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떡맨이 자신을 보며 묻는 말에 마리는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야옹 하며 울었다. 꼬리가 자연히 잔디를 쓸며 살랑거렸다. 마리는 오랜만에 만난 찹쌀떡맨이 퍽 신기했다. 그냥 지나가는 인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레지스탕스에서 만나게되다니 신기한 우연이지 않은가.
마리는 붉은 눈을 깜빡이며 키가 커다란 그를 올려다보며 과거의 그와 어떤 점이 달라진 건지 찬찬히 살폈다. 조금 나이가 든 것 같기도 했고ㅡ그야 10년 전이었으니까ㅡ, 키가 더 큰 것 같기도 했고ㅡ고양이의 모습이라 더 커보이는 착각이었다ㅡ, 하지만 당시의 냄새는 그대로였다. 그건 오감이 예민한 마리이니까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래. 수고했어. 꽤 길었지만 보급만 할 수 있다면 지금 상황을 조금 변화시킬 수 있겠지. 힘들었을텐데 고생했어."
"에이. 아스텔의 협력도 있었고 언니의 허락도 있어서 가능했는걸. 하지만 역시 원본보다는... 조금 출력이 낮아. 그래서 원본만큼의 힘을 꺼내긴 힘들 것 같아."
"상관없어. 그 정도로 구현해낸 것만으로도 잘한거니까. 아무튼 좀 쉬어. 에스티아."
에스티아는 지하에 아지트를 숨기고 있는 슈퍼마켓 건물 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슈퍼마켓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숨겨져있고 그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에델바이스가 사용하는 지하 아지트가 있었다. 원래라면 그 안의 연구소에서 이것저것 연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겠지만 자신의 언니인 로벨리아가 휴식을 명했기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좀 더 이것저것 만들고 싶은데 말이야."
하지만 지금 또 들어가서 연구를 하거나 개발을 하면 필시 언니인 로벨리아가 말릴 것이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화를 낼지도 몰랐다. 화를 낸다면 그것만큼 또 무서운 것도 없었기에 결국 에스티아는 그것을 납득하기로 하며 한숨을 작게 쉬었다. 그 상태에서 잠시 근처를 돌아볼까 생각한 에스티아는 벽에서 등을 떼어내고 발걸음을 옮겼다. 눈앞에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냥 적당히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갈색 피부에 하얀 머리카락이 살짝 섞여있는 흑발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에 있다는 것은 에델바이스의 멤버라는 거겠지. 적어도 자신은 그다지 안면은 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인사는 하자는 느낌으로 에스티아는 미소를 짓고 이야기했다.
당신의 이야기에 그녀는 당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들고있던 패드에 뭔가 입력하는 것이 보이며 당신의 이야기 후 약간의 텀이 생기는 것이다. 잠깐 당신의 기다림이 지나고 패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었다.
'휴식 중이긴 합니다만, 임무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가 정확하겠네요'(필담)
그 내용을 당신에게 보이고 그녀는 살짝 날카로운 시선으로 당신을 보더니 꾸벅-하고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누구인지 들었던 것일까. 그녀는 그리 대답하고는 당신을 올려다본다. 당신의 은발을 보더니 잠깐 멍한 시선으로 바꾸니 것을 보면 아름답다고 여긴 것이겠지. 생기 찬란한 당신을 보고 자신과는 확실히 다른 타입이라 생각하고는 패드를 다시 돌리더니 글자를 입력하기 시작한다. 그다음 그 패드가 당신에게 보이자 보이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순간 에스티아의 눈빛이 초롱초롱 반짝였다. 그녀의 시선은 글자를 입력하는 패드 쪽에 있었다. 왜 말을 하지 않고 패드로 글을 입력하는지의 여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관심을 가질 사안은 아니었다. 그냥 목이 아파서 그런 거일 수도 있고 말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이곳은 별별 세븐스가 다 오는 곳이고 그 중에선 임무를 수행하다가 팔을 하나 잃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자신은 아직 그런 케이스는 아니지만. 아무튼 아픈 상처일지도 모르는 곳은 굳이 후비지 않기로 하면서 에스티아는 그녀가 들고 있는 패드가 어떤 기종인지 나름 추측했다.
