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었던 것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시작하는 날. 새 사람이 되겠다, 더 나은 삶에 도전해보겠다 등 다양한 각오들이 넘쳐흐르고, 모두가 좋은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하는 날. 그런 날이 특별하지 않을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은아는 고개를 가벼이 끄덕였다.
"나는 3월 2일."
대체로 그냥 입학식, 새 학기의 시작 정도로 표현되는 초봄. 그러나 좋은 기억은 그다지 없을지도. 은아는 한울의 변덕에도 무덤덤하게 답했다. 저도 대답을 들었으니 대답을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딱히 숨길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윽고 한울이 장난스럽게 잘난 척을 하자 은아의 얼굴에 어이없음 혹은 질색에 가까운 표정이 나타났다.
".......기대해. 내가 찍어서 보여줄테니까."
하지만 은아는 쉽게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 열받았다. 실제로 한울은 잘난 얼굴이기는 했으니까. 그래도 저 킬킬 거리는 웃음을 듣고 있자니 괜스레 더 열받아 은아는 승부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큰일은 사람을 가려 찾아오지 않아. 물론 그 사람도 걱정 되겠지만 반대로 네가 큰일 날 가능성도 있으니까. 자신감 넘치는 건 좋다 이거야. 그래도 조심해, 이한울. 너도 사람인 이상 다치기도 하고 어쩌면..... 죽을 수도 있잖아."
여전히 오만해보일 정도로 가벼운 한울의 태도에 은아는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걱정끼치는 남동생에 가까운 느낌을 받아서였을까.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은아는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그 후에 이어진 말과 눈빛에 어린 걱정의 기색도 조금 더 깊어졌을지도 몰랐고.
".......네가 큰일 나면 너를 걱정할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조금은 조심해봐."
/한울주 이번주 평일도 수고 많았다구~~!!! 나도 한울이와 한울주 덕에 평일 잘 보냈어! >< 은아 과거사도 조금 수정해보고?? 아직 일이 많이 남았나보구나. 정말 고생이 많아........;ㅅ;(보듬) 주말에나마 휴식 취하며 피로도 풀고 힘을 충전하자~~!!!
은아는 무표정에서 자조적인 웃음을 띄우는 한울의 얼굴을 말 없이 응시했다. 큰일 났을 때 걱정할 사람이 없다 라. 저가 죽으면 후련해 할 사람들. 한울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그런 것일까. 은아는 한울에게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동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공감이나 동질감에 가까운 무언가였을까.
"........친구들이 있잖아."
너는. 은아는 뒷말을 자아내지 않고 꾹 삼켰다. 은아는 언제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던 한울의 모습을 기억했다. 그 애들과 너는 꽤나 친해보였으니까 가족들은 아니더라도 너의 친구들은 어느 날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걱정하지 않을까. 만약 나였다면.....
"....미안. 어차피 선 넘은 거 한 번만 더 넘을게."
은아는 시선을 돌린 한울에게 미리 사과했다.
"나는 네가 큰일 났을 때 걱정할 거야. 네가 죽어도 절대 후련해 하지 않을 거야. .......그냥, 그렇다고.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다는 거."
침착한 은아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었다면 무언가를 참는 듯한 아주 희미한 떨림이 느껴졌을지도 몰랐다. 은아의 표정은 관리라도 하듯 차분했지만서도. 말을 마친 은아는 차가운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잡고 한울에게서 시선을 돌려 잠시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면, 은아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싱긋 웃으며 부러 가벼운 목소리를 내었고.
"뭐.... 아무튼 일단 지금 생각나는 궁금한 건 이 정도네. 그런데 아직 네 선을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나중에 선 넘는 건지 아닌지 애매한 거 있으면 다시 물어봐도 돼? 너도 나한테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도 좋고. 나도 선 넘는 거다, 아니다 말해줄테니까."
/한울이랑 비슷할지도~~??(아님) 전체적인 것은 정해져 있었는데 세부적인 것들을 보충하다보니 조금 무거워졌을지도....ㅋㅋ큐ㅠ 한울주도 좋은 주말이라구~~!!! 귀여워~~ ><(보듬) 잘 쉬고 있어??
