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장렬한 공격. 스페셜 스킬이나 그 외 기타 공격등으로 인해 블러디 레드는 그야말로 산산조각 나며 폭발했고 이내 파편이 되어 여기저기로 떨어졌다. 당연하나 안에 잡혀있었던 가디언즈 병사들 역시 밖으로 튀어나오듯 여기저기로 떨어졌으나 생존자는 한 명도 없었다.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보아 아무래도 마지막까지 열차의 벽에 달라붙어 에너지를 제대로 착취당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누군가는 파편없이 소멸시키려고 한 이도 있고 먹어치우려고 한 이도 있을지도 모르나 어쨌건 차량이 한개만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파편이 남아있던 것도 있었을까.
지금까지 통신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블러디 레드의 AI였던 것일까. 방금 전까지 다른 곳으로 통신을 할 수 없었던 단말기의 통신기능이 다시 돌아왔다. 아이들도 모두 무사했기에 이제 아이들을 데리고 복귀한 후에 보고를 하면 될 일이었다. 아마 본부에 있는 에스티아에게 연락을 하면 근처에 포탈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근처에 있는 나무에서 노이즈 흔적이 나타났다. 마치 허공에 아지랑이가 핀 것처럼 그 노이즈는 서서히 커졌고 이내 그 뒤에서 긴 붉은 머리 여성이 나타났다. 재밍 장치를 이용해서 자신의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붉은 머리 여성의 붉은 눈동자는 에델바이스를 묵묵하게 바라봤다. 그러다 그녀는 천천히 앞으로 다가간 후, 근처에서 나뒹굴고 있는 블러디 레드의 파편 몇 조각을 바라봤고 오른손에 끼고 있는 렌즈가 달려있는 기기를 작동시켰다. 마치 스캔하듯이 파편을 바라보고 있던 여성은 이내 장치를 끄고 앞을 바라봤다.
허나 그 시선은 절대로 호의적인 표정이 아니었다. 그 뒤의 아이들은 물론이며 에델바이스 멤버들 중에서는 강한 살기를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눈빛은 상당히 차갑고 매서웠다. 먼저 공격을 할 것인가. 아니면...
멀리서 스크린 등을 통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은 해봤지만 그것도 아니고 이 근처에 사람이 남아있었다니, 전혀 상정하지 못한 상황이였다. 심지어 저 행동과 눈빛에서 느껴지는 살기...어쩌다 휘말려 든 일반인일 미연의 가능성조차 없을 듯 하다. 하지만 블러디 레드와의 싸움으로 인해 기력이 소진된 인원도 많을터고, 저 여성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이상...
휘몰아치는 독액의 중심엔 그녀가 있었다. 무참히 부서지는 파편을, 그 사이 죽어나가는 가디언즈 병사들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그녀가 있었다. 굳은 것처럼 표정이 없던 얼굴은 이내 눈매를 휘고 입을 크게 벌렸다. 독과 사슬의 짐승이 날뛰는 한가운데에서 그녀는 웃었다. 미친듯이 웃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웃음을.
"...후-"
무사히 블러디 레드의 자폭을 저지한 후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평온하게 일어선다. 기분 좋은 탈력감이 전신에 느껴지니 이대로 돌아가면 정말 꿀 같이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이제 돌아가자며, 본부로 연락을 취하려는 순간,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서늘한 살기도 함께.
"어라-"
느닷없이 나타난 붉은 머리의 여성을 보고 레레시아는 천천히 돌아섰다. 아직 무장을 해제하진 않았지만 무기는 들지 않았다. 단지 방어구의 무장만 갖춘 채로 천천히 붉은 머리의 여성 쪽으로 걸어간다.
"누구시길래- 그런 인성 나락간 눈으로 꼬라보는 걸까나아. 어?"
안부라도 건네듯 가볍고 살가운 말투에 비해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 한 말을 건네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본다.
시간 차 공격인가, 모두 상태가 최고는 아닐터. 헌데 전투에 항상 최고의 컨디션이랄 보장은 없지. 상대가 약해졌을때 노린다, 이것 또한 당연한 것. 오장육부가 움츠러드는 기분이 든다. 물감은 공중에서 두 개의 단도의 형상을 맺어가고, 여성의 목과 심장 부위를 향해 돌진하듯 날아간다. 물체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멜피의 말에 답을 하듯 아이들을 자신의 등 뒤로 숨긴다. 이런 상황에선 후퇴가 알맞겠다마는, 그는 그러고 싶진 않았다.
폭풍이 지나간 가운데, 배를 쓰다듬으며 입맛을 다시는 그녀가 있다. 그녀가 움찔거리며 자세를 낮춘 것은, 이 현장에 있어서는 안 될 정체 불명의 여성의 등장 때문이었다. 로벨리아가 알려주지 않은 사람이 이런 현장에 있을 리는 없을 뿐더러, 그 여자에게서는 피부가 따가울 만큼 매서운 살의가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 그렇지 않아도 동물적인 감이 날카로운 엔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엔은 공격하겠다."
짐승이 적의를 느끼면 공격하듯, 그녀의 그것도 순전히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엔, 길쭉길쭉이 되어라."
그녀의 등 뒤로 고기촉수가 휘어져 나온다. 촉수는 대기하는 일도 없이 곧장 여자를 꿰뚫기 위해 돌진했다.
블러디 레드는 파편이 되어 여기저기 떨어졌다. 이스마엘은 그 사이에서 가디언즈 병사 하나가 발치로 떨어지자 시선을 내렸다. 생존자는 없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자 이스마엘은 자연스럽게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손발목이 뒤틀린 병사였다. 이스마엘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 사람이다. 이상향을 위해서라면 뭐든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일이 끝나버리니 죄책감과 공포가 물밀듯 치고 들어왔다. 만약 이스마엘이 이 사람의 손발목을 뒤틀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며 죽지 않았을까? 이 사람도 꿈을 꾸고, 생각을 하며, 하루를 살아갔을 텐데. 오늘 하루가 이렇게 될 거라 믿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의 앞이었으나 도망치며 신을 부르짖고 싶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다시금 얼굴을 확인한다. ……이스마엘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여성이 나타나며 살기를 느꼈을 때도. 네가 죽였느냐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Nein."
이스마엘은 하나의 단어를 제외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고개를 다시 내리자 무언가 겹쳐 보이는 듯싶었다. 이스마엘은 소스라치게 놀라듯 숨을 황급히 들이키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부들부들 몸이 떨린다.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자 얼굴을 덮듯 장갑을 낀 손이 노이즈 너머로 사라진다. 눈을 비비듯 팔이 움직인다. 손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못했다. 살이 그새 짓무르기라도 했는지 눈두덩이 시큰거렸다. 이스마엘이 다시금 뱉었다. N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