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취한 사람이 안 취했다고 우기던가. 그것을 떠나서도 지금 그녀는 상당히 취한 상태로 그의 눈에 비쳤다. 물론 그녀는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녀의 물음. 행복이라는 것이 뭔지 아냐는 말에 에스티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저런 것을 묻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는 일단 순순히 자신의 손을 마리에게 내줬다.
"행복? 글쎄.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냐고 물어도... 그냥 자신이 만족스럽게 잘 살면 그것이 행복 아니야? 사실 나도 그 관련은 잘 모르겠어서. 세븐스는... 사실상 내가 태어난 시절부터 억압당하고 차별받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그걸 행복이라고 하진 않잖아?"
생각해보면 세븐스 대부분이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며 에스티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더 깊게 생각하진 않으며 에스티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깊은 생각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게 하기 딱 좋았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진 않아서 애써 지우려고 하며 에스티아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응! 역시 마리가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이 행복이 맞을거야! 행복하면 기분이 좋고 그렇다잖아? 사람마다 행복의 정도는 다르다고 하니까. 음. 우리 언니라면 좀 더 전문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아스텔도 그렇겠지만 나도 이 관련 이야기는 잘 모르겠네. 아하하."
자신이 과거에 살았던 삶. 그곳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그 광경을 말한다고 한들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아마 아스텔과 로벨리아. 두 사람이 아니면 쉽사리 믿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뒤이어 에스티아는 들려오는 말. 자신은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그 말에 단호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양 옆으로 저었다.
"아스텔과 같은 말을 하는구나. 마리는."
그렇다는 것은 아스텔도 한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일까. 허나 그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으면서 에스티아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진지한 목소리를 내면서 그녀의 손을 더욱 꼬옥 잡았다.
"우리 언니가 말한 것이 있었어. 이 세상 그 누구도 행복에서 멀어져서는 안되며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고. 그럴 자격을 만드는 사회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그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정의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어설프지만 로벨리아가 말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그리고 거세게 말을 하나 어디까지나 흉내에 지나지 않았기에 상당히 어설픈 느낌에 가까웠다. 뒤이어 그녀는 살풋 웃으면서 시선을 살짝 회피했다.
"그러니까 울지 마. 마리도 행복할 자격이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모두가 모여서 이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거니까."
"그런 삶. 여기서는 아무도 찬동하지 않아. 여기는 에델바이스. 당연히 주어져야만 하는 자유와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싸우는 곳이야."
조금은 냉정할지도 모르나 에스티아는 그렇게 대답했다. 쓰여지고 버려져도 괜찮다. 그 말 또한 다른 이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에스티아의 목소리는 상당히 진지했다. 그 사람을, 그리고 눈앞의 마리를 떠올리면서 에스티아는 잠시 숨을 골랐다. 물론 자신은 이런 상담적인 일보다 기계를 만지거나 컴퓨터를 만지는 일이 좀 더 능숙했기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어떻게든 말을 이었다.
"나는 마리가 어떻게 살고 지냈는지 몰라. 굳이 그것을 캐내서 묻고 싶지도 않아. 세븐스인 이상, 절대로 평탄한 삶은 아니었을테니까. 하지만 무엇이 되었건 자기 자신을 쓰이고 버려지는... 그러니까 그야말로 인간이 아닌양 말하진 말아줘. 마리. 난 그런 말이 슬퍼. 그런 삶이 너무나 당연하게 박혀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이 세상이 너무나 삐뚤어진 것 같아서."
만약 세븐스에게도 당연한 자유와 권리가 주어졌다고 한다면 그땐 이런 말이 나왔을까? 물론 이런 말이 나왔을지도 모르나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에스티아는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뜯어고쳐야한다고 생각하며 손을 푼 후에, 그녀의 눈가를 살살 엄지손가락으로 쓸면서 눈물을 닦아주려고 했다.
"그러니까 마리도 행복해지기 위해서 싸우자. 마리가 스스로가 밉다고 한다면 내가 밉지 않다고 말해줄테니까. 정말로 나쁜 것은 이 세상이니까. 능력이 있다는 것만으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 나쁜 세상을 더욱 미워하자. 마리."
