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느려진 디스포를 보며 쾌재를 불렀다. 비록 남이 보며 기절할 거 같은 모양새지만 죽지 않았으면 됐다. 저렇게 느려졌다면 여기로 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조금이라도 됐을 것이다. 목적은 구출이다. 이왕 왔는데 구출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건 너무 허무한 일이니까. 최대한 쓰러진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거리를 좁히려고 했다. 그 사이에 온 테온에게 인사를 했다.
"이 분들도 멀쩡하면 좋겠는데..."
테온에 결계에 쓰러진 사람들도 포함이 됐을까? 테온의 보호 아래 전투도 방어도 내려놓고 회복에 전념한다.
고민입니다. 루온씨의 말을 따를지, 아니면 얌전히 있을지. 다만, 저는 치료 인원이며, 직감이라고 할까요. 저 사람들의 상태는 영 좋지 못합니다.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금방, 수호씨가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루온씨에게 피를 다시 약간 주입하고 '혈속'을 발동시킵니다.
"가요!"
사실 알고 있습니다. 안전한 방법은 없습니다. 이 세상이 그렇죠 뭐. 만약 적이 다가온다면 드문드문 피안화를 피 째로 폭파시킵니다.
현우의 카운터 모드는 쓰러진 이들을 회수한뒤 조금 달렸을즈음 풀려버리고 말았다. 플러싱은 다른 이들을 감싸고 있기에 방어에 쓸 수 없는 상황. 인질들을 데려가자 순식간에 현우쪽으로 몰린 디스포들이 안개속에서 다수 보인다. 수많은 낫이 몰려온다. 그것을 버틸 수 있었던건 오로지 현우가 자신의 신체 자체를 강화하는 계열의 능력자였기 때문이고. 비슷하게나마 카운터 모드의 방어력을 흉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피가 튀기고 깊은 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테온은 로드가 있는곳까지 달려갔으나. 아무리 가속했어도 모든 공격은 피할 수 없었는지 잔상처가 남으면서야 도착했다. 슬슬 출혈량이 위험했지만 어쨌거나 결계가 쳐졌고. 테온의 행동이 봉인당하는 대가인지 상당한 방어력으로 디스포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결계덕에 로드는 회복에 전념할 수 있었고 어느새 상반신과 하반신이 붙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경이로운 회복력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꽤 많은 상처를 단시간에 회복하고 있었기에 체력 자체의 소모가 큰것도 느껴졌다. 그래도 이제 움직일 수 있을거 같았다. 쓰러진 이들은 현우가 데려갔으므로 현재 결계 안에는 둘이 전세낸 상태이다.
수호는 공중에서 혼령포로 주변의 디스포들을 쓸어버리려 했으나 아무래도 한방으로 모두 정리되지는 않았다. 하긴 그러면 이야기가 간단하겠지. 그럼에도 꽤 자리가 났기에 시우가 혈속으로 루온을 강화시키고. 피안화를 지속적으로 사용했으나 디스포들은 영리하게도 그들과 현우의 합류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게 루온의 지시에 따라 아슬아슬. 현우와 접촉에 성공했을때 현우는 이미 치명상이었지만. 그럼에도 살아있기에 시우의 능력으로 회복시킬 수 있을것이었다.
다만, 그것과 얼마 차이나지 않는 찰나의 순간에. 루온이 낚아채진게 보였지만 말이다. 피안화와, 블러디 툴마저 뚫고. 자신의 커버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던 좌표의 빈틈에서 디스포는 놀랍게도 루온을 공격한것도 아니고. 입으로 낚아채서 디스포 한 가운데에다가 던져놓았다. 정말이지 영악한 디스포였지만. 끌려가기 직전 루온의 눈빛은 딱히 자신을 구하지 말고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기에.
현실적으로 테온과 로드쪽도 소모가 심했고. 현우와 쓰러진 이들도 지금바로 치료하기 시작해도 바로 완치가 되는게 아니다. 심지어 쓰러진 이들이 바로 정신을 차릴지도 의문. 어쨌건 그들은 아직 디스포 무리의 한 가운데이다. 여기서 전투를 지속하면 곧 Os를 발동할 스테미너조차 남지 않을것이다.
- 린
"?"
화살을 용케 전부 회피한 린은, 그대로 돌진해서 소녀의 목을 잡아챌 수 있었다. 분명히 물리력은 있었으나 뭔가.. 사람을 잡은듯한 촉감은 아니었다. 아무튼간에 목을 잡힌 소녀의 형태지만 딱히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듯. 오히려 그 상태에서 린을 붙잡으려는듯 손을 움직였다.
테온에 결계에서 회복을 다하고, 이젠 움직일 수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구출도 다 했고 이제 도망가는 게 맞지만... 루온이 잡혀간 걸 그냥 두고 갈 수 없았다. 늘 상냥하게 대해준 루온을 두고 갈 바에는 죽는 게 낫다. 테온에 결계에서 빠져나가서 루온이 도망갈 시간이라도 벌고 싶었다.
분명 목이 손에 잡혔다. 사람의 목을 쥔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튼 잡아채긴 했다. 그다지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지만서도. 오히려 소녀의 형상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붙잡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잡히면 갑자기 펑 터진다거나. 분해된다거나 하는 걸까?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그럴만도 했다. 그럼 지금까지 피한 게 말짱 도루묵이 된다는 건데...
"잘 안 들림다. 발성 기관이 뭔가 눌려서 말이 잘 안 나오는 거 같진 않은데..."
시간이 없다든가, 기다리던 사람이냐고 묻는다던가 석연찮은 구석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뭔가 말을 계속 이어가려는 듯한 소녀의 모습에 지금 이대로 소녀를 던져 버리고 저 출구로 향할지 아닐지도 모르는 길로 뛰쳐나가는 게 옳은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에 리더가 했던 말도 묘하게 신경 쓰이고, 아니,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그녀는 뻗는 손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듯 보였다. 팔이 두 개였으면 목을 잡은 상태로 잡아챌 수 있을 텐데, 하필이면 손이 하나뿐이라서 그럴 수는 없었다. 목을 놓든지 해야 할 텐데, 딱히 목을 붙잡아도 달라지는 건 없고... 그럼 저 손에 안 닿는게 좋지 않을까? 대체 얼마나 고민을 하는 거야. 찰나의 순간에 죽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역시 다 들을 수 있으면 들어야겠슴다."
소녀의 목을 잡느라 떨어트린 쿠션을 떠올리는 듯 미소를 띄우는 그녀는 소녀의 목을 붙잡은 채 방향을 틀어 쿠션 쪽으로 던져 버리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