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읍. 후우- 장죽을 만든 김에 독안개를 허공에 생성하던 레레시아는 팀원들에 의해 선로에서 탈선하는 거대 로봇, 아니, 블러디 레드를 보았다. 한 번 열차로 돌아갔던 블러디 레드는 다시 로봇으로 바뀔 여력은 없는 듯 했다. 여기 저기 파직거리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더라니-
"순순히 빼앗기지는 않겠다 이건가?"
자폭 시스템을 알리는 경고음에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자폭할 거라면 그 잔해조차 필요 없다. 어느 것도 필요가 없다면, 철저히 부숴줄 뿐.
레레시아가 한 손을 들자 날려버린 줄 알았던 독안개가 돌아와 그녀의 발밑으로 액체화한다. 이미 참방일 정도로 고여있던 독액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표면이 일렁거린다. 뭐든 삼키고 싶어 안달인 독액의 위로 들고 있던 장죽을 떨어뜨리자 퐁당 하며 집어삼킨다. 그녀의 주변에 고여, 그녀의 무기를 삼킨 그녀의 독액. 그 위로 레레시아는 한 쪽 무릎을 꿇는다.
- 절망에서 태어나 - 원념을 먹고 자란 짐승이며 - 여기 네 머리를 치켜들 시간이 도래하였으니
촤르륵- 일사분란한 소리와 함께 수십, 아니 수백의 독액 사슬이 그녀를 감싸며 솟아오른다. 사슬들은 아스텔과의 대련처럼 하나로 뭉치는 듯 했으나 하나의 거대한 몸체에서 다시 여러 갈래의 머리를 나누었다. 마치 전설 속의 마수- 히드라처럼. 거대한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짐슴의 모습으로 현현하여 소름끼치는 쇳소리를 거하게도 울렸다.
"폴링 커스."
그녀의 신호와 함께 아홉 사슬 머리가 폭파 직전인 블러디 레드에게 돌격한다. 열차를 구성하는 모든 소재를 분해하고 부식하는 독을 지닌 독의 짐승이 무력한 열차를 거대한 뱀이 물어뜯듯 무자비하게 유린한다.
열차의 공격은 무사된 것 같으나 자폭 시스템이 문제다. 아이들을 지켜내긴 했어도 마지막까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건지, 이스마엘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다시금 흰 연기가 새어나온다. 냉각 시스템이 몸의 체온을 떨어뜨리는 느낌이었다. 손에 쥔 야구배트와 함께 이스마엘은 한 번 뒤로 돌았다. 짧은 흰 머리카락과 무언가가 아이들에게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스마엘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다들 저렇게 나서니 원, 내가 할 일은 없는 느낌입니다. 이 정도만..!"
이내 손에 무언가가 뭉친다. 흙먼지, 잔해, 그런 것이 뭉치더니 그대로 위로 던지고는 거세게 야구배트로 쳐낸다. 뭉쳐 만든 공이 강한 염력이 덧붙여져 쐐기처럼 크림슨 레드를 향해 날아간다. 이스마엘은 후, 하고 숨을 몰아쉰다.
"도와도 되겠지요."
스페셜 스킬은 알 수가 없다. 아마 쓸 일도 없을 것이다. 만약 쓴다고 해도. 이스마엘은 천천히 노이즈 사이의 눈을 휘었다.
힘이 강해진게 느껴진다, 내리찍었을 때 감각이 분명히 느껴졌다. 이건 분명히 들어갔다. 분명하게 충격이 들어갔다. 네 생각을 증명하듯 열차는 크게 흔들리고 스파크를 마구 튀기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온전히 모든 걸 해낸 게 아니었으니, 동료들의 집중공격으로 선로는 사라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진하려던 블러디 레드는 땅에 나뒹굴었다. 너 역시 그런 처지가 될 뻔했지만 무사히 땅에 착지하는 데 성공했고, 너는 고갤 들어 다시금 떠오르려는 열차의 부분들을 쳐다보았다.
