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세이와 함께 하는 순간이 꿈 같다 하니, 어쩌면 코로리가 꾸게 해주는 행복한 꿈일지도 모른다고 말해온다. 아, 정말 그럴지도. 아닐 걸 알지만 농담 삼아 그런가봐요 라고 말하며 걷는데, 몇걸음 더 가다가 돌연 코세이가 멈춰선다.
"왜 ㄱ..."
자연히 따라서 멈춰선 요조라는 코세이가 부르는 것보다 반박자 먼저 고개를 돌린다. 갑자기 멈췄으니까, 왜 그래요, 하고 물어볼려고 했는데, 입술에 닿는 감촉 때문에 말을 다 못 했다. 말 대신 순간 벙찐 눈이 두어번 깜빡거린다. 뭐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혼이 살짝 빠져나가던 요조라의 귓가에 코세이의 속삭임이 들리자 갑자기 정신이 확 든다. 동시에 창백한 분장 너머로도 보일 만큼 얼굴이 붉어지고, 코세이의 팔을 쥔 손에 힘이 꼬옥 들어간다. 꼭 잡고 약간 풀었다가 다시 힘주어 잡는다. 마치 손이 간질거려 참기 어려운 것처럼, 그러면서 코세이를 그저 바라만 본다. 진심 어린 표정으로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해주는 코세이를 응시하다가, 고개 숙여 코세이의 어깨에 이마를 툭 대며 중얼거린다.
"해주는게 없긴요. 그렇게 말해주는 것도, 너무 과분한데..."
자신은 가늠조차 못 할, 아득하게 보내온 시간들을 고작 자신이 옆에 있는 걸로 보답 받는다고 해주면, 요조라에겐 그 이상으로 기쁘게 들릴 말은 없었다. 무수한 시간들보다 요조라와 함께 하는 지금이 더 가치 있다고 해주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런 코세이가 같이 걷고 싶다 말하는데 요조라가 싫다 할 리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다시 앞을 보며 천천히 걸어갔을 것이다.
가는 길에도 여러가지 노점이 있어서 한번씩은 눈길을 끌었다. 군데군데 특이한 분장을 한 노점 주인들도 이목을 끌었지만, 요조라의 시선을 잡은 건 주로 음식 쪽이어서, 한두군데쯤 걸음이 멈칫하거나 하나쯤 더 샀을 듯 싶다. 제철 밤이 듬뿍 들어간 몽블랑을 할로윈 분위기로 꾸민 거라던가. 이미 당고에 타르트가 있는데도 먹을 걸 고르는 걸 보면, 보기와 다르게 참 잘 먹는구나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웃거리고 노닥거리며 걷다보면 어느새 거리 끝에 다다르고, 노점들도 드물어지는 그 즈음에 호시즈키 노점이 있었다.
요조라가 노점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노점에서 누군가 성큼 걸어나오며 반긴다. 요조라와 맞춘 듯이 창백한 분장과 뾰족한 송곳니, 검은 손톱 등등으로 뱀파이어 분장을 한 마히루였다. 큰 키에 어울리는 고딕풍 정장 차림의 마히루는 과장스레 말한 것에 비해 깔끔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카페 호시즈키에 어서와요. 오늘을 위한, 오늘만 선보이는 디저트들이 여럿 있으니, 사양 말고 느긋히 있다 가요. 유령 군?"
마히루가 요조라에게 그런 인사를 할 리 없었으니, 당연히 인사의 대상은 코세이였다. 요조라와 닮았지만 좀 더 장난기가 담긴 미소를 지은 마히루가 노점 쪽으로 안내하듯 움직인다. 마히루의 그런 행동을 으휴, 하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던 요조라가 코세이의 팔을 잡아 이끈다.
"얼른 가서 구경하고, 우리 사온 거 먹어요. 자자, 얼른요."