"알겠으면 괜찮아. 언니가 이야기하지만 마리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 다들 사람이니까. 세븐스 이전에 사람이니까."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려고 하면서 에스티아는 상냥하게 웃었다. 물론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뭔가가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술을 먹고 주정을 부리는 것이라고 해도 결국 그 내면의 마음이 밖으로 흘러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었다.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행복해져야한다고 믿지 않으면 안되는 거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몇 번을 생각해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무언가였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아. ...진흙탕에서 구르고 쓴 물을 마신다고 하더라도 살아만 있어줘."
로벨리아가 하는 말.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만 남아라. 그 말을 그녀도 중얼거리며, 허나 마치 마리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되세기는 듯 이야기를 하며 에스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졸려? 그럼 자러 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눈앞의 그녀의 눈동자가 반 정도 감겨있었다. 이는 즉, 졸리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추리하면서 에스티아는 마리의 등을 다시 한 번 천천히 토닥였다.
"그렇다면 오늘은 못 본 걸로 하겠습니다, 떳떳하게 모습을 보여줄 때, 조금 기대해도 되겠죠?"
떳떳한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얼굴이라. 그 스스로가 그렇게 이야기한 이상 그걸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직 떳떳하지 않다는 말도 되겠지만. 반대로 그가 얼굴을 보일 때라면 비로소, 아니. 적어도 그가 숨기거나, 차마 꺼내 놓지 못한 것들을 내놓을 준비가 되었다는 이야기겠지. 지금의 네가 할 것은 기다리는 것 뿐. 그리고 별 의미 없는 미소 뿐이었다.
"네, 방치했다가 다음 임무에 걸림돌이 되거나 하면 큰일이니까요. 꼭 검사는 받을 생각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너를 향해 지어지는 미소, 그러니까 보이는 건 눈과 눈썹 정도뿐이었지만 어쨌든 호선을 그리는 그 눈에 답하듯 너 역시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이제 슬슬 치료하려는 듯한 그의 모습에, 좀 아프지 않을까 생각한다. 상처의 피는 결국 멈추게 되어있고. 그에 따라서 고통도 무뎌지지만 그 상처를 소독할 때 다시금 고통은 되살아나니 어쩌면 소독하고 치료하는 과정 역시 고통이리라. 뭐, 소독 없이 잘못되어, 끝날까지 고통을 받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말마따나 새삼 느끼는 거지만, 네. 사실상 무장 덕에 사지 멀쩡하게 돌아온 것 같네요."
공격을 피하는 것보다는 막아내는 것에 집중했던 자신으로써는, 사실 몸이 멀쩡한 게 기적이었다. 만약 무장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전투불능이 되었으려나. 목숨은 잃지는 않았을지언정 적어도 그 전투에서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했으리라. 애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세븐스도 아니었으니 전투에서 제 역할을 하기도 힘들었겠지.
"보검 없이는 어떨까,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저나, 이스마엘 씨나, 더 나아가서 가디언즈의 보검 사용자들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떨까, 그들과 너의 차이는 단순히 보검의 수준에서 드러나는 걸까? 그뿐이라면 그들이 더 낫다고 내세울 수 있는 건 진짜 보검을 지녔다는 것 뿐이려나. 그럼 그들은 진짜 보검을 쥔 행운아인가? 아니면, 더 이상은 그 보검 없이 살아갈 수 없게 된 슬픈 사람들이려나. 너는 조금 복잡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가 상처를 치료하는 모습에 관심을 기울였다.
날때부터 입이 험한건 아니였다는 말에 별 감정 없는 호응을 해 준다. 웬만큼 문명화된 집안에선 애한테 욕설 안 들려주는게 당연시 하니까, 딱히 뭐라 반응 할게 없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미묘한 표정을 하는 승우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보나마나 별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들려오는 말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정상적인 질문이라 조금 의외라는 듯, 눈을 깜박인다.
