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니아 씨는, 뭐라고 해야할까요, 넉살이 좋은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친근하고, 동물로 치자면 비글이 떠오릅니다. 나쁜 뜻은 아닙니다. 그만큼 기운이 넘친다는 의미입니다. 허기가 친 참이었다며 웃는 얼굴에 무심코 저도 웃음이 흘렀습니다. 이면이 없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어떨지는 저로써는 불명입니다만.
"고생하고 오셨으니까요."
푸스스 미소를 지으면서 우유를 들고 걷습니다. 표면에 방울이 맺힌 유리컵에 담긴 흰 우유. 꿀도 조금 넣어서 단 맛이 날 겁니다. 아도니아 씨 앞에 컵을 내려두고 제 의자에 앉습니다. 그리고 겉옷을 살짝 더 내리고, 등에서 붉은 툴을 쭉 뻗어 아도니아 씨에게 붙이려 합니다.
"네. 베이킹은 취미라서요. 아마 초코 종류가 많을 건데."
좋아하시나요? 하고 웃었습니다. 툭, 툴이 붙으면,
"약간 따끔할 수 있어요."
툴을 통해 제 피를 주입합니다. 참 이게 좋습니다. 굳이 주사기로 피를 뽑지 않는 것 말입니다. 사실, 되게 불편한 구조이긴 했습니다. 구강 섭취도 가능합니다만.. 지금은 그게 더 문제입니다. 조금.. 위험한 맛이 나는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 저의 피는. -예전, 제 피로 실험하던 이들이 있을 때 이랬다면 좀 더 나빴을까요, 좋았을까요. 힘이 없었으니 나빴겠죠. 지금은, 그래요. 한 방울로 혀를 축여주며 놀리듯 말할 수 있습니다. 더 원한다면 저를 도와주세요, 라고. ..물론 하지 않습니다. 특히, 로직 봄에서는 더더욱이요.
우물우물, 한 입 베어문 쿠키는 역시 맛있다. 직접 구운 거라면 실력이 수준급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자니 어느새 흰 우유가 앞에 놓였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뭐...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주는 간식 같은 거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꼬아서 보는 건 좋지 않지. 그녀는 웃는다.
"아 그러심까? 어쩐지 실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슴다."
역시 취미였구나~ 하긴 좋아하는 게 아니면 그렇게 계속 뭘 만들기는 어렵겠지. 그리고 뒤에 이어진 초코 종류가 많을 거라는 말과 좋아하냐는 말에는, 쿠키를 베어문 뒤 긍정의 의미로 눈웃음을 지었다. 달콤한 건 최고라니까. 조금 씁쓸해도 좋고. 라고 생각하고 있자니 시우의 등에서 뻗어나온 툴이 그녀의 팔에 붙었으려나. 뭐 어디라고 다르겠냐만. 말처럼 따끔했을지도, 바늘로 찌르는 것과는 또 다른 감각이었을까, 아니면 같았을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
말없이 쿠키를 우물거리며 툴과 시우를 천천히 번갈아 보던 그녀는 우유를 마셔 입을 비우고 운을 뗐다.
"이렇게 막 수혈해 줘도 괜찮슴까? 피가 모자라다거나."
이게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란 건 알지만 그 방법이라는 게 수혈이라니, 그것도 미리 뽑아놓은 게 아니라 즉석에서 뽑는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궁금한 듯했다. 혈액주머니를 본 기억을 떠올리면, 중태에 빠진 환자에게 필요한 피의 양은 한 사람에게서 뽑아낼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그럼 수혈해주는 사람도 위독해지겠지. 특별한 피. 그러니까 건강에 지장이 가지 않는 한에서 수혈을 해줄 수 있는 걸까. 그럼 자기 상처는 어떻게 치료하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이 피어오른다. 얼굴은 그런 호기심이 조금 어리긴 했어도 여전히 웃고 있지만.
실력이 좋다. 종종 듣던 말입니다. 베이커리에서 일을 하고 있던 무렵 자주 듣던 칭찬. 피를 누구에게 먹인 적도 없고, 등에서 긴 줄기가 튀어나오지도 붉은 꽃을 피우지도 못했던 그 때. 평온하고, 조용하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 때 바라던 건 저만의 가게였죠. 자그마하지만 제가 바라는 것들로 들어찬, 단내 나는 장소를 바랐습니다만. 쿠키를 씹는 아도니아 씨를 보다가 주변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글쎄요. 지금은 어떨까요. 어찌보면 제가 바라는 그런 곳일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사실 지금, 아주 조금.. 목이 마릅니다.
그녀의 팔에 붙어있는 툴을 빤히 봅니다.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뭐라고 할지. ..이상한 갈증이 가끔 나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창백한 장소를 떠올릴 때면 더욱 심해지는 갈증 말입니다.
"..아."
잠시 정신을 놓았습니다. 뒤늦게야 그녀가 한 질문을 이해하고 어수룩하게 웃었습니다. 제 손을 봅니다. 하얗습니다. 건강한 모습은 아닙니다. 눈앞의 아도니아 씨와는 많이 다릅니다. 작고, 여리고, 약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제 능력이 영향을 주지 않은 것도 아니겠죠. 하지만, 뭐...
"괜찮아요."
문제는 없습니다. 부드럽게 웃을 수 있을 정도로요.
