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음. 이쪽에도 임무 이것저것 주면 좋겠는데에. 그 때 안 썼어-? 취급 주의 하라구우. 잘못 터쳐서 너나 조직원이 다쳤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
듣기로 그 이후에 아스텔도 큰 부상 없이 복귀했다던가. 그걸 듣고 안 썼을지도- 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정말로 안 썼네. 그만큼 당시의 적이 만만했던 건지 아니면 아스텔의 진면목이 그런 걸 쓰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하다는 건지. 뭐. 아무렴 어떨까. 그저 취급에 조심하라고만 하고 넘긴다. 괜한 오폭으로 누가 다쳤다는 얘기만 안 들리면 되니까.
"에- 가끔은 모르는게 약일 때도 있으니까아. 그래도 제대-로 설명은 했다아?"
피해야 할 것과 무난하게 만만한 것. 당장 해치울 수 있는 것과 나중을 기약해야 하는 것. 말마따나 임무도 아닌데 이 정도 기믹은 있어도 괜찮지 않은가. 그대로 가만히 아스텔의 선택을 기다리던 레레시아는 그가 세번째를 고르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샥 내려 뒤로 감췄다. 마치 선택을 무를 기회는 주지 않겠다는 듯이.
조금 살벌한 예시를 듣고도 그녀는 딱히 뭐라 말하지 않았다. 한 마디쯤 태클을 걸 만도 한데.
"세번째를 이미 골랐으니까아 무르기 없- 음- 대신 이행하고도 궁금하다면 내용은 알려줄- 게- 정말 정말 듣고 싶다면야-"
그러니까 잘 생각해보라구우. 그의 옆을 스쳐지나가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터벅터벅. 레레시아는 건물의 그림자를 벗어나 달빛이 환하고 어느 정도 공간이 트인 앞쪽으로 나간다. 그 한복판에 서서 아스텔을 향해 한 손을 들며 그가 고른 세번째를 말해주었다.
"여기서 나랑 한 곡 춤춰주는 거- 그게 세번째 였습니다아. 자자. 빨리 오라구우. 꾸물거리다가 달이 기울겠어-"
너무도 당당하게 꺼낸 세번째는 들으면 어이없고 왜? 라는 생각이 들 법 하다던 전제에 걸맞는 요구이지 않았을까. 아스텔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그 만이 알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오라는 손짓을 하면서 표정으론 어떻게 할래- 라고 말하고 있었다. 거절해도 상관없을 듯이.
>>400 방금 웹박수 확인했어요! 뭐, 선택지야 여러분들이 만들어가는거니까 시도를 못할 것도 없겠지만 로벨리아가 가만히 있진 않을 것 같네요. 그리고 사실상 시트 내림 처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옆눈) 사건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으니 답변을 삼가하도록 할게요!
"너희를 나쁘게 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만, 아직 너희들에게는 조금 벅찰지도 모르는 임무들이니까 대장도 어쩔 수 없겠지."
제 0 특수부대원들의 실력을 약하게 볼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이 임하는 임무는 상당히 위험한 것들이 많았다. 자신조차도 방심하면 그대로 목숨이 날아갈 정도로. 아직 그런 임무를 수행시키기에는 조금 애매하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어쨌건 로벨리아의 의중은 아스텔도 알 수 없었다. 허나 계속 놀게만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아스텔은 취급을 주의하라는 그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정 애매하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집어던진 후에 복귀해도 될 일이었다.
아무튼 무르기 금지라는 말을 하면서 아스텔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허나 이내 나오는 말에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딱 그녀의 말대로였다. 왜? 어째서? 라는 감정이 절로 떠올랐다. 허나 이내 그는 곧 납득하기로 했다. 딱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으니까. 그리고 그것이라면 자신도 납득할 수 있었다.
"...마치 내가 음료수라도 하나 사라고 요구한 것과 다를바가 없는 것 같은데. 뭐, 그게 소원이라면. ...하지만 기대는 하지 마. ...왕게임 때도 이야기를 했지만 난 싸우는 것 이외에는 잘하는 것이 잘 없으니까."
잘해봐야 낚시 정도일까. 그나마 그것도 전문가에 비하면 조금 덜한 정도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아스텔은 숨을 약하게 내쉰 후에 어둠 속에서 걸어나와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리고 잠시 멈춰선 후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까... 음. 대장이 잠입 임무에 필요할수도 있으니 기본적인 것은 알아두라고 가르쳐준 것은 있는데. 그걸로 충분할까? ...다른 것을 원한다면 네가 조금 가르쳐줬으면 하는데."
