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546124> [1:1/다크 판타지] Lost in nowhere - 1 :: 136

◆KIXz2d8NDA

2022-06-27 01:47:20 - 2022-07-26 04:21:31

0 ◆KIXz2d8NDA (qxj5AZ2bPs)

2022-06-27 (모두 수고..) 01:47:20


ˢᵉᵐᵃʳᶦ ᵃᶦˢᶦ ᶦˢᵒᶫᵃ ᵐᵃᵗᵒᶫᵃ
ˢᵒʳᶦᵇᶦᵃ ᵈᵒᶜʰᵉ ᶦʳᵒʳᵃ ᵃᵐᶦᵗᵃ
ˢᵃᵐᵃʳᶦᵃ ᵈᵒˢᵉ ᶦᶠᶦᵃ ᵐᶦᵒ ᶫᵒʳᵃ ᶠᶦᵃ ˢᶦᵃ ᵃᵈᵒʳᵃ

>>1 wıтch
>>2 hυnτeᴦ

35 르메네 - 아르젠타인 (J5Cgik1g4I)

2022-06-29 (水) 20:00:58

"처음, 은… 아니지만…"

사내가 한숨과 함께 대꾸하자 놀라운 것을 보듯한 마녀의 기세가 한풀 꺾인다.
시선을 떨구고 웅얼거리며 이 상황 자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눈이 되었다.
사람을 보고 얼어붙을 정도로 놀랐지만, 지금은 또 처음 본 것은 아니라며 앞 뒤가 맞지 않는 묘한 언동을 하는 마녀다.
흔히 사연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고들 한다.
그것은 마녀에게도 해당 되는 것일까.
어쩌면 아르젠타인의 통찰력이 마녀의 사악한 계략을 관통한 것일지도 모른다.

"…알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그러나 사내가 목적을 순순히 털어놓음에,
놀라는 일도 없이 그저 태연자약하게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마녀는 떨구었던 시선을 다시 올려서 그 처진 눈매로 아르젠타인의 눈을 응시한다.
이제 죽을 사람을 마주하기 때문일까. 그 시선엔 미약한 동정의 빛까지 감도는 듯했다.
하지만.

"왜냐하면, 평범한 인간은 애초에 이 숲이 들여 보내주지도, 돌려 보내주지도 않는 걸요."

마녀가 하는 말은 이상하다.
그 말은 즉슨,
사내가 이곳에서 해매고 죽을 뻔한게 그녀 자신의 술책이 아닐 뿐더러,
마치 이 숲이 하나의 의지를 가지고 사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당신은… 이곳에 갇히신거예요."

눈 앞의 마녀가 세간이 찾는 종말마녀라면 그녀 역시도 여기서 오랜 시간을 살고 있었을 터인데.
그런 마녀가 이렇게까지 말 할 정도라면 꼼짝없이 숲에 묶여버린 것이 아닌가.

36 마녀주 ◆KIXz2d8NDA (J5Cgik1g4I)

2022-06-29 (水) 20:05:43

갱신할게~ 어제 새벽에 이어줬구나? 못보고 잠들어버렸지 뭐야 ( ;꒳; )
사실 의도적으로 길게 늘리거나 줄이고 있지는 않아서 너무 걱정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아르주도 부담없이 이어주기!

37 아르주 (9sq/6nd/iQ)

2022-06-29 (水) 21:21:07

마녀주 안녕! 좋은 밤이야! 간밤엔 잘 잤으려나~
응응 알겠어 고마워!

38 마녀주 ◆KIXz2d8NDA (nHsb6k2Iz.)

2022-06-29 (水) 21:59:48

아.... ㅋㅋㅋㅋ 나 또 마녀주로 이름 달고 있었구나
두 번이나 이러면 좀 부끄러운데...
그냥 마녀주로 할래. 응
아르주도 좋은 밤~ 덕분에 잘 잤어
그리고 혹시 일상 잇기 어렵거나 하면 말해 줘...!

39 아르젠타인 - 르메네 (9sq/6nd/iQ)

2022-06-29 (水) 23:04:50

마녀의 말이 행동과 다르다. 방금은 사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음에도. 실은 처음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 "다행이네, 나도 마녀를 처음 보는 건 아니거든." 사내가 축 처진 어깨를 으쓱이듯 흔들었다. 새삼 이 상황이 우습다. 마녀를 상대로 농담이나 하고 있다니, 다른 사냥꾼들이 알면 흉을 보겠지.
사냥꾼의 방문을, 마녀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던 걸까. 마녀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반대로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을 뿐. 마녀는 숲에 아무런 술수도 부리지 않았고, 오히려 숲에 의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듯한. 사내가 눈썹을 치켜뜬다. 퍽이나 이상한 이야기다." 나 참, 비범한 것도 문제라 이건가~" 그는 그리 말하며 맥없이 웃었다. 힘 빠진 웃음소리가 나무 사이를 맴돈다.
뒤이은 마녀의 말, 갇혔다는 사실은 놀라지도 않다. 한참 전부터, 이 숲을 헤매며 인지했었다… 이미 그는 이곳에 단단히 묶여버렸다. 벗어날 수 없는 족쇄다.

"그래, 적어도 살아있을 수는 있겠네. 여기서 사는 것도 괜찮겠고."

사내의 입에서 나온 건 역시나 재미없는 우스갯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마녀가 아닌 이상에야 이런 숲에서 살 수 있을 리 없다. 결코 진심을 담아 한 말은 아니었다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준이다.
다시금 몸을 휘청이던 사내가 볼품없이 쓰러졌다. 방금 전보다 더욱 위태로운 몸짓. 더러운 흙바닥에 엎어지며 그는 신음을 내뱉는다. '젠장, 쪽팔려 죽겠네.' 발버둥친다. 하지만 한계까지 다다른 육체는 말을 듣지 않는다. 이곳을 몇 시간, 혹은 며칠이고 헤맸으니 당연지사. 사내는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잇새로 새어나오는 목소리가 유언마냥 비참하다.

"구워먹든, 삶아먹든 맘대로 해…"

맛있게 드시라고. 이어질 말은 무언가에 가로막혀 나오지 않는다. 끝내 사내는 이단의 앞에 무릎꿇고 죽음을 기다린다. 사냥꾼으로서는 몹시 꼴불견인 최후가 아닐 수 없다.

40 아르주 (9sq/6nd/iQ)

2022-06-29 (水) 23:08:41

ㅋㅋㅋㅋㅋㅋ 이로써 마녀주는 귀엽다는 사실이 증명됨!()
잘 잤다니 다행이네! 마녀주도 잇기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줘~

41 르메네 - 아르젠타인 (E0d1FJcbTE)

2022-06-30 (거의 끝나감) 00:43:22

"아…"

사내는 무릎을 꿇었으나 그 앞에 서있는 마녀의 눈높이는 고작해야 그것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순간이나마 마주친 마녀의 눈은 동그래져서, 당혹과 놀람의 빛을 동시에 품고있었다.
먹지 않는데…
그러나 그런 마녀의 말은 입 밖으로 이어져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대로, 하라고 했죠…?"

마녀는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듯 무릎을 꿇은 사내의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난다.
그러더니 손에 꾹 쥐고 있던 스태프의 밑단을 지면에 세우고 심호흡을 하는 것이다.
역시, 고기는 구워서 먹을 생각인가?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은 마녀는 허공에다 이렇게 읊는 것이었다.

"―euզa emoƽ հjauvg ƽhιrɑ"

꿈 속에서도 들어 본 적 없었을, 사내에겐 알 수 없는 언어다.
아니 정확히는, 인간의 목으로 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그러나 외치는 듯이 울림이 있고.
그것에 자연 그 자체가 그녀에게 화답하려는 듯이.

마술이었다.
동시에 이단이며 신비였다.

그 실체에 시선이 잠시나마 빼앗겼던 사이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고꾸라지던 몸뚱아리와 정신이 다시 정상을 되찾았음을.
분명 완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하는 확신이 사내에게는 들고 있었을터이다.

