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리를 매듭짓고 있던 코로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눈 뜨면 안 된다고 말했고, 렌이 그 말에 더 꼭 눈을 감는 걸 보았다. 그럼에도 설마하고 살짝 시선을 들어올리니까 눈이 꼭 마주쳤다. 피노키오라고 하고 싶어도 렌이 절대 눈을 뜨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거짓말을 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저 자신의 말을 안 들어줬다고 툴툴거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말했지이, 금방 따뜻해진다구! 여름 됐잖아ー. 겨울바람 무색하게 얼굴은 화끈거렸다! 교복 치마 언저리에 똑 떨어지는 가디건을 두 손으로 꾸욱 쥐고 부끄러워한다.
"렌 씨에 대한 책임은 얼마큼이어도 많이 무거워도 좋아."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서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혼인 의식도 전부 아직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렌이 자리에 쭈그려 앉으니 훅 내려다봐야했다. 코로리는 자신을 슬쩍 올려다보는 렌과 눈을 맞추고는 우물우물, 부끄러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미 몰래 뺨에 입 맞추려던 걸 들킨 직후라서 부끄러움은 한계치다. 만약, 정말 코로리가 욕심대로 해버렸다면, 나쁜 신님이잖아! 악어한테 잡아먹힐거야. 이내 렌이 금방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니까 이번에는 훅 올려다봐야 했다.
"셋 다 응이야, 응."
코로리는 렌의 연달아 쏟아지는 말들에 웃어버리고 만다. 코로리의 가디건과 색도 똑같고, 꽈배기 무늬를 넣은 것도 똑같은 목도리는 처음부터 그렇게 뜨여진 것이었다. 일부러 똑같게, 렌을 위해서 뜬 것이다. 하양이나 파랑, 하늘색을 쓰고 싶었지만 겨울에는 좀 더 포근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마냥 새하얗지는 않은 아이보리색을 사용했다.
"똑같이 가디건이나 니트 같은 거 떠주고 싶었는데, 렌 씨가 얼마나 큰지 몰라서ー"
끌어안았던, 안겼던 품을 떠올려서 대강 짐작으로 만들기에는 잘못해서 너무 크거나 너무 작아지면 어떡하나 싶다.
코로리의 투덜거리는 말에 렌은 작게 쿡쿡 웃을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감고 있으라고 말하지 않았는 걸. 게다가 그렇게 볼에 입맞추면 그게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떠버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에 대한 책임은 얼마든지 무거워도 좋다는 그 말에 렌은 기쁘기도 하고 만족스럽기도 했다. 렌은 여전히 확신이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믿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감정이라는 것은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나중에 코로리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게 되더라도, 그래서 그저 책임감으로라도 자신을 옆에 두었으면 하고 생각하게 되버린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면 코로리는 화를 내겠지만. 응, 아마 그럴 것이었다.
셋 다 맞다는 말에 렌은 기뻐서 눈을 곱게 접으며 웃는다. 마음 깊은 곳에서 따뜻함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추웠지만 마치 여름이 된 것 같았다. 렌이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이었다.
“정말 감사해요. 소중히 잘 쓸게요. 목도리로도 충분히 좋은데…. 손도 엄청 많이 갔을 것 같은데….”
니트나 가디건도 물론 받으면 좋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가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럽다. 게다가 심지어 엄청 잘 떴다. 정말 가게에서 파는 정도의 퀄리티라 대단하게 느껴졌다. 표정에 그렇게 변화가 크지는 않지만 코로리라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들뜬 낯이다. 선물을 받아서 기뻐하는 것이 보인다.
“코로리 씨, 뜨게질 엄청 잘하는 구나…. 나도 뭔가 보답하고 싶은데, 나한테 원하는 건 없어요?”
렌이 목에 매어진 목도리를 소중하게 만지작거리며 코로리에게 묻는다. 작은 손으로 꼬물꼬물 이 목도리를 떴을 거라고 생각하니 뭔가 너무 귀엽고 소중하지 않은가. 뭔가 해주고 싶은데 마땅히 지금 생각나는 게 없다.
감사하다고, 소중히 잘 쓰겠다는 목소리며 저는 알아볼 수 있는 기쁜 표정이 기꺼운데 손이 많이 갔는지가 떠오를 리가 없다. 그리고 실제로 목도리를 뜨는 동안에도 그런 생각은 하지 못 했다. 실타래가 풀리고 대바늘에 걸리고, 한 코가 뜨일 때 생각한 것은 렌이었다. 이런 색의 목도리를 하면 잘 어울릴까, 이걸 받으면 기뻐해줄 지 그래서 웃어줄 지 멋대로 상상해버리면 그런 기억만 남았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고민할 때는 선물을 받는 사람만 생각하듯이, 코로리도 목도리를 뜰 때 그랬던 것이다.
"렌 씨가 좋아해줄까만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정말 좋아해줘서 더 모르게 됐지이."
코로리는 렌이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고 웃었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원하는 거?"
답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원하는 게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게 없어서도 아니었다. 원하는 걸 말해도 되는지가 고민이었다. 코로리는 렌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더 욕심부려도 되나 싶었다. 늘 그래서, 닿는 것도 렌이 싫어할까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모른다. 뺨에 입 맞출 때도 눈 감아달라고 부탁하고 말았는데, 그러니까, 미움 받는 건 정말 싫은데 렌 씨한테 미움 받는 건 정말 정말 많이 싫으니까. 렌이 계속 저를 좋아하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은데, 코로리의 '계속' 은 너무 길었다. 끝이 없는 수준인데, 얼마나 과한 욕심인지. 그러다 목도리 말고도 렌을 만나고 싶어서 급식실 앞까지 와있었던 다른 이유가 하나 생각났다.
"나 렌 씨랑 눈 구경하고 싶어!"
첫 눈과 함께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댔으니까, 이미 좋아하구 있으면 조금 더 오래 더 많이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잖아.
자신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는 말에 렌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서 웃음을 지어버리고 만다. 코로리에게 물은 원하는 게 있는지 라는 물음에 코로리의 고민이 길어질 수록 렌은 더 궁금해진다. 코로리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고 싶은 기분이 되어버린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낯설고 신기하다.
그러다 눈구경이라는 말에 렌은 작게 웃음을 흘린다. 마침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럴까요? 그런데 눈이 이렇게 많이 내려서야 목도리가 젖어버릴 것 같은데….”
렌이 고민된다는 듯 말했다. 이미 머리나 옷이나 눈 때문에 드문드문 젖어있던터라 상관은 없지만 왠지 오늘 받은 목도리가 젖어버리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교실동에서 급식실로 이어지는 차양을 따라 걸으면 눈은 맞지 않겠지만 내리는 눈을 구경할 수는 있을 터였다. 남자애들끼리야 눈발 사이에서 눈도 던지고 옷 안에 눈덩이도 넣고 그런다지만 여자친구에게 하는 눈장난의 수위를 잠시 고민해본다. 코로리 씨 감기걸리면 어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