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이 딱딱한 이유는 굳은살 때문이라고 배운 건지, 제이슨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소녀는 그렇게 물었다. 그저 궁금했기 때문에, 순수하게 의문을 묻는 눈은 티 없이 맑다. 너는 그 말을 듣곤 어째서 그의 손이 딱딱할지를 생각해 본다, 굳은 살 같은 건 아니겠지. 그의 무기질적인 표정과 피부색, 여러 가지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건...
"하하... 일을 열심히 하시나 봐요."
웃음과 함께 그럴듯한 이야기로 얼버무리려고 하면서, 너는 곧 움직이려는 듯한 제이슨과 소녀의 곁에 섰다. 이제 어딘지 찾으러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 작긴 하지만..." "응! 탈래요!"
인형 하나로 벌써 거부감이 싹 사라진 건지, 아니면 그에게서 어떤 걸 느낀 건지는 모르지만 아이는 어깨에 탈 거냐는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아마 호기심이 동한 부분도 있으리라. 반면 너는 어쩐지 작다는 걸 확실히 인정해 버리는 데다가, 어린이도 아닌데 어깨에 올라탄다는 것에 묘한 거부감이 들어 대답을 망설였다. 확실히 그는 키가 크니까, 어깨에 올라가면 훨씬 멀리까지 보이겠지만...!
에델바이스. 노래 이름이기도 하고, 어떤 꽃을 뜻하기도 하며, 소년은 꽤 전부터 자리하고 있는 어느 집단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별로 단 맛은 나지 않았던 학창시절에서 벗어나, 태풍에 맞서는 한 떨기 꽃과 같은 이곳에 자리한지도 어언 반 년 하고도 2년. 소년은 이 작은 마을에서 고요한 하루를 보내는 게 익숙해진지 오래였고 이 주변의 풍경을 몽땅 캔버스 위로 옮긴 지도 오래였다. 그리고-
-달칵.
"..."
붉은 에델바이스를 그려내어 아지트에 장식하기 시작한 지도, 시간이 좀 흘렀다. 처음에는 상징이 붉은색 에델바이스이길래 그려뒀던 것이다. 다만 완성된 그림이 소년의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자신을 구해준 곳의 상징을 그린다는 일은 꽤 끌리는 일이라 지금까지도 계속 해왔다. 지금도 완성된 그림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다 복도 한 구석에 세워둔 참이었다. 심지어 이번 그림은 꽤 세로로 긴 그림이라 눈에 띄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양화라는 점에서 더더욱.
넘어지지 않게 공을 들여 세워둔 그림을 좀 거리를 두고 보고자 했던 소년은 모퉁이에서 튀어나온 사람과 부딪힐 뻔 하였다. 훌륭한 반사신경을 보여 안전을 확보한 그 사람은, 그가 속한 특수부대의 대장이었다. 소년은 그녀를 검게 가라앉는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딪치진 않았으니 괜찮을까. 그제야 그녀는 제대로 자신과 부딪칠뻔한 이를 바라봤다. 그가 누구인진 금방 알 수 있었다. 제 0 특수부대원 중 하나이자 에델바이스가 구조한 이가 아니던가. 세븐스의 비애를 그대로 그려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로벨리아는 자연히 근처 벽에 걸어둔 붉은 에델바이스를 확인했다. 이전부터 이런 그림들이 장식되었던 것을 떠올리며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그림도 네가 그린거겠지? 잘 그렸어. 화풍이 꽤 특이한데. 동양의 것이었던가. 이건."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보기 힘든 그 화풍을 바라보며 로벨리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많이 본 느낌은 아니었기에 괜히 더 눈에 담던 그녀는 이내 조금 삭막한 목소리를 냈었던 그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오고 나서 2년 반. 조금은 마음을 놓을 곳이 되었나? 널 보면 꽤 예전의 아스텔과 에스티아가 떠올라서 말이지. 그래서 괜히 신경을 쓰게 되는데 귀찮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야."
아스텔과 에스티아. 두 사람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며 로벨리아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눈동자에 동정은 없었고 특별히 더 걱정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다른 이와 똑같이 바라볼 뿐. 단지 그 뿐이었다.
시원하게 웃는 당신에게 은근슬쩍 정당하지 않은 딜교를 한 그녀는 속으로 사악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이런거에 걸릴 사람이 아니니 맘놓고 하는거겠지만요.
"싸우면 더러워지는건 누구나지만, 역시 능력때문에 더 하네."
