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내가 무기를 쓴다는 건 한 번도 생각 못했었어. 동물로 변신해서 공격한다고만 생각해서. 뭐라도 배워두는 게 좋을까?”
세븐스 능력이라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동물로 변신하지 못할 때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탓이었다.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해본 적도 이전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꼈을지도.
“그런가? 그럼 리오는 나보다 3년을 더 살았으니 리오한테도 많이 배워야겠다.”
마리는 혼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료는 꽤 시원해서 좋았다. 어느순간부터 이 지하기지는 마리에게 편안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런 공간을 제공해주었으니 마리도 에델바이스를 위해 열심히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침목하던 쥬데카가 던지는 질문에 마리는 응? 하고 묻더니 쉽게 대답했다.
“에델바이스는 능력자하고 비능력자하고의 화합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 목적이 나랑 맞는 것 같아서 입단했어. 리오는?”
설명이 부족했나. 그녀의 말을 되내이는 마리를 보고 이걸 어떻게 더 설명해야 하나 생각한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천천히 굴리며, 전술적인 얘기를 하는 마리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덩치 큰 동물로 변해서 탱킹이라. 보기보다 전투에 적극적인지, 아니면 그것이 가장 유용하다고 여겼는지. 등받이에 걸친 팔을 내리며 자세를 바꾼 레레시아가 말했다.
"탱킹을 할 거라면 방어구는 포기하고 그만큼의 출력을 변신 쪽으로 바꿔도 나쁘지 않을 걸. 어정쩡한 맹수 말고 확실히 치명적인 무언가를 시도해보면 어때. 네 능력, 꼭 실제 동물로만 변신할 수 있는 거라면, 보검이 그 한계치를 뚫어줄 지도 몰라. 그러면 현존하지 않는 전설이나 신화 속 마수를 구현하게 될 수도 있고, 만약 그렇게 해서 시도가 성공적이 된다면 네가 모두의 보조가 될 수도 있겠지."
지금까지의 대화로 생각해보건데, 외형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마리라면 보검으로 방어구를 하는 것보다 능력의 질을 높이는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것 역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었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들을지는 마리에게 맡길 뿐이다.
"내가 모두의 능력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은 사적인 영역이라 그거까지 대답해주기는 곤란한데."
누구와 합을 맞추면 좋겠는가. 잠시 마리의 질문 의도가 헷갈려 그렇게 답을 했다. 그랬다가 재차 질문이 돌아오면 그건 그거대로 귀찮을 듯 해, 앞서 말했다.
"나는 어쩔거냐 묻는거면, 난 누구와도 합을 맞출 생각이 없어. 내 독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으니. 너도 내가 능력을 전개하고 있을 땐 거리를 두는게 좋아. 애먼 독에 다치고 싶지 않으면."
그쯤 떠들고나니 슬슬 몸이 피곤해진다. 레레시아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하품했다. 겨우 잠들 수 있는 컨디션이 된 건가. 타이밍을 놓칠새라,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겉옷 주머니에 양손을 푹 꽂고 마리를 돌아보았다.
"이제 겨우 잠들 거 같으니 난 돌아가련다. 넌?"
지금 간다면 동행이 될 것이고, 아니라면 가는 길도 혼자가 되겠지. 예의상 던진 물음에 감정은 전혀 없었다.
톤파를 잘 모르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너는 손짓을 섞어가며 톤파가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쓰는지를 간단히 설명했다. 상대방을 제압하기보다는 제 몸을 지키는 데 더 중요하게 쓰이는 것, 지난번엔 무심코 검을 집어들었지만.
"무기가 필요 없다면 좋은 일이라곤 생각하지만... 뭔가 배워두는 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동물의 무기라는 건 결국 신체의 일부니까요."
무기가 망가지면 상처를 입는 게 가장 큰 흠이 아닐까, 쉽게 망가질 것 같지는 않지만서도. 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만약 그녀가 어떤 무기를 쓰는 게 어울릴지를 조금 떠올려 본다.
"하하... 뭔가 가르쳐줄 게 있다면 그렇게 할게요."
궁금한 걸 물어보면 적어도 아는 수준에서는 대답해 주겠다면서 웃은 너는, 캔에 담긴 음료로 잠시 시선을 옮겼다. 좁은 입구 너머로 그림자 때문에 검게 보이는 음료가 찰랑인다. 그러다 에델바이스에 입단한 이유를 그녀가 말해 주자, 그런 일을 당했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 하며 조금 감탄 섞인 표정을 짓다가 반대로 질문이 돌아오는 것에 조금 곤란한 듯이 미소지었다.
