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보던 쿠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물을 배치한다는 말은 어디서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쿠션에게서 무언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익숙한 냄새다. 그녀도 이제 2년간 에델바이스에 몸 담아온 대원이라는 셈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해당 쿠션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당신이 눈을 뜬다면, 코앞에서 쪼그려 앉아 당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모습을 가장 먼저 보게 되지 않을까.
어느새 간식가게가 가까워졌다. 원래 계획은 애들 간식거리나 사주자였지만 이곳 아이들은 바깥 아이들과는 다르게 양호한 교육을 받고 있다. 선우는 뺨을 긁적거리며 자신이 여기 와도 된 것이었나 근본적인 후회를 하고 있었다.
가디언들을 해치우고 근본적인 차별을 뿌리 뽑는다는 명목하에 이곳에 가입했지만 결국 이는 바깥의 아이들을 버린 꼴이다.
"..."
맛있어보이는 과자들이 한가득이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당연하다. 이곳은 바깥의 차별과는 상관이 없으니까. 이 곳 아이들이 선우에게 관심을 보인 건 그저 새로운 즐길거리가 나왔기 때문이었지 그가 유일한 즐길거리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곳과 바깥의 풍경이 교차되며 그는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싹띄워지고 있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게끔 호흡이 맞지 않는다면 서로에게는 걸림돌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해서요."
뭐, 말이 안 되는 건 압니다. 그렇게 덧붙이며 웃는 낯을 한다. 그런 면에서 너는 걸림돌이었을지도, 역시 제대로 된 장기 없이 앞으로 나서는 건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뭔가 멀리서 보조할만한 무기를 찾아볼까 하고 기억을 더듬는다. 네 장기는 대규모 전투가 아니었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쁜, 그런 사람. 다만 무장은 그런 네 한계를 조금 더 확장할 수 있게 해줬다, 덕분에 적어도 한 명에게 향하는 공격 정도는 몸으로 막아낼 수 있었지, 그걸 막아낸 거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간 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오겠죠."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기약은 나쁘지 않으니까.
"그럴까요, 보검 없이도 그들은 사람을 망설임 없이 죽일 테니까. 죽일 각오를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걸까요."
그건 어떠려나. 너는 에델바이스에서 마주쳤던 이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망설임 없이 공격을 가하던 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과연. 그들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거부감을 지니고 있을까. 그들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혹은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던 가디언즈들을 향해서 방심하지 않고, 전력 혹은 그에 준하는 실력을 행사한 이들이 과연 그러려나. 달리는 열차를 기습하고, 그 쇳덩어리의 공격에 맞서 싸운 건 어째서였을까, 단순히 물러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임무를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우리가 손에 쥔 보검 때문이었을지도. 그렇다면 반대에 선 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승산이 없다면 마음이 꺾이고 마는 게 인간이었다, 마음이 꺾인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지만, 모든 게 끝날 때, 결국 마음은 꺾이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보검은, 그 마음을 지지하는 지지대의 역할도 맡고 있는 건 아니려나.
"인간이 맹수 앞에 서서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손에 쥔 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기를 잃은 인간은 맹수 앞에선 먹잇감에 불과하니까요."
절대 패배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건 그들이 지닌 세븐스 그 자체인가, 아니면 보검을 통한 자신감의 발로인가. 사실 아는 바가 많지 않않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추측이었다. 때문에 틀렸다고 해도 별 수 없다. 정답따위 모르니까. 너는 자신을 향한 그의 시선을 느끼곤 눈을 마주친 뒤에 살짝 웃었다.
"비유가 적절하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다만... 누구라도 감정과 이성을 분리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인간이라면요."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될 때. 처음에 그와 나누었던 주제로 돌아가 버린 것 같지만, 더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이미 피를 묻힌 손이라고 해서 피의 감촉을 느끼지 못하지는 않아. 오히려 그 감촉만으로 피라는 걸 알고, 그 코를 찌르는 비릿한 향 만으로도 피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 색만으로도 지금 흐르는 피인지, 흐른지 오래 지난 피인지도 알아챈다. 무뎌지지 않아. 무시하는 법을 배울 뿐이다. 찢어진 피부로부터 느껴지는 통증처럼, 무뎌지지 않는다. 무뎌진 게 맞다면 소독을 한다고 해서, 무엇이 닿는다고 해도 둔한 채로 있을 테지만 그렇지 않으니까. 참는 걸 무뎌진다고 말하지 말았으면 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아직 무뎌지지 못했는가? 무뎌지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저는 그들이 언제까지나 있는 그대로 느끼기를 바랍니다. 무뎌지는 게 그들처럼 되는 길이라면.
호선을 그리는 눈이 처연하다. 너는 왜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나. 그럴만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닌지라 아마 그러지 않으려나.
왁자지껄한 시간이 정점을 지난 후에는 짧은 소강이 찾아오기 마련이건만, 이번 회식의 열기는 그리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많은 인원이 한 자리에 모여 만들어내는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열기도 그렇고 심리적인 거리감으로써의 열기로도 그렇다. 술 마셔서 후끈거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있으려니 몸도 덥고 정신적으로도 지치는 기분이다. 그는 기질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직까지도 타인과의 교류를 다소 낯설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두 명은 괜찮은데 20명에 가까운 인원은 좀. 평소 마을에서 그러던 것처럼 거리를 두고 넓게 퍼져 있거나 정적인 태도로 이야기한다면 모를까, 이렇게 가깝게 앉아서 떠들썩한 분위기는…… 영 익숙하지 않다. 아마 이 마을을 벗어나 대도시에 간다면 이보다도 더 곤혹스러워하지 않을까. 싫은 것은 아니지만 잠깐 혼자 보낼 시간은 필요했다.
어차피 저와 집중해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도 없겠다, 그는 자연스레 자리를 빠져나와 밖으로 나섰다. 바람이라도 쐬고 들어오면 다시 끼어들 마음이 들 것이다. 아직까지 술도 마시지 않았으니 정신도 쌩쌩해서 문제 없다. 문을 열고 나온 복도는 조용했다. 그냥 멀리 가지 말고 여기 있다 돌아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문턱을 넘고 화장실을 치나쳤다. 아니, 지나치려고 했었는데 신경쓰이는 일이 생겼다. 막 여자화장실 쪽에서 누군가가 나와 비틀거리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게 영…… 그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그 누군가가 픽 넘어가려고 한다. 그는 곧바로 달려가 두 손으로 어깨를 붙잡고 상대를 바로 세우려 했다. 때마침 잡을 수 만큼 가까이 있어서 다행인가. 눈 굴리며 그런 생각이나 해대다 조금 늦게서야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오, 이게 누구야. 잡아주고 나니 낯선 얼굴이 아니다.
"야, 씨* 큰일날 뻔했네. 조심 좀 하지."
그가 씩 웃으며 말을 건넸다. 나름대로 인삿말처럼 반갑게 말한 것인데 말투가 이러니 곱게 들릴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