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점심을 때우러 토와는 노점으로 향했습니다. 타로 알바는 오늘치는 끝난 것 같네요. 그래서인지 옷차림은 똑같았지만(약간 긴 로브스러운 옷+베일) 베일은 걷어서 머리 뒤쪽으로 넘겨진 상태입니다.
"으... 뭔가 심력을 많이 쓴 듯한 느낌입니다." 노점의 테이블에 엎드리고는 약한 불평을 한 다음 노점의 메뉴를 봅니다. 확실히 당분을 보충할 수 있는 구성이네요. 이런 것을 놓치긴 그렇지요. 꽤 인기가 좋을 법하지만 토와는 이런 방면에도 운이 있는지. 남은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여기 인기 좋네요. 만석이야 만석.
아침부터 부스를 열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다는게 이렇게 귀찮, 아니 힘든 일인 줄, 요조라는 새삼 깨달았다. 일부러 자리도 외지고 잘 안 보일 곳으로 골랐는데, 한 두명 다녀가더니 오전 내내 쉴 틈도 없이 사람이 몰렸다. 덕분에 느긋히 하려던 당초 계획과 달리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요조라의 손에서 붓이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얼추 시간이 되자, 급히 하던 사람까지만 마무리를 짓고 휴식 표시를 책상에 올린다. 아쉬워하는 사람들을 애써 외면하며 자리를 정리해놓고 일어선다. 아, 당분이 필요해, 단 것이 너무나 절실한 순간이다. 분명 노점들 중에 달달한 걸 파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흘러오는 단내를 코끝으로 쫓아가니, 밀가루 반죽 구워지는 냄새가 너무나 매혹적인 노점이 나왔다. 그런데, 자리가...?
"하..."
점심시간이라 쉬러온 사람과 먹으러 온 사람들로 이미 테이블은 만석이었다. 그렇지만 요조라는 이미 이곳에서 파는 디저트의 냄새를 맡아버렸고, 먹어야만 직성이 풀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름 매의 눈으로 테이블을 둘러보다가, 자리가 남아보이는 테이블을 하나 찾아낸다. 이미 한 자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아는 얼굴이었기에, 요조라는 총총히 그 테이블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토와 씨, 맞죠...?"
멀리서 봤을 때는 얼굴만 봐서 잘 몰랐는데, 가까이 와보니 머리에 베일이며 옷이며 어라,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 싶다. 혹시 모르니 확인차 이름을 불러보며 얼굴을 다시 보자, 음, 누가 봐도 토와다. 이 사람도 뭔가 부스를 하고 있나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테이블을 남는 자리를 가리킨다.
"지금... 빈 테이블이, 없어서 그런데... 합석, 괜찮을까요...?"
배고프고 지치긴 했지만, 그런 기색은 내비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사정일 뿐이니까. 그래도 저번 수학여행 때처럼 비실거리지는 않고 그냥 평범하게 말을 걸었다는 차이는 있었을지도.
요조라 입장에선 토와의 옷차림이 의외네 싶었지만, 사실 남말할 처지는 아니다. 감색 웃옷에 단풍 무늬가 있는 짙은 갈색 치마를 두른, 일본풍 메이드복에 얼굴엔 아침에 그려넣은 자물쇠 그림의 페이스 페인팅이 그대로 남아있었으니까. 배고픔과 피로에 주변도 살피지 않고 와서 그렇지, 오는 내내 제법 시선을 받았었다. 요조라가 그걸 눈치채는 건 조금 더 이후가 되겠지만 말이다.
"안녕하세요."
합석을 물어본 뒤에 생각난건데, 토와를 부르기만 했지, 인사를 안 했더란다. 그래서 요조라도 뒤늦게 고개를 꾸벅였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토와가 별 말 없이 합석을 허락하자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덧붙이며 빈 자리에 앉는다. 일단 자리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들자 단박에 허기와 공복감이 몰려온다. 금방이라도 배가 뭐라도 달라고 요동칠 듯한 예감에, 요조라는 대화보다 토와가 가리키는 메뉴로 시선을 돌렸다. 베스트니 시그니처니, 어차피 노점 음식인데 뭐가 저리 많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다 먹어버려야지. 빠르게 메뉴를 훑고 시킬 것을 정한 요조라, 어디 손 남는 점원이 근처로 오길 기다리며 말한다.
"오전부터, 꽤나 다녀간, 모양이에요. 여기... 테이크아웃, 한 거, 많이 봤기도 하고..."
페인팅 받는데 크레이프 들고 와서 먹는 사람도 있었으니, 단언컨데 이번 축제에서 가장 이득을 많이 보는 곳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데, 오후는 오죽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때마침 한 점원이 지나가는 걸 본 요조라가 점원을 부르려 했다. 그 순간, 문득 토와는 아직일 듯 싶어 돌아보며 물었다.
"저, 주문 정했는데, 토와 씨는요...?"
따로 주문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지금처럼 바쁠 때는 주문을 한번에 넣는게 조금이라도 빨리 나올테니까 말이다. 토와가 정했다고 하면 점원을 불렀을거고, 아니라면 조금 더 기다렸을 것이다.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는 다시 엎드리거나 하진 못할 테니. 잠깐 테이블을 바라보지만. 나중에 들어가서 푹 쉬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합니다. 토와 또한 조금 정신을 차리고 나면 요조라의 옷차림이 보통의 교복과는 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자물쇠 페이스페인팅이라니.