"저는... 음, 도망쳐왔다고 해야 할까요. 절 받아준 곳이 에델바이스 뿐이었으니까요."
어째서 에델바이스에 왔느냐, 그건 에델바이스가 날 받아줬기 때문이다. 비겁한 답이었다. 어째서 에델바이스에게 널 받아달라고 청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해야할 텐데, 너는 그 말 대신 조금 말장난하듯(어투는 장난스럽지 않았지만) 질문을 넘기려고 하고 있었다. 비겁하게.
"마리는... 방관하는 비능력자들과, 같은 세븐스면서 우릴 없애려 드는 가디언즈가 싫지 않은가요?"
//밥먹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이제는 소화시킬 겸 가볍게 운동을 하러 나가보겠습니다...
마리는 쥬데카가 설명하는 것을 유심히 보고 들으며 톤파에 대해 이해했다. 그런 무기도 있구나, 하고 신기해했다.
“음, 리오 생각에는 어떤 무기가 좋을 것 같아?”
벌써부터 물어보는 게 잔뜩 생겼다. 톤파에 대해서도 듣고 이번에는 무기 추천까지 묻고 있으니까 말이다. 상대방이 곤란하다고 말할 때까지 이것저것 묻는 것이 마리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어디서 도망쳐 왔는데? 쫓기는 중이야?”
마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쥬데카의 인상은 선한 느낌이 있어서—마리의 착각일수도 있겠지만— 쫓기고 있다는 것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긴 쫓긴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 지금 이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는 것도 쫓기는 입장이기는 하기에.
“으음, 밉지…. 밉지만…. 있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내가 세븐스가 아니라 비능력자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고. 그럼 나도 그들하고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굳이 목숨을 걸고 능력자들을 도와주려 하지 않았을 거 같애.”
지금 사회라는 게 그랬다. 세븐스를 도와준다는 것은 비능력자들의 경우에는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마리는 시선을 내리깔며 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계속 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세븐스로 태어나지 않았으면 차별을 반대하다가 돌아가시지도 않았을 거야. 가디언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나는 지금 ‘여기’에 있지만 운이 나빴다면 가디언즈에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부모님이 즉결처형 당한 뒤 가디언즈로 끌려가는 자신을 구해준 레지스탕스가 아니었다면, 아니면 부모님을 인질로 잡고 가디언즈로 활동하라고 협박을 받았다면. 과연 자신은 이곳에 있을 수 있었을까. 마리는 캔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으음…. 그러니까, 체스를 할 때 상대편 체스 말이 내 체스 말을 잡아먹었다고 해서 그 체스 말이 나쁘다, 문제가 있다, 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문제는 체스 말이 아니라 체스 말 끼리 싸우게 하는 체스라는 그 게임 자체가 문제인 거니까. 그러니까 판 자체를 부수기 위해서 온 거야. 그게 반란군(레지스탕스)이잖아.”
비능력자들과 가디언즈가 싫지 않냐는 그 말에 대한 대답이 길고 길게 나왔다. 어쩌다보니 다시금 왜 에델바이스에 들어왔냐는 질문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마리는 혹시 제 말이 길어져서 지루하진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쥬데카를 힐긋 바라봤다. 그리곤 이내 말을 마무리했다.
“나는, 만약 내가 죽어서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죽겠다는 각오로 왔어.”
“아하, 리오는 긍정적이네. 솔직히 말하자면 이곳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걸 예상하고 한 말이였는데.”
조금 감탄사 같은 짤막한 웃음, 그리고 그의 단도직입적인 말. 자신이 당신의 처지에 처했더라면 아마 부대 전체의 능력에 의심이 가질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하자 있는 인물도 끼워주는 곳이라니, 긍정적으로 보자면 친화적이다만, 경계를 좀 해본다면 이런 인물을 은퇴시켜주지도 않다니, 의심이 갈 만 하다. 뭐, 본인은 자발적으로 계속 남아있는 것이다만.
“괜찮아. 앞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어디야.”