42 아르젠타인 - 르메네 (df7BjjrFuU)

2022-06-30 (거의 끝나감) 02:20:13

마녀가 무언가를 중얼댄다. 평생 들어본 적도 없는 언어, 그 뜻도 알 수 없다. 하물며 인간의 것이 아닌 발성이기에. '마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으리라. 사내는 분명, 자신에게 끝이 도래할 거라 생각했다. 마술은 영혼을 어지럽히고 인류를 해치는 술법이다. 그 최후가 좋을 리 없다.
그렇기에 이어진 장면은 의외라고 할 수 있다. 사내는 제 몸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지친 육체도 너덜너덜해진 마음도 서서히 말짱해진다. 완벽하진 않지만, 정신을 재차 차리기에 충분하다. 뜻밖의 결과에 사내가 감았던 눈을 뜬다. 마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지팡이를 곧게 세워들고서.

"…방금, 네가 한 거냐?" 사내가 그리 물으며 몸을 일으킨다. 몸짓 하나하나가, 전부 가벼웠다. 옷매무새가 꽤나 너저분했다. 동시에 그는 역시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동시에 반신반의하기도 하였다. 사람을 치유하는 마술…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쯧." 한 번 혀를 찬 사내는 어이없다는 듯 팔을 살짝 들어보였다.

"마녀가 사람을 돕는다니, 이거 원."

마녀의 행동은 사내에겐, 그저 혼란스러웠다. '이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 의도도 도무지 파악할 수 없다. 진심인지 허위인지조차 모른다. 단순히 먹잇감을 갖고 노는 것일 수도 있다. 마녀는 사악한 존재니까, 그렇게 배웠으니까.
사내가 고개를 도리질하며 시선을 돌린다. 그러자 흙바닥 한켠에, 방금 전 떨어트린 검이 보였다. 땅에 내동댕이쳐져선 희미한 광을 내는 은빛 날이. 그에 어떤 생각이 사내의 뇌리를 스쳤다. 처음 마주한 그때부터, 마녀는 줄곧 무방비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저 칼을 들어 휘두른다면. 마녀는 당장에 스러질 것이다. 종말마녀는 그렇게 소멸할 것이다.
허나 사내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지 않았다. 다만 팔짱을 낀 채 자조하듯 중얼거릴 뿐이었다.

"나 참, 종말마녀란 녀석이 이렇게 무를 줄은 몰랐는데."

종말마녀. 세계를 멸망시키는 마술을 연구하여, 지상의 인류에게 종언을 고하게 될 이단. 사내는 그런 마녀에게 도움을 받았다. 과장되게 말하면 목숨을 빚진 것과도 같다. 종말마녀는 도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이토록 헤아릴 수 없는 속내라니.
줄곧 마녀를 쳐다보면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살아서 나가기만 하면 딱 좋겠어."

그리고, 그는 늘 그랬듯이 경박한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느슨한 태도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경계심이 약간은 풀어진 것인지. 방심은 독이건만, 사내는 요행을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43 르메네 - 아르젠타인 (E0d1FJcbTE)

2022-06-30 (거의 끝나감) 20:34:39

몸을 일으켜 묻는 사내의 말에 살며시 감고 있던 눈을 뜬 마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시 회복의 마술을… 사용했어요."

역시 방금의 그것의 정체는 마술인가.
보다 여자의 정체가 마녀로서 명확해졌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러나 마음대로 해도 좋다, 라고 사내가 말하자마자 마녀는 그를 삶거나 굽는 대신에 구하기 위한 마술을 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왜인지, 사내로서는 역시 유추하기가 힘들테다.
속셈이 있는 걸까?
계략이라고는 해도, 죽어가는 파리같은 인간의 목숨을 살려서까지 이뤄야하는 목적이 있을까?

그 전에 지금 마녀의 목을 치면 그런 생각 할 필요조차 없지 않을까?

그런 의문과 질문들이 사내의 머릿 속에서 혼란을 야기하는 와중에,
그가 시험삼듯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마녀가 펼친 손을 하고서 앞으로 다가왔다.

"아…! 하지만, 그렇게 급하게 움직이시면 안 돼요…!"

방금 전과는 달리 살짝 높아진 목소리.
그 말투와 행동이 어딘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마치 엎지르기 직전의 물, 금이 간 도자기를 다급히 살피는 듯한 모습이다.

"제가 방금 사용한 마술은 어디까지나 당신 안에 조금 남아있는 생기를 모으고 굳힌 것 뿐이라…"

그리고서는 사내의 눈을 한 번 마주쳤다가, 도로 다시 피해버리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깨지면… 그게, 돌이킬 수 없게 돼요…"

완곡히 돌려말하고 있지만 이건 필시 죽음을 의미하는 말이겠지.
아, 혹은 좀 더 상상의 여지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터면 죽지도 살지도 못한 언데드가 된다거나, 영혼을 잃고 떠도는 마물이 된다 거나.
이단에 의해 일어나는 비극적인 결말은 인간에게 있어선 상상하기 두려우며, 상상 그자체도 어렵다.
어느쪽이든 간에 좋지 않은 결과가 될 것이라는 것 만은 알기 쉬웠다. 마녀의 축 처진 눈매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있지 않은가.
그 소문의 종말마녀치고서는 숨김없는 생생한 표정이었다. 분명 그러했다.

"…저어 그럼…"

마녀는 손 안의 스태프를 버릇처럼 그러쥐었다.
그리고서는 조금 뒤, 사내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바깥에서 온… '사냥꾼' 님…인 거죠?"

44 마녀주 ◆KIXz2d8NDA (E0d1FJcbTE)

2022-06-30 (거의 끝나감) 20:38:48

갱신할게~ 오늘은 잇는거 조금 늦었졌네. 미안해!
그리고 마녀주는 귀엽지 않습니다~!
똑같은 실수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귀여워 흑흑

45 아르젠타인 - 르메네 (df7BjjrFuU)

2022-06-30 (거의 끝나감) 22:13:55

"마녀한테 목숨을 빚진 셈이라니."

이마를 짚으며 한탄하듯 말하는 사내. 이 상황은, 사냥꾼인 그에겐 자존심 상하는 일이리라. 사냥꾼이라는 업에 큰 의미를 둔 것은 아니나. 마음은 어쩐지 불편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내는 더욱 가볍게 생각할 뿐이다. '죽는 것보단 나은 경험이겠지.' 그러나 경계심이 사라진 건 아니다. 이 마녀에 관한 것, 그 무엇도 아직은 알 수 없으니까.
사내가 팔을 움직이기 무섭게 마녀가 한 발짝을 내딛는다. 그 돌발적인 움직임에, 사내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였다. 안일해진 틈을 타 금방이라도 마녀가 본색을 드러낼 것 같아서. 하지만 마녀는. 그저 펼친 손을 내밀어, 사내를 만류하려 한 것에 불과했다. 목소리 또한 어울리지 않게 높아졌다. 마녀의 행동은 역시 이상했다. 마치 눈 앞의 인간을 걱정하는 것처럼. 마치 사람처럼 말하고 사고하지 않는가.

"그래, 얌전히 있을게. 시체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잠깐 긴장한 기색을 내비친 사내. 그러나 곧 평정을 되찾고 태연자약하게 대꾸할 뿐이다. 생기가 깨져버린다는, 마녀의 말. 그게 거짓은 아닐 것이다. 마녀의 표정에서 분명한 그늘이 느껴졌었다. 연기라기엔 너무 현실적인 모습이기에. 정말이지 인간적인 태도가 모순적이다. 사내는 내심 안도했다.

"…이래뵈도 사냥꾼이지."

그리 말하며 사내는 허탈한 웃음을 두어 자락 짧게 흘렸다. 사냥꾼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이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실로 우스운 꼴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이단 덕에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지만. "이젠 아니려나." 마녀와 노닥거리게 된 시점에서, 이미 사냥꾼의 마음가짐은 잃어버린 걸지도.

46 아르주 (df7BjjrFuU)

2022-06-30 (거의 끝나감) 22:14:54

괜찮아~ 나도 맨날 늦는걸...! 늦는 건 신경쓰지 않아도 돼!
오히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니까 귀여운 거다~~!

