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걸 느끼면서 안경을 잠깐 벗어 눈 사이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뭔가 이건 이거대로 지금의 인간성을 죄다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복잡한 기분이 된다. 그러면서도 소리쳐서 반박하기엔 또 저렇게만 들으면 아주 이상한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별로 네가 말하는 것 마냥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곤 생각 안하고.....요즘 같은 시대잖냐. 어차피 의념각성자에겐 외모란 큰 의미가 없을터인데, 내가 젊은 육체로 중년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도 따지고보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 듣기론 이 학급 반장도 30대의 중년이라 들었다만, 겉보기로 알 수 있을 만큼 나이먹은 녀석은 없었어."
일단 이 부분을 반박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음흉한 속셈을 가지고 어린애들을 꼬신 것 같아지니까 제대로 대꾸했다. 그리고 말하다보면 결국 의념각성자란 신체 나이가 전성기로 고정되는 만큼, 내 현재 상태가 뭐 그리 큰 위화감이 있나 싶기도 한 것이다.
" 젊은 육체로 중년적 정신을 갖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였지 우리? 정확히 내가 걱정하는 부분을 집고 넘어가자구 사춘기 소년 윤시윤. 일단 지금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고, 그 상태로 활동은 해야 하니 단서적인 기억들을 통해 전생 전의 자아를 모방하고 있는 상태지? 모방된 자아는 젊은 윤윤의 두뇌에 점점 각인될 것이고, 어느순간 기억을 전부 되찾았을 때 모방된 자아와 실제 내 전생의 자아와의 괴리감이 느껴져도 괜찮을까? 만약에 거기에 어느정도 정당성을 붙이고 싶다면 젊은 신체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젊게 살라는거지! 응? 이해했어? "
방금 전까지 푸하하하 웃다가도 조금 논의가 중심을 잃은 것 같자 바로 웃음기를 없애고, 꼬리로 벤치를 탁탁 치면서 중심을 잡는다.
"말이 쉽지. 사람 성격 바꾸란게 쉽겠냐. 그리고 듣다보면 네 말에는 결국 한가지 문제가 있다."
나는 비교적 이성을 되찾곤 검지 손가락을 하나 올리면서 반박한다.
"그 모방된 자아라는 전제도 결국 네 단정 아니냐? 과거에 내가 실제로 어떤 성격이었는진 나조차도 모른다. 지금과 똑같을 수도 있고. 거기에 하물며, 다르면 다른대로. 나는 별로 누군가 시켜서 억지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 스스로가 선택한 성격이지. 그럼 반쪽짜리 어른이던 모방이던 지금의 내가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는 '나' 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걸 믿을지 말지는 상대의 생각 나름이지만, 그저 단순히 과거의 파편을 흉내낸다고 부정당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 주장대로라면 내가 너한테 잘해준 것은 내 흐릿한 과거의 파편속에서, 내가 그리 했을 것 같기 때문에 따라 행동했음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정도로 주체의식이 없지는 않아. 너희들과의 관계에서 나는 엄연히 내가 느끼고, 내가 행동하고 싶은대로 행동했다. 이 부분마저 지금의 주장대로 부정해버리면 너는 애초부터 윤시윤이란 인물과는 아무런 관계도 아닌 것이야. 이름도 모르는 과거 어딘가의 저격수의 잔재와 어울린 것이지."
물론 내 인격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상당히 불안정해보일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여태 쌓아올린 관계가, 거기서 내가 선택한 행동들이, 전생 전의 흐릿한 기억의 모방으로 취급 받는 것은 역시 다르다. 이 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일선이다. 이걸 '네 말이 맞아' 라고 해버리면 내가 소중하다 여긴 관계들 조차 모방의 잔재가 되어버린다.
그것은 싫다. 무어라 말해도. 따라서 나는 진지하게 대답하곤, 조금 텀을 뒀다가, 분위기를 풀 겸 한숨을 내쉬면서
어느정도 과거에 이끌려 영향을 받은 불안전한 자아라는 것에는 인정하지만, 그걸 선택해서 취하고 있는 현재의 태도를 전부 '모방된 자아' 라고 취급해버리면 말한대로 지금의 인격을 전부 부정해버리는거고, 그 인격대로 쌓아왔던 관계 또한 부정하는 셈임으로, 이 부분은 사실 암만 그래도 '그런 것 같아' 하고 수긍할 순 없어!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일 것.
"뭐, 나와 같은 상황에서 정말 아무런 이상 없이 완벽한 균형을 갖춘 녀석이 있다면, 나는 그건 그거대로 무섭다. 과거와는 신체도, 실력도, 경험도, 환경도 전부 다른데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단 소리니까. 오히려 그 쪽이 이상자 아니냐."
