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보니 지한도 슬슬 승부욕이 발동되는 모양인지 강산의 공격은 그렇게 방어되었고...강산 또한 더욱 승부욕에 불탔다. 그리하여 둘은 몇 수를 더 주고받았지만... 바둑판이 넓었던 탓인지 그 이후로도 오목 대결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 듯 했다. 눈을 부릅뜨고 판을 들여다보던 강산이 결국 양 손을 들어올리고 "기권!"을 선언하고서야 끝이 났다.
그래도 대화를 해보긴 했다는 말에 다행이라 맞장구친다. 분명 두 사람의 성격상 자기 할 말만 하고 한쪽은 그대로 납득이 되었으면 더 묻지 않고 지나갔을거라 추측하면서.
"소녀 홀로 막는 건 분명 불가능할테지요."
지나친 자신감은 강자의 용기가 아닌 어리석은자의 만용이다. 객관적으로 일대일 대련이라면 그녀의 승률은 1할도 되지 않을것이며 많아 봤자 2할정도일터였다.
"그래서 다른 분들께 잠시 협력을 부탁이라도 드려볼까 했으나 보아하니 무리일 것 같고, 여러 변수가 많은 점령전이니 만큼 최대한 그 자원을 활용해 볼것이어요."
환각,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정신을 붕괴시킬 수도 있을 능력. 그녀는 샤를 주변, 실력있는 헌터 몇을 골라 배경을 조사하고 제 의념으로 정신적인 착란에 몰아넣을 생각이었다. 실패해도 범인이 드러나기 전에 그녀는 자리에 없을테니 물론 망념소모가 어찌될지가 고민이지만 지금으로선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아 눈치 못 채셨으면 고내찮았을 텐데요.." 그렇지만 막혔다. 지한은 다른 방안을 찾아보러 합니다. 근데 오목도 은근 규칙이나 룰이 많군요..
"기권인가요?" "눈은.. 건강강화가 좋겠습니다." 지한도 눈이랑 귀 둘 다 묘하게 피곤한 기분입니다. 오히려 강산보다 더 피곤할지도 모르겠네.. 승부가 날듯말듯 하다가 결국에 강산이 기권하자 그럼 공격 하지 말고 제 턴만 두 번 하는 걸로요 라는 농담을 합니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흑돌을 더 놓지는 않는 걸 보면 그냥. 대충 비긴 것에가깝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스테이터스가 비슷해서 이렇게 접전이었던 모양인가. 라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나 스테이터스 포인트 분배 아직도 안하고 있었나...
"시간을 뺏었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론 괜찮았습니다. 라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래도 일어나야 할 시간이군요. 라도 말을 하며 일어나서는 돌과 바둑판을 같이 정리할 것 같네요.
강산은 토고의 말을 듣고 뭔가 잠깐 생각하는 듯 했다. 영월 습격 작전에서 '그것'을 쓰지 않았거나, 그 때 본 것을 완벽하게 잊어버린 강산이었다면 토고의 평에 "다들 바빠서 그렇습니다."라며 그냥 웃었겠지만. 어째서 어디선가 느꼈던 것 같은 무언가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걸까. 어째서 특별반은- (*) 잠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네? 아...네네. 누구라니요?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요? 알고보면 많죠."
토고가 질문하자 강산은 새벽감성이 일으킨 무언가로부터 깨어나 황급히 답한다.
"마도로 온갖 이상하고 재미있는 일을 벌이시는 빈센트 형님도 계시고...라임이랑 유하도 있고...아, 명진이라고 덩치 큰 녀석 하나 있었는데 지금 울산에 가 있습니다. 지한이도 은근 노는 거 좋아하고요."