47 르메네 - 아르젠타인 (CKBVjLWEoo)

2022-07-01 (불탄다..!) 01:09:15

"아하하… 저도 변해버린 사냥꾼 님을 쓰러트리고 싶진 않으니까요…"

마녀가 조심스러운 미소를 띄며 웃는다. '이해가 맞네요…'라며 그녀는 또 중얼거린다.
'변해버린'이라느니, '쓰러트린다'느니.
사내를 사냥꾼 님이라 불러오며 얼핏 들으면 당돌하고도 섬뜩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다. 하물며 그 작은 몸에서 그만한 무력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기 쉽지 않지만,
그런 능력이 이 분홍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마녀에겐 있다는 것이겠지.
그녀의 본심이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아르젠타인을 당장 죽게 두고 싶지 않은 것은 확실해보였다.

"저어… 사냥꾼 님은…"

"…아직은 죽고 싶지 않으신 거죠…?"

그리고 그 역시 죽고싶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
마녀는 제 손을 서로 마주치면서, 꼼지락거리며 조금은 머뭇거리는 티를 내며 그렇게 물어왔다.
아르젠타인은 죽음을 각오하며 마녀의 앞에 무릎 꿇으며 자포자기 했지만, 돌아온 것은 이단의 축복이었다.
또한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아르젠타인 스스로의 각오가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죽음의 공포는 생물 전반의 수면 밑에 짙게 깔려있는 근원적인 것.
거기에 어떤 사냥꾼이나 이단 따위의 이념이 작용하는지는 몰라도…
살아있고 싶다는 '생존'의 마음 앞에서는 하등 무용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은 아닐까.

48 마녀주 ◆KIXz2d8NDA (CKBVjLWEoo)

2022-07-01 (불탄다..!) 01:21:20

역시 천사는 내가 아니라 아르주였던 건가. 후후
나를 귀여워 해주는 것도 좋지만 마녀님도 잔뜩 귀여워 해 줘
무섭지 않으니까. 물지 않으니까! (?)

49 아르젠타인 - 르메네 (9t/sEld4zA)

2022-07-01 (불탄다..!) 02:10:56

꽤나 섬짓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보다도 사내의 이목을 끈 게 있었다. 그리하여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마녀가 미약한 웃음을 머금은 걸. 그 속에는 몹시 때묻지 않은 순수마저 있었던 것 같다. 착각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이 마녀가, 어떤 의미에서든 매우 이질적인 존재임을. 그리고 그건 결코 나쁜 뜻이 아니다.
"그럼, 얌전히 있어야 할 이유가 늘었네." 사내는 그리 화답하며, 오뚝 솟아나온 바위터에 걸터앉았다. "나도 퇴치당하는 건 사양이야." 그가 가벼이 손사래를 친다. 다소 누그러진 몸짓이다.
그리고 마녀가 묻는다. 죽고 싶지 않느냐고. 사내는 잠시, 오묘한 표정으로 마녀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일단은 인간이라고."

그 말뜻은 알아차리기에 어렵지 않다.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삶을 갈망한다. 하다못해 사람보다 작은 미물들 따위도 생존을 바라는데. 사내 역시도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그건 태어났을 때부터 뇌리에 새겨진 원초적 본능. 거스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아무튼간에, 중요한 건 이런 잡다한 사실이 아니다.

"그래서, 살려서 보내주겠다는 얘기야? 이 숲도 슬슬 질리기 시작했거든."

50 아르주 (9t/sEld4zA)

2022-07-01 (불탄다..!) 02:12:44

ㅋㅋㅋㅋㅋㅋㅋ 천사 아니야!
당연히 마녀님도 앞으로 잔뜩 귀여워해 줘야지~ (쓰다담)

51 르메네 - 아르젠타인 (CKBVjLWEoo)

2022-07-01 (불탄다..!) 02:44:19

"…그렇군요. 그럼…"

챙넓은 모자. 그 아래에 드리워진 그림자 안에서 흘긋이 보이는 마녀의 눈.
그 시선이 사내의 눈과 닿았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검은 눈동자. 흔들리는 것도 같다.
대답을 들은 마녀가 인간 사내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입을 열 생각이 들었는가, 숨을 들이쉬면서 이렇게 운을 틔웠다.

"…그, 일단… 오늘 밤은 머무르고 가지 않으시겠어요…?"

그렇게 말이 끝맺어지자 마자 실수했다는 듯 '앗' 하는 탄성과 함께―

"겨, 결코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니구요…! 아무래도, 오늘 중 돌아가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다가… 숲은 흉폭한 야수가 많아 위험하기도 하고… 사냥꾼 님의 마술로 붙든 생기도 금방 깨져버릴테니까… 그 원기도 회복할 겸, 해서…"

말이 점점 많아진다.
방금 전 첫 조우때에만 해도 다가갈까 말까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던 그녀인데, 지금은 마치 변명을 하는듯 허둥대는 기색을 보이며 두서 없이 장황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물론, 저같은 마녀가 엄청 싫으신 건 알고있지만… …저도, 사냥꾼 님이 바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볼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달빛에 비치우는 마녀의 검은 눈에서 어떠한 결의마저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인가.

"적어도 오늘 밤만은… 그래주셨으면 해요."

단지 '삶'을 위해서 인가.
아르젠타인 앞에 선, 언젠가 세상 위의 모든 것을 멸할 마술을 가지고 있을 터인 종말마녀는.
또한 심장이 고동치고 있을 제 가슴께 위에 손을 올려 놓은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수년을 숲에서 살았을 장본인 답다고 할까. 그건 올곧으면서도 단단한 시선이었지만,
마력이 담긴 달빛의 소행인지, 어쩐지 안타깝고도 서글픈 감정이 엿보이는 듯도 했다.

52 아르젠타인 - 르메네 (9t/sEld4zA)

2022-07-01 (불탄다..!) 19:01:04

마녀의 시선이 흔들린다. 수차례 머뭇거리는 걸 끈기있게 기다렸더니 돌아온 말은, 매우 황당한 제안이었다. 그 내용은 사내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걸터앉은 바위에서 슬금 몸을 일으켜, "…응?" 끝내 맥빠진 투로 대꾸하는 그다. 마녀도 스스로의 말에 놀란 건지 황급히 변명이랄 것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주절주절, 긴 말을 쉬지도 않고 뱉어낸다. 여전히 당황에 물든 얼굴을 하고서 사내는 마녀를 응시했다. 마녀 또한 말을 마치고, 가만히 사내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 안에는 굳은 의지가 잠들어 있었다. 마녀의 행동은 몹시 인간적이었다. 이단이 어찌하여 인간의 흉내를 내는가. 그렇기에…

관심이 생긴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다. 사내는 웃음을 참는 것처럼 입꼬리를 올리더니, 돌연 폭소를 터트렸다. 줄곧 고요했던 숲에 어울리지 않게 목소리가 울린다. 소성은 찰나의 시간동안 이어졌다. 역시 마녀의 장광설을 듣고 재밌어하는 것이리라. 결코 부정적인 태도는 아니었다. 이내 웃음을 멈춘 사내가, 마녀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간다. 이젠 거리끼는 기색마저 없다.

"그렇게까지 부탁하면 거절하는 것도 어렵잖아~"

사내는 여전히 태평하다. 지금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마녀에게 달리 다른 속셈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냥꾼의 직감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 그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끄덕이며 고갯짓을 해보인다.

"그래, 그러자고. 좋은 생각이네."

그리고,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걸어다니는 시체 꼴이 되긴 싫으니까.

53 르메네 - 아르젠타인 (CKBVjLWEoo)

2022-07-01 (불탄다..!) 21:17:10

그저 적막했던 아무도 오지 않는 숲.
그 한가운데에서 사내의 웃음소리가 드높아져 간다.
불청객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폭소에 이 어두운 숲 속이 다 떠나갈듯한 것은 물론인데다, 근방에 잠들어 있던 야수들조차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불쑥 들이밀 것만 같다.
그리고 그런 그의 웃음소리가 커져갈수록,
마녀의 얼굴은 점점 달아올라 어둠 속에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샛붉게 변해버렸다.