네??? 은아가 귀엽다기에는 지금 한울이 선 마구 넘고 있는데요....??ㅋㅋㅋㅋ큐ㅠ 부지런하지~~ 평일에 일하느라 피곤했을텐데도 집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 거잖아. 장하다 장해(보듬) 응원 고맙다구~~ 오늘은 나도 집 청소도 하면서 잘 보냈어. 한울주도 오늘 잘 보냈어?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애초에 한울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고 한 적도 없었지만. 은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도 너는 그 애들이랑 같이 다니는 거야? 되묻지 못한 질문은 은아의 입 안에서만 쓰게 맴돌았고.
"그렇게 흔치 않은데도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잖아."
은아는 감정을 읽기 어려운 얼굴로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 그럴 듯한 쉬운 말조차 해주지 않는 것도 인간이었으니까.
".......그래. 알았어."
입을 꾹 다물었던 은아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그러자 다시 처음 계약을 맺었던 때처럼 쌀쌀맞은 눈빛과 목소리로 되돌아갔다. 은아는 제 모습에 자조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누가 누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건지, 정말. 외로워서 잠시 미쳤었나 보지. 은아는 제 자신이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해서 이마를 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한울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도 은아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네가 이런 것을 바란다면 그렇게 해주겠어.
"잘 가."
그래도 은아는 약속했던 인사는 제대로 해주었다. 비록 한울이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지 여전히 한울을 보지도 않았지만. 은아는 아무래도 여기에 더 있다가 갈 것처럼 보였다. 거의 줄어들지 않았던 은아의 커피에 있던 얼음은 이미 대부분 녹아버렸다.
/조금이래도 쉬어서 다행이라구~~ >< 다음 한울주 답레로 일상 마무리하면 될 것 같고?? 한울이 후회 루트ㅋㅋㅋㅋㅋ큐ㅠㅠㅠ 나중에 은아가 한울이한테 네가 나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에 이어서 내가 너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까지 가는 거 상상해버렸고......(흐릿)
막레 고맙다구~~!! 재미있었다ㅋㅋㅋㅋ 이번 일상도 수고 많았다구 한울주~~ >< 한울이 마지막에 도닥여주는 거 넘 설레는데 은아는 지금 나 비웃나? 싶어서 열 받을 것 같고ㅋㅋㅋㅋ큐ㅠㅠㅠ 깊은 혐오........아닐 거야.....응.......(시선회피) 파국났을 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ㅋㅋㅋ큐ㅠㅠ
ㅋㅋㅋㅋ큐ㅠㅠㅠㅠ 은아 열받는 거냐구 ㅋㅋㅋㅋㅋㅋㅋ 열받을만 하지! 한울이 거의 제멋대로 수준이라 은아가 열받을만 함(끄덕) 파국 엔딩만은 막고 싶은데 한울아 네가 좀 잘 해봐라 제발(한울:싫은뒈) 다음 일상은 어떤 느낌이려나. 같이 점심 먹는 거? 점심은 도시락 먹으려나 아니면 급식이려나?
열 받아서 은아가 오히려 한울이한테 더 다가가도 재미있을 것 같고ㅋㅋㅋㅋㅋ 오기 생겨서 한울이가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행동()하기..... 싫은뒈 하는 거 왜 귀여운데 진짜ㅋㅋㅋㅋㅋ큐ㅠㅠㅠ 은아는 평소에 매점 아니면 애들 적은 시간에 급식이었을 것 같은데 낭만은 도시락이....(갈등) 계절이 봄이니까 도시락이 좋으려나? 꽃 구경도 가고 싶은데 지금 상태를 보면 과연 가능할지(흐릿)
둘이 이럴 땐 비슷한 게 귀여워ㅋㅋㅋㅋㅋㅋ 둘 다 빵 물고 있는 거 상상되고. 한국 학교에서는 절대 불가능이지만 옥상에서 도시락 갈까?(낭만) 꽃 구경 가는 강제적인 방법.....반발하는 은아가 인증샷 찍을 겸 데이트 제안하고 끌고 가는 거..?(늘 그랬음)() 벚꽃 예쁠 것 같지. 현생에 끌려가기..ㅋㅋ큐ㅠㅠㅠ(토닥) 한울주도 잘 자~~ 내일도 힘내자구~~!!! ><
ㅋㅋㅋㅋㅋㅋ 빵물고 있는 두사람 상상하니 귀여워.... 옥상 도시락 가즈아....! 은아가 다른 애들이 의심한다고 했던 거 신경 쓰고 있던 한울이가 럽스타그램 제안을 하고, 은아가 기왕 확실히 할 거 꽃구경 가자 라는 건 어때~ 흑흑 현생 넘 바빠.... 살려줘........ㅇ..... 이번 주말 가까스로 갱신만 해벌임.....
