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은 코로리가 제 손등에 입을 맞추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조금 눈을 크게 떴다가 시선을 피하며 다른 쪽 손으로 목도리를 올려 입가와 코 끝까지 가려버린다. 부끄러운 탓이다. 뺨에 입을 맞춤 당한 것으로 모자라 손등에까지 입맞춤 당해 버렸다.
여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짧지 않게 사귀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나마 전화나 메시지를 주고받을 뿐 그렇게 자주 만나지는 못한 탓일까. 작은 스킨쉽에도 그저 부끄러워지고 마는 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 걸까. 받은 만큼 돌려주기엔 렌은 아직 서툰 것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작은 신님은 그걸로 모자라 뭐든 주겠다는 말까지 한다. 렌은 그 말에 무언가 투지까지 옅보이는 반짝반짝한 눈을 바라보다가 끙, 앓는 소리를 낸다. 방금 머릿속에 든 생각이 너무 양심없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차마 ‘코로리 씨가 갖고 싶어요’라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머릿속으로는 몇 번이고 코로리를 들쳐업고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차마 현실로는 그럴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단 돈도 좀 벌고 좀 안정된 다음에야 코세이에게 가서 ‘코로리 씨를 제게 주십시오’라고 무릎을 꿇고 말한다거나 —생각해보니 너무 구시대적인 발언 같다— 그게 아니면 ‘코로리 씨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라고 코로리를 들쳐업고 간다거나 —생각해보니 너무 악당같은 모먼트였다—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렌은 고개를 저으며 허황된 상상을 지워버렸다. 이러다가 애기 이름까지 지을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이게 다 코로리가 두 번이나 입맞춤한 것 때문에 생긴 설레발이었다—아니다—.
“…코로리 씨가 옆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나중에 갖고 싶은 게 생기면…, 꼭 이야기할테니까요.”
그러니까 언젠가는 코로리 씨가 갖고 싶어요, 라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 물론 코로리는 물건이 아니고,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였으며, 그저 기분을 낼 뿐일 말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니면 이미 ‘내 것’ 일지도 모르지만…. 아냐, 역시 아직까지는 ‘소유’라는 개념보다는 ‘점유’라는 개념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아니다. 생각해보면 그 반대인 것 같았다. 이미 자신은 ‘코로리의 것’이 아닌가. 방금도 말했다시피 잠의 여왕이 자신을 데려가버렸으니 이미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더 편한 것 같았다. 자신은 소유하는 것보다는 소유 당하는 게 더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입시가 끝나도 아직 겨울은 조금 남아있을테니까, 그 때 까지만 조금 더 힘내요. 그 때가 되면 잠도 푹 자고, 나랑도 시간 많이 보내고…. 시간 비워둘테니까….”
마지막 말은 우물우물 작아졌지만—부끄러워서 시선도 조금 비켜나갔지만— 코로리가 못 들을 정도로 작지는 않았다. 훈련 때문에 바쁜 것도 있었지만 코로리가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하라는 의미에서 바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네에. 꼭 말할 게요. 그래도…, 코로리 씨한테는 매일 후링이고 싶으니까. 최대한 그런 일 없을 테지만요.”
렌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코로리와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래서 후링이나 양귀비가 이제 어떤 의미인지 아니까, 그래서 렌은 늘 코로리에게는 착하고 예쁜 아이이고 싶었다.
그러려나~ 잠깐씩 썰풀 여력은 남으려나~ :3 잠에서 깨웠을 때? 첨엔 마히루가 장난치는 줄 알고 아 하지마 저리가 하면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갈걸~ 그러다 문득 위화감을 느끼고 눈만 빼꼼 내밀어서 코세이 보고~ 눈 감았다가 다시 떠서 보고 흠칫 놀라면서 다시 숨겠지~ 엄청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말야~ 작게 으우우 하고 앓는 소리도 날걸~
간다고 하면 얼른 손만 빼서 코세이 손 잡아야지~ 손 꼭 잡고 있다가 잠 다 깼는데 부끄러워서 못 나가겠다구 이불 속에서 웅얼웅얼 할지도~ 잡은 손 꼼지락거리다가 슬그머니 이불 속으로 끌어당겨서 손만 가지고 장난 칠 수도 있고~ ㅋㅋ 깨문다던지 손바닥에 뺨을 부빈다던지~ 잠은 다 깼지만 일어나긴 귀찮아서 장난치는? 그런거려나~
ㅋㅋㅋㅋㅋ 갓 나온 뜨끈한 요조라 ... 겨울이라 더 따뜻하게 느껴지겠는걸요~ 머리가 부스스해도, 잠옷차림이더라도 코세이는 똑같이 좋아해줄테고 ... 막 앵겨서 숨으면 꼭 안아줄테니까요. 어쨌든 이불 밖은 추우니까 ... 볼도 만지작거리고 가끔 가볍게 뽀뽀도 해주고 하면서 부족한 요조라 성분(?)을 채우는거죠!