"하, 하지만…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사냥꾼 님은, 제 말을 전혀 안 들어주실 것 같아서… 우으…"

앞으로 다가온 그에게 살짝은 억울한듯이 마녀의 표정은 지금 살짝 울상이다. 사냥꾼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완전히 비웃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반면, 마녀의 말을 그렇게 덥썩 믿어버리는 인간은 어디있겠으며 인간을 이렇게 살갑고 또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녀는 또 어디에 있겠냐만은.
만약 아르젠타인의 직감이 완전히 틀렸고, 사실 모든건 사내를 해 하기 위한 거짓이었다고 한다면,
그녀는 상당한 실력의 연기자라고 해도 되겠지. 마을의 광대조차도 가볍게 뛰어 넘을 것이다.

"그럼… 정하셨으니까… …어… 제 저택, 이라고 할지… 집까지 안내 할 테니까, 잘 따라 와 주세요…?"

시간이 지나 조금 진정 된 마녀는 몸을 돌려 나무 사이로, 숲 안으로 저 먼저 걸어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길은 종말마녀의 저택으로 향하는 길.
또, 사냥꾼이 방금 전까지 해매고 있던 길.
그녀의 뒷모습에선 모자 바깥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칼이, 그리고 작은 몸집보다 훨씬 기다랗고 구부정한 고목 지팡이가 마치 선봉대의 깃발처럼 보폭의 걸음에 맞춰 흔들렸다.

54 마녀주 ◆KIXz2d8NDA (CKBVjLWEoo)

2022-07-01 (불탄다..!) 21:19:29

아르주 안녕~ 잘 잤어? 좋은 꿈 꿨을까?
오늘 엄청 덥다!! 좀 있으면 녹겠어...

55 아르주 (9t/sEld4zA)

2022-07-01 (불탄다..!) 22:06:10

마녀주 어서와! 잘 자고 일어났지~ 마녀주도 잘 잤을까!
그러게...! 역시 집에서 에어컨 틀고 누워있는 게 최고야...

56 아르젠타인 - 르메네 (9t/sEld4zA)

2022-07-01 (불탄다..!) 23:36:45

마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어쩐지 잔뜩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다. 사내의 웃음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라도 한 건지. 오해를 풀기 위해, 사내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웃은 거 아니거든~ 그냥 좀 재밌어서."

아마 마녀는 제 말을 비웃은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여전히 이상하며 순진한 마녀다. 이단에게 그런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지만, 사내는 이 마녀를 그렇게 평가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덧붙여 마녀의 말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의외의 행동으로, 몇 번이나 사내를 놀래켰지 않는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건 아니나 불신하는 것은 또 아니다. 돌이켜보면, 이 역시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대화라곤 보기 힘들다.

"그래, 잘 따라갈게. 혹시 미아라도 되면 찾아줘야 해~"

사내가 익숙하게 실없는 소리를 한다. 그러더니 얌전히 마녀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마녀의 뒷모습은 병사를 인도하는 선봉장의 그것과도 같았다. 작은 체구 탓인지, 그 정도의 늠름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숲 속을 계속해서 나아가지만 바뀌는 건 없다. 사내의 눈엔 단순히 같은 풍경만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지?" 사내는 노파심에 그런 말을 꺼냈다가, 그게 어리석인 질문이었단 걸 뒤늦게 깨닫는다. 하기사 초행길인 그보다는 이 마녀가 지리를 더 잘 알 것이다.

57 르메네 - 아르젠타인 (Qu0Bzwwack)

2022-07-02 (파란날) 01:54:43

"네에? 그야, 찾으러 가겠지만… 그, 그래도 일부러 떨어지거나 하시는 건 안 돼요…"

이미 긴장따윈 다 풀어졌다는 듯 사내가 가벼운 태도로 농담을 말하지만, 오히려 그 태도 때문인지 마녀에겐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을 뿐인가 보다.
정말 그러면 어쩌나 싶은지 진심으로 걱정되는 기색을 내비치며 말하고 있었으니.
아마 그때부터였을까?
앞장서서 걷는 그녀가 간헐적으로 아르젠타인이 따라오고 있는 뒤쪽으로 시선을 힐긋힐긋 보내기 시작한 건…

"아, 걱정마세요. 이 숲은 나가거나 들어오기는 정말 어렵지만… 안에서 길을 찾는 건 비교적 쉬우니까요. 예를 들어서, 으음… 어떤게 좋을까… …아, 저기의 저 나무는 조금 모양이 다르죠? 이 근처에서는 가장 키가 큰 작은 눈 나무예요. 저 나무를 중심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저쪽에는 둥근 이끼 바위가 있다거나… 그리고…"

그렇게 설명을 늘어놓으며 눈짓 손짓을 섞으며 열심히 설명을 시작하는데,
지칭하는 것들이 도통 사내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 뿐들이다.
정확히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숲이라는게 어딜 보아도 전부 똑같이 생긴 풍경에다 환경이니, 그저 따라서 맞장구 쳐준다고 납득이 가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그러던 와중 마녀가 머쓱한 웃음을 흘려내며 이렇게 말한다.

"―라고 해도, 저같은 마녀는 그냥 마력의 농도를 감지하면서 길을 찾는게 더 쉽지만요. 아하하…"

그럼 앞의 설명은 전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인 것이 아닌가?

"아, 도착했네요…"

그러는 사이에 숲을 해치며 안내하던 마녀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멎는다.
과연, 빈말은 아니었던 것인가.
사내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나무를 애워싼 곳에 묘한 분위기를 그 가운데에 홀로 풍기며 서있는,
―지금까지 숲을 하루 종일도 해매면서 어떻게 놓쳤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제대로 된.
저택이었다.

58 마녀주 ◆KIXz2d8NDA (mBuV2TOdn2)

2022-07-02 (파란날) 01:59:59

마녀주도 잘 잤습니다!
에어컨 하나로 극락을 왔다갔다 하는 나약한 인간이여...!
참, 아르주는 혹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상황 같은 거 있어? 당장은 생각 없으려나?

59 아르주 (Hs8j.iJouI)

2022-07-02 (파란날) 02:13:33

잘 잤다니 다행이다!
해보고 싶은 상황이라~ 숲에 들어온 다른 사냥꾼이랑 마주하는 상황 같은 거? 아니면 마녀님이랑 바깥세상 구경하는 거...는 너무 무리수려나 ㅋㅋㅋㅋㅋ

60 마녀주 ◆KIXz2d8NDA (Qu0Bzwwack)

2022-07-02 (파란날) 02:34:26

앗 지금 아르주랑 동접인가? 엄청 귀하다...!
그리고 전혀 무리 아니야!!
왜냐면 마녀주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사냥꾼님과 바깥으로 나가볼까~ 하고. 이건 운명인가? ㅋㅋㅋ
음~ 그리고 실은 둘의 상황 진행 방향에 대해 살짝 생각 해 본 것도 있어서.
원래는 지금 일상이 끝나면 얘기해보려고 말해주려고 했는데 지금 말해두는게 괜찮으려나? 아르주는 어때?

61 아르주 (Hs8j.iJouI)

2022-07-02 (파란날) 03:16:34

아앗 늦게 봤어!! 어차피 곧 자러갈거 같긴 하지만...!
ㅋㅋㅋㅋㅋㅋㅋ 그랬구나~ 마녀주랑 통한 거 같아서 기쁜걸~
그건 마녀주 내키는 대로 해주면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지금 들어보고 싶긴 해!

62 마녀주 ◆KIXz2d8NDA (Qu0Bzwwack)

2022-07-02 (파란날) 03:24:54

으음, 그러면~
...역시 끝나고 말해줄래! ㅋㅋㅋㅋ
하지만 별 건 아니니까 너무 기대하거나 궁금해 하지는 말구
아르주 슬슬 자러 들어갈 시간이구나? 오늘 밤도 잘 자고 좋은 꿈 꿨으면 좋겠다. 오늘 부터 주말이니까 말이야
그럼 푹 쉬고 또 보자!