한울이 빵 취향은 어떤지도 궁금하네~~ 옥상 도시락 가즈아....! 오 그거 너무 좋다!! 역시 한울주..!! 그렇게 하자~~ 한울이 섬세해.....꽃 구경 가면 은아가 한울이 사진 많이 찍을 것 같지ㅋㅋㅋㅋㅋ 떨어지는 벚꽃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던데 둘이 누가 더 벚꽃 많이 잡나 내기 해도 재밌을 것 같고. 한울주 이번에는 주말까지 몹시 바빴구나.....;ㅅ; 계속 고생하는 것 같아 보여서 걱정이네.........(보듬) 그래도 바쁜데도 들러서 갱신해주는 거 넘 고맙다구~ 조금만 더 힘내보자~~!!! 계속 응원해~~ ><
한울이 빵취향....! 흠..... 왠지 자극적인 피자빵이나 카레빵 같은 거 좋아할 것 같음. 하지만 너무 달게 자극적인 빵은 별로 안 좋아하고 그것보다는 차라리 버터향 가득한 속없는 빵 더 좋아할 것 같고. 그럼 점심시간에 같이 밥먹으면서 제안을 하는 걸로 할까? ㅋㅋㅋ 벚꽃 많이 잡나 내기하는 거 귀엽겠다 풋풋해 ㅠㅠㅠㅠ 일은 하는 일 중 하나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어...! 후후후후.... 그래도 아직 할 일이 남았지만서도.....! 선레는 어떻게 하는게 좋으려나. 한울이 도시락 안 들고 다닐거같은데 빵 두봉지랑 우유하나달랑달랑 들고올것같고
한울이 빵 취향 넘 귀여워.......좋아하는 빵도 한울이 같음(?) 응응 같이 점심 먹으면서 제안하는 걸로 하자. 풋풋하고 귀엽지ㅋㅋㅋㅋㅋㅋㅋ 한울이가 이겨도 은아가 이겨도 재밌을 것 같고. 이 때도 도시락 싸서 먹으려나? 일 하나 거의 마무리 단계 된 거 정말 축하한다구~~!!! >< 얼른 잘 마무리 되어서 한울주가 편안해졌으면 좋겠네~~ 은아가 한울이 몫까지 도시락 싸오지 않으려나? 나름 같이 먹는 첫 식사니까. 달랑달랑 들고 오는 한울이 강아지 같고 너무 귀엽잖아ㅋㅋ큐ㅠㅠㅠ 선레는 다이스 굴려도 ok, 아니면 내가 써도 ok~~ 한울주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은아주는 다 ok니까 편히 말해줘~~
좋아하는 빵도 한울이 같다니 ㅋㅋㅋㅋㅋㅋㅋ 은아의 취향은 시트에 적힌대로 크림빵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나. 그 날 도시락 싸온다고 해도 한울이는 도시락 못 싸올 것 같으니 또 은아를 고생시키는 결과가 될 것 같은데......() 한울이를 강아지로 보기엔 개**로 보는게 더 맞지 않을까 싶고(흐릿) 선레 다이스를 굴려봐야겟다구~!@~!~! .dice 1 2. = 2 1. 한 2. 은
딩동댕동. 4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자 은아는 필기를 하던 손을 멈추었다. 벌써 점심 시간이구나. 시간을 확인한 은아는 살짝 놀라며 가방 옆의 종이 봉투를 힐끔 내려다 보았다. 오늘은 평소에 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하품도 하고 피곤한 기색이 살짝 어려있던 은아였지만 점심 시간이 되자 그런 모습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대신 은아는 표정 관리를 하며 웃는 얼굴로 옆 자리의 한울을 돌아보았다.
"오늘도 수업 듣느라 고생했어, 한울아. 오늘부터 같이 점심 먹기로 했지? 그럼 갈까?"