* 강산이 영월 습격 작전에서 히어로모멘트를 썼을 때 등장한 미래의 강산은, 특별반이 해체되는 결말을 맞이하고 영웅이 되기를 포기한 강산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들 누구는 얼굴을 대충 알고있고 누구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토고가 편입생이라 그런가 토고는 전혀 그렇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덩치큰 그놈아는 그나마 좀 즐길거 즐기는 타입같아 보이지만 성향이나 정의감이 어딘가 어긋난 녀석이라 가까이 가기 좀 그렇다. 토고의 입장에선 써억... 마음에 드는 이름들은 아니었다. 유하라는 도마뱀은 꽤 재미있는 맛이 나지만 말이다. 토고는 강산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고는 "내가 보기엔 다 똑같던디?" 라고 대꾸하고는 이만 가야겠다는 듯 몸을 뒤로 돌려 옥상 출입구로 향한다.
"니는 그동안에 본게 있응께 그렇게 보이겠지만 내눈에는 다 고만고만혀. 정적이고 어딘가 나사 빠졌고 단합 안되고. 크크... 그나마 니는 써먹을데 많아 보인다. 아무튼, 내는 이만 자야것다. 니도 잘 자라."
언제부터였더라. 꿈을 꾸기 시작한 것과 기억이 몰려들기 시작한 즈음.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요? 머리를 짓이기려는 듯 휘두르는 고통, 아이의 육체로는 견딜 수 없을 고통에 더해 머릿속을 떠돌아가는 하나의 문장.
기억해. 기억해라. 기억해내라.
'기억'이라는 그 명료하고도 단순한 문장에 함축된 수많은 언어들이 낡은 필름 영화를 재생하듯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니.. 필름 영화? 그게 뭐였더라? 이 시대의 사람이 사용할 수 없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 꿈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 현 시간부로 서울 방위군은 궤멸 직전이며 지지대 이상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군대의 안내에 따라 최소한의 안전 지지선까지 물러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현 시간부로 서울은 궤멸되었으며 컨트롤 타워 역시 무너졌습니다. 저희 군대의 마지막 역할은 시민들의 안전 유지와, 서울의 마지막을 지키는 것입니다. "
먼 발치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남자는 굳은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전기와 통신선 모두를 끌어모아 마지막 연설을 내뱉던 것이다. 정작 군대는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더니 일이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도망친 것은 어중간한 중간 역할의 인원들이었고, 그 머리와 꼬리들은 도망칠 수도 없이 팔딱여야만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수도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던 중장의, 카메라 아래로 떨리는 손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목소리는 떨지 않았다. 그 일말의 목소리로 안심을 주려는 듯 말이다.
" 서울 시민 여러분. 이것은 실전 상황입니다. 군대는 지금까지 상정되었던 적과 다른 적을 상대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만은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군대는 언제까지고 시민의 안전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
왜? 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그 뒤로 밀려드는 생각들은 세상이 이런 변화를 겪었다면 나와 같은 이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구 한국의 기억을 지닌 누군가라면 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물음에서 그들이 가지는 '군대'의 모습은 원래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듯 싶었다. 게이트 사태 이후, 최소한의 지지선 역할을 했을 뿐.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그러니 그 물음은 무의미했고, 또 무가치했다. 내가 다름을 인정하기보단 그저 찰나의 과거, 또는 이미 있었던 일. 확실하지 못한 어느 기억으로 되짚어 넘겼을 뿐. 그런 내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 수십년 전, 군부는 어떻게든 구 한국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거쳤습니다. "
안내원은 평온하게 구 시대의 잔재들을 설명해나갑니다. 거대한 덩치의 무언가를 상대하기 위해 진군했던 의미 없던 전차들의 형태들. 통하지 않을 총과 탄환을 난사하며 적의 전진을 저지하는 데에 그쳤던 군대들. 개중 등장한 각성자들과, 그로 인해 변화한 군대의 역할들.
" 당시 수도방위사령부의 박규호 중장은 서울에서 죽을 것을 천명했습니다. 대통령이 사망한 상황에서 권한 대행이었던 박재현 부총리의 지휘에 따라 서울의 국회의사당 탈환 작전이 시작되었고 수많은 희생 끝에 군대는 국회의사당을 탈환하고 그곳에서 신 한국의 국보인 쌍룡검을 발견하게 됩니다. "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갑니다. 그러나 그 모든 기억들은 마치 노이즈가 낀 듯, 제대로 재생되지 않는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답답함에 호소하고 싶더라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생각을 지나보냅니다.