63 아르젠타인 - 르메네 (Hs8j.iJouI)

2022-07-02 (파란날) 18:17:54

"그럼 일부러 떨어지는 것도…"

사내는 다시 장난스레 대꾸한다. 그러나 가볍게 내던진 농담임에도, 마녀는 그의 말에 짐짓 놀란 듯하다. 진지하게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으니. 게다가 마녀는 아예 사내 쪽으로 시선 보내는 걸 반복하기까지 했다. 정말 순진무구한 반응이다. 그게 너무 우스운 나머지, 사내는 풋, 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다가도 금세 기세가 죽어선 "농담이야, 농담~" 재빨리 해명하기 바쁘다.
뒤이어 마녀는 주위 환경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작은 눈 나무… 둥근 이끼 바위… 그런 마녀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내는 그 설명을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별로 쉬워보이진 않는데."

그러나 이어진 마녀의 말은 상당히 맥빠지는 결론이었다. 그야, 마녀가 마력을 감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마녀를 따라 줄곧 숲을 걸어가니 조금은 주변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같다.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광경은 바뀌질 않아서, 같은 곳을 헤매는 것도 같았지만. 그래도 사내는 군말없이 마녀를 뒤따랐다.
이윽고 마녀가 도착했다는 말과 함께, 걸음을 멈춘다. 사내도 그 자리에 멈춰서서 시선을 돌린다. 나무들 사이로, 한 저택이 고고한 기세를 뽐내며 우뚝 서있었다. 그 분위기가 묘하고 또 기이하다. 저런 건물이 숲에 있었다면 진작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와, 집도 참 좋네."

사내는 역시,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64 아르주 (Hs8j.iJouI)

2022-07-02 (파란날) 18:18:55

갱신! 덕분에 잘 잤어~
ㅋㅋㅋㅋㅋㅋ 그럼 그때 들어볼게!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해지고() ㅋㅋㅋㅋㅋ

65 르메네 - 아르젠타인 (Qu0Bzwwack)

2022-07-02 (파란날) 23:55:24

"빈 집을 '마술'로 개조했으니까요…!"

뒤돌아 몸을 사내 쪽으로 향한 마녀는 두 팔을 모아 강하게 대답하는데,
묘한 빛으로 반짝이는 눈과 '마술'이라고 하는 대목에서 어떠한 은근한 자부심마저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냥꾼이라면 무릇 사냥을 하는 기술에 자신을 얻고, 대장장이라면 자신의 영혼을 건 철붙이가 인정 받길 바라는 법이다.
비록 이 을씨년스런 숲에 홀로 사는 마녀라고해도,
마찬가지로 마술과 술식을 연구하는 학파로써 보자면, 그런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걸까.
…아니, 어쩌면 그저 이 종말마녀만이 유별난 걸지도.

"그러엄, 사냥꾼 님… 들어오세요."

―끼익.
마녀가 현관의 문고리를 돌리자 나무가 젖혀지는 소리가 울렸다.
밖에서 보았을 땐 그렇게나 고풍스러운 저택이었다. 둘러싸인 숲의 가운데에 위치한 문명의 건축물.
아닌 때인 곳에 덩그러니 나타난 듯한 그 이질적인 모습이 분위기로나 실체적으로나… 말 그대로 '마녀의 집' 그 자체였을 것이다.
어쩌면 사내는 마녀의 집에 발을 들이는 최초의 인간은 아닐까.
언뜻 보이는 복도 안쪽에서는 따스한 불빛이 밝혀져 있는 것이 보인다. 숲에 들어선 이래로는 아마 처음 보는 불빛이 아닐까.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사내의 시야에도 내부의 풍경이 점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 어, 엉망이죠… 아, 으음… 조금, 부끄럽네요…"

그 풍경이라는 것이.
읽을 수 없는 문자를 한 책들의 산. 어둑한 빛을 발하는 돌. 유리병 안의 식물. 안이 보이지 않는 케이지. 무언가의 재료로 보이지만 절대 만지고 싶지 않은 물건들. 아예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용도도 모를 도구들.
등등의 물건이 멋대로 널부러져, 쌓이고 쌓여서, 발 디딜 틈도 없게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사는 곳인지, 아니면 그저 사람이 살기위해 창고로 만들어 놓은 곳으로 들어 온 건지 햇갈릴 수준의 어수선한 내부 환경이다.
과장을 좀 보태서 복도가 터져버릴 듯 한 지경이다.
'…으으, 생각해보니까 집 정리를 전혀 해놓지 않고 나왔잖아.' 눈을 질끈 감은 마녀는 몸을 파들파들 떨며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손에 들린 지팡이를 휙 하고 허공에 찌르자 바닥에 늘어져있던 잡동사니들이 각자 구석으로 우르르 갈라지면서 그제야 비로소 중앙에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 생겨났다.

"…주, 주방으로 가요…! 사냥꾼 님… …따라오세요…"

집 조차 마법으로 만들었다면서, 정리를 마법으로 해결 할 생각은 못한 걸까.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허둥대며 사내에게 말하는 마녀는 제법 부끄러운지 얼굴이 발개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잡동사니의 샛길을 해쳐 나아가는 그녀는 걱정이 되는지 "아무 것도 함부로 만지시면 안 돼요…!" 하고 말하여 그 편린을 내비치는 것이다.

66 마녀주 ◆KIXz2d8NDA (Qu0Bzwwack)

2022-07-02 (파란날) 23:58:59

잘 잤어 아르주?
라고 말하는 사이에 벌써 새벽 갱신...! 좋은 주말 보냈으려나~
아니아니 ㅋㅋㅋㅋ 정말 별 거 아니니까. 기대 할 거라면 조금만 부탁 해

67 아르젠타인 - 르메네 (MT8qb.7fOY)

2022-07-03 (내일 월요일) 15:21:18

마녀의 말에, 사내가 짐짓 감탄한 듯 눈썹을 올린다. 마술로 건물을 뜯어고친다니 새삼스레 놀라는 것이다. 이 마녀는 그런 마술에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저렇게 눈을 빛내며 들뜬 기색을 하는 걸 보면. 그 태도는 종말을 바라는 마녀라기보단 단순히 학문에 매진하는 연구자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여전히, 소문과는 영 딴판인 모습이다.

"마술이란 거, 참 대단하구나."

그래서 사내는 가볍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동시에 저택을 올려다보니 음침한 위압감마저 느껴진다. 정말이지 우아하면서도 을씨년스런 건물이다. 역시 마녀의 집, 이단의 은신처라는 분위기다. 어쨌거나 그도 마녀를 따라 현관에 들어선다.

"그럼… 실례할게~"

그치만 그 실체는 세간의 인식만큼 무시무시하지 않았다. 천장에 시체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도 아니고, 사람을 가둬놓는 감옥도 없었으니. 그저 검소한 생활공간일 뿐이다… 저 복도 너머에는 난색의 빛도 비추어지고 있다.
아니, 검소한 생활공간이라는 말은 취소해야 할 것 같았다. 이리 어지르고 저리 어지른 게 완전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흡사 도둑이라도 든 듯한 모양새다. 도무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도구들이 쌓인 모습은, 마녀의 집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기까지 했다. 집 정리는 마술로라도 해결할 수 없는 건지. 마녀가 지팡이를 휘두르니 길이 와르르 열리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듯하다.

"와, 엄청 어질러놨구나."

그건 감탄과 황당을 섞은 한마디였다. 사내 역시 혼돈의 복마전과도 같은 내부 풍경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마녀라는 존재가 깔끔떠는 것도 이상하겠지만. 슬쩍 흘겨본 마녀의 얼굴은 꽤나 상기되어 있었다. 부끄럽긴 한 모양이지. 사내에겐 그 모습이 마냥 재밌게 느껴졌다.

"네에, 네~ 함부로 안 만질게요."

걱정스런 당부에 대꾸하며, 마녀의 뒤를 사내는 잠자코 따른다. 도중 널브러진 가재들에 호기심이 동하긴 했으나. 집주인의 말을 못 들은 척 할 순 없다. 게다가 멋대로 손을 댔다 두꺼비가 되어버린다던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것보다 언제까지 사냥꾼 님이라고 부를 거야?"

잡동사니 골짜기를 따라 걷던 사내가 불쑥 질문한다. 마녀의 호칭이 줄곧 신경쓰였던 듯. "아르젠타인이야, 이름." 사내는 고민도 없이 선뜻 이름을 알려준다. 이 짧을 만남에 통성명을 하는 이유는 단순한 변덕이었나. 아니면, 스스로에게 사냥꾼의 이름을 짊어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걸까.

