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을 타는 것이라고 토와는 생각하지 않겠지만 미즈미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푸른 등불 가지고 그렇게 하면 차라리 교복을 입은 가미즈미 고교생들 전부랑 같은 교복이니까 썸을 탄다고 하실 거냐고 물을 것 같은데. 미즈미는 그..그렇네! 라면서 받아들일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슬픈 일도 기쁜 일도 모두 날려보내는 식이지요." 느리게 말하면서 푸른 등불을 들어올려 빛에 비춰봅니다. 소원을 적는 것을 봅니다. 뭘 적는지 궁금해하다가... 사랑?
"사랑과 조각...?" 사랑과 조각? 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뭔가. 조각같은 걸 원하시는 건가요? 라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그러다가 오타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peace에요" 평화를 의도하신 거라면 말이지요. 라고 가볍게 말하고는 종이배와 등불을 조립해봅니다. 종이배마저도 화륵 태워버리고 가라앉아버리겠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왜 하느냐 하면 요즘 젊은 인간들 사이에서는 게임은 필수적인 취미고, 그의 신생에서 이렇게까지 못하는 일이 드물어 그런다. 게임을 재미로 즐기는 것이 아닌 의무적인 정진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렇게 살면 사는 것이 팍팍하고 재미가 없다지만 어떡하겠나. 그는 원래 이렇게 태어난 것을. 그는 지금껏 재미없이도 잘 살았다. 한창 집중해서 스테이지를 헤쳐가던 중 등 뒤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진다. 뒤돌지 않고, 두 눈으로 보지 않고, 다른 종류의 것으로 '보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기운이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손의 반응속도가 느려져서 쿠키가 구멍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렇지만 오늘은 구멍 구출 쿠폰이 무료라 곧바로 그것을 사용해서 재도전한다. 그러나 그렇게 다시 달리기 시작한 쿠키는 얼마 가지 않아 시무룩하게 쓰러져버렸다. 순전히 실력 문제로 장애물에 박아버린 것이다. 점수는, 아직 최고점을 갱신하지 못했다.
그도 덩달아 시무룩해진 얼굴로 화면에서 눈을 뗀다. 눈길을 돌려 바라보는 대신 고개 들어 제 뒤에 선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한다.
"다른 이들은 감질이 나서 한다는데, 저는 다만 그런 감각은 몰라 실력이 늘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으음, 느낌이 익숙지 않기에 그렇겠거니 짐작했지만 면식이 있는 신은 아니다. 다만 학교에서라면 스쳐가며 본 적은 한 번쯤 있다. 60여명 정도의 인원이 같은 층에 있으니 한 번도 보지 못하기는 힘들다. "성함이 어떻게 되셨죠, 분명 C반이셨던 것 같은데." 슬쩍 지나가며 본 기억을 더듬어, 손가락 하나를 척 들고 추리라도 하듯 눈을 가늘게 한다. 게임은 아직 완전히 종료하지 않아 점수가 뜬 화면이 아직까지 번쩍번쩍 요란하다. 그가 그 화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요. 하지만 언젠가 제가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니. 미리 말해두는데 여기선 안 보여줄 거예요. 아직은 좀 부족해서."
나중에 확인한 것이었으나 동작에 아주 살짝 실수가 섞여있었기에 얼마나 속으로 분해했던가. 그렇기에 아직은 좀 더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내년 이 시기에는 꼭 제대로 마스터를 하겠다고 그는 마음 먹었다. 물론 그녀가 그것을 볼 지는 알 수 없었으나, 만약 본다고 한다면 조금 더 연습하고 싶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인식에 있어서 그녀는 눈이 높았으며, 그런 그녀에게 좋은 평을 받으면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좋은 평가가 될테니까.
"그건 단순히 요비스테를 하지 말라는 의미 아닌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요비스테지. 별칭을 부르라는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저도 요비스테는 안하고 있으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요. 가족이나 친척을 제외하면 다 성으로 부르고."
이를테면 카미야 씨처럼. 물론 딱 한 시기. 요비스테로 부른 이들이 있긴 했으나, 그것도 옛 이야기였다. 아니. 그래봐야 3~4년 전 이야기일까. 아무튼 자신의 말에 대한 대답을 들으며 아키라는 입을 꾹 닫았다. 조금의 과대평가가 아닌가 생각을 하나 들어서 기분 나쁜 말들은 아니었다. 이내 자신에게 전해진 진홍색 꽃. 하지만 이름이 모를 그 꽃을 바라보면서 아키라는 대체 언제 그녀가 저런 꽃을 쥐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없지 않았나? 혹시 평소에 꽃 여러 송이를 가지고 다니나? 그런 생각을 잠시 하지만 적어도 마른 것이 아닌 것을 보면 금방 꺾은 것 같진 않다고 생각하며 그는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들려오는 말에 아키라는 안경 너머로 두 눈동자를 깜빡거렸다.