그런 놈은 성격이 어지간히 단순하거나, 과거를 토대로한 자신의 성격에 맹신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애초부터 스스로의 타고난 성격 외엔 아무것도 영향을 받지 않는 이상한 놈이다. 나는 비교적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성격이다. 스스로를 되돌아 봤을 때, 그런 이상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재조정이라곤 해도....보건실이라던가 정신건강학 교수라도 찾아서, 전생 운운을 털어놓아야 되는건가? 나는 본래 너희 급우들 외엔 어지간해선 평범한척 지낼까 생각했다만."
다만 위화감에 대한 재조정이나, 심리적인 케어에 대해선 일리가 있긴 했다. 내가 과거의 감각에 취해 스스로의 역량을 오인하지 않고는 완벽하게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생존과 임무 수행적으로 자신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유가 있을 때야 어느정도의 오차는 이성으로 계산할 수 있지만, 긴박한 찰나의 순간에서 조금의 위화감은 커다란 차이를 불러올 가능성도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 그런 녀석이 있다면 몇십년동안이나 아무런 경험과 자극도 없었다는 거니까 시체나 다름 없는거지. "
즉, 돌맹이가 회귀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축하한다! 당신은 돌맹이가 아니다!
" 사회적인 체면을 생각해서 진짜 똑똑한 하유하님이 처방을 내려주자면- 환자분이 미리 언급하셨던 대로 이성과 신체의 반응에 괴리가 있을 때가 종종 있다고 했는데 그 때 신체적 반응을 따라 생각하고 행동해 보는건 어때? 이성적 판단은 힘을 많이 쓰는 일이니까, 힘 풀고 한 번 흐름에 맡겨보라는 말이지. "
잠시 고민을 한 뒤에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는 썬더. 누구라도 생각할 법한 간단한 해결책이지만, 이 이상으로 깊게 파고 들어갈 능력은 없었다.
"시체면 무해하기라도 하지. 경험과 자극이 있었는데도 성격에 그 어떠한 변화도 없었단 소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성격이란건 뭐.....보진 못했으니 확실하진 않아도, 어지간히도 비정상일거다."
말로만 해도 정말 인간답지 않다. 인간이란 경험과 자극에 의해 변화하는 생명체라는 대전제부터를 무너뜨리는 느낌이다. 그런 녀석이 존재한다면 인간으로써 필요한 구성 요소 몇가지를 꽤나 많이 빠지고 태어난 놈일거다.
"뭐 무난하고 괜찮은 처방이다.........만............"
나는 그저 담배를 입에 물기만 한체로 유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그리곤 시선을 주변으로 한번 돌리곤, 크게 한숨을 내쉰다. 그 의견은 아까전 비교적 극단적이었던 내용과는 달리, 나 또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만큼 타당한 선이었다. 뭐 결과적으론 언뜻 보기엔 처음의 주장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서로가 열띄게 의견을 교환하면서 간신히 도달한 타협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15살 소년의 신체적 반응을 따라 행동한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솔직히 그녀는 완벽하겐 모름이 분명했다. 본인은 내심 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만, 정말 진심으로 알았으면 저렇게 태연하게는 말 못할거다.
"뭐...........적당히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노력 정도는 해봅시다 라는 것으로........."
나는 시선을 돌린체로 '만' 뒤에 붙은 말을 의아해 하는 그녀를 모른체 했다. 입을 다무는 만큼 배출되지 못하는 열기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음을 자각할 순 있었지만, 그렇다고 한들 여기서 입을 열어 소년의 풋내나는 솔직함을 드러낼 용기는 없었다. 유하 너도 나이 먹으면 이해하게 될 날이 올거다. 라고 생각한 뒤, 소년의 감성을 이해하기 위해 소녀의 성장을 요구하는 반쪽짜리 중년의 감상이란 말장난 같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해서 조금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래, 그....앗, 야!"
응원하는 자세를 흘끔 보고는 귀엽기는. 하고 생각했다가 다시금 시선을 옆으로 돌리느라, 나는 담배를 낚아채는 손길을 눈치채지 못하고 허무하게 빼앗기고 말았다. 불도 안붙였는데 또 태우려는거냐. 인상을 찌푸리곤 당혹감에 항의하려고 고개를 옆으로 그녀를 돌아봤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에 잠깐 경악하고 만다. 내 담배는 그녀의 입에 물려, 천천히 타오른체 본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것이다.
"......그걸 네가 왜 피는 건데......."
뻐끔 뻐끔 하고 경악하다가 결국, 나는 손바닥으로 못보겠다는 듯 눈가를 가렸다. 역시나 이 녀석은 15세 청소년의 마음에 대해 아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속으로 침음성을 흘리면서도, 무언가 어색한 침묵이 감돌지 않게. '그래 피는 이유에 대해 말하면 이후론 좀 더 이해해주겠지.' 정도로 사고를 애써 돌리며 대답하는 것이다...
".....흐릿한 기억속에서도 그나마 제일 명확한 부분이, 소중하게 여기는 부대원들이랑 피던 담배맛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