원래 은아는 공부를 하다가 늦게 급식실로 가서 혼자 급식을 먹거나 매점에 가서 빵을 사먹거나 하고는 했지만 오늘부터는 달랐다. 한울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까. 매일 같이 점심을 먹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지만 어쨌든 기왕 같이 먹게 된 거, 은아는 밥 먹을 때만큼은 기분 좋게 가자고 다짐했다. 아직은 개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혹시 따로 점심 준비한 거 있어?"
문득 확인하지 못한 사실 하나를 떠올린 은아는 한울에게 물어보았다. 종이 봉투로 향하던 은아의 손도 자연스럽게 공중에서 멈추었고. 온화하게 웃는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묻는 목소리는 조금 조심스러운 느낌이었으려나.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겠지만.
응응, 은아는 한울이랑 반대로 크림빵, 카스테라 같은 단 맛의 빵 좋아할 것 같고? 다른 이유는 딱히 없고 그냥 은아가 단 걸 좋아해서ㅋㅋㅋㅋㅋ 미니 붕어빵이나 동물 모양 찐빵도 좋아할 듯(귀여워서)() 고생해도 한울이가 먹어준다면 그걸로 만족할 은아라서 괜찮아~~ 안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기대치가 낮아서....ㅋㅋ큐ㅠㅠ 타인에 대한 불신이....(흐릿) 은아는 그런 심한 욕 못 하니까 귀여운 강아지로 부를래~~ ><() 선레는 적당히 써왔다! 느긋하게 이어줘~~
종이 치자 한울은 찌푸둥한 몸을 쭉 폈다. 오늘 내내 은아가 피곤해 보이는 느낌이라 의아했지만 뭐 그러려니 했다. 밤에 늦게 잤나? 싶기도 하고. 그리고 은아가 웃는 얼굴로 하는 말에 흐음,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저 꾸며낸 표정을 보면 그 표정을 깨뜨리고 싶다는 못된 생각이 든다.
“그래. 가자.”
한울은 몸을 일으키다가 따로 점심 준비한 거 있냐기에 눈을 깜빡이다가 가방에 넣어두었던 빵 두 봉지와 우유를 꺼냈다.
“넌… 뭔가 준비 한 거야?”
의아한 듯한 눈빛이 공중에 멈춘 손과 그 끝에 있는 종이 봉투로 향했다. 은아가 뭔가 챙겨올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ㅋㅋㅋㅋ 단거 좋아하는 은아 귀여워. 귀여운 거 좋아하느 것도 귀엽고. 은아주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고 있어?
은아의 시선이 한울의 손을 따라 빵 두 봉지와 우유로 향했다. 얘도 원래 점심을 대충 때우나 보네, 부터 의외로 적게 먹나 보네, 등. 은아는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걱정 비슷한 것이었다. 괜히 준비했나, 미리 물어보고 준비할 걸, 싶은 후회 비슷한 것이기도 했고.
"응. 사실 나 오늘 도시락 싸왔거든. 같이 먹자, 한울아. 그리고 그 빵과 우유도 챙겨 가자. 혹시 도시락이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은아는 자연스레 감정을 숨기고 웃는 얼굴로 태연히 답했다. 기왕 준비한 거 한번 밀어붙여보자는 심정이기도 했고. 빵과 우유를 담으라는 듯이 집어든 종이 봉투를 열어 한울에게 보여주면, 도시락 통이 가지런히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처음 함께 먹는 점심이니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한 것이었다. 아마 은아가 조금 피곤해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고.
아직 점심을 먹으러 나가지 않은 학생들 몇몇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은아는 애써 무시했다. 비웃는 것 같기도, 의심 혹은 경멸하는 것 같기도 한 그런 시선까지 지금 굳이 신경쓰고 싶지는 않았고.
"....교실에서 먹기는 좀 그런데, 어디 좋은 장소 없으려나?"
아니, 역시 조금은 신경 쓰였으려나. 웃음은 여전했지만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내용은 그렇지 못했고.
