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로, 어쩌다가 이 인원이 모여서 이런 게임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 분명한 건, 지금 여기서 무슨 대답을 한다고 해도 끝이 유야무야 흐려질 것 같다는 것일까. 그렇다는 건 무슨 질문을 받든 무슨 대답을 하든 뒤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거지. 앉은 자리에서 다리를 꼬고 한 손에 턱을 괴고서 이리저리 흐르는 게임을 지켜본다. 평소와 같이, 평소보다는 조금더 낮게 가라앉은 눈이 적당히 한명 한명 스쳐가다가, 자신을 지목한 렌에게 꽂힌다.
"너... 흐음."
슬그머니 가늘어진 눈이 쏘는 시선이 쎄하다. 몇초간 그렇게 보다가 턱 괸 손 내리고 무릎에 올린다. 톡, 톡, 대답을 고민하며 손끝으로 무릎을 두드리다가, 이게 그렇게 고민할 일인가 싶어, 가볍게 대답한다.
"잘생겼잖아. 키도 크고, 성격도 좋고, 그 외의 이유, 필요해?"
꼰 다리를 푼 건 아니라 그대로 발끝을 까딱거리는 폼이 반문할테면 해보라는 태도다. 은은히 싸늘한 얼굴로 렌을 응시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시선을 돌려 남은 사람들을 향해 묻는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실은 아주 정교하게 만든 가짜라고 한다면... 그래도 소중하다고, 할 수 있어...?"
아, 참고로 진짜는 없어, 라며, 질문 끝에 씨익 웃는 얼굴이 의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아니면, 그저 즐기고 있는 걸지도?
질문을 주고받고 모여있는 이 이상한 상황에서도 스즈는 그 나이대 아이들처럼, 평소의 그 모습 그대로 이런 저런 질문과 대답에 계속 꺅꺅대면서 좋아한다던가 주변에 있는 것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주면서 이건 뭔지, 저건 뭔지 물어본다거나 이상하지만 신기하다던가 따위의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어차피 유야무야 지나갈 것 같은 분위기다. 이대로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즐거워. 스즈는 으흥흥~ 하고 콧노래를 부르다가 무심코 찾아온 질문에 에? 하고 고개를 기웃했다.
" 나? 나한테 물어보는거야? 소중한 사람.. 음, 미즈미를 말하는거겠지~? "
스즈는 헤에- 하고 고민하는듯 싶다가 어깨를 으쓱하곤 별 거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 그래도 소중해. 그래도 사랑해. 가짜이던 진짜이던 그건 별로.. 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그 모습이 가짜이던 진짜이던 스즈는 그걸 보고 사랑에 빠졌으니까! 잘 들어봐. 사랑에 빠진 여자아이는 그 무엇으로도 못말려! 뭐~ 조금은 충격받거나 어지러울 수는 있겠는데 그래도 있지? 스즈는 미즈미를 좋아해. 사랑하고있어. 그럼 그걸로 된거야~ 이건 비밀인데 조만간.... 에헤헤~ 비밀이니까 말 안해야겠다! "
스즈는 '답변이 됐으려나?' 하고 말하며 꺄르륵 하고 웃었다. 그리곤 이제 뭘 해야하는지 몰라 가만히 있던 탓에 잠시간 어색한 침묵이 흘러버렸다. 남은 사람은 저 둘인가. 스즈는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가리키다가 한 쪽에서 멈추곤 조금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자~ 질문 들어갑니다~ 첫 키스는 언제, 어디서, 누구랑, 어떻게! 만약 아직이라면~ 언제! 어디서! 누구랑! 어떻게! 하고싶은지 말해줘! 참고로 패스는 없다~ 첫 키스 같은거 안하고 싶어! 이런 대답도 안돼! 무조건이야! 참고로 이 질문은 말야, '누구랑' 이랑 '어떻게' 가 메인디쉬니까 여기에 신경써줘! "
애초에 전에 사귀던 연인과는 이미 헤어진지 오래고 딱히 그에 대한 감정이 없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대입하면 되겠는가. 그는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연애중인 사람은 일단 논외.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 애초에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잠시 뭔가를 생각을 하던 그는 작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차라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 무시당한다고 느끼고 50시간 더 빨리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상대가 말이에요.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아니. 아닌가. 일단 자신이 대입한 이라면... 조용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후에 역시 애매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굳이 일부러 상대를 더 기분 나쁘게 해야한다고 말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네요. 당신과 했던 그 시간이 정말로 조금의 가치도 없는 시간 낭비였다고 말이에요. 뭐, 어디까지나 사귀는 사람도 없는 저에게 있어선 그냥 대입론으로밖엔 말할 수 없지만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그는 이어 잠시 고민을 하다 이 질문의 흐름을 살며시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야기했다.
"아주 가벼운 질문이에요. 지금 이 중에서 정말 평소에 꼭 얘기해야 할 것이 있는데 만나지 못해서건, 개인적 사정이건 말할 수 없어서 진짜 마음 속으로만 간직한 이가 있나요? 있다면 지금 여기서 말해보도록 할까요? 없으면... 음. 그냥 다음 질문할 상대에게 진실된 메시지 하나를 툭 던져보는 걸로?"
회장님 가볍다가 뭔지 모르는 거야? 회장님 바보지?! 바보 맞지! 이럴 수가 없었다. 코로리는 이곳이 꿈 속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잠의 신으로서 절대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생각을 하게 되고 말았다. 꿈은 자고 있기 떄문에 꿀 수 있는 것, 잠에서 깨고 싶단 생각을 해버렸다! 이나잇대 인간들의 진실게임은 풋풋하고 달달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하고 있으니 그렇게 볼 수가 없었다. 꼭 얘기해야할 것이 있는데 말하지 못하고 간직한 사람, 없다고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여기서 말해보라니, 말도 안 돼. 이렇게 말하기는 싫단 말야. 싫단 말야! 그나마 다행인 건 남들에게 다 들리게 이야기하란 조건은 없었다. 우물쭈물거리며 아무것도 하질 못하더니, 자리에서 벗어나 렌의 옆자리로 향했다. 같이 데이트 하고 싶은 이가 있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보다 훨씬 빨갛다. 자리를 이동하는 움직임이 어색해보일 지경이다.
"렌 씨, 사랑해애."
입가를 손으로 꼭 가리고서 귓가에 속삭이더니 다시 호다닥 제자리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건 빠르다! 저는 신이니까 인간 입장에서 부담스럽다한다거나 할 지도 모르니까 꾹 눌러뒀던 말인데. 이걸 이렇게 입 밖으로 내게 하다니. 새빨갛게 익어 고개 푹 숙이고 있다가, 고개 들면 아키라를 매우 노려보았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고, 다음 질문을 생각해야하는데 되겠나! 코로리는 꿈에서 깨고 싶은게 더욱 간절해졌다. 그래도 어떻게든 질문을 생각해낸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제일 사랑스러운 모습은 어느 거야!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면ー 좋아하게 될 것만 같은 모습으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