그러던 그녀가 꺼낸 말은 당신에 대해서입니다. 역시 목욕하고 다시 만나자고 할걸 그랬나..도 싶지만. 장담하는데 둘 다 씻고 그대로 자버릴겁니다. 적어도 그녀는 확실했죠. 그것을 알기에 허튼 생각은 접어두고 그녀는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흔히들 냄새 제거제라고 쓰는 그것입니다. 다만 허가없이 뿌리지는 않고 당신에게 쓰겠냐는듯 앞에 내밀어 보았습니다. 당신과 같이 다니는건 문제가 없지만 이런건 본인이 느끼는게 문제니까요. 머리를 매만지는 당신의 모습에 그녀가 확신한것이었습니다.
"냄새~? 나는 너라면 부둥켜안고 굴러도 괜찮은데?"
이런말하기 미안하지만 동료들중엔 피냄새, 철냄새, 화약냄새 같은건 그냥 패시브인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녀에게 그러한건 문제가 되지도 않기에 당신의 질문에 그저 미소짓는 그녀였죠. 다만 냄새제거제를 꺼내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기어코 뽀뽀를 성공한 그녀도 그녀였지만. 별 반응이 없는 당신도 당신이었기에 그녀는 불만족스러운 표정 ㅡ 연기입니다 ㅡ을 지었습니다.
"우~"
뭐 그것도 잠시. 당신을 따라 오락실로 들어가니 시끌벅적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사람이 많지는 않아보였지만요.
"하고 싶은거 있어?"
어쨌건 자신이 끌고온거나 다름없는 제안이었기에. 그녀는 당신의 취향부터 먼저 물어봤습니다. 당신이 딱히 아무것도 없다거나 하는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녀의 오락실투어에 참가하게 되겠죠.
본디 그녀는, 레레시아는 남의 개인사에 깊게 참견하거나 말을 얹거나 하지 않는 타입이다. 이 사람이 그렇다면 아 그래. 저 사람이 그렇대도 아 그래. 좋게 말하면 포용력이 넓은 수긍을, 까고 보면 그래서 어쩌라고 식의 마인드를 가진 인간이다. 그렇기에 누가 무슨 소리를 지껄여도 그 앞에서 하품 할 정도의 반응만 내보였는데. 그런데 지금은 어쩐지 화가 난다. 한모금 밖에 마시지 않은 차가 속에서 끓는 것 같았다.
"...왜일까..."
눈을 감고 그렇게 중얼거린다. 자문자답이었다. 왜 이렇게 속이 끓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기에,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하고 곁눈으로 레이먼드를 주시한다. 스으- 작게 숨을 들이쉬고 평소의 말투를 버리고 따박따박 쏘아붙인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왜 여기에 들어왔지? 여기 사람들이 너처럼 죄다 죽으려고 모인 사람들처럼 보여? 그렇게나 죽음이 좋으면 어디 과격파 레지스탕스나 가버려. 그래. 지금 같은 때에 한 명 쓰러졌대서 전부가 무너지지는 않겠지. 결국 무뎌지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건 그렇게 보이겠지. 당장은 그렇게 버티겠지만 그게 계속되면? 설령 모든게 계획대로 끝나고 세븐스의 권리와 평화를 되찾았다 해도 이미 몸도 정신도 전부 망가져 있으면? 너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는 남은 생을 PTSD로 보낼지도 모른다면? 머리 없어? 그 정도 생각도 못 해?"
그녀의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신경 긁을 말들을 대놓고 쏟아낸다. 그럼에도 찻잔을 드는 행동은 우아하고 차분했다.
"딴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네가 혼자 어디서 나자빠져 죽던 어쩌건 관심 없어. 그런데 네가 지금 혼자야? 여기가 과격파 레지스탕스야? 아니잖아? 그럼 최소한 혓바닥과 주둥이 관리 정도는 해. 세치 혀로 팀원 인생까지 조지지 말고."
달카닥. 말을 마친 레레시아는 식은 차를 단숨에 마셔버리고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들고 왔던 것들을 챙겨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짜증을 냈나 싶을 만큼 맹-한 얼굴로 돌아와, 어깨를 작게 으쓱인다.
"피냄새가 여엉 거슬려서어. 방으로 돌아갈래-"
안녀엉. 지극히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뚜벅뚜벅 걸어서 문으로 간다. 붙잡지 않으면 그대로 휭 나가 개인실로 돌아가겠지.
