갸르릉, 하는 소리가 작게 들리자 상자 안을 들여다본다. 고양이가 깨서 기지개를 쭉 펴고 있었다. 언제 봐도 참 유연한 몸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도 어쩐지 기지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상자를 들고 있으니 그러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조심스럽게 옮긴다고 했는데 잠에서 깨버린 걸 보니 역시 흔들렸나, 하고 생각하며 조금 미안한 듯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미안해 야옹아, 깨워버렸나 보구나."
만져볼까? 상자에서 튀어나간다거나 하지는 않는 걸 보니 사람 손을 좀 탄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저 막 잠에서 깬 상태라 정신이 없는 것 같기도... 혹시 모르니 만지는 건 조금 미루기로 했다. 그나저나 어쩐담, 이대로 들고 가다가 갑자기 튀어나가거나 하면 좀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근처에 있는 벤치를 발견하고 벤치 쪽으로 걸어갔다.
역시 귀여운 걸 보면 긴장이 저절로 풀린다. 고양이가 자신의 인삿말에 반응하듯 울음소리를 내자, 그는 눈웃음지으면서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쓰다듬고 싶다... 그는 잠시 그렇게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어쩐담, 이제 일어났으니 배가 고프진 않으려나?
"야옹아, 주인은 없니?"
딱히 대답을 듣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는 능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 고양이가 장신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일단 눈으로 살폈다. 누가 키우던 거라면 목걸이라든가 있겠지, 아까 확인했어야 하는데... 하고 혹시 주인이 찾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해 조금 불편한 듯 눈을 깜빡였다.
눈웃음을 짓는 모습이 무해해보인다. 비능력자라고 해도 자신에게 해코지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같은 부대원인지 아닌지만 확인한다면 괜찮을 것 같은데. 마리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주인은 없냐는 말에 또 대답한다.
—야옹
그 말이 있다는 뜻인지 없다는 뜻인지. 마리는 뭔가 먹을 것을 찾는 남자를 보다가 이내 상자 밖으로 뛰어 나와 바닥에 섰다.
—야옹
따라오라는 듯 한 번 울고는 앞장서서 몇 발 가더니 또 울음소리를 낼 것이었다. 그가 잘 따라온다면 도착한 곳은 원래 그가 가려고 했었던 목적지인 슈퍼마켓이 있는 비밀기지일 것이었다. 마리가 그를 이쪽으로 데려온 이유는 이곳에 오면 스스로 정체에 대해 말하지 않을까 하는 이유였을 것이었다.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앉아, 마리에게 옆에 앉으라고 권하고, 대답이든 행동이든 반응이 나오길 기다리며 머리를 매만졌다. 만약 마리가 그 말을 따라 순순히 옆자리에 앉아주었다면 아마 계속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혼란한 가슴속을 진정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건 머리를 반대로 기울이는 마리의 움직임과 청천벽력 같은 마리의 한마디였다.
"에, 어, 뭇, 무슨 말을 하는 걸까나, 까나아..."
일부러냐는 그 말에 보이지 않는 비수가 날아와 심장에 푹 박히는 것 같았지만 레레시아는 애써 침착하게 모르는 척을 시전했다. 있는 힘껏 시선을 피하고 손의 떨림을 감추려 괜히 부스스한 머리카락 사이를 빗어내리면서.
그러나 한 번 일어난 동요는 두 번 일어나기 쉬운 법. 기껏 피하고 있던 눈을 괜히 슬쩍 굴려 마리의 눈을 보았을 때, 그 붉은 눈에 담긴 순수한 호기심을 보고 말았고 레레시아는 그만 정신이 혼미..까지는 아니고 아 이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끝까지 숨기려면 숨길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짧게 숨을 내쉰 뒤 평범한 말투로 말했다. 고양이에게 말을 걸 때처럼.
"맞아. 일부러 그러는 거. 여태 잘 숨겼는데 그만 방심했네."
내가 그렇지 뭐- 레레시아는 능청 떨기도 그만두기로 했는지 매만지던 머리카락을 휙 넘기고 벤치에 기대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다시금 옆자리를 향해 손을 휙휙 흔들었다.
모르는 척하는 레레시아를 빤히 바라보니 이내 다시금 평범해진 말투로 돌아온 레레시아가 평범하게 대답했다. 그 말은 조금 퉁명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마리는 레레시아의 모습을 영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의문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하지만 긴 머리카락을 넘기며 벤치에 기대 다리를 꼬는 모습은 꽤나 편해 보였기에 방금보다아 보기에는 더 좋아보였다. 마리는 불편하다는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벤치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럼에도 양반다리로 앉아 레레시아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모양새였지만. 아, 보이는 건 레레시아의 옆모습이겠지만서도.
