ……몇 번이나 불러야 해?"
맥없이 앞뒤로 왔다갔다 하다 쭉 미끄러져 내려와 등받이에 머리를 툭 기댄다. 그러다 얼마나 마셨는지 이야기를 듣고는 큰 소리 내며 웃었다.
"으하학. 존* 못 마셔.
얘도 참 술 못 마시네. 그러는 저도 만만찮게 형편없는 간기능의 소유자라 할 말은 없지만서도. 마리만큼 마셨더라면 그도 엇비슷하게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을 거다. 그는 마리가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보다, 한쪽 손을 들어 마리의 얼굴 앞으로 가져다대었다. 무슨 의미로 한 행동인지는 아직 파악하기 힘들다.
그렇다. 현재 마리는 존* 취한 상태인 것이다. 과연 다음날 마리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다시 현재의 상황.
마리는 승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는다. 눈이 접혀 붉은 눈동자가 가려지고 입매가 호선을 긋는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대답처럼 귀가 쫑긋쫑긋하다. 옷 아래로 드러난 꼬리기 살랑살랑 흔들렸다.
"해 줄 수 있는 만큼 많ㅡ이ㅡ."
그 표정은 승우가 못마신다고 웃음을 터트리자 잠시 뚱한 표정으로 바뀌었지만 이내 다시금 웃음기 머금은 표정으로 변했다.
승우의 옆에 무릎걸음으로 선 마리는 아무래도 비틀거려서 잘못 어깨를 짚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손이 가고자 했던 곳은 승우의 머리였다.
"머리이, 쓰다듬어주려고. 착하다ㅡ. 승우는 파랑이네, 머리 길어ㅡ. 나는 빨강이 싫은데, 초록이 좋아."
이어지는 말은 맥락이 없다. 원래 술 취한 사람은 다 그렇지 않던가. 그 말 속에 진심이 있을 수도 있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일수도 있고. 어쨌든 이번에는 어깨를 짚지 않은 다른 손으로 승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할 것이었다. 제지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릿한 손짓이었다.
정정한다. 이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이걸로 끝날 것 같지가 않다. 꿋꿋하게 더 부르라는 말에 그가 입을 떡 벌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마리 양반. 내가 존* 힘내본다. 하…… 마리, 마리야, 마리 양, 마리 학생, 마리 씨…… ."
그렇지만 난감해하면서도 싫다 하지는 않는다는 게 참. 아니, 저렇게 좋아하는데 싫다 하기에도 무엇하지 않나. 그는 남에게 먼저 주도적으로 신경쓰지 않아서 그렇지 자기 자신이 내킬 때는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게 결과적으로는 배려나 양심 비슷한 게 되어버렸으니 우스운 일이다. 그렇게 슬슬 입 아파올 때까지 몇 번쯤 더 부르고 나서는 그도 손을 들었다.
"와, 너도 고집 존* 질기다. 개 꿋꿋해. 씨* 근데 왜 그렇게 계속 불러달라고 하는 건데?"
마지막쯤 가서는 그도 왠지 억울해졌다. 내가 잘못한 거라도 있으면 말이라도 안 하지, 왜 이런 고통을 주나. 따지려고 홱 고개를 돌렸는데, 곧이어 마리가 한 행동에 그 맥도 탁 끊겨버렸다. 그는 결국 조금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얌전히 쓰다듬 받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큰일났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마리 얘가 지금 하는 것처럼 정신 못 차린다 싶으면 딱밤이라도 때려주려고 손 든 거였는데. 따지고 보면 지금이 딱 딱밤을 때릴 적기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쓰다듬는 사람을 때릴 수는 없지 않은가.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딱 이 상황을 두고 하는 것일 테다. 그의 내면에서 연약한 양심이 제 존재감을 피력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가 이러한 스킨십 전반에 약해서 그런 것이기도 했다.
"어, 그래. 너는… 금발? 그거고. *, 빨강은 왜 싫은데."
그래서 다시 결론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는 미묘하게 뚱하면서도 풀린 표정으로 주정꾼의 아무말을 받아주고 있다. 사람이 참,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