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이었다. 하늘의 달이 서서히 보름달이 되어가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로벨리아는 레지스탕스의 본부 건물을 위장하고 있는 슈퍼마켓의 벽에 기대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같이 달을 즐기는 이는 없었다. 말을 하면 같이 달을 볼 이야 얼마든지 있을지도 모르나 자신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에게는 그 자격이 없었다. 자신은 그들에게 있어서 용서받을 수 없을 죄인이었으니까. 물론 아스텔과 에스티아는 그렇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고 에델바이스 멤버들은 그렇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죄인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마음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스텔과 에스티아를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인가."
아스텔과 에스티아. 자신이 어떻게든 지옥에서 건져낼 수 있었던 두 세븐스. 원래대로라면 더 구하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이 둘을 그 지옥에서 빼온 것 조차도 솔직히 믿기지 않는 기적이었으니까. 물론 자신의 그 행동 때문에 누군가는 자신을 저주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그녀가 자신을 죄인이라고 평하는 것은 단순히 그 이유가 아니었다. 그보다 좀 더 깊고 어두운 곳.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 그 모든 것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된건지. 이 세상은."
한탄을 쉬는 것만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자신이 이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아야만 했다. 그런 의무감과 책임감이 그녀의 어깨에 가득 올라 그녀를 무겁게 했다. 원죄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던가. 이것저것 활동을 했으나 다 소용이 없었고 결국 마지막으로 주어진 많은 것을 포기하고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게 되었기에 그녀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것마저도 실패하고 안된다면... 어쩌겠는가. 그 책임을 질 수밖에. 허나 그런 일은 최대한 일어나지 않는 것이 그녀로서도 베스트였다. 자신은 세븐스가 권리와 자유를 되찾는 그 날도 꼭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입김이 아직 나오진 않았으나 조금 쌀쌀했다. 허나 그럼에도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달을 가만히 바라봤다. 저 달처럼 언젠가, 언젠가 모든 것이 이전으로 돌아가길, 아니. 이전보다 훨씬 더 좋게 돌아가길 바라며. 자신의 삶의 이유는 그것이 전부였기에. 그 날까진 죽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깨를 으쓱이며 반쯤 농담삼아 말한 내게, 그녀가 종이컵에 따른 음료를 나눠준다. [오, 고마운데.] 라고 말한 뒤, 나는-종이컵을 그대로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씹고, 갈기갈기 찢고, 녹인다. 삼킨다. 흐음, 오렌지 맛이었는데. 역시 딱히 뭔가 맛있거나 하진 않구만. 설탕을 한 국자 그대로 입에 넣어도 달까 말까 한데.
아 그리고 종이컵은, 그대로 영양이랑 체액으로 변하니 괜찮다.
[무슨 내용이냐고?]
빛바랜 표지를 바라보고, 손가락을 툭툭 맞부딫혔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연다.
[...주인공 제이슨은, 보통의 사람이야. 딱히 이능력같은건 가지지 않은 보통 인간이지. 그런데, 제이슨의 남매인 과학자가 그 녀석을 기절시켜서 납치한거야. 사실 남매는 악의 조직의 과학자였고, 사람들을 개조해서 사이보그 병사로 만들고 있었지.]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엔, 수술대에 묶인 채 개조당하는 남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의외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게, 잔인한 수위가 애법 높은 편이었다.
[이번엔 위에서 그 남매의 동생을 개조하라고 말이 떨어진거지. 일단 하긴 했지만, 그 애는 마음에 걸려서... 주인공 제이슨을 개조만 하고 풀어줘버려. 같이 탈출하던 남매는 총에 맞고 죽어버리고. 그렇게 악의 조직에 복수하기로 한 제이슨은 실버 봄버란 이름을 대며 홀로 그놈들과 싸워나간다. 이거야.]
그녀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 자기 혼자 씩 웃으며 넘긴뒤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못하는편은 아니다.. 라고 생각했는데. 어라 어라. 그녀는 뭔가 점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안.. 맞는데?'
어라라라라라라? 그러나 어쨌건 스테이지는 진행되고 있었고 그냥 기분탓이겠지.. 하며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뭐라고 옆에서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녀는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어 대꾸조차 하지 못했죠. 뭔가.. 자기는 하는거 없고 옆에 사람이 엄청 열심히 하드캐리중인듯한 느낌이.. 말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내기 이야기를 굳혀버린 그녀를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멍청하다고 해야할지요. 그리고 나온 점수는 아니나 다를까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아니 진짜로 하늘과 땅 차이에요.