호시즈키 노점의 테이블은 노점을 지나간 뒤에 있었으니, 바로 테이블로 간다 하더라도 지나가며 한번쯤 슥 보게 되는 구조다. 제일 먼저 보이는 건 가게에서 쓰던 낮은 유리 진열장과 그 안에 가지런히 늘어놓은 디저트들이다. 해골과 박쥐, 유령 등등 무난하게 아이싱 그림을 그린 쿠키와 초콜릿 데코를 한 도넛들이 있는가 하면, 쉽게 보기 힘든 무언가가 그 옆에 있다. 마치 과학실에서나 볼 법한 원통형 케이스에 들어있는 새빨간 심장, 다양한 자세를 취한 손, 각양각색의 눈알들이다...? 저것이 과연 먹는게 맞는가, 맞는건가 싶을 만큼 리얼하게 생긴 것들이 진열장 안에 늘어서 있었을 것이다.
오~ 네코미미~ 아마 까만색으로 주려나? 무난한 코디템이면 고맙다고 하고 바로 쓰거나 하겠지만~ 진짜 복실복실한 고양이귀면 입 삐죽 내밀고 투덜댈지도~ 저 고양이 아니라니까... '3') 그러면서 예쁘게 딱 쓴 다음에 어울리냐고 물어보고~ 말끝에 냥 정도는 붙여줄거같기도 해~ ㅋㅋ
가벼운 입맞춤이라고 생각했는데 입술이라서 그런건지 한순간 고장난 요조라가 보였다. 아까는 귀만 빨갛던데 지금은 얼굴 전체가 빨갛게 달아오른게 보였다. 반쯤 이런 반응을 노리는거지만 그 반응이 너무 좋아서 볼때마다 즐겁다. 그리고 동시에 행복하기도 해서 나는 어깨에 이마를 톡하고 대는 요조라를 미소와 함께 바라보았다. 다른쪽 손이 비어있었다면 쓰다듬었을텐데 손이 비어있지 않은게 아쉽다. 전혀 과분하지 않다고 속삭여주면서 다시 앞을 바라본 요조라와 함께 호시즈키 노점으로 향했다.
노점으로 향하면서 요조라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전부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하나 정도는 더 사도 괜찮겠다싶어 요조라가 고른 몽블랑도 하나 더 구입한다. 그렇게 호시즈키 노점에 도착하자 할로윈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 배려 감사합니다. "
요조라의 오빠인 마히루였다. 요조라와 비슷하게 뱀파이어 컨셉을 잡은건지 뾰족한 송곳니가 인상적이다. 이야기는 몇번 안나누어봤지만 요조라와 비슷한 생김새에 더 활기차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유령군이라고 부르는건 요조라에게 그렇게 들었기 때문이겠지. 어쨌든 감사를 표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정말 할로윈에 걸맞는 각종 디저트들이 가득했다. 이런거에 잘 놀라는 성격은 아니지만 거의 실물과 비슷하게 생긴건 놀랄만했다.
" 되게 비슷하네요. "
맛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호시즈키당의 과자니까 분명 맛이 있겠지. 하지만 저것들을 먹기보단 일단 사온 것들을 먼저 먹어야했다. 적당한 위치의 테이블에 앉아서 사온 것들을 늘어놓은 나는 먹으라고 권하면서 당고 꼬치 하나를 집어서 한 알을 쏙 빼먹었다.
회장님이 제일 먼저 잡아먹힐 거야! 수프가 펄펄 끓는 검은 솥에 풍덩 빠져도 모른다구! 코로리는 이 용모양 팬케이크를 절대 못 건드릴 것 같았다. 동굴에서도 그 기운에 도도도 도망나오듯 빠져나와버렸었는데, 그곳의 샘에서 물을 가져와 사용했다니! 학생회장은 학교의 이사장과 만날 수 잇는 위치인가 아닌가 고민했다. 코로리는 만약에 자신이 이사장님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자신의 학교에서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학생이 자신을 팬케이크로 만들어 판다면, 열심히 도와줬는데 왜 잡아먹어! 같은 느낌으로 허망하여 신계로 돌아가버릴 것 같았다.
"싫어하는게 아니라ー 양 백 마리랑 늑대 백 마리를 업고 있는 기분이야."
