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제가 직접 님의 인생이 불행해지게 만든 건 아닙니다? 저한테 따지셔도 전 당신 인생 망할 거라는 소식 '전해주는' 역이고? 저한테 빌어도 저는 못 바꿔주거든요... 뭐 그래도 목숨은 붙어 있잖습니까... 살아는 있으니까 그나마 복되지 않나요? 그러니까 그 남은 행운이라도 붙잡고 버티든지요🤔"
>>36 렌뭉치 강와지냐고~~!!!!! 너무너무 귀엽다..... 주변에 물고기 있는 것도 렌다워...~
아까의 이야기냐는 말에 요조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아까 그렇게 말한 이후로 신경 안 쓰고 싶었지만, 외면은 오히려 가시가 되어 그 부분을 콕콕 건드린다. 그러면서 하나둘, 자신이 보았던 것과 들은 것, 느낀 것들을 그것에 엮어 어느새 크기를 한가득 부풀려, 기어코 다시 꺼내게 만든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물음표에서 물음표로 이어지는 코세이의 얘기를 그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적막한 숲길 속 간간히 들려오는 사람들과 축제의 소리는 멀고, 바로 옆 목소리는 선명하다. 요조라는 조용히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둠 속에 더 검은 눈은 차분하고 떨림 하나 없다. 짤막한 얘기가 지나고, 마주 잡은 코세이의 손에 힘이 들어가도, 요조라는 말이 없었다. 별이 잘 보일거란 말에 한번씩 위를 올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길에도 끝은 있어서, 갈수록 슬슬 반딧불이 줄고 어둠도 밝아진다. 길 끝에는 석상이 있는 신사가 있어, 들르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그 근처에 가까워지자 요조라는 걸음을 틀어 신사 쪽으로 향한다. 소원이라도 빌려고 그러나, 싶겠지만 요조라는 그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싶었던 듯, 신사 앞이 아닌 조금 떨어진 곳에 섰다. 고개를 들면 나무들 사이로 동그랗게 하늘이 보이고 그 안 가득 반짝이는 별들이 비추는 자리다. 잠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던 요조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군가와, 헤어진다는 건... 누군가와, 새로이, 혹은 다시, 만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흘러가는 시간이, 있으면, 다가오는 시간도, 있는, 법이니까요..."
올곧게 하늘을 향한 요조라의 눈엔 별들이 가득 담긴다. 이름 그대로 밤하늘 같은 눈이다. 별을 담아야만 완성되는 그런 눈이었다.
"신이든, 인간이든, 만남과, 헤어짐이, 같다면... 그걸, 두려워하는 이도, 있을 수, 있죠... 누구라도, 겁쟁이가, 될 거에요... 그렇지만... 그걸, 이유로... 자신의 마음도, 상대의 마음도, 포기한다면... 아니,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말, 찰나의 순간, 일지언정... 한 계절, 한 시기, 뿐이라도... 그 마음은, 기분은, 소중하니까..."
요조라는 숨을 을이키며 고개를 내렸다. 잠시나마 밤하늘이 되었던 눈은 다시 캄캄한 검은 눈으로 돌아와 힐끔, 코세이를 본다. 그리고 어깨를 살짝 으쓱이곤 그렇게 말했다.
"뭐, 어떻게, 할지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 그냥 그렇다고요, 제 생각은..."
거기까지 말하고 고개를 슬그머니 돌리는 모습이 어딘가 멋쩍은 듯 하다. 안 어울리는 소리를 했네, 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요조라는 더 말하지 않고 반딧불 석상을 보거나 하늘을 다시 보거나 하는 둥 괜히 딴청을 부렸다.
