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동안 감기 한번 안걸리는게 말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건강한 사람은 안걸린다니까 내가 신이라서 안걸리는건지 아니면 운이 좋아서 아직까지 안걸린건지는 모르겠다. 요조라가 타르트를 다 먹고 당고를 하나 집어드는걸 보고 나는 에이드로 다시 한번 입가심을 한다. 역시 호시즈키당에서 만드는건 맛없는게 없다. 요조라가 마히루에게 메롱하는걸 보고 귀여워서 손을 뻗어서 머리를 몇번 더 쓰다듬어준다.
" 아쉽네요. 시즌 한정 메뉴라니. "
시즌도 이렇게 짧은 시즌이라니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가득 묻어난다. 그래도 이런건 한정된 기간에만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생기는 것이니까. 붉은 음료를 잠깐 바라보았다가 요조라가 밀어준 몽블랑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반으로 갈려서 데코레이션은 좀 망가졌지만 충분히 맛있어보여서 나는 작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 고마워요. "
그렇게 포크를 들고 몽블랑을 작게 잘라서 한 입 넣는다. 그렇게 간식들은 하나 둘씩 없어지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테이블 위에는 빈 접시들만 남아있었다. 이 정도면 저녁으론 정말 잘 먹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요조라를 보고 말했다.
" 이 정도면 저녁으로 먹었다고해도 손색이 없겠네요. "
잔뜩 배가 부르니까 말 다했다. 이젠 뭐하러 가는게 좋을까, 하고 고민을 하니 사실 마츠리때는 항상 거기서 거기라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구경하는거 말고는 할 것이 없긴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으니까, 소화도 시킬겸 산책이나 하러갈까 싶었다.
메롱은 마히루에게 했는데, 코세이로부터 쓰다듬을 받자 혀를 빼문 채 요조라가 바라본다. 쓰다듬 받으며 살짝 눈을 감았다가, 손이 떨어지면 소리없이 눈을 접어 웃는다. 웃는게 어색하던 것이 얼마전 같건만, 이제는 눈웃음도 제법 치며 꽤 잔망스러워졌다. 요조라가 그렇게 바뀔 수 있었던 것에 코세이의 영향이 매우 컸음은 두번 말할 필요 없겠지.
에이드가 기간 한정이라 아쉬워하는 코세이를 보며, 마히루에게 이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해볼까 생각한다. 내년 여름이나 가을 마츠리에서 또 내놓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직접 술을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직접 만들어주고 싶어졌으니까, 몰래 알아둬야지 하고 다짐하며 달달한 몽블랑을 즐긴다. 같이 먹는 코세이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러게요. 저녁에, 후식까지, 다 먹어버렸네요. 이러다 살찌겠어요..."
양도 양이지만 거의 달달한 음식들 위주로 먹었으니 포만감에 한동안 뭔가 먹고싶은 생각은 들지 않을 듯 하다. 먹을 땐 좋았지만 다 먹고나니 칼로리도 살짝 걱정된다. 조금은 소화를 시키는게 좋을까, 생각하며 빈 접시나 식기들을 대강 정리해두다가, 코세이의 물음에 요조라가 눈을 깜빡인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마저 정리하던 것을 마무리한다. 남은 종이냅킨으로 손을 닦고, 테이블에 살짝 기대어 다시 바라보더니, 생긋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행복할 거에요. 언제나, 코세이랑 함께일 테니까요."
떨어져 있어도 이어질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시대다. 그러니 따로 살아도, 늘 함께이지 않아도, 서로를 생각하고 이어져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매일이 행복할 수 있다. 마냥 행복해보이는 얼굴로 솔직한 대답을 한 요조라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코세이의 옆으로 간다. 팔로 코세이의 어깨를 슥 두르는 행동이, 또 안으려고 그러는 걸까 생각이 들 쯤, 고개를 같이 숙여 목덜미에 뺨을 부비는 듯 한다. 예상대로 부드러운 감촉이 몇번 스쳤겠지만, 그 감촉 사이로 두개의 뾰족한 것이 살갗을 콕 찌르는게 예고 없이 느껴지고, 약하게 물었을 때 나는 간질한 느낌도 더해졌을 것이다. 그래놓고 능청스레 천천히 고개를 든 요조라는 장난기 어린 미소로 바라보며 말한다.
"이제, 먹는거 말고, 남은 곳 구경하러 가요."