코로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이 욕심이 얼마나 큰지 렌은 모르게 하고 싶었다. 겁먹게 하고 싶지도 않고, 두려워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미움받기도 싫으니까 이런 건 멀리 숨겨두어도 괜찮다. 그러니 굳이 손등에 입 맞춘 이유는 비밀로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코로리는 발갛게 달아오르더니 시선을 피해버린 렌을 바라보았다. 뺨에 입 맞추는 건, 렌도 한 적 있으니까 자신도 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손등에 입 맞춘 건, 뺨보다는 닿기 쉽다고 생각했고 어디선가는 인사로 사용하기도 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렌이 놀랐어?! 싫은 건, 싫은 거는 아니겠지이. 싫어하는 걸까 걱정했는데, 목도리에 코까지 폭 파묻는 걸 보고는 안심해버려서 웃어버렸다. 자신이 한 행동이 싫었다면, 자신이 떠 준 목도리에 얼굴을 묻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맑게 웃는 소리가 겨울보다는 여름에 어울린다.
"렌 씨, 그러면 입술에 한 거 같잖아ー"
웃음 소리가 짓궂은데 수줍어하고 있었다. 코로리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방금 입 맞춘 건 욕심이 그득한 마녀의 솥이 펄펄 끓다가, 기어코 한 방울이 바깥으로 튀어버린 것이었다. 못된 짓을 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렌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러니까 또 못된 짓, 나쁜 짓 하기 전에 아무렇지 않은 체 무슨 말이라도 하는 편이 좋겠다고 느꼈다. 그 결과로 장난스러운 말을 새빨간 얼굴로 수줍게 하게 된 것이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주고 있는 건 렌 씨면서ー 응, 언제든지 뭐든지 다 줄게. 약속할까요?"
잡지 않고 있는 손의 새끼 손가락만 펴고서 손을 보여준다. 둘이 처음 만났던 날의 렌을 따라하는 것이었다! 그날 꿈 속에서 코로리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고, 코로리가 신계로 돌아가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며 약속하자고 했었던 렌을 기억하고서 따라한다. 렌이 그 약속을 틀림없이 지켜낸 것처럼 코로리도 이렇게 약속하게 되면 열심히 지키겠다는 의미였다. 그 때는 분홍었는데, 지금은 하양이야! 벚꽃이 떨어지던 하늘이 눈송이 떨어지는 하늘이 되었다.
"그때는 시간이랑 싸워야겠다아."
이상한 나라에 갔던 앨리스가 만난 이상한 다과회는 계속 이어졌다. 모자장수가 시간을 죽이려고 한 탓에 시간에게 미움받아, 시간이 6시에 멈춰버렸고 6시에는 다과회를 해야한다는게 이유였다. 그러니까, 시간과 싸워 시간이 멈췄다고 계속되는 이상한 다과회처럼 렌과 보낼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것이다. 모자장수한테 시간이랑 사이 나빠지는 방법 물어봐야겠지!
"……. 렌 씨, 렌 씨는 내가 나빴으면 큰일났을 거야."
부끄러워도 얼굴을 묻어버릴 목도리가 없는 코로리는, 꾸욱 고개를 숙이며 붉힌 얼굴을 숨겨본다. 정말로 단내나는 말이니 뭐니 들었던게 렌 씨가 더 많이 하면서! 억울했다. 코로리는 자신이 인간에게 우호적일 수 밖에 없는 신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