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한 순간 순간을 소중히 후회없이 살아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그건 그렇다해도, 너는 너무 밝아서 보호자를 자처하는 사람으로썬 좀 걱정은 된다만...."
괜히 어줍잖게 심각하거나 울적한 것 보다, 차라리 밝고 즐겁게 사는것이 현명할지도 모른..... 아니 그걸 감안해도 너무 지나치게 밝은거 아닌가? 그런 생각은 든다만.... 나는 시원하게 동의해주려다가 마지막엔 떨떠름한 보호자의 걱정으로써 마무리한다. 그러고는 대충 옆에 앉아선 나노머신을 켜서 화면을 띄워 같이 보길 권하는 것이다.
"보통은 헌팅네트워크에 올라오지 이런건. 아마 젊은 네가 더 잘 알텐데? 뭐 재밌어보이는게 있다면 한번 가보자꾸나."
예상보다 복잡해보이는 얼굴에 나는 보호자라는 말에 내가 뭐 부모 노릇 하려는건 아니라고, 해명하려 했으나. 뒤에 이어지는 말에 어처구니가 바싹 구워져선 머리 위로 ' ? ' 하고 커다란 물음표를 띄우는 것이다. 아니 거기부터야? 너랑 나랑 여태 뭐 어떻게 놀았는데 이제와서 15살이니 누나니를 언급한다고?
허허.....
"유하야."
"첫째 아저씨는 15살이지만 전생자로써 정신 연령은 실질 30~40대다. 설명 했지?" "둘째 축제 때 구경하기도 어렵고 미아될까봐 한참동안 목마도 태워줬는데 이게 보호자가 아니면 뭐냐? 아무리 그래도 이제와서 유하 네가 나보다 연상임을 강조하기엔 아저씨는 너무나도 늦지 않았나 싶다.....넌 애기야 애기...." "셋째 내가 헌터넷 좀 돌아다녀봤는데 이 나이에 헌터넷에 무리지어 다니는 놈들은 다 글러먹은 놈들이다. 너도 헌터튜브 끊어라."
" 솔직히 방금 한 말에서 악 아저씨 꼰대냄새나요 하고 넘어갈 수는 있지만, 그래 솔직히 누나 소리 한거는 재미있으라고 말 섞은게 맞기는 한데 들어봐. 정신 연령이 3,40대라고 해봐야 지금 나이는 15살이고 앞으로 몇십년 더 살아가야 하는데 너무 아저씨 컨셉으로만 살기에는 아깝잖아.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실제 나이 때문에 눈치보여서 못할것 같은데... 그리고 헌터넷 생각보다 괜찮다. 반박시 의념속성바퀴벌레. "
이런 진지한 말을 할 수도 있는 하유하. 하지만 급작스럽게 이쪽도 진지함을 올린 탓인지 목마 타고 논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워진다. 이래서 일부러 뇌 빼고 살때는 뇌 빼고 살았는데...
" 그런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고. 후... 원래 이런 얘기 하는거 안 좋아하는데... 진짜 영광인줄 알아야 해. 나중에 밥도 비싼거 사고. 지금 사고와 행동양식이 전생의 파편을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하지만 그게 온전한 것은 또 아니고. 그러다 보니까 네가 자아라고 생각하는 프레임-컨셉에 막혀서 유연한 행동과 사고의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게 안타깝다는거야. 문제는 그 불완전한 자아상은 타인과의 교류라는 실천을 통해서 더 정립되어 나갈거고, 결국에는 네가 쌓아온 자아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낸 자아가 주체가 될 수도 있다는거지. 이 이야기를 보호자분께 말씀 드리는것도 우습지만. "
어느세 벤치에 앉아서, 꼬리로 옆자리를 탁 탁 강하게 내리치며 말을 했다. 옆에 앉으라는 뉘앙스로 치는 것은 아닌 것 처럼 보인다.
이 녀석 사람이 내심 신경쓰고 있지만 티를 안내는 부분을 예리하게 찌르다니. 마도하는 놈들은 이래서 싫다. 나는 잠깐 뜨끔한 얼굴이 되어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내 기억은 별로 온전하지 않다. 그러니, 내 성격이 과거에 정말 이랬는지 조차 모른다. 종종 '나' 답다고 확신하는 부분은 그야 있다만, 대체로는 지금의 '나' 란 불안정한 것이다. 어느 의미론 젊은 소년에게 어설픈 기억을 주입해 인격을 교정당하고 있다고 말해도, 무조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
"꽤나 예리한 지적 고맙다. 여기서 '웃기지마!' 라는 식의 반응을 취하면 역으로 완전히 인정하는 꼴이 될테니 나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다만....."
정론을 찔렸다고 화내는 놈은, 이미 거기서 진거다. 그 정도는 안다. 여기서 울컥하거나 화제를 피해버리면 그걸로 저 말은 완벽한 정론이 되어 마무리되는 것이다. 성숙치 못한 태도에 드물게 진지하게 대꾸해준 유하가 실망할 가능성도 크겠지. 따라서 나는 얼굴을 손에 짚곤 비교적 진지하게 대답을 생각해보려 노력했다. 여태까지를 떠올리면서......근데...........그럼.................
"그런데 말이다.........내가 네 말대로 내 연령에 갖힌게 아니라 유연한 사고를 했다면 말이다............."
"비슷한 또래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볼을 만지고 둘이서 놀러가거나 밥을 먹거나 축제에서 목마를 태우거나 손을 잡거나 했는데 말이다....내가 네 주장대로 15살 다운 유연한 행동과 사고를 했다면...........어, 음..............."
잠깐 손으로 얼굴을 짚는다. 솔직히 낯이 뜨겁다.
거기에 이 녀석에게 말할 것은 아니지만, 그런 관점으로 따지자면 라임이랑은.......................... 학교 복도 앞에서 웃으며 귀엽다 귀엽다를 연발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껴안거나 아무튼간 이것저것. 15살 청춘의 시선으로 그러한 행위들을 유연하게 생각해보면..........
"그...........좀 어지러운데?? 프레임에 갖혀 아저씨로 있는게 차라리 정상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