“왜 그렇게 하는데?”
마리는 아직 호기심이 가시지 않은 듯 물었다. 마리로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길게 늘이듯이 말하는 필요성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옆자리에 앉을 것을 권하자 그제야 마리가 움직였다. 일어나서 벤치에 앉는 걸 보고, 시선을 다시 위로 올린 레레시아는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혀 벤치 등받이에 기댔다. 조금 전만 해도 보이던 달이 그새 구름에 가려져 하늘이 어두컴컴하다. 그대로 하늘을 응시하다가 옆을 보니 그녀를 향해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마리가 보였다. 신기하게도 앉은 마리를 바라보던 레레시아는 이번엔 왜 그렇게 하냐는 물음에 피식- 웃었다. 약간 일그러진 웃음이었지만.
"별 것도 아닌 걸 궁금해하네."
여전히 호기심으로 가득한 마리의 눈동자를 보고 툭 내뱉은 말이었다. 그 말에 불쾌함은 없었고 너 참 별나다, 정도의 어감은 있었다. 레레시아는 눈을 돌려 앞을 보았다. 아무도 없는 공원, 그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러면 남들이 알아서 거리를 두거든. 아, 쟤는 좀 귀찮은 타입이구나, 하고."
말투와 행동이 조금만 유별나도 사람은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는다. 그건 사람이 사람인 이상 누구나 그랬다. 세븐스이건 아니건 누구라도. 정말 그것 뿐이라는 듯, 가볍게 대답을 하고나면 이제 레레시아가 물었다.
매번 감각에 날이 서 있는것이라면 별로 당기진 않지만. 굳이 덧붙이진 않고 속으로만 읆는다. 당신의 설명을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도, 당신의 말을 끝마치고 나자 잠깐의 텀 후에 반응을 들려준다.
“눈이 좋다니, 그럼 나랑 궁합이 잘 맞겠네.”
왜 잘 맞을까, 정작 중요한 설명은 안 하고선 눈웃음 짓는다. 눈이 가늘어지면 동공도 그에 맞춰 웅크린다. 그와 같은 당연한 이치인듯, 그의 감정선도 일직선(이라고 쓰지만 실제 선으로 표현하면 털선이 아닐까?)을 달리다 궤적을 바꾼다.
“어쩔래, 아무래도 임무에서도 볼 사이인거 같네. 정신 혼미해지니?”
텐션이 높아진듯한 억양. 당신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언뜻 낮아보인다만, 그런건 제 알바 아니다. 팔짱을 끼곤 살폿 벽에 기대보는게 퍽 껄렁해 보일지도. 자신이 보기에도 당신은 잡생각이 많아보인다. 생각이 많은 사람한테 오감의 능력이라, 참 아이러니하네. 그저 당신을 좀 놀려보고 싶었던건지 이런 말을 하고서도, 당신의 질문에 답하는 투는 장난기가 팍 지워져있다.
“괜찮아. 딱히 불편하진 않거든.”
염력이라고도 할수 있겠다는 말에 굳이 부정은 안한다. 아주 넓게 본다면 염력 비스무리한게 맞으니까. 괜찮은 것도 맞다.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 눈 얘길 해도 별 타격 없다. 어떻게 능력을 쓰냐는 당신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고 답한다.
“활용도가 넓어서 때에 맞춰쓰는 편이야. 두뇌 돌리는 것에 영향을 크게 받고.”
애매한 답이지만, 실제로도 애매한 능력이다. 물체를 가루로 만들어 기관지를 막거나, 시야를 가리거나 하는 것부터 시작해 간이 무기 생성까지. 사용자의 창의력이나 상황 판단력에 따라 쓰임새가 갈리는 능력.
“원리가 궁금했던 거면 기력을 매개체 삼아 물체에 에너지를 쓰는 형식이야.”
그가 아는 자신의 능력은 여기까지다. 더는 능력에 대해 할 말이 없는듯, 가만 기대었던 자세를 고쳐 일어난다. 당신을 보는 눈빛은 오묘하다. 서늘하다면 서늘하지만, 연한 미소가 걸려있어 애매하다.
“네 능력에 대해서도 더 듣고 싶은데.”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대로 말하라는 뜻? 아니면 어느 정도로 동료를 신뢰하는지 확인하려는 것? 그렇게 묻고선 눈을 깜박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