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한 번 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반나절 정도는 거뜬한 소년이다. 그렇기에 두세 시간 정도에 말을 더듬는 그녀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도 그렇게 몸 쓰는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이었기에 가만히 앉아있는 게 곤욕일 것이라는 예상이 들긴 했다.
"소년은 인물화를 좋아합니다."
현재 우울한 사람이라도 적어도 그림 안에서는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다. 다친 사람을 그림으로 그려 회복시켜주는 일도 소년은 좋아했다. 그리고 그만큼 자주 그렸으며, 자신있는 분야였다.
"힘내겠습니다."
딱딱하다 싶을 정도의 경어였고 기계적이다 싶을 정도로 무감정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하는 말이 그림을 잘 그리겠다고 하는 것이고, 이 사람의 머릿속은 희망이 포기를 떠나보내고 있다는 게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도구 정리를 끝내지 않았으니, 방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사실 소년이 쓰는 도구들 중 몇몇은 직접 그려낸 걸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보충도 어렵지 않았지만.. 현재 쓰는 도구의 관리를 허술하게 할 이유는 아니었다.
자신은 밖으로. 그리고 그는 방 안으로. 그렇게 되면 자연히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수순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헤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그의 방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괜히 어깨를 으쓱하며 로벨리아는 먼저 가보겠다는 듯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당장은 임무가 없으니 그때까진 푹 쉴 수 있도록. 아마 다음 미션도 무엇이 되었건 상당히 위험한 것이 될테니까."
당연하지 않겠는가. 당장 블러디 레드와 관련된 임무만 해도 상당히 위험했다. 그리고 애초에 그런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이렇게 제 0 특수부대를 만든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로벨리아는 참 모순적이라고 생각하며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튼 조심해서 들어가보도록."
그렇게 말을 마치며 로벨리아는 천천히 발걸음을 먼저 옮겼다. 오늘 바람은 또 무슨 느낌일지. 괜히 궁금하다고 느끼며.
뭐라고 말할 만한 수준도 아니고, 말 그대로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곳 저곳을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돌아다니길 약 1시간,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의 집 주변을 찾아내서 부모님까지 만났다. 다행히 별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이건만, 너는 간신히 손만 흔들어줄 수 있을 뿐이었다.
"윽... 그, 괜찮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어째서 어릴 때보다 성장했을 때 더 무섭다고 느끼는 걸까, 이정도 높이도 높다고 판단할 수 있게 되고, 이 높이에서 떨어지더라도 다칠 수 있다는 걸 알아서일까,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너는 조금 어지러운 듯한 정신을 부여잡았다.
"그게, 이제 좀... 내려주시겠습니까?"
어쨌든 붙잡고 있던 그의 팔은 이제 막 개장한 롤러코스터의 안전바 같이 튼튼했기에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얼른 뛰어내려 버린다거나 하면 마음에 안 들었나 싶어서 상처받거나 그런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 때문인 건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너는 그에게 내려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아까 들어올렸던 것 처럼, 나는 그를 한 손으로 잡고 내려줬다.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까, 더 심하구만. 내 명치에서 배 쯔음 까지밖에 키가 안 닿네.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문득 웃겨져서 웃었다.
[후후후후, 막 매달려 있는게 재밌었다고. 놀려서 기분 상했나?]
내려서 땅에 선 그를, 허리에 손을 척 얹은 채 스윽 숙여서 바라보았다. 아까 전 처럼 그림자가 지고, 그 안에서 보랏빛의 눈동자가 커지고, 작아지며 빛난다. 그 속에 사람의 생명은 보이지 않았다. 기계의 차가움 뿐. 그러던 나는 하하하! 하고 크게 웃은 뒤,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팡 쳐줬다. 내 손이 그의 등과 거의 비슷한 크기라서 조금 놀랐다.
[뭐, 잘 돌아갔으니 된거 아닌가? 응? 아-오늘도, 착한 일 했구만.]
하하하! 하고 크게 웃는다. 개조된 마스크가 씌워진 얼굴은 이 와중에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스마엘: 008 지금까지 꾼 꿈 중에서 가장 끔찍했던 꿈은? (독백 봄)(안 봄) 응.. PTSD..
239 꽃다발 선물에 대한 생각은? 저번에도 말했지만 '꽃이다! 홀로그램 꽃다발이 아니라 생화를 받다니, 정말 귀하다!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같은 걸 주로 생각하지 절대 저 사람이 내게 연애적인 감정을 가졌구나를 알진 못해...
162 본인에게 부모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어 아야(뼈맞고 쓰러짐)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고, 때로는 엄하게 혼나거나 감정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같이 있어줘서 고마운 존재.. 라고 생각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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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꿇어." 이스마엘: "……알겠습니다." (상관, 레지스탕스 단원일 때) "지금 꿇기엔, 물러날 수 없습니다." (적일 때) "지금 내 무릎이 땅을 쓸어내는 용도로 쓰이는 걸로 보입니까?" (이스마엘의 비틀리듯 올라간 한쪽 입꼬리가 얄밉다. 이스마엘은 땅에 침을 뱉으며 중지 하나를 치켜올렸다.) "꿇을 건 없고, 이건 어떠십니까." (적대적일 때, 마지노선을 넘었을 경우)
"나 안 보고 싶었어?" 이스마엘: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 계실 분이 아닌데, 어째서.. 당신이, 여기에..?
"혹시 여기 이 부분에 대해 가르쳐 줄 수 있어?" 이스마엘: 아! 지금 그건……. 이스마엘: 아마 좌표값이 문제일 겁니다. 지금 설정하신 좌표는 A-LP673,21이지만 실제 좌표는 A-LP689.55입니다. 재밍 때문에 타 좌표를 빌려쓰는 것일 테니까요. (이스마엘은 뿌듯한지 어깨를 으쓱였다.)
짐작이 거하게 틀려버렸다. 그렇지만 별달리 부끄러운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정말 그런 능력이었다면 편했을 텐데 아쉽네. 또다시 멜피의 품으로 들어가는 물건을 슬쩍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여승우는 제 이야기 방식이 자칫 퉁명스럽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파릇파릇하니 어렸던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그는, 말을 꺼내면서도 이야기가 어두워지지 않도록 조심하려 한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민감한 지점을 완전히 넘기지는 않도록. 결과적으로는 반쯤은 성공한 걸까. 그는 별다른 호응 없이 멜피를 빤히 집중하여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 받길 좋아하기 때문이라니, 가장 확실하고 이해하기 쉬운 이유였다.
"뭐… 그렇더라도 존* 상관 없지 않나. 사랑 못 받아도 살아는 있잖아."
음, 이건 제 입장이니 멜피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곰곰이 되짚어 보니 그가 생각하기에도 개소리다. 사랑이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건 꽤 열받는 일이었다. "아니, 취소. 개소리네." 곧바로 말을 바꾸고는 그는 가짜 총을 쥐고 가볍게 점검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뭐. 그거지. 날 안 사랑하는 새*들 때문에 열받는 만큼, 열정과 울화를 담아 개** 존*게 갈겨 버리기."
그러면서 하는 말은 아까보다 더한 개소리다. 조준도 양호하고, 작동에도 문제가 없다. 컨트롤러를 앞으로 겨누고 화면에 눈길을 빼앗긴 그가 쾌활하게 웃어보인다. 여승우는 거짓말에 서투르다. 그러니 그는, 언제나 어디까지나 진심만 보일 뿐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