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는 들릴듯 말듯 작게 말했다. 기억하겠다는 말에도, 혹시 되묻는 말이 있었다면 그 말에도 스즈는 어물쩡 넘어가며 말을 흩뿌렸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던가 잊어도 좋다던가 따위의 말로. 스즈는 자신의 모습을 눈에 잘 담으라고 이야기했지만 동시에 스즈는 미즈미의 하나하나를 눈에 꾹꾹 눌러담고 있었다.
" 물... "
물이라. 스즈는 뭐가 또 맘에 안들었는지 꿍한 표정으로 미즈미를 바라보았다.
" 레이디의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은 최저야- "
말은 그렇게 했다만, 스즈는 물을 떠서 마시곤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친구들은 여기서 신과 같은 신성하고 영험한 기운을 느꼈다지만 스즈는 글쎄-라는 말로 방관했을 뿐이다. 천천히 다가가서 미즈미의 어깨를 톡톡 친 스즈는 여전히 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 지금은 물을 보지말고 날 봐줘 "
불이 들어와 어둡지는 않은 동굴이다. 전기로 연결된 불이지만 물과 만나면 조금은 신비하고 신성한 분위길지도 모른다. 스즈는 미즈미의 손을 잡고 위치를 조정해 자신의 등 뒤로 일렁이는 물과 예쁜 조명이 자신을 비추게끔, 그리고 그 모습이 온전히 보이게 섰다.
“글쎄요. 의외로 얼마안되어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꽃은 언제나 피는 법이니까요. 게다가 오늘 만난 것을 생각해보면 우연도 어느정도는 믿을만하지 않나요?”
그녀 역시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매일같이 학교 안을 방황하다 누군가와 만난다던가 하는 것도 가능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그렇게 다닐 시간은 그녀에게도 소년에게도 없었다. 구태여 만나려 한다면 역시 직접 가야하는 것인데 일부러 서로를 만나러 가기에는 그다지 연이 있는 것 역시 아니었다. 봄과 여름 지나가다 만나게 된 들꽃 같은 사이니까.
“후후 어떨까요. 이곳에 와서야 그렇게 불리고 있는 거지만 그런 식으로 불리는 건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요. 하지만 집안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답니다. 그야, 모두 카미야니까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하물며 친척들도 성이 같으니까 부를 수 없답니다. 무엇보다, 같은 뿌리에서 자란 가지니까요.”
산길을 완전히 내려오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길이 긴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주변의 풍경에 넋이 나가버렸다고 하는 편이 올겠지만 그래도 이런 것은 마음에 든다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꽃의 신이라서 그런 것일까. 자연이 그대로 있는 모습은 어쩐지 마음 한구석을 시리게 만들고 있는 듯 했다.
“어머나, 비유가 아니었는데. 아하핫, 핫하핫!!! 그렇게 말한다면 키라키라짱은 역시 거울에 비친 것이 타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부류의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그렇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저기 저 멋진 사람은 대체 누굴까-하고 그렇게 생각해버려요. 키라키라짱은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있답니다. 두 번 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자신의 일에 흥미를 가진 사람은, 믿을 수 있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여름이었지만 여전히 밤 바람은 서늘했다. 밤의 해변가에는 신발을 벗고 노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물보라가 일어날 정도로 격렬한 모습은 없었다. 마사히로는 그 사람들을 따르듯 어떠했냐 물어보는 소년을 지나쳐 게다를 벗고는 발 끝을 바닷가에 담그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이 소년을 바라보았다.
“에에, 제법 만족스러웠답니다.”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자신이 늦게 왔기 때문이니까. 그다지 그 이외에는 무어라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다고 하나 그렇게 평을 내버리는 그녀의 말에 대해서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생각했다. 거울에 비친 것이 타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부류의 사람.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을 보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말 없이 발을 바닷가에 담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는 괜히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신비한 사람이었다. 건방지지만 그러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치 이 세상에 속해있지 않은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참으로 신기한 사람이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이를 본 적이 없거늘. 정말 세상은 넓고 사람이 많다는 생각으로 결론지으며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웠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내년에도 여기에 있다면 첫 날에 꼭 돌아보세요. 더욱 아름답고 신비할테니까. 기회가 된다면, 제가 또 여기 어딘가에 있을테니, 가이드를 요청하셔도 좋고요."