같이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사서 같이 쓰자며, 조금은 솔깃할만한 얘기를 하면서 코세이의 팔을 살짝 당긴다. 남은 거리에 무엇이 있을진 아직 모르지만, 코세이와 함께라면 분명 뭐든 재밌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어서, 마주보는 미소가 조금 더 즐거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가을밤이 상당히 깊어지고 있었고 추위가 점점 찾아오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슬슬 학기말이 다가오고 있었고 학생회장의 임기도 점점 끝나가는 어느 날이었다. 많이 친해진 학생들, 그리고 아직도 친해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가미즈미 고등학교에서 매년 준비하고 있는 파자마 파티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하루, 집에 가지 않고 미리 파자마를 챙겨와서 밤에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거나, 산책을 하거나, 같이 먹을 것을 먹거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것은 없으나 소소한 행사였다. 물론 굳이 꼭 필수적으로 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하루 밤을 보내면서 걸즈 토크, 보이즈 토크 등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으며 본격적으로 학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기말고사를 치기 전, 학교 차원에서 마지막으로 즐길 수 있는 행사이기도 했다.
이 파자마 파티가 끝나면 사실상 학생회장은 은퇴를 앞두게 되고, 다음 학생회장이 될 이와 1:1로 인수인계를 하게 되었다. 그런만큼 이 파자마파티는 어떻게 보면 1년을 마무리하는 가미즈미 고등학교의 전통 행사라고도 할 수 있었다.
가을 밤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파자마를 입은 학생들의 이야기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가미즈미 고등학교에서 제공하는... 못한 말을 나눠요! 시간. 아직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이가 있거나, 혹은 이 친구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 혹은 아직 기회가 되어서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이런 것이 있다면 이 이벤트를 이용해주세요! 그게 아니라 보이즈 토크, 걸즈 토크를 해도 되겠지만요!!
6월 18일부터 그냥 넉넉하게 인심써서 6월 26일까지 드립니다! 사실상 가을 시즌의 마지막 이벤트에요!
점점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 입김을 부니 하얗게 김이 서렸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바닷가의 추위는 생각보다 빨리 오는 편이었고, 하루하루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겨울이 코앞이라는 이야기였고 이건 곧 다시 말하면 아키라의 임기도 머지 않아 끝이 난다는 것에 가까웠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장소, 정확히는 시미즈 가문이 관리하고 있는 낡은 신사 앞에 서서 아키라는 가만히 하늘을 바라봤다. 어두컴컴한 밤하늘 위에는 별이 왜 그리도 반짝이는지. 오늘따라 굉장히 아름답게 그 빛을 뽐내고 있었다. 그 빛을 가만히 바라보며 아키라는 조용히 입김을 내뱉었다.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도 좋았으나, 때로는 이렇게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에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닐 수 없었다. 고작 열여덟밖에 되지 않는 학생이 무슨 생각이 그리 많냐고 할지도 모르나 아키라의 입장에선 여러모로 생각할 것이 많았다. 학생회장으로서의 임기도 슬슬 끝나가고, 정말 본격적으로 성인이 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으며, 조용히 준비중인 대학입시 등. 참으로 생각할 것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름 후회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물론 후회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너무 일에 집중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온천과 스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갔다고 가정했을 때, 자신은 선택을 다르게 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미즈 가문이 아니겠는가. 누군가는 상당히 무겁다고 느낄지도 모르고, 실제로 무겁다는 평을 받긴 했으나 그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그에게 있어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것이 많았다. 밤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 밤하늘이 어둡고 맑으면서도 참으로 깨끗했다. 자신이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고뇌나 생각 등이 모두 쓸데없는 무언가가 되는 것 같아. 그야말로 조용히 미소지으며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조만간에 생각을 온전히 정리할 수 있을테고, 그러면 자신도 미련없이 졸업을 향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 그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학생회장으로서 좋은 사람이었는진 알 수 없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특별히 뭔가를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학생회장이 다 그렇고 그런 자리 아니겠는가. 커다란 개혁가적인 무언가를 하는 것은 만화나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일이었다.
"일단 당분간은 인수인계에 집중하는 것으로 하고..."
그 외의 것들은 천천히 생각해보자. 그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인과 연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그 외의 많은 것들도 스스로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졸업식때까진 정리가 될 것이고 그러면 자신도 다음 학생회장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입김을 조용히 내뱉었다.
"일단 지금은 조용히 구경이나 할까."
밤하늘도, 다른 것들도. 마지막을 장식하는 학생회장은 조용히 그림자 뒤로 숨었다. 자신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은 아니었기에. 그저 조용히 입시를 준비하고 졸업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나아가기로 한 그 길을 향해서. 그 과정 속의 끝맺음을 정리하며, 또 다른 새로운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