무겁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합쳐서 총 200 마리를 어깨에 이고 있으니 엄청 무거울 테고, 와중에 늑대가 양을 잡아먹을까 봐 불안한 느낌이 지금 팬케이크를 눈 앞에 둔 기분이었다. 코로리는 팬케이크를 보다가 한 입 먹으려고 손을 움직이나 싶었는데, 절대 팬케이크는 건들지도 않고 오렌지 주스만 먹었다. 오렌지만 갈아넣어진 순수한 생과일 주스는 오렌지 본연의 새콤달콤한 맛과 향에 싱그러운 향이 난다. 세트로 사서 800엔, 팬케이크만 샀더라면 600엔. 코로리는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서 속으로 600엔 씨, 안녕. 작별 인사를 했다.
"그래도 용님, 착하시니까 회장님 안 잡아먹을 지도 몰라."
가미즈미에 내려오는 신들도 지원해주고, 이곳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도 그렇고 나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조금 무섭지만! 고양이 만난 생쥐가 된 거 같지만! 그래도 오렌지 주스는 잘 먹고 있다!
호시즈키의 노점은 유독 다른 곳보다 규모가 컸는데, 이는 디저트를 내놓은 것 뿐만 아니라 커피 드립기와 미리 준비한 음료의 매대도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카페라고 한게 아닌가보다. 전면에 마히루가 주로 있으면서 주문이 들어오면 대기 중이던 그의 지인들이 움직여 주문받은 것을 준비한다. 지인들 역시 가지각색의 분장을 했고, 컨셉 확실히 잡은 덕분에 커피도 제법 나가는지, 요조라와 코세이가 앉은 자리까지도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내음이 진하게 흐른다. 커피와 별개로 핏빛의 어떤 음료도 팔리고 있었는데, 그것의 향인지 커피향 사이로 상큼한 과일향이 드문드문 섞여들고 있었다.
진열장을 지나가며 코세이의 반응을 보던 요조라는 생각보다 담담한 반응에 흐음, 하듯 입술을 달싹였다. 역시 신님이라 그런걸까. 대부분의 손님들은 호들갑을 떨거나 신기해하거나 조금은 꺼림칙해 하는 둥, 여러 반응을 보였는데 말이다. 어쩌면 개인차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코세이와 함께 테이블 하나를 잡고 앉는다. 좀전의 간이 테이블과 달리, 카페 테라스에 있을 법한 제대로 된 철제 테이블과 의자다. 그 위에 사온 것들을 늘어놓자 요조라는 잠깐 일어나 뭔가를 가지고 돌아온다. 일회용 나이프와 포크, 종이냅킨 등을 가져와 쓰기 편하게 놓고 요조라도 먹을 것에 손을 뻗었다.
"코세이도, 맛있게 먹어요."
단호박 타르트를 나이프로 반 잘라 한쪽을 든 요조라가 싱긋 웃는 얼굴로 말하고, 자신도 타르트를 크게 한입 먹는다. 위에 단호박 크림이 봉긋이 올라가 있었으니, 와앙 하고 제법 먹성 좋아 보이게 한입 했겠지. 미처 입에 넣지 못 해 입가에 크림이 묻지만 혀가 날름 핥는다. 부드러운 크림과 바삭한 타르트지, 절묘하게 섞인 단호박의 맛은 요조라의 얼굴에 행복감이 퍼지게 하기 충분했다.
"이거 맛있다... 크림 안에 밤도 들어서, 씹히는 맛도 좋구, 마츠리 한정인게 아쉽네요..."
타르트의 맛을 조잘거리며 먹다보니 크리 작지 않던 반쪽짜리 타르트가 사라지는 건 금방이다. 식사 속도는 보통이지만, 디저트를 먹는 속도는 그보다 조금 더 빠른 느낌일까. 곧장 당고 꼬치를 집어들던 요조라, 갓 내린 커피향이 코끝을 스치자 앗, 하듯 코세이를 바라본다.
"커피, 마실래요? 이것만 먹으면, 좀 달지 않을까 해서."
커피가 별로라면 다른 것도 있는데, 라면서 요조라가 보는 건 커다란 음료 카트리지에 담긴 붉은색 음료수다. 그쪽을 한번 보고, 다시 코세이를 보며 마실래요? 하고 묻듯 고개를 갸웃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