68 아르주 (MT8qb.7fOY)

2022-07-03 (내일 월요일) 15:22:13

갱신~ 오늘도 잘 잤다구~ 마녀주도 남은 주말 잘 보내길 바래!

69 르메네 - 아르젠타인 (DfOrEnMOJM)

2022-07-03 (내일 월요일) 17:28:50

"네에?"

사내가 자신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보이자 마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걷는 것을 잊은 것 처럼, 발걸음 마저도 순간 그 자리에 멎어버린다.
통성명의 의미로 이름을 대보인 것일텐데, 마녀는 거기에 묵묵부답이다. 아니,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대거나 그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에 "아… 저는…" 하고 머뭇거리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그 걸음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인지.
―그의 이름을 못 들은 척 하자고,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주방에 다다른 그녀가 그를 위해 의자를 빼어주며 말한다.

"펴, 편히 앉으세요. 사냥꾼, 님…"

공기를 젓듯 지팡이를 허공에 부드럽게 휘두르자 곳곳에 놓인 밀랍촛대에 불이 지펴져 오른다. 역시 마술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방의 풍경 또한 시야에 훤히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방은 다행스럽게도 잡동사니의 복도, 그러니까 본관과는 분리 되어 따로 떨어진 곳에 있다.
단순히 식사와 요리만의 공간이라고 할지. 여전히 어수선한 것은 사실이었다만은 방금 전의 복도를 보고 와서인 탓인지는 몰라도 그렇게까지 지저분한 느낌은 들지 않는 공간이다.
와중에 또 다른 다행인 점은 사냥꾼이 제대로 앉아서 식사를 하며 쉴 자리가 많이 있었다는 것일까.
큰 것은 아니지만 나무테이블을 가운데에 놓고 의자가 여러개인가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아마도 마녀는 홀로 살고 있기 때문에 필요없는 가구일 터인데…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이곳에 머무는 것일까.
마녀는 사내를 앉혀놓고는 종종거리는 걸음으로 바삐 움직여서 커다란 솥에서 무언가를 떠다가 그의 앞에 내어주었다.

"지금, 드릴 게 제가 오늘 해둔 것 밖에 없어서… 호화스러운 식사가 아니라 미안해요. 마술을 사용해서 급한 일은 막았지만… 지금 사냥꾼 님은 위태로운 상태니까요. 그러니 일단 이걸 드셔서, 원기를 되찾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괜찮을 거예요…"

사내의 앞에 내어진 것은 스튜였다. 그리고 스푼 하나.
나무 접시에 가득 담긴 보통의 스튜…
일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이 스튜에서 낯선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이 음식은 무언가가 다르다며 꿈틀거리는 것 같다.
단순히 착각일 뿐일까.
…어쩌면, 재료를 너무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어… 어떤가요…?"

와중에 맞은 편에 마주보고 앉은 마녀는 사내에게 물어온다.
내려오는 앞머리 사이에 비춰지는 눈동자가, 어쩐지 긴장의 빛을 담고 있었다.

70 마녀주 ◆KIXz2d8NDA (DfOrEnMOJM)

2022-07-03 (내일 월요일) 17:31:45

아르주 안녕~ 좋은 꿈 꿨을까? 주말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와중에 마녀주는 너무 더워서 큰일 났어... 으윽
이제 진짜진짜로 여름이구나 싶은게 실감 나

71 아르젠타인 - 르메네 (MT8qb.7fOY)

2022-07-03 (내일 월요일) 20:39:25

사내의 발언은 마녀에겐 상당히 의외였던 모양이다. 걸어가던 행동도 멈추고 눈을 둥그레 뜰 정도니. 사내 또한 마녀의 반응이 의외인 건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낯을 가리는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라도 있는 건지. 어찌됐건 그는 마녀의 행동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강한 부정이려니 했다.

"싫으면 됐어."

한없이 가볍고 무게 없는 언사였다. 그는 도망치듯 종종걸음하는 마녀를 따르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곧 둘은 주방에 다다랐다. 채 주위를 둘러보기도 전에, 마녀가 손짓하자 어두컴컴한 방에 빛이 들었다. 사내가 그걸 담담하게 바라본다. 저런 사소한 마술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테이블 앞 빼둔 의자에 사내가 앉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방금의 난장판 복도와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어질러진 것들이 몇 보였으나 복도만큼 심각한 수준도 아니었고. 식사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무릇 진지해야 한다. 마녀도 그걸 아는 걸까. 의자가 너무 지나치게 많은 것 같다만은…
사내는 마녀가 내온 스튜를 눈여겨본다. 허기진 위장이 빨리 음식물을 내려달라고 보챘지만 그는 성급히 굴지 않았다. 왜냐면, 이 스튜가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으니까. 평범할 것 같지만 그 기운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스튜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본능이 위험하다고 소리치는 것도 같았다… 사내는 무심코 벙찐 얼굴을 하려다, 겨우내 표정을 되찾았다.

"어… 음."

사내가 가만히 고민하는 소리를 낸다. 맑은 국물은 먹음직스럽게도 보이지만, 그 재료는 알 수 없다. 이 스튜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갔을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려는 걸 간신히 틀어막았다. 대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말해보인다.

"괜찮네, 잘 먹을게."

평정심을 되찾은 사내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식사를 거부하는 건, 역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애써준 은인에게 실례일 테니까(그 은인이 마녀라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게다가 굶어죽는 것 또한 사양이다.
수저를 든 사내의 손이 신중하게 움직인다. 어울리지 않게 조심스런 행동이다. 수저를 담그니 둥그런 숟가락에 국물이 고인다. 곧 사내는 큰맘 먹고 수저를 입에 머금는다. 최대한 맛을 음미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72 아르주 (MT8qb.7fOY)

2022-07-03 (내일 월요일) 20:40:21

마녀주 좋은 저녁!
요새 살인더위 심하지...~ 하루에 에어컨을 몇번 트는지 모르겠어~

73 르메네 - 아르젠타인 (DfOrEnMOJM)

2022-07-03 (내일 월요일) 22:17:34

아르젠타인이 큰 각오를 다지고 입에 머금은 스튜는…
………
…과연, 평범하게 맛있었다.
아니, 바깥에서 먹었던 그 어떤 스튜와 비교해 보아도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맛이, 미뢰 전체에 퍼지는 것을 그는 느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재료라고는 알 수 없는 열매와 향신료나 풀 뿐인데,
고기 하나 입 안에 씹히지 않는데도 소박하면서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배가 굶주려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말 그대로 몸에 스며드는 것만 같다.
이건 맛의 신세계…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막상 맛을 보자 이건 이것대로 또 평범한 스튜가 수상하게 보인다.

"…에헤헤…"

반면 마녀는 그런 사내의 큰 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신의 요리를 군말 없이 먹어주는 그의 모습이 뿌듯하게만 와닿는지 수줍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스튜는 몸에 쌓이고 쌓였던 피로를 풀고, 안에 텅 비었던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마저 들게 만든다.
마녀를 찾는 과정에서 임박했던 죽음이, 마녀에 의해 멀어지고 있었다.
묘한 인과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식사도 이제 천천히 접어들고 있을 쯤이었을까.
조용히 사내가 스푼을 들던 것을 바라보던 마녀가 "…저어." 하고 조심스럽게 운을 틔웠다.

"방금은, 무시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런 마녀가 하고 있는 얼굴은, 이제껏 짧은 만남이었지만 사내도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저같은 마녀가, 이름을 알고 부르는 거… 사냥꾼 님은 싫지 않으신가요…?"

방금 전 복도에서 통성명을 시도 했을 때 살며시 보였던 바로 그 표정.
아래로 처진 마녀의 눈은 사뭇 진지했고, 근심이 어린 어두운 기색이었다.
마녀는 할 말이 아직 남아 있는듯, 양 손을 가슴 위에 얹고는 계속 얘기하기 시작했다.

