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팔팔하고 멋모르는 나이─다른 근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라 그런지, 그는 멜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다. "시간 많이 갔다고?" 고개를 기울이며 그렇게 묻기만 하니.
그는 자신만만,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승부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까지는 아니더라도'가 이제는 플래그로 굳어졌다는 것도 모르고……. 병력수가 2배라는 말에 뭔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다, 그림자 손이 불쑥 튀어나오자 경악해서 빽 소리를 질렀다.
"와, 미친 개 치사해!"
과연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승리를 위해 어른이 얼마나 치사해질 수 있는지 그는 미처 몰랐다. 저 역시 비슷한 수를 쓰지 않고 꿋꿋하게 맨몸으로 맞받는 모습만 봐도 그렇다. 사실 멜피처럼 똑같이 능력을 쓰기엔 무엇하기도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폭발 뿐인데, 에어하키에서 밀린다고 게임장을 날려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랬다가는 기물파손이나 오염 행위다. 보검을 쓴다는 선택지도 있기야 하지만 고작 이거 하나 이기자고 전신 무장을 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한 점도 내어주지 않고 무승부로 끝나도록 방어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치고받을수록 점점 점수가 벌어졌다.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완전히 밀리게 되자 한켠에 밀어두었던 욕망이 귓가에 속닥거리며 유혹을 해댄다. 이렇게 된 거 하키판 통째로 날려버려? ……그렇지만 그랬다간 대장한테 깨질 것 같으니까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되니 게임 결과는 두고볼 필요도 없이 뻔했다.
"……*, 일주일동안 너랑 거리 둘 거야."
참패다. 그는 못마땅한 투로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삐졌다는 건가. 복수하겠답시고 떠올린 방법이 '너랑 안 놀아'도 아닌 기껏해야 끌어안기 거부라니 유치했다. 아무튼간에 이렇게 진 이상 여기에서 끝낼 생각은 없다. 그는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무언갈 발견하고 그곳으로 척척 걸었다. 커다란 화면과 이런저런 버튼이 잔뜩 달린 노래방 기계와 마이크가 설치된 방이 거기에 있었다. 다음 종목은 코인노래방. 치사한 방법을 썼으니, 이번에는 아예 세븐스나 다른 수법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종목으로 선택한 것이다. 종목 선택도 양보하지 않은 건 봐선 꽤나 진심으로 토라진 듯싶다.
"존* 나부터 간다. 개같이 이겨주지."
그는 상당히 목소리가 고운 사람이었지만, 목소리와 노래 실력은 별개인 법이다. 아는 노래를 하나 골라 그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달려듬에 그녀 역시도 모조 보검을 불러낸다. 보검은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형상 변환을 시킬 수 있다고 하는 모양이지만, 그녀의 레플리카는 여전히 제 0 특수부대 개설 당시 처음 받았던 형상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에는- 고기가 붙어 살아있는 듯이 꿀렁거리면서 그녀의 세븐스에 침식 된 모습을 띄고 있었다. 기계를 이해할 수 없던 그녀이기에, 그런 식으로 보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동기화를 하여 힘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당신의 움직임을 쭉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첫 공격은 일단 뒤로 뛰어 물러나는 것으로 회피한다. 그러면서 한 편 등 뒤에서는 가느다란 고기 촉수들이 뻗어나오고 있었다.
"엔, 길쭉길쭉이 되어라."
늘어진 고기 촉수들은 그녀의 말에 따라 휘적거리며 당신을 포착하고 그대로 찔러들어온다. 무장을 통째로 꿰뚫을듯 날카로운 기세였다.
엔이 뒤로 거리를 두며 피했기 때문에 레레시아가 휘두른 클로는 바닥에 독액을 흩뿌릴 뿐이었다. 몽글몽글한 독액의 궤적이 바닥에 길게 그어지고, 그녀 역시 뒤로 두어걸음 물러나며 태세를 정비한다. 그러나 틈도 없이 뻗쳐오는 고기촉수를 피해 빠르게 달려서 피하기 시작한다.
"이런- 무서워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무장의 힘으로 여유롭게 피하고 있었으므로 전혀 겁먹어 보이지 않는다. 무기를 클로의 형상에 유지한 채 달리다가 일순간에 독액을 다량 생성해 촉수가 뻗어오는 방향으로 막을 치며 뿌린다. 촉수가 아무리 빠르고 움직임이 날카로워도 뿌려지는 독액을 막기는 어려울 터. 촉수에 일격을 가한 후 레레시아는 달리던 방향을 틀어 다시 엔에게 근접한다.
"자, 엔- 생각하는거야- 너에겐 지금 힘이 있어. 기계라고 생각하지 마. 그건 힘 그 자체야- 네가 생각하기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든 쓸 수 있는 힘-"
처음 달려들기 직전. 엔의 모조 보검에 살점이 붙어 꿈틀거리는 걸 보고 엔에게는 모조 보검을 기계라고 생각하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좀 더 본능적인, 날 것의 느낌으로 접근하게 하면 어떨까. 사실 말이 보검이지 사용자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바뀌는 힘의 덩어리기도 하니까.
"넌 그 힘으로- 뭘 하고 싶어?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 거야-?"
짧은 사이 사이 마다 그런 말들을 던지며 방심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간다. 독액을 듬뿍 머금은 클로를 빠르게 휘두르며 엔에게 파고든다. 그녀가 지나온 길, 움직일 때마다 사방에 독액이 뿌려지며 언제 어디에 닿을지 모르게 정신을 분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