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뭐든 땡길때 먹어야 맛있다고 하지 않던가. 음료수도 그러하다. 그러기에 그는 지금 약간 곤란한 상황이다.
사건의 전말을 조금 서술하자면 때는 약 3분 전. 음료수를 마시려 남성은 자판기로 발걸음을 향했다. 정확히는 일곱별 사이다를 사러 간 것이지만. 도착하자 음료수들이 나열된걸 보고선 본래의 취지는 잊는다. 코카콜라와 펩시 중 어느걸 더 좋아하냐 물으면 그의 대답은 그때그때 갈릴 것이다. 어떤때는 펩시의 상쾌함이, 다른때는 코카콜라의 달큰함이 끌리는 법이니.
‘저딴건 누가 마실까.’
캡틴주스라는 요상한 음료 캔을 보고선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다. 괴랄하다 생각하면서도, 다음에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이런저런 의식의 흐름. 그걸 끝으로 동전을 투입구에 넣고, 펩시를 뽑으려 버튼을 누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오는 펩시. 캔을 열고 한 모금 마시는데 드는 지적 사고는 별로 없었다. 그러기에 그 달큰한 뒷맛에 정신이 뒤늦게 든다. 분명 맛은 코카콜라인데, 캔을 확인해 보아도 펩시 로고가 그려져 있다. 별 생각 없는듯한 무표정이지만, 드는 기분은 확실히 조금 나쁜 그. 도대체가 이런 실수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애초에 제조 업체가 다르지 않던가? 부대원의 장난일수도 있겠다만..
“시간 참 많네.”
누군가의 장난이란 결론에 수긍한듯, 혼잣말 하듯 중얼거린다. 그리고 다다른 상황이 바로 지금, 원치 않는 음료를 버리려는 남성이다. 원래는 마시지도 않을 음료니 버리려 했다만,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자 당신이 있는 방향으로 고갤 돌려 말을 걸어본다.
음료수를 마시려면 음료수를 사야 한다. 보통은 가게에 들러서 차가운 냉장고에 놓인 음료수를 집어들겠지. 그렇지만 그 정도의 시간도 아깝거나, 그 정도의 거리보다 적게 걸어서 음료수를 마시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게 자판기겠지. 그런 생각을 저만치에서 자판기가 보일 때부터 하면서 걷자니 금새 자판기는 가까워졌다. 중요한 건 뭘 마실지는 생각해두지 않았다는 것, 자판기에 있는 음료수를 보고 결정한다니 이런건 즉흥적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곳에서 자판기를 이용하는 건 처음이니 충분히 참작이 가능한 게 아닐까. 결국 처음에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법이다. 그게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는 일이라는 게 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어디 보자..."
막상 자판기 앞에 서니 뭔가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워낙 음료수를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라서 그랬을까. 그렇지만 달콤한 게 입 안에 들어가면 조금 편안해지기도 하고, 아니면 청량감을 줄 수 있는 탄산음료도 괜찮겠다며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던 그는 동전을 자판기에 집어넣었다. 버튼에 불이 들어오고, 탄산음료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콜라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결국 누른 쪽은 달콤한 맛보다는 약간의 산도가 느껴지는 콜라.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
버튼에 불은 들어와 있다만 음료가 나오질 않는다. 설마 고장났나? 아니면 품절?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고 자판기를 보는 시선이 떨린다. 얼마나 됐다고 기물을 고장낸 게 된 건 아닐까. 기물파손은 중대사항이다, 파손? 당장 보고해야 하나? 그게 맞겠지, 너무 늦게 보고하거나 도망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럼 어디로 간담? 아니 그 전에 고장났다고 써붙여야 하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난장판을 벌이는 통해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린다.
"아, 저...말씀이십니까?"