" 그 이후 군부의 궤멸과 일부 군부의 생존자들이 각 지역의 실세 역할을 자체하게 됨에 따라 수많은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태를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없는 것 같네요. "
안내원은 살짝 청량한 미소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다음의 역사를 읊어갑다.
" 궤멸되었던 한국에서 분단선을 넘어 한 인원이 북한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대형 게이트인 '일야성'의 영향을 받아..... "
건국신화는 귀에 딱지가 들러붙을 만큼 들었던지라. 시윤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무리에서 빠져나옵니다. 혹시라도 기억에 무언가 도움이 될까. 아니면 머릿속을 떠도는 '둥지'라는 단어에 대해 무언가 알 수라도 있을까 해서 선택한 결과는 썩 맘에 들지 않았으니까요.
시끄러운 소리들. 전장을 뒤엎는, 정적보다도 더욱 먹먹하게 하는 것들. 시윤은 어느새 자신이 총을 쥐고 있단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평소의 버릇처럼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몸으로 쥐는 게 아니라, 의념을 운용하더라도 흐릿한 필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풍경으로 말입니다.
그 곳에서 윤시윤은 눈 앞을 바라봅니다. 언더휴먼의 두 눈이 오류가 나지라도 않은 이상 보이지 않을 풍경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습니다.
꿈이 아니다.
" 그래요. 긴 말은 하지 않죠. "
작은 방. 아마도, 시윤의 기억에 의해 그렇게 비춰졌겠지만 이 곳에는 단 두가지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는 어두운 풍경, 하나는 개중 밝은 것들. 어두운 것에는 사람도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 왜 하필 특별반이었나요? "
머리가 묵빛처리된 듯한 모습으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이가 물어옵니다.
" 그러게요. "
시윤은 어울리지 않은 표정으로 웃어갑니다.
" 그냥. 여기다. 라고 생각했어요. " " 저는 개인적으로 이 특별반 프로젝트에 별로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아요. "
그는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 물론 당신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우리가 당신을 바랐다는 것 모두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건 UHN이라는 조직의 이야기이고. "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 개인의 입장으로 이야기해주자면. "
그는 손짓으로 문 바깥을 가르킵니다.
" 지금이라도 나가요.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재능이 있어요. 늦지 않은 시간에 스카우터가 당신을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어쩌면 당신이 신 한국의 두 번째 기적의 세대가 될지도 모르죠. " " 하지만. "
시윤은 그때, 손을 꼬물거리며 말합니다.
" 그러기에는 제 목표가 무엇인지는 묻지 않으시네요. "
두 눈이 그를 향합니다. 꿈뻑, 꿈뻑, 두 번의 깜빡임을 보던 상대는 시윤의 말을 듣곤 어색한 웃음소리를 흘립니다.
" 하하.. 그렇네요. " " 많은 사람들이 가디언을 선망하곤 해요. 그 강한 힘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명성도, 세계를 수호한다는 명예도. "
시윤은 늘어지듯 의자에 기대어 말합니다.
" 분명 엄청난 명예이겠지만. "
웃습니다.
" 저에게는 별로 바라지 않는 것들이에요. "
머릿속을 다시금, 한 단어가 떠돌아갑니다. '기억'
" 시윤 군은.. "
그는 어색하게 흘리던 웃음과 함께 다시 의자에 앉습니다.
" 어른스럽네요. 아주 많이 말이에요. " " 많이 듣던 이야기네요. " " 별로 좋진 않은 이야기지만요. "
웃음을 짓곤, 그는 시윤의 서류에 도장을 찍습니다.