이 시기에만 공개가 되는 샘을 지키는 파수꾼은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찾아오는 이들을 조용히 바라봤다. 아는 이의 얼굴도 있고 모르는 이의 얼굴도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아는 이의 얼굴이 절대다수였지만. 사람들 중에선 샘에 접근하는 이도 있고, 접근하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는 이도 있고 물을 마시는 이도 있었으며, 손을 씻는 이도 있었고, 발을 씻으려하는 이들부터 시작해서 아예 물통을 가지고 와서 가득 가져가려는 이도 있었다. 물론 그것만은 아키라도 어느 정도 막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다 사람들이 오지 않는 조용한 시간. 그 늦은 시간이 되어버리고 나서야 아키라는 천천히 두 팔을 뻗어 기지개를 쭈욱 켜며 뻣뻣한 몸을 풀었다. 사람들이 오면 그 자리를 고수하고 필요에 따라선 안내를 하거나 제지를 해야만 했기에 어쩌면 오늘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동굴 안에 처박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몸이 편할래야 편할 수 없었다. 물론 교대를 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아키라는 굳이 교대를 하진 않았다. 그냥 길게 하루 정도는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익히고 실전으로서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그 때문에 바다에 떠오르는 등불은 보지 못하겠지만 그깟 등불 따위 내년에 보면 될 일이었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직접 띄울 수도 있었다. 물론 첫날에 볼 수 있는 그 유일한 풍경과는 천지차이일 정도로 소소하겠지만.
아무런 말 없이 두 손으로 물을 뜨니 조금의 더러움 없이 맑고 깨끗했다. 그야말로 시미즈(靑水)였다. 너무나 맑고 투명하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어디까지 뻗어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너무나 크고 거대한 샘이었다. 누군가는 호수로 볼지도 모르며, 누군가는 신의 기적이라고도 부를지도 모르는 그 물가를 바라보니 자연히 그의 얼굴이 비쳤다.
가볍게 손을 뻗어 휘저어보나 투명한 거울은 그 형태를 깨뜨리는 일 없이 그 모든 것을 흐트러짐없이 조용히 비췄다. 숨소리만 작게 들리는 동굴 속에서 첨벙이는 소리가 왜 그리도 크게 울리는지. 첨벙첨벙. 손을 넣고 휘젓는 것이 그야말로 별 의미 없는 움직임이었다. 허나 그런 의미없는 움직임이라도 좋았다. 그저 지금은 이 신성한 샘과 맞닿고 싶었으니까. 전승에 따르면 이 샘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이며 이 가미즈미를 지탱하는 생명의 근원 그 자체였다. 당연히 아키라는 전승 그 자체를 그대로 믿진 않았다. 신은 존재할지도 모르나 단 한 번도 자신의 앞에 나타난 적이 없고, 시미즈 가문에 직접적으로 그 존재를 증명한 적도 없었으니까. 딱히 집안이 신사를 모시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근처에 있는 신사이니 어느 정도 관리를 하고 돌보는 것 정도였다. 땅을 버리지 않고 살리려고 했고 그 덕에 사명을 짊어지게 된 가문이 시미즈라는 말을 주변에 굳이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가르쳐달라고 하면 가르쳐줄 수는 있으나 굳이 자신이 먼저 떠들 이유가 없었을 뿐더러 그저 말로만 전해지는 전승 따위로 시미즈 가문의 가치를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얄팍한 자존심에 지나지 않으나 어쩌겠는가. 자신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을. 허나 그럼에도 그의 눈에는 이 샘은 상당히 신비롭게 비쳤다. 마치 이렇게 살짝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신이랑 접촉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착각을 절로 할 정도로.
약하게 바람을 부니 비친 얼굴이 사르르 깨져 흩어졌으나 또 다시 빠르게 뭉쳐 거울의 형태를 되찾았다. 그 모습 속에 비친 표정은 그야말로 무심하면서도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허나 그 시선은 오로지 물을 향해 있었고 그는 그 샘 속에 조심스럽게 손을 집어넣었다가 빼냈다. 차가우면서도 시원했다. 그 어떤 더러운 냄새도 나지 않고, 더러운 오염물질이 조금도 손에 묻지 않았다. 그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라고 부르기 적합한, 손에 소량 남아있는 물방울을 바라보다 그는 그것을 가볍게 털어냈다.