"저는 분명, 죽음에서 당신을 구하고 지금 이렇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지만… 하지만 제 본질은 마녀…예요. 이단을 찾고 멸하려는 당신들에게 있어선 분명 저주 깊은 존재겠지요… 그런 마녀가, 당신같은 인간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 저는 그 자체로도 이단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방금 사내의 이름을 뻔히 듣고도 듣지 못한 척 했던 이유일까.
이단과 친히 지내는 자는, 그 자체로도 이단 취급이 된다.
하물며 그 존재와 이름을 나누고 서로의 존재를 부른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이단으로 불릴 이유가 충분하다.
그 점을 깊히 걱정하고 있는 것이, 얼굴로 전부 드러나 있었다.

"제가 만약 당신의 이름을 이 입에 올린다면, 그 이름은 더럽혀진 것이겠죠… 당신같은 인간의 관념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요…"

식탁의 위에 까내리고 있던 시선을 들어, 검은 눈망울로 아르젠타인을 바라본다.

"숲에서 잠깐 마주친 마녀 따위… …사냥꾼 님도, 기분 나쁘다고…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74 마녀주 ◆KIXz2d8NDA (DfOrEnMOJM)

2022-07-03 (내일 월요일) 22:24:05

아르주도 좋은 저녁~ 곧 새벽이네
언제나 말하는 거지만 잇기 어려우면 말 해주기...!

75 아르젠타인 - 르메네 (1pQKbfjlUA)

2022-07-04 (모두 수고..) 19:33:40

스튜의 맛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사실, 괜찮은 수준이 아니었다. 몹시 맛있어 눈이 휘둥그레 뜨일 정도였다. 물론 정말 눈을 그리 뜨진 않았지만. 마녀의 요리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상한 재료가 들어가서 맛이 희한할 거다, 하고 생각한 게 반성될 정도였다.
곧 사내가 말 없이 수저질을 몇 번 이어가는데, 영락없이 먹는 것에 열중한 채다. 음식물이 들어오니 허기가 해소되고 마술로 붙든 기운도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조용한 주방에 수저 부딪히는 소리만이 울린다. 와중 그 정적을 비집고 나온 목소리가 있었다.

사내는, 마녀의 부름에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입을 여는 그 표정이 썩 밝지 않았다. 그러더니 주절주절 말을 이어가기 시작하는데. 그 말뜻, 사내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헌데, '인간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걱정하는 마녀라니.'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사내가 피식, 바람 빠지듯 맥없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서 팔을 올려 턱을 괴는 것이다.

"이단이니 뭐니, 진지하게 걱정하기엔 늦었지 않아?"

그 말대로다. 사내는 이미 이단의 마술을 받아들이고 이단의 소굴에 발을 들여 이단이 내온 음식을 맛보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단에 물든 것이며 마녀와 내통한 죄를 묻기에 충분하다. 그럴진데 거기서 이름마저 더럽혀진다 하여 질색할 건 없다.

"그런 걸 걱정했으면 내가 얌전히 널 따라왔겠니."

사내의 가벼운 시선이, 어두운 표정을 한 마녀에게 가 닿는다. 만일 사내가 이단에 연루되고자 하지 않았다면 일찍이 마녀의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이단을 눈 앞에 두고서 망설이는 행위 자체가 이단을 옹호하는 것임에도. 더 나아가 마녀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는가. 지금의 사내는 이미 이단과 깊게 엮인 셈이다. 또한 이는 그가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딱히 이단이 싫은 것도 아니거든. 사냥꾼이 이런 말 하면 좀 웃긴가~"

그리 말하며 사내가 실없는 미소를 머금는다. 누가 들으면 바로 화형대에 매달릴 만한 발언임에도 사내에겐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그토록 터부시되는 이단의 앞이기에 꺼리지 않는다.
사내는 자신의 의지로 사냥꾼이 된 것이 아니다. 옛부터 루시스의 이름을 가진 자들은 으레 사냥꾼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하여 태어난 후손 역시도 사냥꾼으로 육성하는 것이 그들 집안의 규율. 사내—아르젠타인은 그 고리타분한 전통을 짊어지도록 강요당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학습된 공포와 학습된 증오를 가지고 줄곧 기계적으로 사냥에 나섰다. 그에게 진정으로 이단을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 아무리 이단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수많은 희생자를 낸들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이다. 이단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도 아니며 소중한 이를 잃은 것도 아니기에.
이단은 사내에게 그저 사냥감이었다. 엽사가 수렵에 나선다고 하여 그 짐승들을 싫어한다 볼 수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뭐, 너도 마녀인 주제에 이상한 소리를 잔뜩 하니까 다를 건 없겠네."

그리고 사내가 사냥꾼답지 않은 사람이라면, 종말마녀 역시도 마녀답지 않은 존재이다. 이단은 악하고 무자비하다, 모두가 똑똑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종말마녀는 세간의 인식과 달랐다. 무르고 순진하며 인간을 선뜻 돕기까지 한다.
사내는 그런 마녀의 태도에 호기심마저 들었다. 그녀는 어째서 이토록 이질적인가. 왜 인간이 아니면서도 이렇게 인간다울 수 있는가.

"그렇지, 넌 딱 봐도 사악한 마녀는 아니잖아. 싫거나 기분 나빠할 이유는 없어." 간단명료한 결론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날 때부터 이단에 대한 공포를 주입받는다. 그런 사회에서 호기심은 죄악이다. 이단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만으로도 중죄를 범하는 게 된다. 그러기에 사내의 생각은 명백한 죄인의 것이다. 동시에 비정상적이다.

"너한테 은혜를 입기도 했고 말이지. 은인을 미워할 생각은 없어, 아무리 마녀라 해도."

항상 그렇듯 진지하지 못한 마음가짐이다. 이래서야 사내는, 이단을 숭배하는 이단자와 다를 바 없다. '마녀한테 단단히 홀려버렸으니 사냥꾼 일도 이젠 못 해먹겠네.' 사내의 태평한 생각이다.

76 아르주 (1pQKbfjlUA)

2022-07-04 (모두 수고..) 19:36:36

오늘도 좋은 저녁! 오늘은 좀 늦었다!
ㅎㅅㅎ 잇기 어렵진 않지만! 마녀주의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져~

77 르메네 - 아르젠타인 (HuRjkFGwsc)

2022-07-04 (모두 수고..) 22:14:14

…늦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마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이 집을 떠나면 될 것이다.
이단이 배푸는 호의만을 받아들이고 싶다면, 그저 이익만을 챙기고 숲을 떠나면 될 것이다.
이름 같은 것은 제쳐두고, 마녀인 자신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방법은 많이 있다. 사람은 교활하다. 굳이 마녀에게 이름을 내보임으로써 스스로의 인간성을 더럽힐 필요는 없었을 테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사내의 말이 허를 찌른듯이 와닿는 것이다.
마치, 저 홀로 괜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정작 자신인데도,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같아서.
그의 넘겨짚는 듯한 말이 본질을 스치우는 것 같아서.
그것이 어쩐지 바보가 된 기분이라 부끄러워져서 지금처럼 말을 더듬으며 앞 뒤에도 맞지 않는 반박으로 머뭇거리고 마는 것이다.

"이, 이상하지 않아요…! 저는, 그저… 당신이라는 사람이 걱정 되어서…"

바깥의 사람은 오랜 시간 마주친 적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것이 이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의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상한 사람은 당신이다.
그저 이 숲에서 죽어가는 인간을 못 본 척 할 수 없었던 것 뿐인데…
스스로 조차도 자신이 진정으로 사악한지 아닌지 단정 지을 수 없는데.
헌데 그런 마녀가 한 번 치유해 준 것으로 당신은 그렇게나 경계를 허물고 이름마저 나눌 생각을 하다니.
태도가 가벼워도 너무 가볍지 않은가.

"……르메네 헤스티온."

그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던,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던 마녀에게서 작고 차분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그것은 누군가의 이름이다.
사냥꾼 아르젠타인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건, 일찍이 인류를 저버린 여자의.
아무도 오지 않는 숲의 주인의,
언젠가 세상에 종말을 불러올―

"인간들이 종말마녀라 속삭이는, 저주 깊은 이단의…"

아마도 사내가 들려준 생각에 대한 대답 대신이었을까.
그것도 그렇지만 사내의 이름을 이미 이쪽이 들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비록 진지하지 않은 마음일지도 모르지만, 저렇게 말해주는 인간이라면…

"저의, 이름이랍니다."