" 난 아이는 아이다운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회의 썩은 맛과 세상의 비참함을 모르고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요. 이 길에 들어선 순간 시윤 군은 더이상 도망칠수도 빠져나갈수도 없어요. "
그래도 좋나요? 라는 말에도 시윤은 웃습니다. 그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듯 말입니다.
귓가에 속삭이듯 물어오는 이야기들. 소년의 어색한 고백과, 그를 받아주는 소녀의 고백.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서 물어가는 대답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다만 받아들였던 어른의 대답.
그러니 이것들은.. '윤시윤'을 구성하는 것들입니다.
빛. 그 거대한 섬광이 지난 직후 시윤은 익숙한 풍경을 마주합니다. 과거에도, 조금 더 짧은 과거에도 보았던 풍경.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충족감과 만족감.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내달리고 싶은 기분 속에서 시윤은 눈 앞을 바라봅니다.
한 소년이 손으로 작은 모래성을 만지고 있습니다. 이미 무너졌던 모래성을, 주위에 모래를 끌어모아 느리게 쌓아올리면서도,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말합니다.
˝ 재미없어. ˝
그 목소리는 기이합니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느낌도 있고, 초여명을 앞둔 노인의 목소리같기도 했으며, 순수한 고백을 전하는 소년의 목소리같기도 했고, 절규를 뱉는 청년의 목소리같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새침한 어린 소녀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했고, 아이를 아끼는 노파의 목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호통을 지르는 여성의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 무너진 것을 다시 쌓아야 하는 건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 ˝
소년은 부루퉁한 말투로 말하며 시윤을 바라봅니다.
˝ 그렇지 않아? 지금의 너를 무너트리고, 과거의 너를 쌓아가고 있는 거. 재밌어? ˝ " 무너트리진 않았다만. "
시윤은 지금도 나는 나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 그래? ˝
소년은 여전히 부루퉁하게, 시윤을 바라봅니다.
˝ 그럼 왜 지금의 '너'는 없는데? ˝
소년은 손을 떼어내고 모래성을 가르킵니다.
˝ 봐봐. 이 모래성은 너의 일생이야. 너의 삶, 너의 목표, 너의 방향성. 그 모든 것을 가르키는 것. ˝ ˝ 너는 과거의 너를 인정하면서도 지금의 너를 인정하려 하지는 않아. 왜인지 알아? 편리한 부분에선 과거의 '어른'이었던 너를 데려오고, 불편한 부분에선 지금의 '아이'인 너를 데려오거든. ˝
푹. 소년은 모래성의 일각을 붙잡고 천천히 손을 비빕니다. 엘터 교관과, 시윤의 대화가 스쳐갑니다.
˝ 그렇잖아? ˝
소년은 웃습니다.
˝ 너는 누구보다 너라는 존재를 찾으려 하면서. 지금의 너는 중요하지 않아. ˝
왜? 라는 대답을 스스로 꺼내며 말합니다.
˝ 네게 중요한 거는 하나거든. ˝
소년은 모래성 아래를 바라봅니다. 광활한 모래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 나는 '윤시윤'이다. 즉 스스로가 윤시윤이라고 말하면서도. ˝
그 순간, 모래들이 녹아내리듯 사라집니다.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라, 얼어붙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머리를 부여잡고, 아무리 생각하려고 하더라도... 이름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 너의 두 번째 삶은 첫 번째 삶의 부속품처럼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
소년은 즐거운 듯 꺄르르 웃습니다.
˝ 어때? 차라리 내가 도와줄까? ˝
모래를 매만지며 소년은 당신을 올려봅니다.
˝ 과거의 너를 돌려줄게. 지금의 육체를 매만져 그 시절의 육신을 빚어내줄게. 그 때의 기억과 재능을 모두 되돌려줄게. ˝
마치 아이가 선심을 쓰듯
˝ 그러니까 너는 얘기하기만 하면 돼. ˝
소년은 모래 한 줌을 떠서 당신에게 내밉니다.