"...자폭이라, 대단원이라는 이야기겠죠."
떠오르게 내버려 둘까보냐, 그 발악에 쓰러져 줄까보냐. 너는 땅에 손을 짚고 무릎을 굽혔다.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고안한 자세, 스프린트를 위한 그 자세. 머릿속으로 숫자를 센다. 셋, 둘, 하나. 실제로는 들리지 않는 게 분명한 신호탄의 소음을 떠올리며 너는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담아서 땅을 박찬다.
"...찾았다."
아무리 단단한 갑옷이라도 틈은 있는 법, 하다못해 피부에도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뿐, 수많은 틈이 있다. 촘촘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인간의 피부와 질긴 짐승의 가죽이라도 그럴텐데, 저렇게 거대한 열차에 어떠한 균열도 없을 리 없지. 그런 균열이 네 눈에 보였던가. 아니면 그저 느낌이었을까. 어쨌든 너는 그 균열로 곧장 달려들었고 그 사이로 톤파를 있는 힘껏 찍어넣었다, 남은 건 이 균열로 말미암아 블러디 레드가 파멸을 맞이하게 하는 것 뿐, 짧은 기합과 함께, 균열에 파고든 무기는 방향을 틀었다. 있는 힘껏, 스파크가 튀어오르는 그 균열을 비틀어 찢기 위해서.
자폭 카운트에 들어갔다는 녀석을 보고, 제이슨은 목을 우둑우둑 꺾었다. 과연, 이대로 두면 큰일 나겠는데. 아무래도 여기선-
[최대 화력이란 녀석인가.]
제이슨은 손을 짝 겹쳐 합장하고,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기합을 넣었다. 집중하는 듯 보이는 그 눈동자는 타오르는 듯이 떨렸고, 머리카락처럼 보이던 것은 불타다 못해 하얗게 새기 시작했다. 이윽고 양반다리로 앉은 제이슨은, 전극을 아래로 내뿜어 반발을 일으키는 것으로, 조금 공중에 뜬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육신은 곧 철이며 철은 곧 영혼이니 -천둥의 연꽃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깨달음의 겁화 업보를 불사른다
천천히 제이슨의 팔과, 보검의 힘으로 생겨난 팔이 몸에서 분리되고 나눠져 6개의 손처럼 보이는 유닛이 된다. 이윽고 그것은 제이슨의 주변을 둘러 싸 그 손바닥 부분을 적에게 향한다. 그 모습은 마치 신화의 아수라 같다.
[성불해라... -초전하업화포!!]
그 말과 함께, 질끈 감았던 눈을 번쩍 뜨자. 주변에 떠있던 손바닥 유닛들에서, 마치 불타는 꽃과 같은 에너지를 터트리며 노랗고 붉은 광선을 상대에게 쏟아냈다.
배가 고프다. 블러디 레드의 질주는 저지했지만, 길어지는 작전으로 공복이 심해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블러디 레드는 자폭까지 감행하는 듯 했다.
'대장. 열차 확보는 실패한 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다. 확보했었더라면 지금쯤 에스티아가 개조를 하는 중이었을지도. 블러디 레드와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파츠 하나하나가 폭탄이 되어 에델바이스를 터트리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블러디 레드를 삼키는 것도 참고 있었는데.
...하지만 블러디 레드가 폭탄이 되기로 했다면 참을 필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자 미안함은 곧 호기심과 공복으로 전환되어, 그녀의 안에서 욕구로써 치밀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엔-"
- 열차는 무슨 맛이지? - 열차는 무슨 맛이지? - 열차는 무슨 맛이지?
"블러디 레드를 삼켜라."
그녀의 복부에 균열이 생긴다. 아스텔의 칼에 베인 것처럼 선을 이뤘던 균열은 점점 벌어져, 그녀의 몸뚱이를 젖히고 짐승의 아가리의 형상으로 이빨을 드러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