"페이스페인팅은 어딘가에서 받은 건가요?" 가벼운 질문을 하면서 토와는 오전부터 다녀갔다는 말에 자리 잡은 건 운이 좋았네요. 라고 말합니다. 들고 다니면서 먹는 것도 괜찮지만 자리에서 느긋하게 먹는 것도 나름의 멋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점원을 부르려는 것에 메뉴를 슬쩍 훑으며 간단하게 정하려 합니다. 이게 괜찮겠네요. 들고 먹기엔 그렇지만 맛은 가장 좋아보이는 느낌으로?
"어. 저도 정했으니까요." 괜찮습니다. 라고 답하며 점원을 부르면 방금 정했으면서도 능숙하게 이거랑 이거 주세요. 라고 말하는 게 보통이 아닐 겁니다. 아무래도 노점은 신속함이 생명이니만큼 바빠보이긴 해도 그만큼 빠르게 나오는 편이려나? 아니면 주문 즉시 제조하는 터라 최대한 빠르게 해도 가벼운 담소는 나눈 뒤에 나올지도?
오렌지맛 사탕은 코로리의 품에 3봉이 더 안겨져 있었다. 코로리는 오렌지맛이 슬퍼한다는 말에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하고서 고개 갸웃였다. 포도맛만 너무 많이 사지 않았는데. 오히려 오렌지맛이 1봉 더 많았다. 그러니 오렌지맛이 슬퍼한다면, 오렌지만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라는 이유 밖에는 안 떠오른다. 코로리는 코세이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유유히 마시멜로를 찾는다.
"가면 세이 닮은 눈 토끼 만들래."
눈 오는 날 만드는 토끼는 새하얗고 붉은 눈을 갖고 있다. 코세이와 같다! 코로리는 하얀 마시멜로를 보니 눈 토끼가 절로 떠올랐다. 물론 집어든 건 솜사탕색의 알록달록한 마시멜로다.
"응, 여름방학 때 바다 놀러가서ー"
그때 물어봤었노라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안 돼, 안 돼, 안 돼ー! 회상하지를 못 하겠더라! 저에게 주의해야할 것들에 대하여 물어보길래 답하고서, 코로리도 렌에게 주의해야할 것이 있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물어보았다가 말 못 해, 생각도 금지야. 절대 안 돼! 허수아비가 되고 싶어ー. 그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식을 제일 좋아한가거나, 오니기리도 꽤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걸 떠올리려고 했을 뿐인데 '물어봤었고, 들었다' 라는 문장에 찍힌 그 쉼표에 있었던 일 덕에 다시 새빨개졌다. 정말로 졸릴 새가 없다! 대신 정신 못차리는 건 똑같아서, 앞에 있던 조금 키 낮은 진열대를 못 보고 콩 무릎 부딪힌다. 아파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한참 말 못하고 있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세이, 렌 씨 이야기 금지야. 금지. 절대 금지."
품에 있던 오렌지맛 사탕과 골라집은 마시멜로를 부끄러워서, 뜨거워서 녹을 것 같아. 겨우 바구니로 옮겼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고르고, 한숨 돌린 후에야 요조라는 자신이 부스에서 차림 그대로 왔다는 걸 깨달았다. 토와의 물음이 들린 것도 그 때였다. 그제사 생각난 얼굴의 그림에 혹시 망가지진 않았나 하고 폰을 꺼내 액정에 비춰본다. 다행히 뺨의 자물쇠 그림은 무사했고, 괜찮긴 하지만 부스로 돌아가면 살짝 고치는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 코세이한테도 고쳐줄지 물어볼까. 다 먹은 뒤 라인을 보내자고 생각하며 폰을 치마 주머니에 넣는다. 때마침 점원이 왔으므로 주문 먼저 하기로 했다.
"그럼 저는, 팬케이크에 과일 토핑 전부랑, 아이스크림 한 스쿱, 아니 두 스쿱에, 생크림도 듬뿍 올려주세요... 아, 그리고 홍차도 한잔..."
앉은 김에 느긋히 먹고 갈 셈이었으므로, 제법 호화스럽게 주문을 넣는다. 두 사람 분의 주문을 받아적은 점원은 보시다시피 주문이 밀려서 조금 늦는 점 양해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같은 생각을 하며 턱을 괴려던 요조라는 조금 전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는게 생각나 뒤늦게나마 말했다.
"이거, 제가 그린, 거에요... 이런거, 그려주는 부스, 하고 있거든요... 거창한 건, 아니고, 간단한 것 뿐이지만..."
아무래도 학생이 하는 부스다보니 그릴 수 있는 범위나 쓸 수 있는 재료도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주문도 평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의 생각은 감히 요조라가 예상할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오후는, 쉴까 고민 중이네요... 토와 씨는, 뭘 하셨길래, 그런 옷을...?"
오전 내내 부스를 떠나지 못 했던 요조라였기에, 누가 뭘 하는지 요조라는 잘 몰랐다. 애초에 관심이 없는 것도 한몫 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