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녀석들'이라는 표현은 썩 알맞은 말이다. 그나 멜피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되어버린 사람들 뿐이니까. 그가 특별해서 이리 된 것은 아닐 테다. 지금의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을 선사하게끔 만들어져 있으니. 다만 '우리'와 그들을 구분짓는 기준이 명확할 뿐이다. 이곳 사람들은 단지 그 불운의 순번이 불행히도 빠르게 찾아왔고,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겪어 결코 이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하리란 사실은 뻔할 정도로 자명하다. ……하지만 그러한 삶이 못내 처절하리라는 법은 없다. 실실거리며 동의하고는, 한가하게 옷소매의 깨끗한 부분으로 얼굴에 묻은 검댕을 대충 벅벅 닦아대는 여승우를 보자면 확실히 와닿는다.
"인기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존* 협박거리가 안 된다고."
멜피가 사람을 꼬셨다! 그런 말을 들어도 뭐… 그게 대수인가 싶고, 그 역으로도 마찬가지다. 누가 숨 좀 쉰다고 그게 걱정할 만한 일인가. 그는 멜피의 플러팅이나 유혹 전반을 숨 쉬는 것 정도의 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영화는 보다가 처 잘 것 같은데. 나 씨* 지금 개 피곤해서 어두운 데 앉아 있으면 곯아떨어진다, 진짜로."
영화가 재미없고 말고를 떠난 사실이니 목적지는 오락실로 정해진 셈이다. 거기가 어디더라. 지나가다 한 번쯤 본 적은 있는데. 비슷한 걸음으로 걷는 멜피를 흘끗 쳐다보다 적당히 감을 따라 앞서 걸었다. 방향 틀리면 알려주겠지, 그렇게 대충 생각하고서.
"뭐… 그래서 인상 깊은 놈이라도 있냐?"
멜피의 눈에 귀엽게 보이는 사람이야 잔뜩이니 그 지점에서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랬었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아서 누가 지나다니든 신경쓰지 않았다 보니 잘 모르겠다. 처음 보는 면면들이 있다는 느낌이야 언제나 있었지만, 마을은 넓으니 모르는 사람이 많더라도 상관 없겠다 생각하기도 했고. 이제는 팀으로 묶이게 되었으니 적어도 제0특수부대의 인원들은 확실히 알아두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뒤늦게 든다. 이미 같은 부대원을 못 알아봐서 너 뭐 되냐는 헛소리까지 했던 전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갑자기 실감나는 연기를 했는데요. 그러고는 반대로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욕할거라면서 작게 웃었습니다. 실제로 상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요. 아마 역겨워서 토할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녀는 소매로 얼굴을 닦는 당신을 보다가 물티슈를 꺼내서 약간 묻어있는걸 닦아주었습니다.
"섭섭하네~ 조금은 여자로서 관심을 가질법한데."
우리 사이가 몇년째인데 실망이야 자기. 그녀는 명백히 농담조로 말하며 웃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헌팅을 시도한다면 그녀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 그 사람에게 헌팅을 할겁니다.
응?
"그럼 오락실이네~ 이번에 새로 기계들 들어왔다더라~"
오락실이라면 중간에 잠들진 않을겁니다. 그녀는 양궁이라던가 이런저런 새롭게 추가된 기계들을 말하며 기대된다는듯 미소지었습니다. 근래에 누군가랑 같이 가본적도 없었으니 더욱요. 그리고는 당신의 손을 잡으려하며 조금 재촉하듯 오락실을 향해 방향을 수정해주었습니다.
"응, 있어 있어. 엄청 귀여운애♡"
그녀는 조잘조잘 그 아이가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해 설명하며 정말 기억에 깊게 남았는지 밝은 표정을 보였습니다. 그러다간 갑작스레 술이라도 마셨는지 입꼬리가 쭉 올라갔는데. 당신은 여기서 불길함을 느낄 수 있었을겁니다. 이번이 처음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녀는 직후 당신에게 뽀뽀하려고 했습니다.
굳이 궁금해하지 않을 거 같다는 그 말처럼, 레이먼드에게 무슨 사정이 있든 알 바 없다. 각자 자기 사정 안고 살기도 빠듯한 세상이다. 이 와중에 다른 사람의 사정까지 굳-이 굳이 알려고 하는 사람은 없, 지는 않겠지만. 글쎄?
"너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팔자 좋게 내뱉는 말에 맹하던 얼굴이 팍 일그러졌다. 영 듣기 싫은 소리를 들었다는 표정이다. 본격적으로 말을 하기 전에,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천천히 차를 입에 머금었다. 단맛에 길들여진 혀 위로 쓴 맛이 확 퍼지며 입 안을 개운하게 만든다. 적당히 쓰고 적당히 정신 차리기 좋은 맛이다. 차를 좀 더 식히기 위해 내려놓곤 다리를 꼬았다. 뭉툭히 닳은 캔버스화를 까딱까딱 흔들며 레이먼드에게 쨍한 시선을 보낸다.
"시체를 챙기니 어쩌니이 그 이전에- 폭발이든 뭐든 임무 도중에 죽어버리면 팀이 멀쩡하겠어-? 우리가 무슨, 전문적 훈련을 받은 병사도 아닌데에. 팀원을 그렇게- 죽게 내버려뒀다고 생각해서, 멘탈 무너지는 팀원 나올거라구우. 그럼 임무고 뭐고 나가리- 되겠지이. 너 하나 사라진다고 끝이 아니라구- 멍청아."
같잖은 에고이즘은 부디 팀 밖에서 해주길 바란다며 레레시아는 혀를 찼다. 그녀의 말들은 팀을 아껴서 라기보다 목적을 이룰 때까지 팀이 무너지지 않게 존속시키기 위한 쪽이었다. 그러기 위한 걸림돌의 제거일까. 등을 완전히 소파에 기대고 머리도 등받이에 기댄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레이먼드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선을 넘나드는게 좋으며언. 내가 해줄게. 그 대련 상대. 정말 죽일 각오로 상대해줄 테니까아."
가늘어질수록 짙게 물드는 금빛 눈이 슬쩍 눈매를 휘고 입술 끝이 희미하게 올라간다. 웃는 것 같아도 전혀 웃지 않는 하얀 얼굴이 가면 을 쓴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