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넬리안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피를 다루려면 피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피를 직접 봐야하는 것이 능력의 단점이다.
"이상한 능력이지?"
문득 그가 소년을 바라보며, 덧붙인다. 은근히 자조하는 투다. 그야 이런 능력은 세븐스 중에서도 드물지 않을까…
"그럼 내가 잘못 봤나보네."
그는 그렇게 치부하고 간단히 넘겨버린다. 어디서 봤다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문제될 건 없다. 어차피 자신과 이 소년은 같은 배를 탄 동료. 스쳐지나갔을지 모르는 과거의 인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카넬리안이 말을 마치고 입을 다물었다. 굳이 이 주제를 더 이어나갈 필요는 없는 듯해서.
"연고는 충분하고, 붕대도 어차피 금방 아물어서."
카넬리안이 마저 연고를 바른다. 연고의 성능이 좋은 것도 있지만, 붕대를 감을 때 느껴지는 이물감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이 호의가 싫지 않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걱정어린 말을 듣는 것이─
어차피 사람은 서로 이해하지 못 한다. 있는 힘껏 이해한 척 할 뿐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흉내조차 포기한다. 레레시아가 그랬다.
"앞으로 스릴 만점인 나날일 텐데에. 굳이 찾아서 해-?"
제 0 특수부대가 생기고, 첫 임무부터 거대 로봇과 싸웠다. 시작이 이런데 앞으로는 어련할까. 늦던 빠르던 진짜 보검을 가진 실력자들하고도 맞붙을 거다. 그런 앞날을 상상만 해도 당장은 늘어져 있는게 제일인데. 꾸역꾸역 스릴이니 뭐니 찾는 사람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럴 거 같으면- 아예 임무에 나오지를 마아. 팀에 개민폐잖아-"
다시 이어지는 가벼운 발언에 신랄한 소리를 꽂는다. 도중에 버려질 거 같다면 아예 나오지 말라고. 팀원이 그녀 뿐이라면 적당히 걷어차놓고 가버릴 수 있지만, 블러디 레드 건에서 팀원들이 보인 모습을 생각하면 절대 못 할 거다. 분명 어떻게 할지 서로 떠들겠지. 그런 시간 낭비는 한 번이면 족하다.
"달달한 차도 있던가아. 뭐 아무거나- 주는 거 마실게-"
괴식만 아니라면 못 먹을게 무얼까. 레레시아는 쿠키통을 배 위에서 치우고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부스스하게 일어난 머리를 손으로 밀어 넘기고 소파에 푹 기대서 기다리다가, 툭 한마디 내뱉었다.
"스릴 즐기는 거- 대련으로는 부족하려나아?"
회복할 수 있는 훈련장에서의 대련이라면 다쳐도 곧 나을거고. 무엇보다 실시간으로 회복되니 목숨이 아슬아슬하게 밀어붙여도 괜찮을테니까.
멜피가 제 말을 맞받아치자 걸음걸이가 더 설렁설렁 대충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썹 비딱하게 기울이자 웃음소리가 픽 새다 말았다. 뭐, 따지자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 많은 부문에서 그는 대체로 부족한 쪽이었으니, 갖지 못한 것을 바라려면 어지간히도 달려야 했으니까. 그가 지금 이 상황을 간절하게 바랐느냐면 논점 이탈이지만. 다리에 힘 빼고 뒤로 비스듬하게 기댄 채라 평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아진 키가 되었다. 생각 외로 안락하니 좋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편한 기분도 들었다.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익숙지 않은 자세를 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 말이다. 그는 한동안 그러고 있다 잡혀 있던 동물이라도 되듯 푸드득 몸을 털며 빠져나오려 했다.
"그 **, 그놈 ** 꼭 우리랑 다시 볼 것처럼 말하던데. 어때?"