그런 혼란감을 깨는 것은 근처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살짝 놀라 움찔하면서 고갤 돌려 바라본 쪽에 선 남성(키가 상당히 컸다.)을 올려다보면서 그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다 보고 있었나? 얼굴도 익숙찮은 사람이 갑자기 와서 자판기를 고장낸 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걱정이 앞서면서 표정이 살짝 일그러지지만, 이어서 들려온 말은 그런 걱정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아, 그, 감사합니다."
한 입 마셨다는 건 농담인가? 아니면 진짜?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건네주는 건 호의인가? 그러다가 그가 쓰레기통 앞에 서 있었다는 걸 떠올린다. 왜? 음료수를 버릴 생각이었나? 그럼 버리는 것 대신 호의도 베풀 겸 건네준 건가? 그런 생각에 그는 받을지 말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기까지의 찰나의 시간 동안 그는 그런 고민을 끝내고 공손히 손을 내밀었다. 뭔가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까? 남이 마시던 것을 너무 거리낌없이 받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앗, 저기...! 제가 누군가 마시던 걸 좋아한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굳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더 부끄럽고,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건지 그는 슬슬 달아오르는 얼굴을 숨기려는 듯 고갤 푹 숙였다.
코너를 건널 때는 조심해야하는 법이다. 마트에서 자신이 먹을 것들을 챙기던 와중 뭔가와 충돌했다. 다행히도 넘어지지는 않았고 잠깐 휘청이는 정도였지만, 그녀는 뭐지하고 쳐다본다. 그 곳에 보이는 것은 말라보이면서도 고양이처럼 귀엽고 이쁘다라고 할 수 있는 미인. 잠깐동안의 침묵이 지나고 깜짝 놀란 눈의 굳은 상대를 본다. 어린 애인가하고 가벼운 추측을 하며 패드를 꺼내 슥슥 뭔가를 적어내려갈뿐. 그 잠깐의 텀 사이에 상대 표정이 바뀌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다 쓴 글을 상대에게 보여준다.
'괜찮아요?'(필담)
자신의 바구니를 본다. 배열이 흐트러지긴 했지만 강박증이 있는 것은 아니니 상관없다. 자신의 몸을 본다. 휘청만 거렸을뿐 넘어지지는 않았으니 상처는 없다. 상대가 박은거고 상대가 넘어진 것도 아니니 크게 다치진 않았을테지만..
비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모를 말 끝에 애 취급 받는 게 싫으면 애같이 행동하지 말라는 말에 순간 모욕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입술을 앙다물었다가 도대체 내가 무슨 행동을 했다고 애같이 행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지 생각했지만 스스로 생각했을 때 집히는 것은 없었다.
그의 표정을 보면 장난기 어린 말인 것 같은데 그에 발끈하는 것도 그가 말하는 애같이 행동하는 것 같아서 입을 떼려다가 꾹 다문다.
어린 나이에 레지스탕스에 구해져 세븐스 사이에서 지냈으나 그 중에 또래는 없었기에, 부모가 없다는 것에 동정을 받아 예쁨받기만 했기에 그런 점이 남아 있었던 걸까. 그곳에서 나와 에델바이스로 온 것은 마리에게는 독립이라는 것에 가까웠기에 아마 그 말에 찔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삐진 듯한 그 행동 또한 어린애스러운 건줄 모르고 마리는 캔버스를 다시 유루에게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림은 안 받을게요. 같은 부대원인데 다음에는 동등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네요, 유루 씨. 초면에 반말하지 말고."
최대한 자신이 아는 멋진 언니를 흉내내어 말하지만 유루에게는 어설프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마리는 그런 유루를 남기고 인사 없이 빠른 걸음으로 사라질 것이었다. 저 끝에 가서는 다시금 고양이로 변해 담장을 넘어갔다.
/애 취급 받기 싫으면 애같이 행동하지 마라는 말에 꽂혀서 급발진하는 마리......(이마팍) 막레 느낌으로 썼왔어~ 한 번 더 이어도 괜찮고~ 일상 즐거웠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