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이 쓰다. 당신의 입으로 들어버린 사실 때문이다. 에만은 이 장소가 조금 추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다시금 발가락 끝부터 천천히 냉기가 올라와 온몸을 꽁꽁 얼려버릴 것만 같았다. 그 아이는 똑똑해서 다 알 거야. 어디까지 아는지 당신은 알기나 할까? 가장 밝은 곳일수록 그림자는 더 어둡고 무시무시할 텐데. 안경 너머로 새하얀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잘 알고 있어요."
상대하는 일을 넘어서 그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시무시하게 화를 낼까? 놀라 펄쩍 뛰며 말릴까? 아니면 이 정성이 갸륵하다며 좋아할까? 혹은 크게 슬퍼할까? 어느 쪽이라도 에만은 이 위험한 줄타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하는 거예요."
멈출 이유도 없다. 여기서 멈추게 된다면 미카엘은 당신의 목줄을 끊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걸로 끝날까, 떨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하는 무너질 명분이 생길 것이다. 발을 담근 이상, 결국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미카엘은, 에만은 서류를 잘게 찢었다. 정부와 에누마 사에 도전하겠노라 당신에게 명확히 고하면서도, 정면으로 대적하겠노라 이야기 하는 것은 철회했다. 미카엘의 머리는 그렇게 좋지 못하지만, 당신을 위해서 얕은 수라도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숨는 걸 아주 잘 하니 존재를 드러낼 이유도 없어요."
다른 조직에 뒤집어 씌우고, 혹은 없던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고. 하물며 있던 것을 없애는 것이 부엉이의 다른 일이었다. 당신의 경고에 에만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몇 차례고 도시에 침투한 존재들. 하나하나 괴물 같은 존재들. 그것이 핵심 패가 아니라 일부라고 해도, 이미 불을 본 불나방은 두려워서 그만두기보다는 오기가 들었다. 그 불 안에 있는 낙원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이다. 미카엘은 당신을 위해 부엉이의 자리를 걸고 그 권위에 도전하겠노라 생각했다.
"그런 걸 고려하지 않는다면 부엉이가 아니에요. 날 대체 무엇으로 보는 건가요?"
지하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 존재, 치안을 꺾어버린 주범, 꺼림칙해도 서로의 이득을 위해 양립하는 에누마 사의 골칫덩이, 마스터마인드……. 에만을 칭하는 말은 아주 많았다. "내가 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하냔 말이에요." 오로지 에만이기에 할 수 있는 일. 심상찮은 변화를 일으킬 검은 손. "그래도 내가 하지 않은 일로 만들 수 있어요. 당분간은.. 그게 의뢰인이 바라는 거니까요." 당신의 말대로 지금은 숨을 것이다. 언젠가 드러나야 할 순간엔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순순히 죽여주십시오 하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Ms. 몬테까를로."
하지만 당신은? 에만은 심호흡을 했다. 장갑 너머의 감촉이 단단하다. 그리고 따뜻했다. 이렇게나 따뜻한 당신은? 당신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그걸 알면서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을 하게 된다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내뱉으면 속의 무언가가 톡 터져서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침묵은 길었다. 한참의 심호흡 동안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당신이 괜찮다고 장담하는 그 모습에서, 부모님의 모습이 비친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역경과 고난도 다 막아낼 것 같았던, 당신만큼이나 강력했던 사람.
"당신이 말했듯이 당신은 괴물과도 같은 인간이라도.. 나와 당신의 소중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한낱 인간이에요."
당신이 괴물이라고 한들 미카엘은 인간이라며 확실하게 결론을 지어버린다. 쓰라린 기색이 없잖아 있는 웃음에 에만의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잠깐 고개를 들어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감정을 잘 갈무리하는 역할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윈터나 앨리스였으면 지금쯤 펑펑 우느라 아무런 진척도 없었을 것이다. "한낱 인간은 종이에 베여도 놀라고 아파해요." 고개를 다시금 내려 당신을 마주 본다.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어도, 어떤 사람인지 알아도. 당신 또한 인간이니 내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 것이라 믿어요."
부디 별 탈 없는 날이 되었으면. 지극히 바빌론 시티의 사람다운 바람이었다.
"…계약 이야기는 여기까지 할까요. 지금부터 당신의 요구에 따라 계획을 바꾸려면 나도 시간이 필요할 테니."