'어때?'라는 말이 담은 뜻은 해석하기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레인이라는 녀석을 다시 보면 어떻게 할 거냐, 그 정도 뜻이었지 않을까. 해석은 적당히 상대에게 맡겨버리는 화법은 여전했다. 여승우의 급발진이 분노 대상에게 난데없이 화를 갈기는 것이라면, 멜피의 급발진은 결이 달랐다. 문제는 그 방법이 그가 영 즐길 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싫은데."
말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즉답이다. 그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우선은 술에 약해서고, 둘째는 술이라는 음료 자체가 별로라서다. 맛 자체도 이상하고 식도와 위장이 달아오는 느낌도 좋지 않았다. 즉 그는 술 마시는 법을 몰랐다. 기껏 마시더라도 도수 1%~3%의 술이나 홀짝거리는 알쓰이자 술알못이라 그 말이다. ……그렇지만 딱 잘라 말하고 나니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매몰차게 거절하기엔 약간의 무안과 미안함을 느낀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 기분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지만. 시선이 흘끗 멜피의 눈치를 살피다 아닌 척을 한다.
"가주면 뭐 좋은 거 있냐?"
이 남자, 쉽다……. 하는 꼴을 봐선 굳이 공들여서 꼬시지 않아도 쉽게 넘어갈 것만 같다.
피를 흘려야만 사용이 가능한, 그러니까 피를 조종하는 능력이라. 꼭 자신의 피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상대방이 피를 흘리지 않는다면 사실상 능력이 봉쇄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는 출혈이 되겠구나, 하며 이해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야만 쓸 수 있는 능력이라니, 능력을 사용하며 상처를 입는 게 아니라 상처입지 않으면 능동적으로 쓸 수 없는 능력이라는 사실에 너는 조금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이상하지는... 않은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었겠죠."
그 점이 이상하다면 이상한 거지만, 너는 그가 자조하듯 하는 말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능력을 써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상처를 내 왔다는 거겠지.
"자신의 능력으로 다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으니까요."
미숙함이나, 능력의 과격한 정도 등. 스스로에게 부상을 입힐 여지는 많았다. 그러다가 그가 잘못 본 모양이라고 이야기하자 너는 말없이 하하...하고 웃을 뿐이었다, 확실하지 않다면 그렇게 되겠지.
"그렇군요, 하긴... 오랜 시간동안 관리해 오셨으니 방법을 찾으신 거겠죠."
더 이상 도움을 줄 게 없을까 묻는 건 그만두자, 그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쓰고 있으니까. 대신이랄까, 자신을 카넬리안이라 밝히는 남성의 목소리에, 너는 눈을 깜빡이다가 아, 하고 입을 열었다.
캐릭터랑 상관 없는 tmi: 욕쟁이캐 타이틀 치고는 여승우씨 욕이 좀 찰지지 못한데 그 이유는 오너랑 쓰는 말이 달라서입니다,,,, 왜냐면 저는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욕은 원래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옮겨야 맛이 살지 않습니까 근데 '저 ** 점마 ** 뭐라 쳐주께쌌노'라는 말은 해도 그걸 표준어에 부합하게 하려니까? 좀? 잘 안 되고??? 크아악 사투리캐 설정 붙일걸(?)
한창 부비부비하고 있던 찰나에 당신이 몸을 작은 동물이 빠져나오려고 하는것마냥 푸득대자 그녀는 얌전히 당신을 놓아주었습니다. 스킨십에 누구보다 진심이지만 그렇다고해서 또 그 이상은 넘어가진 않고. 사실 타인이 보기에는 스킨십의 빈도 자체가 선을 넘은것처럼 보일테지만 아무튼 오묘한 여성입니다.
"글쎄~ 다음에 만나봐야 알겠지.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를 적대하는게 맞다면 죽이고 봐야지."
그녀는 적에게는 한없이 정이 없었으니까요. 평소의 질척거림따윈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나서 단칼에 거절당해버린 자신의 술자리 신청에 짐짓 상처받은듯한 표정을 짓는 그녀였습니다. 당연하지만 실제로 상처받은건 아니에요. 그녀는 당신을 흘끗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턱을 괴곤.
