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몇 번이고 그녀의 집에 찾아갔었으나 그때마다 응답이 없었던 것은 운명의 장난인 것일까. 허나 이대로 계속 있을 수도 없었기에 그는 오늘은 작정하고 만나기로 마음 먹고 주말, 그것도 비번 날이 되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롤케이크 하나를 사들고 과거 주현이 살았던 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이 롤케이크를 제대로 전달해줄 수 있을런지. 아니면 또 집에 가져가서 혼자 천천히 먹는 생활을 해야할지. 이번에는 이 롤케이크가 제대로 그녀에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숨을 내뱉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전에 찾아냈던 주현의 집을 눈앞에 두며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역시 언제봐도 어릴 때의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내부는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문앞에 선 그는 침착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이번에는 과연 응답이 있을지. 아니면 없을지.
"...또 이걸 가져가면 곤란한데 말이야."
오늘은 좀 길게 대기할 생각이었으나 그렇다고 이곳에서 하루종일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능하면 오늘은 만날 수 있길 바라며 선우는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주현의 집은 도시의 낙후지역이라 불리는 외진곳의 작은 아파트, @@빌라에 위치해 있었다. 아직도 불안해보이는 아파트는 그럼에도 10년이상, 주현을 지탱하고 있었다. 어릴적에 그린 낙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주현의 집 벽은, 세월을 잊지 못하는 주현을 닮은 듯 그대로 있었다. 허나, 재개발대상 후보에 드는 것은 면치 못했다는듯 빌라 앞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알려주는 것은, 주현은 어떻게 생각할까.
주현의 집에 자물쇠는, 오래된 그 자물쇠 그대로인 듯하다. 주현이 집은 아빠의 허가로 놀이터이자 아지트로 활용되고 있었으므로, 주현의 집 비밀번호는 그 소꿉친구들 끼리에는 그저 공용의 비밀로 알려져 있었다. 주현의 생일인 8월 23일. 0823. 허술하다면 너무나도 허술한 비밀번호. 그것은, 지금도 이어져 있을까.
가만히 기다리며 그는 어릴 때 본 적이 있던 것 같은 낙서를 가만히 바라봤다. 자신은 그때 저 낙서를 같이 했던가. 아니면 하지 않았던가. 그 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역시 10년 전에 본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보지 않았고, 그 기간은 상당히 길었기에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던 것일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선우는 가만히 미간을 찌푸렸다.
비밀번호에 대해서는 선우는 당연히 까먹은 상태였다. 10년 전에 이곳을 떠났고 기억해야 할 것이 많았고 알아야 할 것이 많았다. 10년 전의 자물쇠 번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며, 설사 안다고 해도 어린아이도 아닌 이상 멋대로 비밀번호를 열고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선우는 그저 조용히 벽에 등을 기댔다.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언젠가는 오겠지. 그저 그렇게 기약없는 기다림을 보내며. 허나 10년이나 얼굴을 안 비춘 자신이 그것으로 불평을 할 순 없는 일이었다. 물론 핸드폰도 없었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했으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뭘 의도했는지는...알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10년 전의 비밀번호를 선우는 기억할 수 없었고..기억한다고 해도 들어가진 않을 것 같네. (흐릿)
뭐야?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아 근처 사람의 목소리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목소리가 나는 곳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배불뚝이 아저씨와 빨간머리의 누군가였다. 뭔진 모르겠지만 서로 티격태격하는 듯한 모습인 것은 확실해보였다. 아무래도 거리가 있었기에 누군지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 싶어 그는 가만히 모습을 바라보다 빠르게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갈고 했다.
"저기, 잠시만요! 스톱! 스톱!"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선우는 일단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다. 성공적으로 끼였으면 아마 두 팔을 벌려서 둘을 떨어뜨리려고 했을 것이고 일단 두 사람을 향해 다시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그러다가 확 싸울 수도 있으니까 일단 진정해주세요. 릴렉스. 릴렉스."
정확히 무슨 상황인진 모르겠지만, 이미 일이 터진 뒤에 뭔가를 하려고 하면 늦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아무 일도 터지지 않을 때 살며시 개입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우와. 어릴 때의 나라면 생각도 못한 행동이야. 이거. 그렇게 생각하며 선우는 일단 미소를 지으면서 스스로 뿌듯해했다. 이어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 지금 무슨 일이에요?"
/어. 아니야!! 캐조종만 아니면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니까! 단지 저 상황을 그대로 응해주긴 힘들다는 의미로 말한거야!