운이 좋아서 색만 안 보이는 것이지, 그때 일이 더 꼬였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해도 지금은 기분이 좋은지라, 평소대로라면 느꼈을 찝찝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역량은 그냥 남들만큼만 있지. 상황도 많이 타는 능력이고.”
겸손하려는게 아니고 진짜다. 전투 시 물감을 못 쓰게 되는 상황이면 달리 할수 있는게 없다. 푸른색을 또 찾아보려 해도 그의 눈엔 비슷한 농담이면 다 거기서 거기. 가벼운 투로 답하고선 당신이 능력에 대해 설명하는걸 가만 듣는다.
“대단하네. 감이 좋은건 정말 부러워.”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예상할수 있다면 좌절하지도 않는다고.”
짤막한 반응, 당신을 가만 보면 옛 친구를 닮은 것도 같다. 당신을 이루는 회색의 조합을 보자하면 그 친구의 색을 조금 닮은 것도 같고. 아니다, 안 닮았다. 그 애가 조금 더 짙었어. 과거 회상은 저녁 메뉴를 생각하는 것과 같은 가벼움이였다, 찰나도 안 될 짧은 텀 후에 옅어지는 추억. 당신의 경험담을 듣고 있는 표정은 조금 슬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더 듣고 싶은데, 들려줄수 있어?”
남의 과거를 캐묻는건 예의 없는 짓이다, 그러나 되도록 덤덤한 표정을 지으면 연민이라 퉁칠수 있다. 괜한 궁금증은 어디에서 온 걸까.
조준하고 손가락을 당기기만 하면, 사용자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는 상관없이 충분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무기. 그렇지만 역시 숙련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근력도, 거리와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감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는 직접 손에 쥐거나, 자신의 신체와 가장 가까운, 마치 제 몸처럼 쓸 수 있는 무기가 좋겠지. 그게 아니라면...음.
"그건... 말하기가 조금 어렵네요, 미안해요. 마음을 좀 더 정리하고 말씀드릴게요."
가디언즈에서, 라고 말하기가 두려웠다. 그것도 배신해서 도망쳐왔다는 걸, 가디언즈에서 무슨 일을 하다가 도망쳐왔는지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싶어서였고, 그걸 말하기가 두려웠다. 너는 또 비겁했다.
"그렇지만 여기에 있는 한, 아마 절 찾아내지는 못하겠죠. 어쩌면 한참 전에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저는 그렇게까지 힘을 들여서 쫓을 만큼 중요한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러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마치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듯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실은 네가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누렸던 특권을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그리운 게 아니었다. 그저 사실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건... 생각해보지 못했네요, 마리의 말을 듣다 보니, 저 역시 그랬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만약 그렇게 살아가다가, 내게 소중한 사람이 세븐스였다면, 나는 갈등했을까,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너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묘하게 우울해지는 감정을 애써 떨쳐냈다. 그리고 그녀가 '운이 나빴다면' 가디언즈에 있었을거라는 이야기를 하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네요, 마리는."
감상은 짧은 말 두 마디. 조금 피곤한 듯, 정말 대단한 네 앞에 있는 나는 이렇게 초라하구나, 하고. 그렇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너는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자신의 능력을 이야기해 줬다, 잘못될 수도 있다는 부분, 즉 약점까지도. 이건 신뢰일까, 아니면 그저 별 이유 없는 이야기였을까. 적어도 너는 조금의 신뢰라고 생각했으니, 신뢰에는 신뢰로 답을 한 것 뿐이라고. 그런 느낌을 실어 이야기했다.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팀원들이 함께 있는 거라고도... 생각하니까요."
그게 팀이라고 너는 생각했다. 혼자서 모든 걸 해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무리짓지 않겠지. 적어도 너는, 그리고 네가 본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혼자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상황이라도 둘, 셋이라면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자신은 그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하... 좋은 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뭐든지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법, 마찬가지로 단점이 두드러진다고 한다면 장점 역시 충분히 두드러질 수 있다. 너는 가볍게 웃으며 그의 말에 대답하고는, 네 경험에 대해 계속해서 묻는 그의 눈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더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갑자기 선을 긋는 것 같아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신과 같은 레지스탕스와 맞붙어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폭격과도 같은 공격 속에서 레지스탕스들이 죽어가는 모습과 그 공격의 충격을 피부가 찢어질 듯이 느꼈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은 용기가 없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당신과 같은 사람들을 짓밟는 자리에, 짓밟는 사람들 중 하나로 서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