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이 신비에 빠졌던 순간. 느꼈던 충격은 어떤 형태였는지 얘기해보겠다. 마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황을 0이라고 하고, 내가 무언가를 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을 1이라고 하고, 어떤 무언가를 해내는 과정을 2라 하고, 마친 상황을 3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모든 마도들은 0과 1에서 순식간에 3으로 향하는 과정으로 비춰졌다. 분명 그 안에 2의 과정도 존재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다른 마도에 있어 2라는 과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진이라는 마도에 빠져들었다. 마도를 구성하고(0) 진을 그려내어(1) 의념을 끌어모아 마도를 그려내어(2) 힘을 끌어내는(3). 모든 과정이 더없이 들어맞아 완벽히 보여졌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서 이 갑갑한 상자를 여는 방법을 찾아내려 했다.
좋은 놈이라고 열변해주지 않는 걸 보면 얼딸딸한(?) 면은 있는거구나, 라는 말에 강산은 "이것저것 벌이고 다니는 건 알겠지만 나도 어떤 녀석인지 자세히는 몰라서."라며 넘어간다. (*실제로 강산 - 준혁 간 일상 횟수 0회.) 그리고 시윤의 반응에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짓궂은 웃음을 얼굴에 가득 띄운다.
"이거 시윤 씨 말고 다른 편입생들한테도 줬고, 그러고도 아직 내가 쓸 돈은 많으니까 너무 부담갖진 마."
그래도 어른에게는 체면의 문제가 있다는 걸, 그도 곧 어른이니 알긴 아니까 덧붙인다. 편입생들 한 명에겐 1만 GP보다 귀중하다면 귀중하고, 그에게는 그보다 흔하다면 흔할 무언가(*테토스의 경단)를 주긴 했지만, 그 녀석은 전열에 서는 녀석이니 그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강산은 생각했었다.
"갚고 싶으면 미리내고 졸업장으로 갚아라. 일찍 죽지 말고. 여기 들어오면 편입생들에게도 우리랑 같이 죽어라 구를 일이 생길 것 같은 촉이 왔으니까 주는 거야. 올해는 연초부터 다윈주의자들 단체 탈옥해서 깽판치고 난리났었잖아."
생글생글 웃으며 이자 쳐서 갚겠다는 말을 받아친다. 그래, 시련이 없는 성장은 드문 법이다. 무대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특별반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어했던 소년은, 자신 또한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다같이 다가올 시련을 준비해야지. 이 1만 GP도 자신처럼 놀기 좋아하는 미묘하게 게으른 녀석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야 갓 들어온 편입생한테 가는 편이 더 중히 쓰일 것이었다.
"받아서 손에 쥐고...GP칩에 의념을 흘러넣어봐."
시윤이 칩 사용을 어색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시윤의 손에 GP칩을 쥐어주려고 하며 말한다. 어르신이라곤 하지 않는다. 어머니보다 어리면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게 실례일지도 모르니까...?
//11번째. 잠깐 다녀갑니다. 간밤이랑 오늘 오전에 일이 좀 있었고 그 여파로 오늘 오후까지 뻗어 있었어요. 정주행부터 끝내고 올리려고 하면 왜 답레를 썼는데 올리지 못하니!가 될 거 같아서 우선 답레부터 드립니다... 정산은 정주행 후 천천히 할게요.
갑자기 어깨를 잡아서 놀래켰나 싶을 때, 어린 놈이 담배는 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역시 안믿나 체념한다. 그리고 뒤에 '욘석아' 까지 듣고는 '요놈봐라?' 하는 시선으로 작달만한 토끼녀를 내려다 본다. 안믿는건 그렇다치고 방금전 애 취급 당한걸 고대로 얄밉게 돌려주는 당돌함을 보게나. 까불끼도 좀 있는 것이, 표정은 시큰둥 하지만 내심은 메에롱~ 하고 약올리는 것 같다.
그러나 아저씨는 어른이다. 이런 걸로 쉽게 화내지 않는다. 애초에 무엇부터, 이러한 류의 대화는 먼저 열받아서 '으아악!!' 이라고 소리지르는 녀석이 지는 법이다. 아저씨는 나이를 헛으로 먹지 않았다(15세). 도발에 오히려 기특하다는듯 능글능글 웃고선 무릎을 조금 숙여, 손으로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어이구~ 우리 아주 '귀여운' 토끼가 아저씨 건강도 걱정해주고. 정말 고맙다 고마워."
여기서 중요한건 절대 목소리에 분노와 초조함을 담지 않는 것이다. 상냥하게. 귀여운 꼬마애가 기특하다는듯이. 아저씨가 눈높이를 맞춰 오구오구 해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