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긁어대는 소리에도 싫은 소리 돌아오지 않자 그가 씩 웃어 보였다. 얄망궂으면서도 어찌 보면 시원스럽게도 느껴지는 미소다.
"이런 건 원래 급한 쪽이 존* 뛰어와야 하는 거랬어."
그렇게 말은 하지만, 안 들어주려는 듯한 눈치는 아니다. 그는 순순히 멜피에게로 다가가 그 앞에 섰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열없이 제 뺨을 긁적인다. 이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싫은 건 아닌데, 남이 저를 안아오는 건 몰라도 제 쪽에서 누굴 안는 건 좀처럼 해보지 않은 일이라 잘 모르겠다. 고민하다 선택한 방법은 몸을 휙 돌려서 뒤로 기대는 것이다. 뒤에 선 멜피가 비켜버리면 분명 뒤통수부터 자빠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무덤덤한 얼굴로부터는 별달리 의심하는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대로 안겼다면, 그는 그 상태로 고개를 들어 멜피를 올려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믿음의 포옹이 실패했더라도 욕이나 좀 뱉다 똑같이 물었을 거고.
"그러게 뭐 때문에 빡쳐 있고 그러냐. 마지막에 나온 그 *** 때문에?"
***이 가리키는 말이라면 당연히 정체모를 그 여자였다. 혹시나 하고 말 꺼냈는데 뱉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짜증나는 눈빛이나 하고, 게다가 잘은 몰라도 다 잡은 로봇에서 뭘 털어간 것 같은데─ 아, 생각해보니까 나도 좀 열받네? 이 ** **** 다시 만나면 가만 두나 봐라. 그는 잘 가다가 속으로 급발진해서는 또 험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녀는 씩 웃는 당신을 향해 매우 뻔뻔하게도 말하면서 얄밉게도 웃어보였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하는것에 비하면 살짝 다른 느낌의 질척거림이지만 이건 이것나름대로 당신을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물론 그걸 그녀가 자기 입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오?"
그러나 그녀는 장난은 쳤지만 당신이 자신을 안아줄리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ㅡ 항상 보통 움직이는 쪽은 자신입니다. 굳이 당신에 한해서가 아니라 ㅡ 기대하지 않았지만 당신이 다가오더니 이내 등을 돌려 기대오는 모습에 당신치고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꼭 안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가보면 소녀인줄 알겠다며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맞을거 같으니까 참도록 합시다.
"뭐어~ 그렇지."
마지막의 여자라. 그 이유가 아예 없던건 아니지만 그녀의 텐션이 내려간 이유의 중점은 그게 아니었죠. 하지만 아무리 당신이라해도.. 그녀가 속터놓고 모든걸 이야기할리 없기에 적당히 넘기듯이 말한 그녀는 부비적거렸습니다. 중얼거리듯이 열차 키우고 싶었는데.. 라고 들린거 같은데 좀 가지고 싶긴 했나봅니다.
그렇게 잠자코 상처를 돌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연고 바르던 손을 멈추고 카넬리안이 시선을 옮긴다.
"—응?"
머리 긴 소년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카넬리안은 상대에게서 기시감을 느꼈다. 그의 눈이 묘하게 날카로워졌다. 괜한 느낌일까?
"아니, 별 거 아니야."
그것도 잠시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 보면 팔의 이 상처들, 에델바이스 내에선 목격한 사람이 없었던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놀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한텐 일상이라서."
다시금 팔뚝으로 시선을 내린 카넬리안이 나직하게 내뱉은 말이다. 일상적으로 자해를 하는 거라든가,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카넬리안에겐 딱히 별 감흥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라서…일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소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자세히 뜯어보니 더 그런 것 같다. 그는 연고를 마저 바르는 것도 잊고 소년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백발의 남성이 지닌 붉은 눈이 너를 바라본다. 마치 흰 도화지에 떨어진, 혹은 유리구슬 속에 담신 핏방울 같은 색의 눈을 너는 마주보았다. 잠깐만... 어디선가 봤던가? 그렇게 생각하기를 잠시, 아마 그저 기시감일 뿐이라고 넘긴다. 그가 특징적인 외모를 지녔으니 외려 낯선 느낌에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일상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몸을 아끼지 않으면 안되는 거잖습니까."
안 그래도 자해한 건 아닐까, 혹시 삶을 비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습관에 이른 그런 행위일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별 것 아니라며, 일상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의 말에 조금, 강하게 반응하고 만다. 물론 얼마나 주제넘은 행동이었는지 알았기 때문에 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그, 제가 참견할 만한 일은 아니었겠죠, 죄송합니다."
그가 갑자기 널 빤히, 마치 못 박은 듯 시선을 고정하자 잠시 그 눈을 마주보다가 기분이 나빴겠지... 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눈을 내리감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이유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시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시선을 옮겨 제 상처들을 바라본다. 왜 하필 이런 능력일까, 차라리 능력이 없었더라면, 한탄한 적도 많았지만. 이젠 그냥 현실을 받아들인 지 오래다. 의외로 도움될 때도 있고…? 소년의 반응은 격했다. 그게 못내 미안한 모양인지 급히 눈을 내리깔자, 카넬리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한다.
"아니? 뭐라 하려던 건 아니고… 그냥 어디서 봤나 싶어서."
소년의 외모는 확실히 익숙했다. 익숙하다곤 해도 몇 번만 본 게 전부겠지만. 흔하다면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생김새였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걸 보면, 역시 이전에 마주친 적이 있었나. 이내 카넬리안은 잡생각을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