"웃음..이라. 생각도 못한 것을 거론하시네요. 하지만 당신과 있을 때만 그런 것은 아니에요. 물론 지금은 웃고 있지 않지만... 후후. 그래요. 생각도 못한 말이었는걸요. 그거."
설마 웃음을 거론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허나 그녀에게만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듯이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고 이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야 당연히 자신도 사람이고 웃을 수 있으니까. 꽤 재밌는 말이기도 하며, 생각도 못한 말에 괜히 웃음소리를 내며 그는 근처까지 날아온 반딧불이를 손바닥 위에 태웠고 가만히 그 불빛을 바라보다 하늘 위로 날려보냈다.
"하지만 성격이 그렇게 막 호탕하게 웃는 편은 아니어서. 그래도 웃긴 웃거든요. 저도. 아. 맞아. 잊고 있었네. 사실은 수학여행에 갔을 때 호타루마츠리를 혹시 같이 보는 이가 있으면 하나 선물해줄까 싶어서 따로 산 것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일에 집중해버려서 그냥 학생회 멤버 중 하나에게 줄까 싶었지만... 뭐 이것도 인연이겠죠. 받고 싶으면 받고, 필요없으면 거절하시고. 당신과 함께 갈 것을 예상했다면 맞춤 선물로 꽃과 관련된 뭔가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내 그는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비 모양의 장신구가 달려있는 비즈 팔찌를 하나 꺼냈다. 꽤 고운 재료로 만들었는지 빛이 아름답게 반사되는 것이 적어도 싸구려 상품은 아니었으리라.
"받을래요? 그냥 같이 여기까지 돌아줬으니 주는 선물이라는 느낌이긴 한데."
/그리고 수학여행때 샀던 무언가는 이거! 사실 파트너가 확실했다면 맞춤이었겠지만.. 누가 될지 몰랐기에 그냥 적당히 공용선물이라는 것으로. 일단 처음이 마사히로주였으니까 마사히로에게 프레젠트!
나는 알지 못하는 언어들을 눈으로 훑으며 너에게 묻는다. 이 인간은 공부도 잘했는데 그 때문인지 가끔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하고는 했다.
"앗."
나는 잠시 굳어있다가 급하게 글씨를 고쳐 썼다. i를 찍찍 긋고, 에이씨, 하필이면 e 위치도 애매하다. i를 검정색으로 동그랗게 없애고 e 옆에 a를 끼워넣는다. 예쁘게 쓴 글씨에 무색하게 금세 볼품없어지고 만 나의 종이배이다. ...무슨 상관이야. 배가 잘 뜨고 등불이 잘 타기만 하면 되지.
"저, 그래도 love는 잘 쓰지 않았어요? 영어 늘은 것 같죠?"
무엇보다도 나는 긍정적이고 쾌활한 신이라 틀린 것보다는 맞은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나는 네가 나에게 영어가 늘었다, 호응해주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려 다시 한 번 물었다.
"자, 이제 가봅시다. 어디에서 띄워볼까요?"
나는 펜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등불과 종이배를 잘 챙겨서 훌훌 떠났다. 바로 앞이 바다였으니까 걷는데에는 멀리 걸리지도 않는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노소부정이며. 이역의 곳에서 돌아온 것. 기쁘고 즐거움만이 가득하길. 육신에서 화한 단단함으로 기억할 것이니." 그 색이 무척이나 고와 위안을 얻었구나. 정도의 말이네요. 라고 말하는데. 그게 진심인지 거짓인지 모를 표정입니다. 평온하고도 부드럽군요. 영어를 고치는 건... 그래도 고치려는 의지는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글쎄요... 잘 했다고 칭찬해주길 바라는 건가요?" 저는 보통 이런 책을 봐서요... 라고 말하면서 크로스백에서 영어 원서를 보여주는군요. 진짜 원서야. 일본어라고는 단 한마디도 없어!
"적어도 한페이지정도는 무리없이 읽는다면... 잘 했다고 말해다릴 순 있어요." 영문학을 적절히 해삭하고 그 시대의 연관점을 찾는 등도 하는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그런 것도 그러니.
"그래도 러브라도 쓸 수 있으시니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고는 이제 슬슬 띄울 시간이네요. 너무 늦어지면 밤바다가 애매하고. 낮에 띄우면 먼바다로 잘 나가질 않으니까요. 라고 말하는 토와입니다.