"네 존재를 직접 드러내리라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지만, 이 체스말을 네가 옮겼구나 하고 그들이 알아채면 안 되니까." 바보같은 말이다. 어떻게든 알아낼 수밖에 없을 텐데. 매 분기마다 보름에 바빌론 시티로 투입되는 정부 요원들의 존재라는 정보는 그 자체로도 바빌론 시티의 그늘 속 세계를 크게 뒤흔들 만한 특급 정보다. 그런 게 일부나마 유출되었다면 그들은 가장 먼저 당신과의 연관점을 검토해볼 것이다. 물론 당신은 능숙한 이이기에 그들은 어떤 물증도 발견하지 못할 테지만, 어떤 식으로든 의심은 남게 되리라. 전쟁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본격적인 시작은 조금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벌어질 전쟁 말이다.
그러나, 페로사의 마음은 무거웠다.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이보다 더, 어쩌면 당신의 뒤로까지 미룰 수 있었던 전쟁의 도화선을 자신이 당신에게까지 당겨와버린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당신이 그저 당신이었다면,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미카엘이 물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인물이었다고 한다면 지극히 이기적인 그녀의 마음은 별로 동하지 않았을 테지만, 당신은 너이기도 했기에. 아아, 차라리 너를 납치해서 아무도 모를 곳으로 도망쳐버릴 수만 있다면─
그러나 지금은 공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사이에 안경과 토끼가면이 놓여 있다. 그래서 많은 것이 가려졌다. 시야는 좁아졌고, 페로사는 가면의 눈구멍 안에 담긴 너를 당신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너를 당신으로 너무 많이 보아버리는 실책을 범했다. 너에게나 당신에게나 지금 필요한 건 사업 파트너로서의 능력을 피로하며 허장성세를 부리는 게 아닐 텐데. "그래. 내가 했어야만 했던 말은 이게 아닌데." 페로사는 가면을 고쳐썼다. 조금 비뚤어진 가면이 바로잡혔다. 가면을 쓰기 전보다 좁아진 시야나마 네가 조금 더 잘 보였다. "내가 얼마나 괴물인지 따위는 신경쓰지 마." 그녀는 나직이 말을 이어갔다. "...물론, 조심할게. 내가 태어난 이래로 가장 신중하게 움직일 테니까. 나도 죽여주세요- 하거나 같이 죽자- 하는 바보 따윈 절대 아니라고." 그녀에게는 그렇게 말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페로사 TMI 주세요! 우리 페로사... 신 것은 잘 먹나요? 페로사: 레몬 들어간 칵테일도 좋아하고, 시트러스 계열 과일들도 꽤 좋아하지! 페로사: 그렇지만 역시 생레몬은 고역이더라고. 아침에 강한가요 약한가요? 페로사: 어... 어젯밤에 뭘 했느냐에 따라 다른데, 그건. 페로사: 글쎄 얼마 전까진 내가 아침에 꽤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야... (공연히 키드득 웃으며 시선을 피함) 일기는 쓰나요? 오늘의 일기 한번 써 주세요! 페로사: (킬보드 한구석의 미네르바의 부엉이라고 붙어있는 메모지 아래에 메모 한 장을 더 가져간다.) ...접선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컨퍼런스'는 속도보다는 신중함에 주안점을 두고 진행해야 할 듯... (메모지를 가져가다 말고, 다른 손으로 담배 한 대를 빼어물고는 라이터를 꺼내어든다. 메모지에 불을 붙여버리고, 그 불로 담배 끄트머리에 불을 붙인다. 메모지가 꼭지만 남기고 다 타들어갈 때쯤 손가락을 탁 털어 메모지를 던져버린다. 땅에 떨어지기 전에 다 타서 재가 되어버린 메모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킬보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페로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창백한 연기 한 줌을 그리는 페로사.)
영화 취향 알려주세요! > 영화.. 취향? 디즈니 느낌 낭낭한 로코를 선호하는데, 가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밑도 끝도 없는 영화를 보기도 해.. 인터스텔라나.. 다큐 영화나.. 그런 정신 좀 놓고 봐야 할 것 같은 것들.. 전기 영화도 좋아하는데 그 경우에는 인물의 서사 보다는 음악적인 면을 좋아해서, 뮤지션 계열의 전기 영화를 주로 보곤 하지..?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씻을 때 물의 온도는 어느 정도를 선호하나요? > 뜨거운 건 싫고 차가운 것도 싫어서, 몸에 닿으면 좀 따뜻한듯 밍밍하니 미지근한 느낌을 선호해. 손잡이가 정확히 중앙은 아니고, 조금 찬물쪽으로 비틀려있어.