"신이 정말로 있다고 한다면..."
말 끝을 다 잇지 않고 그는 말 끝을 살며시 흐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한건지 알 수 있는 이는 아키라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샘으로 향했으나 두 발은 처음에 있던 장소로 그를 보냈다. 조금 더 이곳에서 저 샘을 보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누군가가 없고 혼자이기에, 샘을 좀 더 조용히 구경할 수 있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시미즈 아키라가 아니라. 그저 아키라로서.
고등학교 3학년, 18살 소년은 조용히 생각했다. 이것저것. 다양한 것들을. 작고 소소할지도 모르나, 내심에 살짝 품고 있는 작은 꿈. 그리고 소원을 가슴 속에 묻어두다 샘에 살며시 빠뜨리며.
/별 내용은 없고 그냥 혼자서 조용히 샘을 구경하는 느낌이라는 것으로! 전용석이에요. 전용석!
일찍 나왔네 라는 말에 스즈는 무릎을 톡톡 치며 일어섰다. 자신의 몇 몇 친구들은 이 동굴에 풍기는 신성한 기운이 신기하다던가 분위기가 신비로워서 압도된다던가 따위의 말을 했지만 스즈에게 있어서는 그냥 조금 신기한 동굴일 뿐이었다. 신기라던가, 영험한 것이라던가 하는 것도 결국은 믿는 사람에게나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니까. 스즈는 뒤를 돌아 조금은 수줍게 미소지었다가도 금새 '요~' 하고 손을 들어 보였다.
" 으응- 레이디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은 최저야! 나는 이제 집에 갈래. 따라오지마. "
잠깐동안 눈을 마주보던 스즈는 그렇게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는 척 하다가 금세 미소를 지으면서 '라는건 농담~' 하고 옆 자리를 차지했다. 예쁘게 꾸미고 왔다는 말에 스즈는 그래? 하고 두 팔을 살짝 들어서 후리소데를 보여주었고 잠깐 손을 들어 앞머리를 정리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이 옷 한 벌을 고르는데만 30분이 걸렸고 화장과 머리를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생각 이상으로 길었던 데다가 향수를 고르는 데만도 30분이 넘게 걸렸다.
" 응- 갈까- "
팔짱을 껴오는 손을 조금은 꽉 감싸안고 슬며시 머리를 기대었다. 이 작은 행동 하나하나도 계산된 일이다. 너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이렇게 예쁘게 꾸미고 나왔으니 제대로 봐달라는 마음, 너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향수 하나도 몇 번이나 고민하고 골랐으니 이 향을 더 맡아달라는 마음. 머릿속에 잘 각인시키고 잘 기억해달라는 마음. 차가운 바람이 밀려나오자 스즈는 눈을 살짝 찡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 미쨩도 예쁘게 꾸몄네! 머리 올린것도 예쁘다. 에, 팔찌 뭐야? 예쁘다! 이거 진짜 예쁘네! 에, 야베- 평소보다 더 예쁜 것 같아~ 스즈랑 데이트 한다니까 꾸미고 온거지? 에~ 멋있어~ "
딱 그 나이대 아이들처럼 말했다. 그렇게 꺅꺅거리면서 말하는 것이 스즈다운 것. 언젠가부터 이런 말투가 입에 굳어버렸다. 이제 진짜로 발걸음을 옮길 시간이지. 스즈는 팔짱을 조금 더 꽉 끼곤 이히히히~ 하고 기분 좋은듯, 조금은 장난기 서린 웃음을 지으면서 발걸음을 맞춰 동굴 안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 내가 먼저 데이트 신청하긴 했지만 그래도 잘 에스코트 해줘아한다? 레이디가 먼저 용기내서 데이트 신청 했으면 잘 받아주는게 멋있는 거라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