˝ 나는 이주윤이다. 그 한 마디면 돼. ˝
이주윤. 당신의 가장 긴 시절을 담당했던 기억의 이름입니다. 지금의 당신이 아니라, 치열히 살아왔던 그 이름.
당신은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소년을 향해, 더 가까이. 더욱. 더욱 가까이. 소년의 어깨를 잡고, 손에 힘을 가하면서.
" 내놔. "
당신은 누구보다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 내 것이었던 것을, 내놔. "
다시 한 번 소리치면서.
" 내놓으라고!!!!!!!!!!!!!!!!!!! "
그 짧은 함성을 토해냅니다.
" 내 삶이 부속품이라고? 내 삶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과거를 돌려주겠다고? "
당신은 분노에 마구 날뛰면서 발 아래에 있는 모래성을 차버립니다. 단번에 무너지는 모래성을 보면서, 당신은 다시금 분노를 토해냅니다.
" 그래서 그게 어쩌란 말인데. 나를 돌려놓은 거는 너희잖아! 과거를 떠올리게 한 거는 너희들이잖아. 그런데 왜 나보고 이제 와서 지금의 기억들을 모두 잊으라고 하는 건데!!! "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년은 고개를 숙인 채 무너진 모래성을 바라봅니다.
" 그럼, 그 과거를 선택하면 지금까지 내가 한 것은 모두 어떻게 되는데? 모두.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잖아!!! "
그 생각에 스쳐가는 하나의 얼굴이 보입니다. 당신의 연인, 하유하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당신의 볼깨를 쓰다듬으며 말합니다. 자신이 좋은 것은 당신이라고.
"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고!!!!!!!!!!!!!!!!! "
당신의 말에 소년은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 그럼. ˝
물어옵니다.
˝ 너는 누구야? ˝ ˝ 너는 누구이고 싶은데? ˝ ˝ 왜 그럼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에 미련을 가지고, 과거를 찾아가려 하는데? ˝
- 저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답게요. 그렇잖아요. 가끔 당신을 보면 꼭.. 남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니까요. - …재밌게 살아라. 이런 세상이라도 재밌게… 그렇지 못하면, 버틸 수 없어. 그러다가. 마지막에.. 네 마지막일 때.. 떠올려주면 되는 거야. 그게.. 내 마지막 유언이다.
짧은 장면들이 지나갑니다. 수 명의 병사들 앞에서, 한 대 담배를 꼬나문 채로 앞을 바라보던 당신은 병사들에게 말합니다.
˝ 살아남은 놈들은 기억해라. 이 곳에서 누가 죽고, 어떤 결과가 남건. ˝ ˝ 네 탓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한 결과다. 그러니까. ˝ ˝ 네 마지막에 우리들을 떠올려줘라. ˝
사실 이건 나 이외에도 창작자들의 생각일수도 있는데 노력의 결과물이 일종의 드립의 무언가로 소모되거나 하면 상당히 힘이 빠지는 편임. 결국 나도 일종의 관종이라 쓰면서 재미도 느끼고 반응도 보고 하는건데 반응이 이렇게 되면 썩 기분 좋거나 하진 않음. 그래서 그냥 이 이후에는 딱히 이런 거 안 쓰거나 크게 줄일 듯 함. 1년간 지내면서 질렸거니 하려고.
구 한국 완전 개판이었구나.. 아니 전 세계가 개판인데 높으신 분들 도망친 거 결국 며칠 더 살아나겠다고 그런 건가.. 하긴 그런 게 사람 마음이긴 하죠.
윤시윤 전생이 이주윤이었군요. 무너졌고 다시 쌓는 것... 그럼 회귀는 이미 쌓인 걸 무너뜨리는 걸까.. 같이 능동형일까.. 회귀라면 어떤 방식이 될까..같은 감상도 듭니다. 저 소년인 듯한 존재가 의념기 얻을 당시의 그 분이라면.. 저 모래성을 만들고 쌓고 무너지는 걸 굉장히 많이 봐왔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