물론 자신이 첫 날에 일을 안 한다는 가정하지만. 내년의 일정까지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내년에 그녀와 마주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내년이면 자신은 가미즈미 고등학교를 졸업할테고 그녀는 그래봐야 2학년이었다. 상대 쪽에서 자신의 얼굴이나 키라키라짱이라는 별명을 잊어버리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자고로 졸업생들은 그렇게 하나하나 잊혀가는 것이기에.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표정에 절로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또 볼 수 있으면 봐요. 자신감 넘치는 멋진 꽃 님."
그녀가 자신을 칭한 단어. 비유가 아니라고 하니 그는 장난끼를 살짝 담아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불렀다. 이렇게 부른다고 한들 반응 하나 하지 않을 것 같지만 뭐 어떻겠는가. 가끔은 이런 것도 좋은 것을.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달빛을 뒤로 하며, 처음에 자신이 있었던 곳으로 돌아갔다. 노점이나 돌아보며 조용히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원래 저걸로 막레를 받아볼까 했지만.. '거울'이라는 것을 보고 그냥 막레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막레를 드릴게요! 수고했어요!
나는 샘물을 보기 위해 웅크린 몸을 쭉 펴고 고개를 틀었다. 뭐가 초조한지 밝지만은 않은 얼굴로, 그 영험한 곳에 우두커니 너가 서있다. 나는 너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과연 그 좋아가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친구들에게 좋다라는 말은 신물나게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는 거냐며 마음 졸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떨지 나는 모른다.
"있죠, 스즈.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라서... 좋아, 라는 건 사귀자는 의미인가요, 아니면 친구로서 좋다는 의미인가요?"
나는 다소곳 손을 모으고 손끝끼리 엉켜 놓아 꼼지락거리고 있었는데, 할 말을 정리하느라 그렇다. 교제, 좋다. 결혼, 좋다. 나는 인간과 섞여서 뭐든 하면 좋겠다,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다만 내가 원한 건 그뿐만이 아닌지라... 막상 목전에 놓인 상황에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신생이었다. 일단 사귀어 놓으면 사랑이라는 감정도 깨닫고 인간을 이해할 날이 오리라 생각해두었으나... 나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고, 그건 너에게도 미안해지는 일이다. 내가 인간들에게 무정하나 지켜야할 도리가 무엇인지 정도는 안다.
나는 생각을 갈무리하고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샘 안에는 사람이 한 둘만 있는게 아니라서, 말을 조심하게 된다. 고르고 골라 나는 너에게 고한다.
"내가... 감정에 무뎌. 일정 수준 기쁘고, 슬픈 건 느낄 수 있지만 복에 겨운 행복이 뭔지, 애가 타들어가는 고통과 슬픔이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난 어렸을 적에 못 배워서, 모조리 덮어버리고 잠들어 버려서 전부 놓쳐버렸거든."
나는 표정을 잃고 무뚝뚝해져서는 차갑고 굳은 손을 뻗었다. 너를 끌어 내 앞에 앉히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잘 모아서 비녀로 모아둔 머리카락덕에 내가 고개를 숙여도 얼굴이 훤히 보였을 것이다. 그 얼굴에 감정이 거의 담기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 정도는 거울 없는 나도 안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사실 잘 몰라. 같이 있어서 기쁘고 즐거운 건 있지만 그게 사랑이라 일컫을 정도로 특출나거나 특별한 감정이 아닌 건 알아."
나는 뱀처럼 기어가는 시선을 위로 하고는, 너를 마주보았다.
"그러니까 잘 설명해줘야해. 네가 말하는 좋아는 어떤 좋아야? 내가 너에게 보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인간으로 살면서 줄곧 속이며 살았지만, 지금은 못하겠어. 난 네게 그런 못된 짓하기 싫단 말이야. 나는 너에게 작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