너는 열심히 게임중인데... 참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게임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는데도 그렇게 느꼈을 정도인데 너 스스로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약간의 애잔한 마음을 담아 죽어서 쓰러져버린 쿠키를 지켜보다가, 너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응. 실력은 왜 늘리고 싶은데? 좋아하는 인간이 게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대?"
나는 인간들의 게임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흥미 느끼는 부분은 그 외의 것으로 게임을 하는 인간들의 표정 변화였는데, 그들은 기뻐하다가도 절망하고 슬퍼하고 그러다가 금세 즐거워했다. 나는 옆에서 턱을 괴고 게임을 구경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지켜보면 되는 일이었다. 실눈은 이래서 참 편하다. 아무튼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게임을 해본 적이 몇 없었다. 때문에 게임 역시 잘하는지 못하는 지 모른다.
"사이카와 미즈미. C반 맞아. 너어는..."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너를 지켜보다, 아는 척을 좀 해보려 하는데, 바로 옆반에서 느껴지던 신의 흔적이 너의 것이었나 싶다. 이곳에서 신은 흔한 존재였으나, 그렇다고 동질감마저 잃을 정도는 아니다. "B반에 누구?" 나는 느리게 물었다. 신이랑 통성명은 이번이 두번째인 것 같다. 겸사겸사 안면을 트면 후에 좋을터이니 이참에 통성명도 마치고 친분도 쌓아야겠다. 그간 너무 혼자만 살아오지 않았던가.
게임을 잘하냐는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보이지는 않겠지만 눈을 왼쪽 위로 한 번, 오른쪽 아래로 한 번 굴렸으며 내 손가락 끝을 꿈틀거려봤다. 아까 말했듯이 나는 내 게임 실력에 대해 확신이 없지만... 내 눈에 들어온 너의 점수는 지금까지 내가 본 점수 중 가장 낮아서 뭘 해도 너보다는 잘할 거라는 맥 없는 확신이 든다.
"응. 잘해. 줘봐, 내가 보여줄게."
나는 마치 처음 만난 친구에게 자신을 뽐내기 위해 없는 말 지어내는 유치원생처럼 굴고 있다. 우리 아빠는 총리거든 어쩌고... 거리는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쇠 일관해버리는 것이 나의 악습이었다.
.dice 1 100. = 68 1~30 : 완전 못함 시작하자마자 점프도 못하고 죽음 30~70 : 못함 마이리랑 비슷하게 죽음 70~90 : 의외로 선방 잘하진 못해도 그럭저럭 했음 90-100 : 놀랍게도 너무 잘한 나머지 신기록 달성
나는 옛말에는 어느정도 식견이 있어 말 해석이 어렵지는 않았다. 감히 해석해보자면, 죽은 자들을, 죽어가는 자들을 위로하고자 한 말인가 싶은데 너의 표정은 흔들림도 그늘도 없구나. 내가 아는 인간들은 대부분 죽음에 초연하지 못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기울이다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그냥 복을 빌어주는 그런 것들인가 싶다. 또래답지 못하지만 나이에 비해 영특한 것이 티가 나나보다 하고 넘어간다.
"칭찬을-"
말을 이으려는데 마침 크로스백에 영어 원서가 나온다. 와, 단언하건데 내 주변 인간들 중에 저런 걸 들고다니는 사람은 몇 없다. 내 나이 또래들이라면 영어 독해 100제, 그래머 완전 정복, 이런 것들이나 들고 다닌단 말이다. 특히 내가 같이 어울리는 무리들은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그렇지만 그게 내가 칭찬 받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해주시면 좋죠!"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음.... 줘보세요."
나는 손을 내밀어 영어 원서를 보고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침음도 흘려보고 눈썹도 이리저리 움직여본 결과...
"종이! 랑... 어... 영어! 내요. 여기 페이지도 있고... 48페이지..."
이정도면 많이 읽었다 싶다. 너에게 냉큼 책을 돌려준다. 나는 저런 기이한 것과 다시는 상종하지 않기로 했다. 원래 신은 공부 안해도 된다.
어느새 도착한 바닷가에 해풍에 파도가 철퍽인다. 나는 몸을 쪼그려 물가로 가서 그 짠내와 맹렬한 물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나는 바다와 사이가 썩 좋지 않은데, 내 말을 잘 듣지도 않을 뿐더러 들어갔다 나오면 온 몸에 소금기로 가득 해지는 것도 싫었다. 나는 종이배를 그 위에 올려놓고는 가만히 저 멀리 흘러가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