/나중에는 은아가 한울이도 귀여워 해줄 거야ㅋㅋㅋㅋㅋ 은아주는 좋은 하루 보내고 있어. 한울주도 좋은 하루 보내고 있어? 이번 주말에는 일도 좀 쉬면서 휴식 취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다정한 말과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 안 그래도 낯선 호의였는데 그 호의를 주는 상대방이 한울이라면 낯섬은 배가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다 보여주기식 연기일 뿐이라는 걸 은아 역시 알고 있었기에, 은아도 기쁜 표정을 지어내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네가 좋아해줬으면 해서, 너를 생각하며 열심히 만들었거든."
그래도 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열심히 만든 것도 맞고, 어떻게 보면 반 정도는 한울을 위한 것도 맞았으니까. 종이 봉투가 빠져나가 가벼워진 손을 공중에 멈춘 채 놀란 얼굴로 한울을 올려다 보던 은아는 그대로 위험해보이는 미소를 마주보았다. 수상하고 미심쩍을 정도로 불안했지만 지금의 이 교실만큼 불편하지는 않겠지. 은아는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였고 한울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울이를 위해 은아가 아침 일찍 일어나 열심히 만든 도시락이라구~~ >< 한울주도 느긋한 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다행이야~~!! 내일은 또 일이라니.....;ㅅ;(보듬) 그럼 오늘만큼은 제대로 쉬어보자구~~
은아가 연기를 하는 건 왠지 다 눈에 빤히 보이는 듯 했다. 자신이 이런 것에 예민한 탓도 있고 주변에 이런 저런 연기를 하는 이들을 많이 본 탓도 있었다. 이런 저런 장단을 맞춰주곤 있지만 역시 별로야.
은아가 따라오자 한울은 반 보 정도 앞장 서 걸었다. 교실을 나와 복도 끝의 외부계단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을 것이었다. 따뜻한 봄바람과 봄내음이 느껴졌다. 이제 겨울도 거의 지나간 모양이다. 점심의 따사로운 공기와 함께 외부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아마 은아도 한울이 옥상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것이었다.
은아가 이전에 옥상에 올라가본 적이 있다면 분명 옥상은 잠겨져 있을텐데,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묻는다면 한울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려나. 그렇게 도착한 옥상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한울은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그 열쇠구멍에 넣고 돌렸을 것이었다.
철컥, 하고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잠겼던 옥상 문이 열렸다. 옥상은 철창으로 둘러쌓여 있어 추락을 방지하게끔 되어 있었다. 다행히 누군가 주기적으로 청소는 하고 있는 듯 바닥이 그렇게 더럽지는 않았다.
한울을 따라가다 보니 부드러운 봄 바람과 향기로운 봄 내음이 은아를 맞이했다. 봄.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불안했는데, 이상하게도 봄이라는 계절감을 새삼스레 자각하자 한순간 은아의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봄 풍경을 멍하니 응시하던 은아는 바람에 살짝 날리는 머리카락을 잡으며 다시 한울을 뒤따라 외부 계단을 올라 옥상 문 앞까지 다다랐다.
".....옥상?"
하지만 보통 옥상 문은 잠겨져 있지 않아? 물음은 말이 채 되기도 전에 한울이 꺼낸 열쇠가 은아의 시선에 들어왔고. 당연하다는 듯이 열리는 옥상 문을 보는 은아의 눈이 놀라움으로 동그랗게 떠졌다. 연기가 아니었다.
"그 열쇠는 어디서 난 거야? 혹시 네가 여기 옥상 청소 담당이야?"
생각보다 더럽지는 않은 옥상 바닥 때문일까. 은아의 사고는 훔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에서 한울이 옥상 청소를 해서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측으로 옮겨갔다.
/한울이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이야~~ ><(은아: 그런 거 아닌데요;) 주말에는 한울주 좀 놔조라~~~ 나쁜 일아~~~!!! ;ㅅ;
한울의 대답에 다시 처음의 의심으로 돌아간 은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연기하는 반응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얼른 들어가자."
다른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지 은아의 대답은 꽤나 빠르게 나왔다. 재촉하듯 한울의 등을 옥상 안을 향해 두 손으로 꾹꾹 밀려고 하기까지 했고. 한울이 순순히 밀려줬다면 옥상에 함께 들어서자마자 후다닥 문부터 닫았을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은아는 한울의 팔을 잡고서 적당히 철창 가까운 자리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나저나 이런 곳은 어떻게 안 거야? 다른 친구들이랑 자주 왔었어?"
