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붉어진 거 같은 렌을 보며 웃음을 꾹 참았다. 여기서 웃으면 거리가 아니라 마음까지 멀어질지도 모른다. 이래봬도 나름 눈치는 있었다. 잘 보지 않을 뿐이지. 아마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언급했을지도 모르지만, 로직 봄 클랜원에겐 더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래도 갑자기 안는 건 좀 자제해야겠네요. 다음에는 허락 받고 안을게요."
안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원래 지킬지 않을 말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격언도 있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기는 했지만 결국 로드의 욕심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안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직 봄 전체를 안아주고 싶었다. 언젠가 다 안아줄 수 있겠지만. 실없는 생각을 하며 렌과 눈을 맞췄다.
Os의 기술 중 하나가 맞다는 긍정에 Os의 세계란 어떻게 발전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Os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발전했으니 말이다. 그녀는 고작 탄환에 독을 실어 날릴 뿐이었던 자신의 Os가 독반지를 만든다던지 독사를 소환한다던지 하는 능력으로 바뀌게 될줄은 전혀 몰랐다.
"너는 어쩌다 이 클랜에 오게 된거니? 이 클랜엔 리더가 주워온 사람들이 꽤 있던데, 너도 그중에 하나니?"
허락을 받든 받지 않든 부끄러운 건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전에 안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아예 없는거야? 내 의견은? 혹시 내 반응이 재밌는 걸까? 평범한 반응은 아니기는 해도 재미있다고는 생각 안하는데-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렌은 낯가림이 심하고 사교성이 낮은 사람이 할 법한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로드가 눈을 맞춰오자 처음 봤을 때처럼 슬그머니 다른 방향으로 돌리긴 했지만.
"편식은 없어서 어지간한 건 다 먹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야채 위주의 건강식이지만 말입니다. 로드씨가 못드시는 걸 제외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노점으로 걸어가는 로드의 뒤를 따르며 렌은 성실하게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면서 대답했다. 노점은 멀지 않았을까.
"으음, 그렇지만 렌씨가 좋은걸요. 안으면 안 되나요? 그럼 어쩔 수 없지만...."안지 못하게 되면 슬프겠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니까. 순순히 받아들이는 거 같으면서도 금방 시무룩해졌다.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아마 신경 쓰이지 않게 하려는 거겠지만, 절로 아련해지는 눈빛을 거두진 못했다. 집을 나오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았기 때문인지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 탓에 좋은 것도 싫은 것도 곧장 표현하고 말았다.
"저는 못 먹는 건 없어요. 야채 위주라... 야채곱창도 파는 거 같긴 하던데."
이걸 야채라고 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하나씩 주문해놓고 다 먹어보고 싶었지만 둘이서 먹는 거니까 자제햐야할 거 같았다. 그러다 렌의 물음에 생각난듯 입을 열었다.
"축제하니까, 전에 홍등가에서 미니 이벤트를 했잖아요. 그때 렌씨 주변에 사람이 엄청 많던 거 같은데 그분들 번호 다 받으신 거예요?"
로드의 말에 렌은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면서 되물었다. 사교성이 없고 낯가림이 심한 타입이다보니 이렇게 거리감을 좁혀오는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다. 말을 고르느냐고 렌은 우물쭈물 땀이 식어가는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다가 겨우 말을 웅얼거릴 수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신다면.."
괜찮을지도라는 말까지는 못했다. 끝으로 갈수록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때문이다. 렌은 헛기침으로 기어들어간 목소리를 끄집어내서 자신의 물음에 답해주는 로드의 말에 대답해주려고 했다. 로드가 홍등가에서 있었던 축제 이벤트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꽤 침착해진 목소리로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콜록! 예상치 못한 질문에 렌은 마른 기침을 했다.
뭘 안마시고 있어서 다행일 정도였다.
"그....그그그그걸..그걸 봤....그그그건.."
겨우 잊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새빨갛게 된 얼굴로 더듬더듬 말하던 렌은 상처받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로드를 외면한 상태였다.
작은 목소리기는 했지만, 로드의 기준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표정이 밝아졌다. 오히려 방금 전보다 신이 나서는 헤실헤실 웃었다. 다른 사람과 있으면 저도 모르게 들뜨게 되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으니까. 이제 벌써 1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면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자꾸만 다가가게 되는 걸까. 잠시 생각에 빠졌다 기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정말 렌씨였군요. 멋졌어요!"
사람들 가운데 있던 렌을 떠올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명한 사람이 온 거라고 생각헸을지도 모른다. 제한시간이 20분 밖에 없었는데도 그렇게 사람을 모으다니! 존경까지 느껴지는 눈빛으로 렌을 보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지금처럼 크게 당황해서 굳어버리는 일은 줄어들테니까. 렌으로서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로드의 대답에 렌은 맞장구 대신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 마저도 뒤이은 반응에 멈춰버리고 말았지만.
"그-, 그그그건 그...어쩌다보니...정말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렌은 그날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괴성인지 신음인지, 알아듣기 힘든 정체불명의 소리를 내면서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버렸다. 누가 좀 살려줘. 아니 그냥 죽여줘. 부끄러워서 죽어버릴 것 같은데 도망쳐도 되나.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진짜 죽어버릴것 같아. 너무 부끄럽고 민망한 나머지 울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렌은 종종걸음으로 로드를 지나쳐서는 먼저 노점으로 향했을 것이다.
