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비가 막 들어온 날이었다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전부.' 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키라가 능청맞게 늘 먹던 것으로 준비하겠다고 했다면 꺄르륵 웃어버렸을테지만, 그럭저럭 장난스런 주문을 받아주었으니 만족했다! 팬케이크 같은 디저트류에 편식하는 것은 딱히 없었으니까 팬케이크에 당근 시럽을 뿌리고 토핑으로 호박과 피망을 올리진 않잖아! 어떤 팬케이크가 나와도 상관없었다. 아키라가 고개 끄덕이는 걸 보고나서, 옆에 있는 믹서기 너머로 보이는 과일들을 본다. 생과일 주스도 있다고 했는데 어떤 과일이 있나 보는 중이었다.
"응ー 근데 조심해, 마녀님의 사탕은 남들보다 이가 더 빨리 썩어?"
코로리가 충치의 신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다! 잠의 신으로서 갖고 있는 힘도 일절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사탕일 뿐이다. 그거 아키라가 장단을 맞춰주니, 짓궂은 장난을 치면서 개구지게 웃는 것 뿐이었다.
"마녀님은 이름이 없대, 그냥 마녀님이야!"
잠의 신 대신 잠의 마녀, 신으로서의 이름이 없으니 마녀로서의 이름도 없다. 코로리는 아키라가 가르킨 테이블로 다가가서 얌전히 폭 앉았다. 쓰고 있던 마녀 모자에는 리본으로 묶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 리본을 푸르고서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내려둔다. 테이블 위에는 손목에 걸고 있던 호박 바구니가 놓였다.
"나 오렌지! 딸기랑 복숭아도 좋아해ー 레몬은 내가 졌구, 사과랑 포도도 좋아해!"
좋아하는 과일 음료수를 물어보길래, 이번에는 순순히 어느 과일이 좋다고 답하나 싶더니만 결국은 또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코로리는 방글방글 웃으면서 아키라에게 선택을 넘기고 말았다. 그치만 스타후르츠 같은 건 없을 거잖아! 스타후르츠를 먹어본 적도 없다.
"마녀님은 인간들의 음식 좋아한대!"
마녀에서 신으로 바꾸어도 뜻이 맞았다. 코로리는 인간계의 음식을 좋아했고, 음료를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 정도로 달콤한 것이라면 다른 이들과 나눠서 먹어야겠네요. 제가 아는 동생이라던가, 학생회 사람들이라던가."
나중에 렌을 만나면 코로리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에게 이 사탕을 줬다고 장난스럽게 말해볼까 라고 아주 잠깐 생각하긴 했지만 그는 이내 그만두기로 했다. 물론 자신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나중에 고자질한 것처럼 되어버리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 것도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사탕은 나중에 단 것이 끌릴 때마다 하나씩 꺼내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었다.
"그럼 그냥 손님이라고 부를게요. 마녀건 뭐건 가게 앞에서는 다 손님이니까요. 그리고 음료수는 오렌지로 할게요."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것인만큼 가장 좋아하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우선 팬케이크를 굽는데 집중했다. 평범한 팬케이크라면 둥글둥글한 느낌이겠지만 그가 이번에 구운 팬케이크는 둥근 느낌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에는 둥글게 굽긴 했지만 틀을 이용해서 이내 반죽을 어느 정도 걷어내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내 접시 위에 담겨있는 것은 용 모양의 팬케이크였다. 적당한 크기로 잘 구워낸 팬케이크 위에 버터를 올리고 그 위에 생크림을 살짝 바른 후, 취향 여부에 따라 추가로 뿌릴 수 있는 허니 시럽을 함께 동봉한 후, 그는 오렌지를 믹서기에 갈았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섞지 않고 얼음을 동동 띄운 생 오렌지 주스를 잔에 따라냈고 카운터 밖으로 나온 후, 코로리의 자리에 가져간 후에 내려놓았다.
"주문한 신비의 팬케이크와 오렌지 주스입니다. 손님."
아마 코로리는 팬케이크에서 아주 잔잔하게 느껴지는 신의 기운을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이전 성스러운 샘으로 갔을 때 느낀 기운과 비슷했었을 것이다. 그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노점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은 모두 그 동굴에서 직접 떠온 샘물이었으니까.
"정말로 신선한 재료만 사용했으니까 맛은 있을 거예요. 일단 맛없다는 분들은 보지 못하기도 했고."
덧붙여서 정말로 굳이 말을 하자면 코세이가 요조라 관심 끌려고 사쿠라마츠리 때였나? 그때 즉석에서 유성우 쇼를 만든 것도 원래는 어떻게 보면 진짜 제대로 아웃이에요. 말 그대로 신의 힘이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고 다른 유명한 과학자들도 다 예측하지 못했던 것을 '코세이'만이 알고서 그걸 요조라에게 알려줬다는 거니까요. 사실 가급적 신의 힘은 정말로 단 둘이 있는 것이 아닐 때, 그것도 커다란 범위로 사용하는 것은 대체로 안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뭐 예외는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이 안 끌리는 정도의 힘...이라고 해도 저것만으로는 판단이 힘들다는 것이 캡틴의 생각이에요.