정말 기본적인 사교 댄스. 그 정도는 알고 있긴 했으나 좀 더 복합적인 것에 대해서는 그도 아는 것이 없었다. 한편 그와는 별개로 그는 그녀에게 별개의 것을 또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른 것도 내용 정도는 듣고 싶어. ...이해할지는 별개지만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는 도와줄 수 있으니까. ...임무가 없고 내가 수행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한다면."
글쎄, 뭔 심보일까. 그 자신은 둔감해서 제 심리조차 알지 못해 질색하고 만 반응이었지만 사실은 간단한 이유다. 우선은 그냥. 말한 그대로 유루의 깜찍했던 시절을 상상하려니 괴리감이 들어서고, 조금 더 깊게 파고들자면…… 어차피 세븐스로 난 이상 누구나 저마다의 불행을 달고 살았을 텐데, 그런 복잡한 사연은 듣고 싶지 않아서다. 제아무리 둔감한 그라 해도 사람으로 난 이상 기본적인 공감 능력은 갖추었다. 어쩌면 분위기 애매해질 거고, 어쩌면 저 역시 울적해질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그 이야기는 아직이다. 그런 생각을 대충 '그런 거 있다'라며 뭉뚱그리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상하게 방심하고 있던 그의 귓가에 안 들으려던 이야기가 꽂혀버렸다.
"*, 진짜 상상 안 가긴 한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다는 걸까. 방금까지 질색하던 것과는 딴판으로 그렇구만, 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끝이다. 잘 흐르다 그새에 또 시비조로 들리는 말을 받고서도 그는 눈썹 까딱거리며 싱긋 웃기만 할 뿐이다.
"어. 안 맞고 안 털릴 거다, 개*아."
저놈 변덕 부리는 게 하루이틀이어야 짜증이라도 나지. 감정선은 몰라도 그는 유루의 태도에 제대로 적응한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여승우도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어떤 점에서 그러냐면, 딴에는 양심이 있어서 잘 넘어가니 쉬운 남자라는 사실? 들은만큼 저도 불라는 소리에 순순히 대답한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뭐… 비슷한데. 어리고, 아는 거 없고, 순진하고, ……사람 좋아했어."
마지막 말로 가서는 조금 뜸을 들이다, 눈이 가늘어지며 미간이 좁혀든다. 불쾌한 감정이 들어서라기보단 정확히 표현할 어휘를 찾느라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결국 풀어낸 말도 본래 표하고자 했던 말을 완벽하게 담아내진 못했지만 그에 대한 첨언은 없었다.
"뭐, 씨* 뒤통수 쳐서 나 죽이기라도 하게? 그런 것만 아니면 구라쯤이야. 일일이 의심하고 살기 귀찮다. 존* 호구 새*가 팔자에 맞나 보지."
별달리 재미있는 소리도 아닌데 킬킬거리다 만다. 이런 사소한 일에는 속아줘도 별 상관 없다. 말 그대로 배신이라 부를 만큼 큰일만 아니라면 그냥 속고 말지. 조금 전까지 속아서 열받았다는 듯 성 내던 것도 그냥 장난이었다 이 말이다.
"하, 넌 씨* 욕 입에 붙이지 마라. 이게… *,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입에 붙은 거거든. 아, 개 꼴받는데. 야, 너도 존* 말 더럽게 해. 씨* 거리라고. 빨리."
지금 이 장소가 제 방이라는 것만 빼면 딱 곳곳에서 출몰하는 진상들이 하는 짓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헛소리다. 헛소리에만 그치지 않고 그는 유루가 제 근처를 지날 적에 손을 들어 쿡쿡 옆구리를 찔러대려 하며 귀찮게 굴었다. 뭐, 말이라도 예쁘게 해서 친구 만들라는 소리인가. 물론 비교하자니 묘하게 자존심 상하긴 했지만 굳이 친한 사람을 노력해가면서까지 더 늘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한테 그다지 기대하고 싶지도 않고, 아는 사람 딱 하나 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뭐든지 나은데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삶에 필사적이지 않고, 변하고자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태도가 그저 안일하다. 만족의 기준치가 낮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본인이 얄망스러운 짓이나 하고 빈둥거리면 적당히 하다 그만두겠지 싶었는데, 어쩐 일인지 유루는 기본적인 정돈까지 다 끝내주었다. "오, 고맙다. 진짜로." 처음에는 집안일하던 방 주인 훼방이나 놓던 불청객이었는데, 이제는 어째 행실이 역전되어 있다. 그는 순순히 감사를 표했고, 그 마음도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유루가 발짓을 하자 휙 굴러 피해버리고선, 그도 몸 돌려 마주 발길질을 한다. 이건 뭐, 숨 쉬듯이 이러는데 질리지도 않나. 쓸데없이 자존심 강한 두 바보들의 대결이 이런 걸 말하는 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