눈치가 보여서 일찍이 일자리를 찾아나섰으리라 짐작하며 레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무사히 성장하는건 지금으로선 어려운 일이지. 디스포가 출현하기 전에도 그랬지만.
"나? 글쎄... 정신을 차려보니 로직 봄이더구나."
뒷사람이 이유를 정하지 못해서라고는 말 못 한다. 대충 술에 취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로직 봄이었다... 정도면 되려나. 그녀는 식전빵으로 나온 바게트 조각을 입에 넣으며 상념에 잠겼다. 리더는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군. 사람을 잘 주워오는건 좋은 사람같지만 그 외엔 평가를 내리기 어렵단 말이야.
그다지 아프지도 않은 치료에다가 맛있는 쿠키와 우유라니, 정말 다친 곳을 치료하러 오는 곳이 맞는 걸까 싶은 장소. 그녀는 남은 쿠키 조각을 입에 털어넣으며 손에 쥐고 있던 쿠키를 먹어치웠다. 그리곤 바로 우유 한 모금. 캬, 마치 맥주를 마신 것처럼 감탄사가 나올 것만 같다. 역시 맛있어. 그동안 자신의 팔에 붙은 툴에 향한 건지, 아니면 자신의 팔에 향한 건지 잘 모르겠는 시우의 시선을 살피면서 웃음짓는다. 그렇게 빤히 볼 만한 일인가? 그녀의 질문에 조금 늦게 반응한 걸 보니 역시 완벽한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상태겠지, 당연한 게 아닐까. 수혈이 곧 치료라면 결국 한 사람에게 있어선 과다출혈이나 다름없지 않나?
"아항, 로드 양이 있었지 참."
그렇게 생각하니 이게 바로 무한동력인가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만한 이야기였다. 벌써부터 천천히지만 아물기 시작하는 듯한 상처를 보며 뺨에 났던 상처를 건드리던 그녀는 시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두 명 정도로는 괜찮다... 이런 소규모 클랜에서 두 명 이상이 큰 부상을 입어버리면 클랜 전체가 휘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잠시 미뤄둔다. 그리고 음.
"그 한두 명 중에 시우 씨가 있을 수도 있잖슴까?"
듣기로 이정도로 치료에 두각을 드러내는 OS를 지닌 사람은 흔하지는 않은 거 같은데, 그만큼 중요한 존재겠지. 로직 봄의 사람들에게도, 로직 봄을 노리는 사람들에게도. 뭐 정보가 쉽게 새어나가는 건 흔한 일은 아닌 듯하니 괜한 걱정이다 싶기도 하지만. 애초에 걱정하는 게 맞나? 어느새 떨어진 툴을 회수하는 시우에게서 시선을 옮겨 툴이 붙었던 팔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방금 한 말은 기억에 남겨두지 않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시우 씨, 수혈 말고 다른 치료법도 아심까?"
다른 치료방법이 그다지 필요없어보일 정도로 유용한 OS임에는 틀림없다만,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의무실에 머무르는 건 어떨까. 그녀는 무슨 의미가 담긴건지 알아보기 어려운, 그러니까 별 의미 없는 듯한 미소를 띄우며 너덜거리는 옷소매를 만지작거리다가 부욱, 하고 찢어낸다. 이미 소매의 역할은 다했기 때문일까.
의아하다는 듯 렌을 쳐다보았다. 로드는 진심으로 렌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걸 좋아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걸 즐기는 로드에게 그 짧은 시간에 사람을 많이 사귀는 건 부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렌의 전제적인 모습을 보자니 납득이 갔다. 만약 거길 지나가고 있었다고 하면 자신도 렌에게 말을 걸고 싶었을 거였다. 렌은 어쩌다가 그랬다고는 했지만, 우연은 아니라 생각했다. 본인이 인기 있는 걸 모르는 타입인건가. 전에 읽었던 순정만화 주인공이 떠오르는 거 같기도 하다. 렌이 들었다면 기함을 할지도 모르는 생각을 하다 노점으로 향하는 헨을 뒤따라갔다.
"정말요? 렌씨가 대단하다고 해주니까 기분이 좋네요."
배시시 웃으며 노점에 가까워졌다. 메뉴판을 보니 다양한 걸 파는 거 같다. 간단한 노점이 아닌 그냥 가게 같았다. 이런 데를 오면 한번싹 다 경험해보고 싶은데... 눈을 바쁘게 돌리며 뭘 먹을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진지한 얼굴을 하다 렌에게 시선을 돌렸다.
"먼저 고르셔도 돼요. 그냥, 제가 욕심이 많아서 뭘 고를지 오래 걸리는 거 뿐이니까요."
>>354 강아지를 닮은 여성에게 끌리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건 로드주의 입장이고요. 로드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호감이 높은 편입니다. 그냥.. 다 좋아해요. 적이어도 기본적 호감이 있어요. 이제 말 섞고 태도에 따라 갈리긴 하지만 렌은 로드에게 대화 나눔(50점)+친절함(50점)+재미있음(50점)+로직 봄 클랜원(10000점) = 총 10150점의 호감도를 가지고 있다. (100점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