//레이주 혹시나 기분 나쁘면 말해주구... 이걸로 막레 해도 되고 따로 막레 달아줘도 되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눈을 느릿하게 깜빡인 소년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주시했다. 사람이 지닌 색은 그 사람의 인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 푸른색은 청명한 느낌을 주고, 금색은 예전부터 화려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횃불이 떠오르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그 주인을 꽤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무작정 강렬하게 타오르기보다는 적절한 화력 내에서 앞을 밝히는 느낌이 든다면, 소년은 너무나 시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예."
칭찬이 담긴 말에 대한 답은 간결한 한 글자였다. 그 뒤, 무언가 고민하듯 슬쩍 시선을 내렸다가 "소년이 감사를 전합니다." 라는 기묘한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정중한 인사를 끝내고 나서, 그녀의 걱정 섞인 말이 소년을 향했다. 예전의 아스텔과, 에스티아. 그는 지나가며 보았던 그 두 사람을 떠올리고, 곧 소년 자신을 되새겼다. 무슨 의미일지 대충 알것 같았던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이런 세상이니까 차라리 꽃밭인 것이 나을 수도 있지. 절망에 젖어서 쓰러져있는 이에게 필 꽃은 아무 것도 없으니까. 어때? 나름 시적이었나?"
작게 웃긴 했으나 영 자신이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는지 그녀는 괜히 무안한 웃음소리를 냈다. 물론 시나 그림 이런 것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현재 자신은 세븐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레지스탕스를 이끄는 대장 중 하나였다. 너무 시적인 것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의 긴 붉은색 머리를 손으로 정리했다.
"그건 그렇고 천성이라. 난 너와 처음 마주한 순간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만.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꺾인 건 아닌건가? 그렇다면 더더욱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어. 구출한 세븐스는 대다수가 마음이 부서진 이들이니까. 살았지만 산 존재가 아닌 경우가 대다수지."
그와의 만남은 어땠던가. 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잠시였다. 뒤이어 그녀는 말을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한 번 그림을 바라봤다. 그의 세븐스는 아마 저런 그림과도 관련된 것이었지. 물론 발동만 하지 않는다면 평범한 그림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음에 나도 한 장 그려줄 수 있을까? 혼자로 아쉽다면 우리 귀엽고 깜찍하고 예쁜 에스티아도 부르도록 하지."
당신이 음료를 마시는 방법이라 하기에는 조금 특이한 행동을 보이려 하던것을 도중에 그만두자, 당신을 향해 옅게 미소를 띄며 자신은 신경쓰지 않을테니 편하게 하라는 듯한 손짓을 보낸다. 정말 순수하게 저렇게 먹는 방법도 있구나-하는 눈빛을 띄며. 게다가 그녀와 비슷한 방법의 식사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도 그런적이 있는 것 마냥 익숙한 식사방식으로 느껴지는 것 또한 있었다.
당신이 음료를 순식간에 전부 다 들이키자 뭔가 자신이 마시는 걸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 빨리 마셔야 된다는 생각이 든 걸까, 자신도 캔을 치켜들고 입 안에 내용물을 깡그리 다 털어넣기 시작했다. 그것도 어딘가 부잣집 아가씨같은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외양을 하고 있는것과 상반되게 중간에 멈추고 삼키는 행동도 없이 정말 한순간에 캔 안에 들어있던 음료를 전부 마셔버렸다(본인에게서 거북한 기색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캔을 다 비우고 나니, 그제서야 쭉 서있던 자리에서 몇 걸음쯤 물러나 당신과의 거리가 벌려졌다. 비록 눈은 여전히 당신과 마주치고 있는 채였지만.
"네? 그렇죠. 이번 임무 수고하셨다는 의미도 있고, 아무래도 배가 고파보이셔서..."
그 직후 날아온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다가 잠시 말끝을 흐리고서,
"전 사실 음식이든 물건이든 받은 기억은 있는데, 어째 제쪽에서 남에게 줘본 기억은 없거든요.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었달까?"
라는 답을 주었다. 그녀는 꽤 기억력이 좋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논외로 돌리면, 뭐든지 정말 타인에게 받은 적밖에 없는 것이였다. 그녀가 미덕이라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베푸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녀도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려 했던 적은 많았지만, 전부 어떤 방식으로든 거절당함으로서 항상 무언가를 받기만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혹시 엔씨가 괜찮으시다면, 같이 매점이라도 가실래요? 원하는 건 다 사드릴게요!"
당신이 평소에 먹는 양을 알 리 없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방금 전 당신의 만류로 집어들었던 지갑을 마치 보여주듯 다시 꺼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