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왜? 라는 물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어리둥절한 아스텔을 보며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눈매를 휘었다. 그리고 그가 거절할지 받아들일지 아니면 먼저 왜인지를 물을지- 여러가지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으니 하나가 잡혔다. 군말없이 받아들이기인가.
"아- 괜찮아- 대련도 아니고오 요란하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아."
처음부터 모른다고 했어도 가벼운 스텝만으로 가능한 걸 알려주던가 그럼 됐다며 또 흐지부지 해버릴 것이었기에. 기본이나마 할 줄 한다면 알려주는 번거로움이 없어져서 고마울 따름이다. 레레시아는 그림자에서 나와 내민 손을 잡은 아스텔과 그의 손을 보았다. 내민 건 그녀가 먼저였지만 그가 잡은 대로 잠시 그대로 있었다. 마침 아스텔이 말을 덧붙였기에 그 텀은 그리 이상하지 않았겠지.
"기본이라면 왈츠려나아. 충분해 충분- 서로 발 안 밟을 정도면- 파트너로서는 최고인 거랬어-"
그러니 발만 밟지 말라는 건지. 의미가 있는 듯 없는 듯한 말을 하곤 아스텔과 마주보고 서서 자세를 잡는다. 먼저 잡은 손을 옆으로 뻗고, 적당히 간격을 두고, 남은 팔을 올리려다가 멈칫하며 대답한다.
"흐응. 아스텔은- 매사 관심 없어보이면서어 은근-히 호기심 충만 하구나아? 그래 뭐- 나는 이미 말 했어- 모르는게 약일 때도 있다구우."
니히히. 이질적인 웃음 소리를 흘리고 남은 팔을 올렸다. 처음엔 익숙한 듯 아스텔의 등 뒤로 올렸다가 앗, 하며 위치를 바꿔 아스텔의 어깨 근처로 올린다. 그녀가 하려던 포즈는 남성역이었기에.
"너어는 라라가 아닌데에. 버릇이 이래서 무섭네- 에- 아니면 내가 리드할까아?"
우스개소리 같지만 아스텔이 빈말로라도 그래, 라던가 편할대로, 라고 한다면 정말로 레레시아의 손과 팔이 아스텔의 허리와 등을 받치며 리드하는 쪽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건 아니건, 곧 자세를 다잡곤 같은 발을 내딛는 걸로 한밤중의 기묘한 춤사위가 시작되었겠지.
물론 그다지 쓴 일은 없었다. 애초에 자신 같은 세븐스가 사교 댄스를 배운다고 한들, 대체 어떤 잠입 임무에서 쓸 수 있다는 것인지. 그래도 로벨리아가 가르쳐준 것이니까 어딘가에는 쓸 데가 있지 않을까. 딱 그 정도로 생각하며 아스텔은 제대로 자세를 잡았다. 그러는 와중 레레시아의 말에 아스텔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평소 톤, 즉 무심한 목소리를 내면서 그 말에 대답했다.
"...네가 가디언즈의 스파이라는 것이 아니면 딱히 무슨 말이 나와도 크게 당황할 생각은 없어. ...자랑은 아니지만, 그런 부분에선 피차 마찬가지라는 말도 있으니까. ...이를테면 내 경우도 마찬가지고."
모르는 것이 약. 그것에 대해서 아스텔은 어느 정도 동의했다. 세상에는 몰라서 나은 것도 많았다. 이를테면 자신, 그리고 에스티아, 더 나아가 로벨리아의 이야기까지. 물론 딱히 숨길 것은 아닐지도 모르나, 적어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다른 이에게 말하는 것에 저항감이 있었다. 딱히 아픈 과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로벨리아가 만든 제 0 특수부대원들과의 신뢰 관계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물론 대부분 혼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니 크게 상관은 없을지도 모르나 로벨리아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것은 싫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일이지만 세상사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었다.
"...여성 역은 어떻게 하는지 몰라. 그러니까 리드는 내가."