그러다 핫. 하고 정신을 차리며 에스티아는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톡톡 약하게 쳤다. 사람을 앞에 두고 이게 뭐하는 짓이람. 아무튼 기기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자신이라는 여자. 이내 이유 모를 미소를 지으면서 에스티아는 입을 열어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닐까 싶어서요. 원래는 아지트 내에서 이것저것 연구하고 개발하고 그럴 생각이었는데. 아. 혹시 말하는 것이 힘들다면 제가 뇌파를 이용해서 저절로 글을 쓸 수 있는 패드를 하나 만들어줄까요? 뇌파를 읽는 장치와 패드를 결합시킬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 은근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톡톡 손으로 치는 것보다 그냥 생각만 하면 바로 글을 쓸 수 있는 거니까. 물론 뇌파를 읽어야 하니 머리에 뭔가를 써야하지만 원래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처음에는 그렇게 불편하게 갔다가 나중엔 점점 간편해지는 것이 바로 문명의 발전이었다. 흥미진진한 눈동자 속에 빛이 찰랑이기 시작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자면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지 않아요? 휴식 가지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닌데. ...언제 임무를 나갔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여긴 레지스탕스인걸."
자신도 나름 타자는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타자 속도는 훨씬 더 빠르다고 에스티아는 생각했다. 저렇게 계속 필담을 나누면 자연히 빨라지는 것일까. 만약 자신의 세븐스를 사용해서 조작한다면 과연 뭐가 더 빠를까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당연히 티는 내지 않으며 에스티아는 떠오른 생각을 살짝 접어 마음 속으로 꾹 밀어넣었다.
"그래도 지장은 없을 것 같은데. 아무튼 거절한다면 알겠어요. 그 대신에 꼭 필요하면 얘기하기! 이 에스티아님에게 불가능은 없거든요. 에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에스티아는 자신의 두 팔을 허리에 올리고 특유의 잘난척하는 포즈를 취했다. 딱히 민망해하지도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푼 에스티아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물론 괜찮아요. 사실 이런 것은 저보다는 아스텔이 더 잘하긴 하지만, 아스텔. 보나마나 낚시하러 간 걸테고... 하지만 사실 이 마을 내부는 별 차이는 없는걸요. 음. 특별히 보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요?"
그래봐야 작은 시골 마을. 그렇게 넓진 않았고 시간을 들이면 금방 돌 수 있는 범위였다. 일단 그 중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를 물으면서 에스티아는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그러다 순간 뭐가 떠올랐는지 아! 소리를 내면서 이내 그녀는 질문을 던졌다.
머리의 반절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잘리기 전까지 이스마엘의 페이스 재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노이즈는 착실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이스마엘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날이 영 좋지 않은 것 같은 가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쌍둥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건 비극의 서막이다. 이스마엘은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 지도 처음 알았다. 거기다 쌍둥이라니! 생명체를 처음 보듯 지레 흥분하여 자신의 처지를 잊었는지 이스마엘은 고개를 숙였다. 그게 화근이었다. 날이 들지 않는 것 같던 천덕꾸러기 가위가 놀라운 성능을 보여주고, 이스마엘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겪을 수 있었다. 당기던 힘이 가벼워지고 함께 잘렸다는 쌍둥이의 목소리가 공사 후 남은 자재만 남아있는 텅 빈 공터를 채웠다.
"반갑습니다!"
이스마엘의 굵게 땋인 머리는 반쯤 덜렁거리며 이 당황스러운 분위기에 박차를 가했고, 페이스 재머는 거기에 한술 더 떠 생체신호를 잡아 자연스럽게 머리 자체를 놀랜 얼굴의 이모티콘(😲)으로 바꾸었다. 이모티콘의 눈이 슬쩍 머리카락으로 향한다. 덜렁거리는 머리카락을 다시 꾹 쥐었다. 가위를 쥔 손은 허망하게 허공을 배회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 쌍둥이를 원망하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인사에 신이 나서, 신기하단 말에도 아랑곳 않고 다시 이모티콘이 방글방글 웃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머리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까 했지만, 제 머리가 보이지 않으니 미용사 분께서도 힘드실 거라 생각해서 스스로 자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스마엘의 어조는 경쾌했다. 가위를 쥔 채 허공을 배회하던 손이 드디어 움직였다. 경례를 가볍게 해보이고, 뭉텅이가 되어버린 머리카락을 마저 가위로 자르려는 것 같았다.
"원래는 적당히 다듬으려 했는데, 이렇게 잘려버린 이상 새로운 스타일을 도전할까 합니다. 두 분께서는 어디에 가시던 길이십니까?"
혼자 자르면 조질 텐데도. 저 위험한 가위가 이스마엘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단발은 처음이라 거지존이 뭔지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거울이 없어서 막 자르고 보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저대로 놔두면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이었던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거울도 안 보는 이스마엘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