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련님이 아니라는 아키라의 말에 맞다고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린다. 여전히 딸꾹질 소리가 안나게 입을 꼭 틀어막고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아키라가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욕이라도 하고 다니는 거냐고 물으니 끄덕이던 고개가 뚝 멈췄다. 억울하단 듯 눈 둥글게 뜨고서 눈썹도 축 처진 채 아키라를 바라본다. 딸꾹질 안하는 타이밍에 입을 여느라 조금 우물쭈물거렸다.
"아냐! 나 회장님 안 싫어해!"
회장님 진짜 햇님이야! 첫 만남부터 감히 잠의 신이 자고 있는데 방해해도 악몽 한 번으로 넘어가주었지, 체육시간 땡땡이에 화난 것 같길래 피해다니기도 했지, 양귀비로 피었길래 커피도 없애주고 잠의 신으로서의 힘을 담아 아이스크림도 주었지, 우미노카리 행사에서도 아키라에게 배팅을 거는 족족 주화를 날렸지만 악몽 꾸게하지 않았지!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의심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억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키라는 또 순정 만화책을 한 권 골라든다. 이것은 필시 '내 뒷담화를 하고 다닌다니 걸리는 즉시 그것까지 포함해 렌에게 전부 일러버리겠다' 는 것으로 보였다. 없는 죄까지 추가됐다. 같이 놀면 재밌을 거 같다구 했으면서! 협박이나 하고!
"…회장님 다 알고 있는 거 아냐?"
모르는 거야? 진짜 만화 좋아해서 고르는 거야? 아냐, 안심시켜서 방심하게 하려는 거면?! 코로리는 눈을 굴리다가 아키라가 두 손으로 안은 책들을 본다. 딸꾹질 이야기에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곧 멈추겠지 싶기도 했고, 계속 계속 하고 있을리는 없을테니까. 사실은 딸꾹질은 나중에 멈춰도 괜찮으니 가시방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코로리는 아키라에게 팔을 뻗었다. 책을 넘기라는 듯 하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아."
별명은 하나만 남기는게 좋겠다 싶어서 고민스럽다. 햇님만 남기자니, 아키라가 착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하는게 아수라 남작이라는 별명을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합치기로 한다. 이제부터 햇님 남작 씨야.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그 말에 아키라는 아무런 말 없이 코로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뭔가 상당히 필사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은 기분 탓일까. 아니. 뭐,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라는 아무런 말 없이 뒷통수를 긁적이려고 했으나 양 손으로 책을 안고 있으니 당연히 긁적이진 못하고 괜히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아. 네. 저도 딱히 이자요이 씨를 싫어하진 않지만.. 그 정도로 이자요이 씨의 지금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시죠? 마치 저에게 뭐라도 숨기는 것 같잖아요. 뭔가를 숨긴다면 역시 그 정도 뿐이고..."
일단 자신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떠나서 그 정도로 그녀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아키라는 우선 그녀에게 책을 넘겼다. 결제를 해준다고 하니까 일단 결제는 하긴 해야 할테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 자신이 다 알고 있는 거 아니냐는 물음에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그는 가만히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뭘 안다는 말인가요?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저는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겠다고요."
오히려 이쪽이 답답하다는 듯이 그는 표정을 가만히 찡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고, 정확히는 자신과 관련된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아키라의 눈동자가 살며시 도끼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대체 제가 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너무 궁금해지는데... 어때요? 이자요이 씨. 화 안 낼테니까 저에게 숨기는 것이 뭔지 얘기해보지 않을래요? 아. 진짜로 화 안낼게요. 아까 저 욕하는 거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으니까 그다지 민감한 사안도 아닐 것 같은데."
그냥 돌아가려고 해도 이런 기분으로는 돌아가는 것이 상당히 찝찝할 뿐이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겠다. 그녀가 뭘 숨기는지 확실히 알고 싶다고 생각하며 아키라는 눈싸움하듯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츄러스를 먹으면서 코세이가 안내를 해주면 감사하다는 긍정의 답변이 나오자 렌은 고개를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아무래도 츄러스를 얻어먹은 값은 할 수 있을 듯 했다. 게다가 자신도 조금 심심했던 터라 코세이의 긍정이 기꺼웠다.
"네. 그래도 물에 빠지는 사람보다는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같은 것을 주로 감시하는 역할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막 구조물에 올라간다거나 파도풀장에 구명조끼 없이 들어간다거나 하는 것 말이에요."
렌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어느새 츄러스는 줄어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렌은 본격적으로 간략한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사람이 엄청 많아서 워터 슬라이드는 줄이 너무 길어서 무리이실 것 같고.... 아, 대신 근처에 해적선 모양의 놀이 시설이 있는데 거기도 미끄럼틀이 있기는 하거든요. 생각보다 꽤 길어서 재미있어요."
렌이 어린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성인들도 이용하게끔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보통 워터파크에 가면 있는 물이 쏟아지는 장치도 있는데 그게 설치되어 있어서 보통 내기를 한 뒤에 그 앞에 서서 물벼락 맞기도 하고. 같이 일하는 직원 형들이랑도 그런 내기를 종종 하곤 했다.
"아니면 유수풀에서 둥둥 떠다니는 것도 괜찮고요. 사람이 많아도 어차피 튜브를 타고 떠다니는 거라 조금 덜 답답하기도 하고요."
느긋하게 튜브를 타고 출렁이는 유수풀에 몸을 맡기고 한바퀴 떠가다보면 그것도 꽤나 재미있으니까. 파도풀장도 좋지만 아무래도 우미노카리 참여도 안한다고 하였는데 굳이 파도풀장으로 가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