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자 너는 바로 그의 곁에 앉는 대신, 주변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손에 들고서야 앉았다. 그리곤 가만히 그가 팔에 연고를 바르는 걸 쳐다보았다, 뭔가 이상한 취향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뭔가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그에게서 받았기 때문이랄까.
"음료수, 드시겠습니까?"
음료 하나, 그가 달콤한 것을 좋아할지 몰라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네 손에 들린 초코라떼 한 캔을 그에게 보여주며 묻는다. 조금 강요하는 게 됐으려나, 받지 않으면 하나는 숨겨야지.
"그, 괜찮습니다. 대화는 없어도... 저도 잠시 쉴 장소가 필요했거든요."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다, 안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또 다른 이야기로 채울 만큼 여유롭지 않았으니. 그저 조금,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이거나 조금 과할 정도로 호의를 보이지도 않는 그의 곁은 조용히 생각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의 상처를 보면서 드는 생각도 있었고. 너는 괜시리 미소지으며 캔을 만지작거렸다.
//사실 대화는 더 나누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뭔가 카넬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한 분위기에 취해 썼습니다... 그러니까 음 사실상 막레라고 보셔도 괜찮아요, 막레로 받으셔도 되고, 아니면 더 잇더라도 저는 좋습니다!만... 편한 대로 부탁드릴게요!
빠져나오고 싶다면 그냥 팔을 풀면 될 것이지 꼭 요란하게 푸드덕거리는 이유는 뭔가 싶다. 하여간에 과한 사람이다. 그 짓을 하고서는 다시 돌아 멜피를 쳐다보는 폼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했다. 아니다. 대답을 듣자 또다시 히죽 웃는 상이 되어서는.
"하여간 너도 살벌한 새*다. 근데 *, 나도 그렇게 생각 중이라 할 말이 없네."
거슬리고 방해가 될 인물이라면 치울 뿐이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면면이 다르듯, 멜피의 이유가 적에 대한 무자비함이라면 그는 마땅한 당위만 있다면 누군가를 해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쪽이다. 그 수상한 자에게 유감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유가 성립되는 데 거창한 조건이나 격렬한 감정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래야 한다면 응당, 그 정도의 일이지. 그러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스레 한숨을 쉬었다.
"헌팅? 그거 씨* 진짜로 총 쏴서 잡는다는 뜻 아니고?"
멜피가 헌팅에 당할까 걱정이라니, 차라리 진짜 총질 당할까 걱정하는 게 더 맞겠다. 그런 소리를 하며 눈썹 한쪽만 치켜올리는 표정이 영 불손했다.
"그래, 뭐. 어디 갈 건데?"
공들여 꼬시지 않아도 사실상 거의 다 넘어가버린 상태에서 술자리라는 조건도 빠졌으니 승낙하는 건 당연지사다. 기분전환이라면 그도 환영이라는 입장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는 털레털레 발부터 먼저 옮겼다.
비세븐스를 고용했다. 돈으로 고용한 보디가드. 그가 배신할 줄이야. 지켜야할 상대를 오히려 팔아넘길 줄이야. 배신, 조롱, 어찌하여 그는 배신했는가. 어찌하여 그들은 나를 붙잡았는가.
"그 건 아가씨가 세븐스가 아니었을 때 이야기고. 우린 세븐스의 호위는 안해 아가씨"
냉혹한 표정의 사내는 곰같은 체구로 그녀 앞에 숙여 앉아서 지켜보다가 이야기했다. 패드를 움켜쥐고 바닥에 내려친다. 거슬린다는듯이.
"그럼 우리는 댁들과 합의본대로 넘겼수. 돈 주쇼"
그늘에서 누군가 걸어나온다. 뒷골목의 풍경을 비추듯 빛의 사각지대에 서있던 이는 서서히 빛 앞으로 나온다. 비열한 표정을 짓고있는 20대 중반 정도로만 보이는 사내. 보디가드에게 돈을 넘긴다. 그러며 그 사내는 그녀를 내려본다. 그녀가 그 사내와 마주보고 있자 그 것이 심기가 불편한듯 이내 그녀를 걷어차버린다.
"어딜 세븐스 주제에 우리를 쳐다봐?"
세븐스 혐오 단체의 수장 이름은 안 알려져있으나 별칭으로 '레드럼'이라고 불리는, 듣기로는 사람도 몇명 담가버렸다고 전해지는 사내. 쿨럭 쿨럭하고 아리아가 기침을 하며 입에서 물이 고인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뱉는다. 그러자 나오는 것은 선홍빛 피.
"알겠어? 세븐스는 돌연변이 X끼들이야. 즉 인간이 아니라고. 근데 너희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게 많잖냐."
헛소리, 그녀는 그리 생각하고 그를 다시 쳐다보려고 하자 한번 더 걷어찬다. 마치 짐승이 어딜 인간을 쳐다보는 것이냐는듯
"즉 짐승 새X들 주제에. 인간인 척하고 인간의 자리를 노린다니까? 그러니 싹다 죽여버려야지 않겠냐?"
마침 '높으신 분'들도 바란다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비아냥대듯 그리 이야기하자 사내 근처에 있떤 이들이 킬킬하고 웃는다.
"이번엔 혀부터 잘라버리자고!" "맞아 레드럼! 그 X새X들이 우리랑 같은 말 하는것부터가 불쾌하잖아?"
처음에는 오히려 두 사람의 성격이 반대에 가까웠을텐데. 어느샌가 이런 느낌이 되어버렸지만. 결국 사람이라는게 쉽게 변하는게 아니라고 겉보기에는 많이 변한 두 사람도 실제의 관계는 그다지 바뀐게 없었습니다. 그것이 한결같다고 해야할지, 성장하지 못했다고 해야할진... 모르겠지만요.
"뭐어~? 나 그래도 꽤 인기있는 편인데."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삐졌다는듯 뿌뿌- 하고는 옆머리를 넘겼습니다. 굳이 그녀뿐 아니라 그냥 대부분의 멤버들은 알게 모르게 인기가 있지만.. 그건 비밀로 해둡시다.
"글쎄~ 로맨틱하게 영화라도 볼까. 아니면 오락실 갈까?"
그녀는 어차피 기분만 풀리면 장땡이니 아무데나 가자면서 먼저 발을 옮기는 당신을 따라 나섰습니다. 일단은 선택지는 제시했지만 당신이 끌리는곳에 갈 생각인지 여전히 가까운 거리감으로 비스듬히 옆에서 걷기 시작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