뭔가 수집하는 것은 있나요? > 음... 디즈니 굿즈..? 그것도 막 피규어! 인형! 그런 것보다는 캔뱃지, 스티커 같은..🤔 말 나온 김에 김에만씨 쓸모 없는 것 같은데 의외로 놔두면 귀여운 장식품 수집도 좋아해. 곰젤리 모양 비누나 물방울 모양 가짜 보석 그런 거..
좋아.. 수면시간을 조졌지만 인사할 시간은 생겼어..(?) 그런고로 어제 하루도 우리 앵로주 고생 많았다는 거야!!!!! >;3 늘 예쁜 답레 이어줘서 정말 고마워.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주말까지 서로 힘내자! >;3 오늘 하루도 힘내고 더위 먹지 않는 하루 되길 바라!! 좋은 꿈 꾸기!🥰🥰🥰🥰
응? 괜찮아, 괜찮아! •0• 간섭이라니~ 간섭이라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구 그런 말 해주는 것도 애정이 있어서 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구? 0.<(부둥부둥) 일찍 잠들려고 노력은 해볼 생각이야, 주말이기도 하고.. 어제 잠 못든게 밤새 어디서 취객끼리 싸우는 소리 때문에... 차라리 미리 할 일 하면서 밤 새운 거라서....
어떻게든 드러날 일이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있듯,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 아마 어떤 수를 써서라도 알아낼 가능성이 높다. 에만의 시선이 아닌 미카엘의 시선으로 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에만은 그런 것에서 주눅 들거나 겁먹지 않았다. 언젠가는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었다. 여러 방면으로 숨어 다니며 남에게 덮어씌우는 식으로 유예기간이 주어졌을 뿐, 겁을 먹고 도망칠 나이는 한참 지났다. 그저 자신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 활동할 시기가 조금 일찍 당겨졌을 뿐이라 생각했고, 안드라스에게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원한을 생각도 못 한 방향으로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당신 때문이 아닌 당신 덕분이었다.
"Ms. 몬테까를로, 지하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뭐라고 생각해요?"
미카엘은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조그마한 질문을 건넨 뒤, 안경을 고쳐 썼다. 고개를 허공으로 들고 내렸을 때 흔들렸기 때문이다. 잠깐 흔들렸던 목소리는 다시금 느긋하게 돌아왔다. "명분이 모든 것을 정한다." 자문자답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의 깨달음이었다. 명분이 모든 것을 정했다. 그것이 거짓일지언정 이 도시에서 자신의 이득이 되면 행하는 것이 살아남고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길이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던 이유도, 본인이 가진 기이한 정보력뿐만이 아닌 명분의 흐름을 짚어내 잡아채는 능력도 있지 않은가.
"나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 능력을 나도 알고 있으니 당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갈 테니까."
앞서 말한 명분. 그 명분을 잡아채 타인에게 덧씌우고, 죄를 대신 몰아주며, 아득바득 살아남을 수 있다. 오늘 계획도 남에게 덧씌우면 에누마 사의 시선에서 도망칠 수 있고,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비호하는 조직이 무너졌으니 다음 계획에서 날뛸 수 있는 훌륭한 명분이 된다. 이것이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당신이 바라는 대로 행할 것이며, 당신이 괴물인지 아닌지도 절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당신은 미카엘의 품에 있는 이상 인간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며, 에만의 품에서는 가장 든든한 비즈니스 동료다. 에만은 당신이 조심하겠다 거듭 약속했을 적, 당신의 시야가 돌아왔음을 알기나 하는지 혹은 모르는 척하는지. 무엇보다 말갛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아요. 그럼 면담은 여기까지 할게요."
혹시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에만은 허리를 숙이며 당신에게 고개를 디밀더니 생글생글 웃는 낯을 유지했다.
3.3.. 밖에서 엄청나게 크게 쿵 소리가 났어.. 놀라서 자다 깨버렸다.. 쿵 2ㅣㄴ짜 컸는데 창밖이 시끄럽지 않은 걸 보니까 뭐 큰일은 아닌 것 같고 소파... 허리 아파... 오늘은 주말이야.. 초복이라니까 몸보신 하길 ㅏㅂ라구 한주의 피로 싹 풀길 바라.... 다시 자야지... 잘자 예쁜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