말을 마치면서 그는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며 살며시 스탭을 밟았다. 그녀의 허리와 등을 받치면서 조심스럽게 스탭을 밟음과 동시에 그녀의 발을 밟지 않고 정말로 메뉴얼대로 이어나갔다. 기교는 없으며 정말 딱 표준어치의 정도. 좋게 말하면 흐트러짐이 없으나 나쁘게 말하면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는 춤. 허나 그 스탭을 그대로 유지하며 그는 살며시 턴을 넣어주기도 하며 마지막까지 그녀의 몸을 지탱해주면서 천천히 춤을 마쳤을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달빛을 조명 삼아. 한번씩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춤을 마무리지으며 아스텔은 살며시 그녀를 놓아주었고 침묵을 지키다가 살며시 시선을 옆으로 회피하면서 이야기했다.
"...역시 어색해. ...그래도 이해해줘. 말했다시피 나는 싸우는 것 외에는 그다지 잘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언젠가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이 아니고,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할 수 있겠지. ……지금 당장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유대감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을 물끄러미 마주했다. 유대감. 가장 주관적이며 애매한 감정. 이스마엘이 판단컨대 오늘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생사를 한 번 넘긴 했지만, 그렇다고 깊은 유대감이 생기지는 못한 것 아직 많은 시간과 대화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 얘기한다 한들 이스마엘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 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언젠가 스스로가 가진 삶의 이야기와, 본인에 대한 신념이 떳떳해질 때 이야기를 꺼내도 이해할 사람이 적겠지만. 그래도 유대감이 쌓이면 쉽게 배척하진 못하겠지. 이스마엘은 기대하라는 듯 눈매에 깊은 호선을 긋고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생각을 갈무리했다.
"걸림돌이라. 과연 그럴지는 모르겠군요."
이스마엘은 연고를 바르기 위해 면봉에 연고를 묻힐 적 짧게 생각했다. 당신은 사려 깊고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지극히 이 세상의 군인다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시에 걸림돌인 아군만큼 방해가 되는 일은 없다. 당신의 과거를 알 수는 없으니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기로 하지만, 어쩌면 당신과 나는 비슷한 점이 많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속내를 감추며 뺨에 연고를 바르자 쓰라림이 몰아친다. 얼굴을 찡그렸다. 그나마 유순해진 것 같던 눈매가 다시 매서워진다.
"예. 전선 뒤에 있어도 체감이 되더군요."
이스마엘은 뒤에서 아이들을 지켰음에도 무장의 위력을 체감했다. 무장이 없었더라면 아이들을 지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다음부터 지킬 것이 없다면, 이스마엘도 전선에 투입돼 보검의 성능까지 여실하게 느낄 기회가 오겠지. 다시금 시체가 떠오른다. 이스마엘은 쓰라린 듯 눈을 감아버리는 걸로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보검 없이라."
이스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보검을 가진 사람들과 서로의 차이. 이스마엘은 이 단락에서 이상적일 수 없었다. 인간에게 죄사할 기회가 한 번은 있어야 한다, 인간은 서로 같다, 모든 존재를 품어야 하며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임에도.
"제법 흥미로운 주제긴 하지만, 보검이 없어도 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조가 딱딱했다. 쾌활하던 어조가 단번에 낮아졌지만 냉기가 서리진 않았다. 연고를 바른 뒤 거즈를 덧대기 위해 손을 뻗는다.
"우리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을 죽인 경험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든, 무엇을 했든, 무슨 사연이 있어 보이든 박해할 권리를 주장하며 보검을 휘둘렀습니다. 보검이 없어도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지요." 그래도 인간은 더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 이후엔 다시금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눈두덩의 찢어진 부분에 새로 연고를 바른 면봉을 대었다. 비록 그로 하여금 모든 걸 잃었지만. "언젠가 에델바이스의 전원이 무뎌져 감정을 이성과 분리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이상."
눈을 흘끔 굴리듯 들자 치료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당신이 보인다. 복잡한 미소다. 이스마엘은 잠시 단어를 곱씹고 문장을 고른다. 이스마엘은 그 모습에 천천히 눈을 휘었다. 가늘고 긴 호선이었다.
>>473 꺄아 좋아~ 회식 일상! 마리는 술에 만취했다가 화장실갔다가 토하고 비틀비틀 나올 것 같고. 왕게임때 승우 모습 보고 기억하고 있을 것 같지. 서로 이름이랑 안면정도는 아는 사이면 좋을 것 같아. 마리는 입단한지 얼마 안되었다는 설정이구. 혹시 선관이나 생각나는 거 있으면 말해줘~ 시트 읽어봤는데 딱 선관 생각나는 건 없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