"꺄~ 우리 승우씨 멋져~"
지나칠 정도의 연기톤을 낸 그녀는 이내 너무 심하게 못한 자신의 점수에 웃음을 터트려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을 향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며 말했죠.
"소원은 편할때 말해. 어 떤 거 든. 들어줄테니까~?"
다소 느끼한 어조로 말한 그녀는 이내 생긋 웃으며 다른 게임쪽을 봤습니다. 아 흔히들 DDR이라고 하는 게임기가 보입니다.
열차에 올라탄 즉시 모두 사살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세븐스 아이들도, 병사들도, 블러디 레드도 온전히 가져오리라는 그 오만함이 우리의 승리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당장 2호차와 4호차에 갇혔던 이들이 독성 가스로 죽을 뻔했던 것과, 탈출 직후에도 상당히 몰아붙여졌던 걸 생각해보면 더욱 그랬다.
"그 말을 들으니 우리는 결국 인간과 싸우고 있었던 거군요. 하기사 상대가 인간이 아니었다면 레지스탕스는 존재할 수 없었겠죠."
일말의 양심인가, 아니면 이 역시 오만함인가. U.P.G와 가디언즈, 그리고 레지스탕스들 사이에는 비정상적인 전력의 차이가 있었다. 아스텔의 보검과, 자신을 비롯한 동료들의 손에 쥐어진 모조 보검만 봐도 알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차이였다. 말 그대로 정면승부로는 승산이 희박한, 시작부터 기울어져 있는 싸움이지만 어떻게 이어올 수 있었을까. 그건...
"저들이 방심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스마엘 씨 말처럼, 그들은 인간이니 말입니다."
얼핏 보면 가장 합리적인 존재인 것 같은 인간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다. 이성을 지니고는 있지만 감정에 의해 사정없이 흔들리는 존재. 합리적 판단을 하면서도 실상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레지스탕스가 거슬리지만 굳이 전부 찾아내 없애버릴 생각은 미뤄 두고 그저 눈 앞에 나타나면 흔적도 없이 치워버린다는... 마치 어린아이의 화풀이 같은 대응.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맙네요, 그렇지만 이스마엘 씨, 자격이란 건 누가 정하는 건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만약 자격을 정해줄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당신의 말처럼 저는 자격이 있는 사람일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그 말은... 대상이 저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상대가 누구라도, 너는 자격이 있다. 라고 이야기할 생각이십니까? 너는 살짝 미소를 짓다가 그의 장갑으로 살짝 눈을 돌렸다. 비릿한 냄새. 손인가? 아니면 다른 곳? 그의 행동을 곱씹으며 비릿한 향의 근원을 그려본다.
"...좋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은 순간 이미 선택은 더 나은 것일 수도, 더 나쁜 것일 수도 없었다. 판단할 기준이 사라졌다. 항상 찾아 돌아다니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가슴 속에 간직한 그 심지는 이미 거의 다 불탔다. 한 톨, 남아있는 불씨만으로 버틴다는 건 너무나 과한 게 아닐까.
"이스마엘 씨 역시, 그런 선택의 시간이 있었던 것 같군요. 당신의 삶을 바꾼 선택 말입니다."
본디 훈련장은 바쁜 소리가 오고가야 하는 것이 정상인 장소이지만, 그런 장소 한 가운데에 대자로 뻗어있는 그녀가 있다. 눈치를 보니 웬일인지 고뇌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이유는 저번의 제 0 특수부대로서의 임무. 다름이 아니라 아직 무장의 형태에 대해선 정하지 않은 채였기 때문이다. 당시 동료들은 저마다 보검을 사용해 약점을 보완하는 모습을 하고 있던 것 같지만, 그녀만큼은 무식하게 보검의 출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던 거다. 그녀는 그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나 저번에. 보검에 대해서는 가급적 빠르게 이해하는게 좋다고 하는, 로벨리아 대장의 말도 있었으니. 슬슬 정하지 않으면 혼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누워있던 때, 입구쪽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상반신을 벌떡 일으킨다.
"레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아는 얼굴이다. 물론 그녀가 에델바이스에서 이제 모르는 얼굴이 있겠냐만은, 당신은 특히나 훈련장을 자주 드나드는 단골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녀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당신에게게 다가가 "사용할 건가?" 하고 묻는다.
"레시가 훈련장을 사용할 거라면 엔은 자리를 비워줄 수 있다."
고민에 빠져 쓰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 보다는, 열심히 사용해주는 쪽이 더 보람 찰테니. 그렇게 생각했는지 당신을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