이런! 코로리는 아키라가 말한 아는 동생이 렌일 거라고 차마 생각하지 못 했다. 후배라고 말했더라면 설마 렌을 이야기하는 거느냐고 물어보기라도 했을텐데, 동생이라고 하니 정말 조그맣고 작은 어린 인간을 상상해서 그러지 않았다. 아무튼, 나눠 먹겠다고 상냥한 말을 하는 아키라에 왜 저는 못 살게 굴었느냐는 생각을 하며 코로리는 조금 풀이 죽었다. 어쩐지 마녀 모자에 장식으로 달린 모란 꽃도 시든 것 같고, 모자도 푹 꺽여 기운 없어 보인다. 개미가 아니니까 5개는 작아! 그럼에도 나눠먹기에는 사탕 5개가 적어보여 다시 호박 바구니를 열었다. 초콜릿이나 젤리도 주는게 좋을까 고민한다.
"응! 오렌지 좋아~."
오렌지가 제일 맛있다거나 해서 정해진 기호는 아니었다. 세이가 레몬을 좋아하니까, 난 레몬 친구 좋아해! 주황빛 색도 좋았다! 쌍둥이의 눈은 빨갛다가 노랗게 물드는데, 물드는 부분은 엷게 주황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리는 얌전히 앉아서 회장님, 축제 때 메이드였다더니 요리하는 메이드였나 봐! '오이시쿠나레' 해달라구 하면 해주려나! 아키라가 팬케이크 만드는 걸 구경했다. 그런데 구경하면서, 팬케이크가 만들어가질 때마다 코로리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와아, 용이다아…."
버터와 생크림이 올라간 팬케이크라는 점, 은은하게 느껴지는 그 동굴 속 샘에서 느껴지던 기운이 문제였다! 웃고 있는데 어째선지 달갑지 않아보인다. 코로리는 입술을 꾹 물었다. 회장님 진짜루 나만 괴롭히는 거지이! 코로리 눈에는 이사장님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 강력하던 기운의 주인되는 고위신!
기껏 팬케이크를 맛있게 신경써서 구워서 가져왔더니 코로리의 표정이 썩 좋지 못하자 아키라는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웃는 것이 웃는 것이 아니었고 영 내키지 않아하는 것 같았기에 그는 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이 코로리를 빤히 바라봤다. 그 와중에 전부 용을 잘라서 먹었다는 말, 그것도 용님이라는 하는 그 말에 아키라는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애초에 이건 용님이 아니라 그냥 용 모양의 팬케이크일 뿐인데요."
뭐지? 용 알레르기라도 있나?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애초에 용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알레르기는 말이 안된다고 아키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면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아키라는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한숨을 약하게 내쉰 후, 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확실히 동그란 팬케이크는 아니지만, 이래보여도 이 용 모양은 나름 의미가 있어요. 호타루마츠리때 개방했던 그 성스러운 샘을 제공했다고 전해지는 바로 그 신이라고요. 물론 실제로 이렇게 생겼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용의 형태라는 말도 있고. 아무튼 그것을 기념해서 이 가미즈미에서만 먹을 수 있는, 그것도 그 가미즈미의 샘의 물을 이용해서 반죽을 만든 신비의 팬케이크라고요."
물론 코로리가 보는 관점은 전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아키라로서는 대체 왜 저런 태도를 취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그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자연스럽게 다음 데이트 약속이 잡혔다. 요조라와 함께 가는 전시회는 두번째가 되겠지만 첫번째와 두번째는 많이 다를테니까 더욱 기대를 하게 된다. 요조라가 어떤 그림을 그렸을지도 기대가 되고. 당고와 타르트를 주문하고서 계산을 하려고하니 요조라가 재빠르게 돈을 꺼내서 건네어준다. 노점 주인들도 재밌다는듯이 웃으며 돈을 받았고 요조라의 표정도 의기양양하다. 이런거 보면 진짜 고양이 같다고 생각하는게 한두번이 아니다.
" 감사합니다. "
주문한 간식들을 받아들고서 호시즈키 노점으로 향한다. 한쪽 팔은 요조라가 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한쪽 손에 당고와 타르트를 들고서 걸어가는데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중간에서 끝으로 접어들고 있어서 그런가 낮은 많이 짧아졌고, 하늘은 슬슬 주홍빛이 번져오기 시작하고 주홍빛은 다시 붉은 빛으로 바뀌어간다. 밤이 오기 전의 노을색은 우리 남매의 눈 색과 같기에 지금 내 눈은 마치 하늘을 담고 있는 느낌이지 않을까.
" 어쩌면 리리가 요조라에게 꾸게 해주는 행복한 꿈일지도 모르죠. "
내 동생은 잠의 신이라 행복한 꿈을 꾸게 해줄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웃으면서 요조라의 말에 대답한 나는 잠깐 뜸을 들였다가 잠깐 가던 길을 멈춰선다. 그리고선 요조라의 이름을 부르고, 그녀가 내 쪽을 돌아본다면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줄 것이었다. 아니라면 볼에 해줬겠지. 어쨌든 짧은 입맞춤이 끝나고 귓가에 작게 속삭인다.
" 하지만 꿈이 아니라 행복한 현실이에요, 요조라. "
진심으로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 나도 요조라에게 많은걸 받고 있어요. 오히려 내가 해주는게 없는것 같은걸요. 적어도 이렇게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요.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삶을 지금의 순간으로 나는 보답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
여동생과 함께 지낸 삶은 인간은 꿈도 꿀 수 없는 시간이다. 여동생이 아니라면 정말 지루하다고 느꼈을 법한, 아니 여동생의 존재를 제외하고 너무나도 지루했던 삶을 한번에 보답 받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