"으음~ 나랑 데이트를 할 수 있다? 그 이상의 메리트란게 필요한가~?"
그러면서도 그녀는 아~ 그래도 싫으면 혼자 술마시러 갔다가 이상한 사람한테 헌팅 당하겠네~ 라며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뭐 이곳에 그런 사람이 살고있는지는 둘째치고.. 본인이 헌팅을 하면 할텐데 말이에요. 그러나 그녀는 농담은 여기까지라는듯 씩 웃고는 손을 저었습니다.
"농담이고, 이런 날 술마시다가 사고날라. 그냥 놀러가자구. 적당히 때우다가 밥이나 먹고."
시선을 흉터들에 고정시킨 채 그가 중얼인다. 그 말대로다. 레지스탕스라는 조직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이상, 능력 사용은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한 능력이라거나, 불완전한 능력이라는 생각은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가, 그렇겠지."
그도 자기 능력에 다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보긴 했었다. 하지만 제 것과는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진 않고 그저 소년의 말을 긍정할 뿐.
"뭐, 방법이라고 해도 여기 의무실 덕이지만."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이 된 것도 아니다. 카넬리안이 손을 들어 엄지로 의무실 방향을 가리킨다. 이전에 몸담았던 곳에서는 이런 성능 좋은 약을 얻을 수조차 없었다. 상처가 덧나는 건 일상이었고. 이 청년이야말로 에델바이스 의무실의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이젠 납작히 눌린 연고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고, 그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먼저 바른 왼팔은 상처가 서서히 아물고 있었다.
"쥬데카, 리오. 그래, 반가워.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소년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본다. 그리고 형식적일지라도 빈말은 아닌 인사를 꺼낸다. 이런 친절도, 제게 웃어보이는 소년도 마냥 낯설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하기사, 진정 배가 고팠다면 이곳 자판기가 아닌 슈퍼마켓으로 올라갔을테니. 꼭 임무 종료 직후가 아니더라도 때때로 식사가 모자랐다고 느끼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그곳이었다. 그것은 아는 사람들은 아는 이야기로, 그녀는 강도를 방불케하는 재고털이의 주범으로 유명한 것이었다. 여하튼 굶주린 상태의 그녀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는 정도로 얌전하지 않다는 것이리니. 그러니 이렇게나 캔을 대량으로 뽑은 것도, 단순히 이건 그녀에게 보통의 양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런 그녀가 이제 음료를 먹으려고 하는데, 무심코 한다는 행동이 무슨 캔을 과일 잡듯이 끄트머리를 집어서는- 그대로 캔 통째로 입 안에 넣으려 하는 것처럼 허공에 번쩍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의 눈과 마주치자, 하던 기묘한 행동을 멈추고 캔을 따서 평범하게 음료를 들이켰다. (그렇다고는 해도 완전히 털어넣는 모양새였지만.)
자판기 앞에서 음료를 들이키는 두 명의 여인이 생겼다. 그녀야 원래 상식이 모자른지라 그렇다고 해도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마시고 있었을까. 그녀는 그것을 궁금해 하는 일도 없이 벌써 캔 하나를 순식간에 다 비웠는지 꿀꺽 소리내며 제 입가를 손등으로 무신경하게 슥슥 문질렀다. 와중에도 눈은 당신을 향하고 있었는데,
스스로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내고, 그걸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결국 온전히 본인의 몫이라고 너는 생각했다. 타인의 말을 통해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채더라도,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더라도 그대로 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그는 적어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은 사람이었다. 라고 너는 생각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그의 말에, 너는 다시 한 번 잘 부탁하겠다은 말을 했다. 그러면...이제 어떡할까. 처음에 그에게 말을 걸게 된 이유는 오해였고, 통성명도 했겠다. 사실상 용건은 끝났다,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이렇게 떠나기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