뭔가 지금 자신은 끼이면 안 될 자리에 끼인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단순히 아버지와 자식간의 말다툼적인 무언가인걸까.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살며시 눈앞의 이를 바라보니 뭔가 묘하게 낯이 익는 것이 이상한 느낌이었다. 뭔가 이런 느낌을 이전에도 받았던 것 같은데. 언제였더라. 그렇게 생각을 하며 선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한 가지를 떠올렸다. 은서를 만났을 때도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선우는 왜 이런 감정을 눈앞의 이에가 받는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 잠시 떠올렸다.
"...아니. 그건 괜찮은데. 그건 그렇고... 일단 제가 사람을 찾으려고 여기에 왔는데..."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비슷한 느낌의 사람일 뿐이고 전혀 다른 이면 서로 곤란해지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선우는 잠시 숨을 내쉬면서 다시 한 번 상대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조용히 눈을 깜빡이면서 가만히 눈앞의 이를 바라보던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현이라는 이를 만나러 왔는데... 그러니까 이주현이라고 하는데. 저 빌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혹시 아는 바 있으실까요? 몇 번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보이질 않아서."
일단 여기서 사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곳을 찾아야겠지만 그렇게 되면 보통 골치 아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은서와 서로 힘이라도 합쳐서 찾으러 가야하는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선우는 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만약 상대가 주현이라면? 그런 우연이 과연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나 살며시 기대감은 있었기에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대를 가만히 바라봤다.
눈빛이 살짝 변한 것을 선우는 놓치지 않았다. 그야 눈썰미 하나만큼은 정말 좋은 편이었으니까.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들을 사육하려면 정말 주의력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갑작스러운 돌발사태에 대비해야하는 순발력도 필요했으며, 동물을 돌보게 되니 나름 눈치도 빠른 편이었다. 그렇다면 저 눈앞의 존재가 왜 눈빛이 바뀌었냐. 그것에 대해서 선우는 나름대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알긴 안다고 하면서 도장으로 와달라고 하는 그 말에 그는 가만히 생각을 하다 선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조금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상대를 향해 이야기했다.
"도장 쪽이라면 일하는 중이니, 직장으로 함부로 막 찾아갈 순 없잖아요? 그보다... 도장을 하는 모양이네요. 그 애답다면 그 애답다고 해야할지."
이런저런 사정을 다 떠나서라도, 남의 직장에 함부로 불쑥 찾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법이었다. 이를테면 은서나 주현이 자신이 일하는 동물원 사무실에 불쑥 찾아온다면 그건 그거대로 상당히 난감하지 않겠는가. 물론 사파리 투어 쪽으로 온다면 얼마든지 지프차를 한 번은 태워줄 수 있었지만. 일단 그건 살며시 넘기기로 하며 선우는 눈앞의 이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혹 당신이 주현이라던가?"
살며시 물어보면서 그는 묶고 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손으로 정리했다. 한 번 툭 꼬집어보듯 이야기를 하며 그는 응답을 기다렸다.
뭐지? 왜 이렇게 경계심을 보이는거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선우는 두 눈을 가만히 깜빡였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던가. 아니, 그냥 단순히 사람을 만나러 온 건데 이렇게 경계를 받아야 할 일이던가. 물론 갑자기 자신을 찾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노려볼 일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며 선우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일단 침착하게 대처하기로 하며 선우는 상대를 바라보면서 숨을 약하게 내뱉었다.
"음. 10년 전에 이사를 갔던 선우..라고 기억해? 정선우..라고. 나거든. 아하하. 오랜만..이네. 몇 번 오긴 했는데 그때마다 없어서."
일단 그는 자신의 소개를 하기로 했다. 물론 상대가 자신을 기억할진 모르겠지만, 기억이 안 난다면 그건 그것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손에 쥐고 있던 롤케이크 박스를 상대에게 내밀면서 그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맨 손으로 오기도 뭐해서, 일단 선물을 가지고 오긴 했는데... 아하하. 그러니까 경계..풀어주면 안될까?"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알 수 없었다. 보아하니 상대는 자신을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것 같고, 일단 자신은 이미지가 확 변했으니까. 물론 눈앞의 주현은 어릴 때의 이미지가 좀 강하게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색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처럼 정말 태연하게 대하는 것은 역시 불가능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어떻게 보면 은서보다 좀 더 어색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며 선우는 일단 침을 삼켰다.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주현. 그치만 그 선우형이라고? 솔직히,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으니까???
"나, 혹시 또 뭔 이상한 사람인가 하고 놀라서- 에... 잠시만, 이런거는 예상에 없었는데... 언제 왔었어? 왜 못 들은거지? 나, 요즘들어 도장에서 숙식하고 지내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으아, 이럴게 아니지. 덥지? 일단 도장쪽으로 가자! 그쪽은 에어컨 빵빵하게 해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