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이 신비에 빠졌던 순간. 느꼈던 충격은 어떤 형태였는지 얘기해보겠다. 마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황을 0이라고 하고, 내가 무언가를 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을 1이라고 하고, 어떤 무언가를 해내는 과정을 2라 하고, 마친 상황을 3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모든 마도들은 0과 1에서 순식간에 3으로 향하는 과정으로 비춰졌다. 분명 그 안에 2의 과정도 존재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다른 마도에 있어 2라는 과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진이라는 마도에 빠져들었다. 마도를 구성하고(0) 진을 그려내어(1) 의념을 끌어모아 마도를 그려내어(2) 힘을 끌어내는(3). 모든 과정이 더없이 들어맞아 완벽히 보여졌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서 이 갑갑한 상자를 여는 방법을 찾아내려 했다.
>>205 여기 쇼코짱란 별명을 가지고 있던 청년이 있던 상단이 있었다. 그는 특유의 수완과 능력을 가지고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보물들을 모으고, 자신의 헬멧에 숨겨왔다. 그 보물들로 하여금 욕심 많은 젊은이의 삶이 풍족해지려던 때쯤, 태식이는 그런 젊은이의 욕망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그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을 들고갔다. 목숨 말이다.
오토나시는 언제 어디서 나타난건지 모르는 사과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왜 자신의 인벤토리에 있는지 떠올리려고 해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사과가요. 단지 그 사과가 바이올렛 코스트인 선악과의 극극극 (중략) 극마이너 카피 버전이라고 오토나시는 칩을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이올렛 코스트를 흉내내서 만든 아이템이라니, 무언가 실험을 하나 해 보고 싶어지지 않나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오토나시에겐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토나시는 몇 주 동안 (혹은 어쩌면 약 한 달 동안) 인벤토리 안에 들어있던 정체불명의 사과 아이템을 햇볕이 잘 드는 자신의 기숙사 방 창틀 위에 두고 관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기장 용도로 쓰는 노트 한 권을 사과 옆에 두고 매일 매일 볼펜으로 상태가 변했는지 아닌지 기록해가면서 말이에요.
" 음. "
아이템은 아이템. 한참동안 사과를 지켜봐도 무언가 변한 듯한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토나시는 일기장의 지난 기록을 촤르륵 살펴보다 뭔가를 결심한 듯 사과를 조심스럽게 한 손에 들고 방을 나와 특별반 기숙사의 공용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세면대에서 찬 물을 틀고 사과 표면을 열심히 씻기 시작하는군요.
" 이제 이걸 먹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
오토나시는 그렇게 중얼거리다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봅니다. 그러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 있네요. 하지만 여기는 특별반 기숙사. 누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토나시의 ' 동료 '일 겁니다. 그러니 큰 상관 없겠죠!
오늘도 분명. 별 일 없는 하루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늘상 하던대로 공용 부엌에 핫초코를 타마시러 가던 나는 문 너머로 들리는 인기척에 잠시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세면대에서 물이 틀어지는 소리와, 무언가를 뽀득뽀득 씻는 소리. 그리고...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제 이걸 먹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이거 들어가면 실험요리의 희생양이 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다 피식하고 웃으며 부엌으로 들어가자 처음 보는 사람의 외견이 시야에 들어왔다. 은빛의 머리카락과 신비로운 분위기. 그리고... 손에 들린 사과까지. 여러모로 별 일 없는 하루가 될거라는 예감은 보기좋게 빗나간듯 했다.
- 사과. 좋아해?
이거 어딘가 모 종교의 경전에서 본거같은데. 라고 실없이 생각하며 반짝반짝하게 닦인 사과와 그녀를 번갈아 바라본다. 먹음직스럽게 물방울이 맺힌 사과는 과일을 안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묘하게 시선을 잡아끌듯한 생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