르메네는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78 마녀주 ◆KIXz2d8NDA (HuRjkFGwsc)

2022-07-04 (모두 수고..) 22:30:33

아르주 어서와~! 오늘은 월요일...!
맛있는 저녁 먹었을까?
그래? ㅋㅋㅋ 살짝 걱정했는데 너무 잘 이어줘서 고마운 거야~
역시 아르주는 금손...! 그리고 아르젠타인도 캐릭터 너무 좋아~!

79 아르주 (fObJgnJ/AM)

2022-07-05 (FIRE!) 00:06:03

마녀주 안녕~ 저녁 맛나게 먹었어~
금손이라니 전혀 아닌걸~ ㅋㅋㅋㅋㅋㅋㅋ 좋다니 다행이다!(머쓱) 마녀님도 귀엽다구!

80 아르젠타인 - 르메네 (fObJgnJ/AM)

2022-07-05 (FIRE!) 16:56:38

사내가 짓궂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허둥대는 모습을 보니 역시 이상한 마녀다,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정작 스스로도 비상식적인 행동을 거듭했지만서도. 피차일반이다. 그렇기에 더 우스울 수밖에 없다. 사내는 가벼운 웃음을 입가로 흘린다.
마녀 역시도 할 말을 잃은 듯 침묵을 유지한다. 그런 마녀를 맞은 편에서 지켜보는 사내. 그들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감돈다. 오랜 정적 속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마녀였다. "…응?" 덩달아 사내도 반문하듯 목소리를 내었다. 적잖이 놀란 눈치인데, 설마하니 마녀가 제 이름을 스스로 읊을 줄은 몰랐던 탓이다. 애초에 먼저 이름을 꺼낸 건 사내였음에도.
사내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눈길이 마녀—르메네를 향하고 있다.

"마녀치고는 평범한 이름이네. 어쨌든 기억해둘게."

기억한다 하여도, 다시 보게 될 일은 없을 테지만—라고 사내는 무덤덤히 생각한다. 이 기묘한 인연도 숲을 떠나면 끝이 나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만 기억만은 선명히 남겠지. 그런 것이다.

"덕분에 배도 잘 채웠고~"

돌연 그리 말한 사내가 짐짓 과장되게, 복부를 통통 두드렸다. 스튜는 진작에 다 먹었는지 그릇이 싹 비워진 채다. 상당히 만족스런 식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속이 채워졌으니 이젠 피로가 몰려온다. 육신에 걸린 마술도 슬슬 그 효력이 다해가는 것인지. 사내의 표정에서 피곤한 기색이 엿보인다. 계속 나불대던 주둥이도 잠잠하고 시선도 한곳에 고정한 채다. 지금도 촛대 위의 흔들리는 불꽃을 바라보며 두 눈을 간헐적으로 꿈뻑이고 있지 않는가. 이대로 놔두면,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들어버릴지도 모른다.

81 르메네 - 아르젠타인 (w.6.HrZghE)

2022-07-05 (FIRE!) 20:27:07

"평범…한가요? …기억도 하신다구요…? …으으."

왜인지 그 말이 낯을 간질이는 것 같아서 모자의 드넓은 챙이 얼굴을 가리도록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물론 스스로의 이름에 자격지심 같은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인간에게 이름을 내보인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경험이었던지라 이 상황 자체가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인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마녀의 진명이라는 것은 그 이름 만으로도 괴상하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가 처음에 숲에서 보였던 태도로 미루어 보아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마녀의 이미지란 훨씬 괴팍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먹는다고 하셨었지…' 방금 전 숲에서 들었던 그 말을 르메네는 살짝 상기시켜본다.

"하지만, 제가 이름을 알려드린 건 사냥꾼 님을 모질게 대하고 싶지 않아서예요… 그저 사냥꾼 님이 제게 이름을 알려주셨기 때문에… 결코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어… 그러니까, 제가 사냥꾼 님의 이름을 부를 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

미안스러운 마음은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머무르는 몸이라고는 하지만 그는 날이 밝으면 이 숲을 떠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단으로서 향하는 그 어떤 싹도 여지도 남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간과 마녀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인간인 채로 있는 것이 좋다고―
그렇기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숲의 불청객, 아르젠타인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부 드셨나요? 아, 피곤하시죠…"

사내의 기세가 눈에 띄게 느긋해지고 시선은 한 곳만을 멍하게 고정 시켜놓고 있었다.
좋은 징조였다. 졸음이 쏟아진다는 것은 긴장이 사라진 몸이 휴식을 바라고 있다는 신호니까.
마술이 풀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따라다니던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방, 준비해 드릴 테니까요. 다행히 남는 방은 많이 있어서…"

남은 일은 이제 사내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돕는 것 뿐이다.
서투른 회복마법보다는 신체의 자연회복이 백번 낫다는 말도 있다. 물론 르메네는 그 말에 대해선 살짝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는 순수한 인간이기도 하고… 마녀와 인간은 얼핏 닮아보이지만 세세한 부분은 구조부터 확연히 다르다.
그러니 억지로 마술에 의지시키는 것보다 자연히 회복하도록 두는게 나을 것이다.
마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따라와 주세요…"라며 사냥꾼을 조용히 기다렸다.

82 마녀주 ◆KIXz2d8NDA (w.6.HrZghE)

2022-07-05 (FIRE!) 20:32:07

마녀님이 아르주 마음에 든다면 다행이네. 후후
나도 아르젠타인의 능구렁스러운 면모덕에 즐겁게 돌리고 있어
바람같은 사나이의 매력이라고 할지~
그러니 머쓱해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야!

83 아르주 (fObJgnJ/AM)

2022-07-05 (FIRE!) 21:12:11

그래도 자꾸 그렇게 말해주면 부끄러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워!
마녀님도 엄청 매력적이고 귀여워! 주접력이 딸려서 이런 단순한 말밖에 못하지만 ^ㅅㅠ

84 마녀주 ◆KIXz2d8NDA (w.6.HrZghE)

2022-07-05 (FIRE!) 21:35:39

익 ㅋㅋㅋㅋ 아냐아냐! 일부러 주접 해주고 그럴 필요 전혀 없는걸. 충분히 전해지니까 말이야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다고 하는 거기도 하구. 마녀주도 주접 같은 거 전혀 못 해~!
그리고 아르주랑은 편하게 이을 수 있는 점을 좋아하니까
혹시라도 일상 중에 이렇게 잡담 하는 거 부담 되면 말해주기~

85 아르젠타인 - 르메네 (fObJgnJ/AM)

2022-07-05 (FIRE!) 22:58:51

"그래, 이해했어."

종말마녀, 르메네가 조그맣게 소명한다. 그것에 사내는 아쉬운 기색도 없이 어깨를 으쓱인다. 어쩌면 종말마녀는, 인간이 이단의 세계에 지나치게 휘말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녀의 조심스런 말이며 행동이며 모두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곧 사내는 마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신세 좀 질게~" 남는 방이 많다면… 밖에서 보았던 저택의 크기만큼 방이 있는 걸까, 싶다. 헌데 홀로 은둔하는 마녀에게 많은 방이 필요한가. 마녀의 생활이라던가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만큼 사내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길 뿐이다.
그리고, 숲을 떠나면 그 뒤론 어떻게 할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일을 사실대로 고할 순 없으니, 역시 입을 다무는 게 최선이리라. 어쩌다 무덤까지 묻고 가야할 비밀이 생긴 셈이다.
여러 생각을 하느라 줄곧 조용했던 사내가 불쑥 입을 연다. 답지않게 가라앉은 목소리다.

"오늘 일은 고맙다고, 미리 인사라도 해둘까." 그러고 보면 여태 감사인사 하나 하지 않은 것 같다. 별 이유는 아니고, 그냥 말할 틈이 없었던가.
"왜 날 도와줬는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런 목소리도 금세 경망스런 톤으로 되돌아온다. 말 끝을 늘이며 르메네의 뒤를 따르는 사내의 모습이 태연자약하다.
종말마녀의 호의는 그 의중을 알기 힘들었다. 그저 너무 마음 약한 탓인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이유라도 있는지. 그렇다 하여 캐물을 생각은 없다. 때로는 모르는 게 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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