"정 부족하다 싶으면 로드 씨에게 부탁하면 되고, 한두 명 정도로는 건강에 문제는 없어요. 주입도, 벌써 끝났다구요?"
축제가 끝나고 장식들이 점점 치워지고 있었다. 당분간 화려한 조명도 대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축제 분위기가 제법 맘에 들었었는데. 일상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로드는 자극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만약 평화로운 일상을 지향했다면 거기서 나오지도 않았을 테다. 그렇다고 해도 끝난 축제를 혼자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음 축제 때는 더 많은 걸 즐길 수 있을거라 기대하며 아쉬움을 달래보려 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공원을 천천히 걷다가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하고 조용히 다가갔다. 살금살금, 움직이더니 뒤로 가서는 팔을 뻗어 낚아채듯 백허그를 했다.
"렌 씨, 여기서 다 만나네요!"
활짝 웃으며 렌의 반응을 살폈다. 갑자기 안은 건 렌을 친한 사람이라 인식한 이유도 있겠지만, 솔직히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다. 로직 봄에서 누굴 껴안는다고 해도 다들 아무렇게 받아줄 거 같은 사람만 있으니까. 흥미로 인해 눈에 생기가 가득해졌다. 평소보다 더욱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축제라는 이벤트가 잠깐 추가됐을 뿐인데 축제 기간동안 정신이 없었다. 축제가 끝나고 남아있는 몇개의 장식품들과 화려한 조명을 잠시 올려다보면서 렌은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서 자신이 했던 일들(만행들)을 떠올렸다가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그때는 진짜로 사라져버리고 싶었는데..분명히 흑역사가 될거야. 너무나 자연스레 떠오르는 흑역사 기억들 덕분에 한숨을 푸욱 내쉬는 건 아주 당연한 노릇이다. 공원을 몇바퀴인가 가벼운 뜀박질로 뛰었고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다고 렌은 생각했다. 예상치 못하게 뒤쪽에서 습격(이라기보다는 허그였지만)을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로, 로드씨!?"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더라면 단언컨데 렌은 백허그를 한 상대를 어떻게든 제압하려 했을 것이다.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렌의 반응은 당황스러움이 가득 담겨서 삐그덕거리고 있었다.
크게 당황하는 렌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더 안고 있을까. 고민하며 렌의 얼굴을 보다 순순히 떨어졌다. 해를 끼칠 의도는 아니었다는 듯 팔을 쫙 벌리고 보여주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놀랄지는 몰랐는데. 전에도 성실하다는 말이나 포옹을 받았을 때 삐걱거렸던 모습을 보면 이런 부분에 약한 걸까. 로드에게 렌을 향한 악의는 전혀 없었지만 반응이 재밌다 보니 콕 찔러보게 되었다. 입꼬리를 올려 웃는 얼굴엔 즐거움이 서렸다.
"죄송해요. 반가워서 그만. 오늘도 운동 중이었던 거예요?"
공원에는 보통 움직이려고 오는 장소기도 하고, 전에 이야기를 나눴을 대 렌은 대부분의 시간을 훈련을 하는데 쓴다고 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운동을 하고 있던 게 아닐지 추측했다. 렌에게 훈련을 부탁하긴 했지만... 그 뒤로 훈련을 하진 못했다. 묘하게 시간이 맞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젠 움직이지 않아도 웬만한 사람은 상대할 수 있다. 전기톱에도 죽지 않을 정도니까. ...힘은 좀 길러야 하나. 곰곰이 생각하다 아직 가지 않은 길거리 음식 노점을 발견했다.
미나는 테온의 노래를 감상하며 오랜만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이와 처음 만났을때 그는 이 노래를 불렀다. 만남을 지속하고 결혼할때까지도 그는 종종 이 노래를 불렀다. 결혼한 뒤에도 그는 이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인지 지금 테온이 부르는 노래는 미나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노래가 끝난 뒤 미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박수를 쳤다.
"굉장해. 정말 가수를 해도 되겠는걸?"
그가 자리로 돌아올때즈음 간만에 활짝 웃는 모습으로 반기며 말했다. 이것도 그의 Os와 관련있을까. 미나는 곧 나올 파스타를 기다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냥 단순한 포옹일 뿐인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반응하는지, 부모님과 포옹은 안하는지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부모님과 하는 포옹과 지금의 포옹은 전혀 다르다고 렌은 단언할 수 있었다. 플러스로 변명하자면- 방금 전까지 몸을 움직인 탓에 땀까지 흘렸으니까. 뿌리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안절부절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대고 있다가 로드가 떨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렌은 두어걸음 비척비척 움직여서 거리를 유지했다. 이건 굳이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얼마나 빨개져 있는지 알 것 같고..저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머릿속에 마구 떠오르는 생각들을 겨우 털어낸 뒤 렌은 로드에게로 몸을 돌렸다.
"아아뇨..이건 제가 익숙하지 못한 것 때문이니까 괜찮습니다..아- 네. 이제 막 끝난 참이라서.."
운동 중이였나는 물음에 렌은 옷자락을 당겨서 혹시 땀냄새가 많이 나진 않은지 확인하며 대답하면서 꽤나 민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운동광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것 같은 눈치였다. 그러다가 로드의 제안에 응? 하는 표정이 되어서는 눈을 땡그랗게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