“지가 말 걸어놓고 말하지 말라는건 뭔 심보래.”
곧이어 소름 끼쳐하는 듯한 승우를 보면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만 간결하게 들려온다. 사실 계속 말하라 부추김 당했어도 할 말은 별로 없다. 유아는 다 비슷하지 않던가? 순진하고, 약하고, 어설프다. 자신 또한 그런 별 볼일 없는 아이였고. 입을 다물고 있다가도 다시금 연다. 승우가 더 질색하는 표정이 보고 싶어서? 아니, 그냥 의미 없는 조잘거림을 하고 싶어서.
“상대적으로 따지자면: 겁이 많았고, 착하고, 내향적이였어.”
그냥 어딜 가든 볼수 있는 어린아이의 표본. 특별할 건 정말 없었다. 그는 남의 어린 시절을 궁금해하는 성격은 아니다. 어차피 다 구슬프게 살아왔는데 그걸 알고 긁어댈 이유도 없지 않은가. 은근히 마음이 약한 부분도 있었던가. 그래도 이런 도덕체계 따윈 즉흥성 앞에선 힘을 못 쓴다.
“닌 말한것도 없으면서 뭘 자꾸 캐물냐? 쳐 맞기 싫으면 너도 털어.”
어조만 들으면 짜증 내는 투이다만, 사실 별 감정 없다. 그는 자주 이랬다. 화내는 듯 하면서도 머릿속은 꽃밭이던가, 때로는 무덤덤해 보이다가도 곧잘 역정을 부렸다. 당신이 이런 이상한 감정선을 이해 할진 모르겠지만. 그는 동그래진 승우의 눈을 가만 보다가 자신을 당연히 믿는듯한 말에 살풋 미소지어 보인다.
“넌 나 봐온지가 얼만데, 내가 진실만 말할거라 생각해?”
속 뜻을 알기 힘든 애매한 미소. 그 미소의 의미는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그렇게 말하고선 당신의 회답이 뭐든, 피식 웃으며 “농담이고, 구라 아니야.”라며 덧붙였을 것이다.
그는 내심, 당신이 책을 직접 읽어보고 그 내용에 값어치를 매겼으면 한다. 남이 말한 대로만 듣고 살면 좋게 말하면 학습을 하는 것이지만, 수 틀리면 바로 선전에 넘어가는 거지. 이건 언제까지나 그의 사고일 뿐이고, 강요를 하기엔 자신이 온전히 옳다고 믿기 힘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별 수 있나, 자신의 인생도 아닌데. 그저 당신을 쳐다보던 시선을 방으로 옮길 뿐이다. 다시 보아도 난잡하다.
정신적인 친구라도 있냐는 말에는 묵묵부답. 한번 흘겨 보고 그걸로 반응은 끝이었다. 무언가 셈을 하는듯 하다가도 조용해진 승우의 반응을 보자니, 친구가 자신보다도 없는 것 같다. 놀릴까 하다가도 관둔다. 어쩐지 비웃는 것이 내키지 않아졌다.
“말이라도 예쁘게 해보지 그래?”
아무런 의식 없이 움직이자니 어느새 방의 반 정도를 정리한 후. 승우의 한 마디에 손을 털고 청소를 관둔다. 정리는 하긴 했다만, 무언가를 버리지는 않았다. 비어있는 페트병도, 그 외에 널부러진 다른 것들도 다 종류별로 모아 최대한 부피를 덜 차지하게끔 정돈했을 뿐. 공책에 별로 중요한게 없다는 말에 들고 있던 공책을 아까 묶어놓았던 무더기 사이에 집어넣는다. 이내 일어서서 당신에게 다가간다. 뭘 하려는 걸까? 어째 조금 데자뷰 같은 상황이다.
“야, 비켜. 미운짓은 내 몫이야.”
팔짱 끼고 당신에게 발길질을 한 번 한다. 아프라고 때린건 아니였다만 허리 부근을 가격하려 했던지라, 잘못 맞으면 은근 아플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