은아는 잠시 동안 봄이 가득한 철창 너머를 바라보다 다시 한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종이 봉투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부드러운 봄 바람 때문인지 은아의 목소리도 살짝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
/일이 한울주를 놔주면 대신 은아가 한울주 잡고 안 놓을 거지만~~ㅋㅋㅋㅋㅋㅋ ><(대체)
일 수고했어~~!! 한울주 고생 많았다구~~ ><(보듬) 한울주 항상 의도를 딱딱 알아채주는 거 너무 고맙고 신기해ㅋㅋㅋㅋㅋ 은아는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해도 다른 애들보다는 차라리 한울이랑 둘이 있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할 것 같지. 그래도 봄을 느끼고 조금 기분 좋아진 은아니까 괜찮다구~~ >< 확 백허그 해버리기에는 한울주 일 해야 하니까 방해 안 되게 옷 끝만 살짝 잡은 거라구ㅋㅋㅋㅋㅋㅋㅋ
가늘어진 은아의 눈이 한울을 째려보며 불만스레 항의했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훔친 거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잖아. 한숨이 섞여진 혼잣말도 새어나왔고. 그러다 옥상 문의 잠금장치가 잠겨지는 소리에, 은아의 생각은 만약 저대로 잠금장치가 고장나면 이대로 옥상에 갇히게 되는 것일까에 잠시 이르렀다 다시 돌아왔다.
"어째 이것도 저것도 다 어찌 저찌네.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어."
은아는 한울의 의뭉스러운 구석을 보며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종이 봉투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자리를 잡아 앉은 한울의 앞에 따라 앉았다.
"누구 씨 말마따나 뭔가, 영광인데? 너만 알고 있던 비밀기지를 처음 알게 되다니. 미안하지만 사실 나, 여기 꽤 마음에 들거든.”
은아는 종이 봉투 안에서 도시락 통을 꺼내면서 한울을 따라 장난스럽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은 날씨, 봄, 아무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탁 트인 공간. 처음으로 자유 섞인 순간을 만끽하다 은아는 천천히 나열한 도시락 통들을 열었다.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일단 급식 비슷하게 만들어 보았는데..... 혹시 여기서 알레르기 때문에 못 먹는 게 있다거나, 그런 건 없지?"
밥과 미니돈가스, 계란말이, 어묵볶음 등의 반찬과 후식인 청포도와 방울토마토. 보기 좋게 배치된 음식들은 척 보기에도 정성이 가득해 보였다. 그 너머로 보이는 은아의 얼굴에는 표정 관리가 된 온화함이 있었지만, 차마 한울에게 조심스럽게 묻는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긴장은 숨길 수 없었고.
/어째ㅅ..........한울주는 왜 햄보카지 모태..!!!! ;ㅅ; 쉬는 날인데도 고생 많았다구........(보듬)
장난스러운 대답에도, 씨익 웃는 얼굴에도, 한울의 추측대로 비꼼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보였다. 따뜻한 봄 바람이 은아의 쌀쌀맞았던 분위기마저 조금 녹여준 것일지도 몰랐고.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리고 너 먹으라고 싸온 것이거든? 당연히 먹어도 되지. 뭐어, 특별한 의미 같은 것은 절대 없으니까 걱정 말고..... 그냥, 처음으로 같이 먹는 밥이니까. 날씨도 좋고 해서...."
한울이 도시락을 빤히 내려다 보자 은아는 왠지 민망해져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다. 그러고 보니 얘, 가족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보여도 재벌 3세면 맛있는 거 많이 먹지 않으려나? 역시 성에 안 차려나? 아니, 빵과 우유를 챙겨온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울이 계란말이를 집어먹는 그 짧은 순간조차 은아의 머릿속에는 불안 어린 긴장감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소용돌이쳤다. 도시락 통의 뚜껑을 두 손으로 꼬옥 붙잡은 채 한울을 지켜보던 은아는 결국 긴장을 숨기지 못한 모습으로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으.... 맛은 괜찮아....?"
/그래도 처음으로 한울이에게 해준 요리니까 최소한 먹을만한 보통 정도로 시작해서.....다이스 간닷!!!! .dice 50 100. = 79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