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괜찮다고 누누히 얘기하는데 어쩌겠나, 아미카는 자기 나름대로 즐기기로 했다. 눈을 감고 손을 위로 올리곤 바람을 즐기며 몇바퀴쯤 돌았을까, 서서히 속도가 줄기 시작하는게 느껴졌다. 아미카는 눈을 다시 떴다. 옆에 있는 아키라도 안정을 찾는 것 같았다. 아마 저렇게 무서워하면서도 즐기는 거겠지. 이제 내리라는 말에 아미카도 벨트를 풀고 내렸다. 아키라가 상쾌한 표정으로 재밌었냐고 물어보자 아미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후미카는 남학생의 말에 가만히 있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알아야 할 게 많으니 그만큼 질문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나는 속되게 말해…… 눈치가 없는 편이란다. 다른 사람이 무슨 뜻으로 말한 건지 모를 때가 많아. 확실히 해두어야 오해가 없잖니."
말을 하다 만 데에 그는 큰 궁금증이 들지 않는 눈치다. 이유 있으니 하다 만 것이라 생각하고 구태여 캐묻지 않는다. 그 대신 멀뚱히 테츠야를 바라보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내민 손 안에는 물통이 들려 있었다. 이런 것이 나올 구석이 없는데 어디에서 챙겨 온 것인지 모르겠다.
"산에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떠니?"
듣기로 섬 안에 작은 산이 하나 있다고 한다. 산책로 정도의 길이라 그렇게 험하지도 않고 그런 곳은 다른 이용시설보다 사람도 적을 것이다. 그리고 후미카는 말을 하고 나서 곧이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산에 사람이 적은 이유는 그거였다. 제 입장에서야 그런 산은 산이라기보단 언덕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몸 쓰는 일과 등산이라면 질색을 하지 않던가. 특히나 여름에는 더더욱. 마찬가지로 '요즘 젊은이'에 속하는 테츠야는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수학여행. 그 울림이란 뭐랄까 설렘이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3년에 한 번 밖에 없는 수학여행이다보니 더더욱 그런 것이 있었고. 이번 수학여행은 자유롭게 노는 것으로 일정이 되어있다보니 유동적으로 다른 친구들하고 같이 있었다가 혼자 있었다가 하곤 했다.
이번에는 친구들 중에 한 친구가 플라네타리움에 가보자고 했기 때문에 렌도 따라 나섰다. 별이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기 때문에 별을 유심히 관찰한 적은 없었지만 해가 일찍 지는 겨울이면 외진 곳에 있는 집 덕에 겨울 별을 한껏 보곤 했었다. 추워서 일찍 집으로 들어갔지만서도.
플라네타리움은 어두웠고 상영이 시작되기 전에 편안한 의자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던 중 마침 앉으려고 했던 의자 옆에 누군가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눈을 감고 졸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전에 만났었던 토와 선배였다. 사주었던 아이스크림이 당첨이었는데, 그 당첨 아이스크림도 당첨이었던 정말 운이 좋은 선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문 닫힌 체육관 앞에서 자신을 만났던 것도 정말 운이 좋은 것이 아니었을까?
작게 소리를 내며 아는 척을 하려다가 자고 있다는 것을 보고는 옆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일어나면 인사를 해야지 하고서. 그런데 옆에서 토와가 조금 꿈을 꾸고 있었는지, 뒤척이는 것이 느껴져 보고 있다가 갑자기 그가 제 팔을 꽉 잡는 탓에 깜짝 놀랐다.
앗, 하는 소리를 냈다가 이내 깨어나 사과를 하는 토와의 모습에 렌이 말했다.
“토와 선배. 저도 반가워요.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악몽이라도 꾸셨어요?”
렌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토와의 잠긴 목소리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다.
깨어난 토와는 렌을 보고.. 플라네타리움을 보고.. 상황을 적절히 이해했습니다. 렌이 악몽이었냐고 묻자 잠깐 고민하네요.
"악몽이라기보다는... 기억의 정리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네요..." "곧 휘발될 겁니다." 원래도 창백한 편에 속하긴 했지만. 지금은 안색이 악몽 꾼 듯이 심하게 창백한데요. 힘없는 목소리로 물이 어디 있었는데. 라며 자리 옆을 뒤적거리자 약간은 미지근해진 생수병 하나가 나옵니다. 까득하는 소리와 함께 물을 마시면 조금 안색이 나아지네요.
"수학여행을 즐기느라 좀.. 열심히 돌아다녀서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약간의 변명같은 말을 하며 몸을 조금 편하게 기댑니다.
"세이 군은... 역시 별을 보러 오신 걸까요" 곧 시작한다고 하니 볼 만하겠다고 말을 하려 합니다.
그래도 자기가 눈치가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고치려고 노력하는건 훌륭한 일이 아닌가. 그래도 그렇게 계속 질문하는건 상대방에 따라서는 많이 귀찮다고 생각될 것 같았다. 그것도 눈치가 없으니 알아챌 수 없는거겠지. 그래도 계속 이어나가는건 여태까지 질문공세에 당한 사람들의 상냥함이 있기 때문일거야. 생각보다 좋은 곳이잖아 이 고등학교!
"너는 이런 산은 전혀 힘들지 않다 이거지?"
미리 물통도 준비한걸 보면 이미 산에 갈 생각이었으리라. 역시 실전압축형근육녀라고 해야겠지. 이렇게 놀 수 있는 환경에서도 근육을 잊지않는다. 그런 생활을 했기에 얻을 수 있는 근육..
"산이라."
물통을 바라보며 말했다. 덥고 습하고 힘들고. 역시 귀찮다. 주사위를 굴려 성공이 뜨면 가는걸로 하자.
"기다려봐."
말하고 20면체 주사위를 떨어뜨렸다. 나온숫자는 15. 겨우겨우 성공인가.
"그래서 산은 어디야?"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위치도 몰랐다. 애초에 있는지도 몰랐는걸. 굳이 이런 놀기좋은곳에서 누가 산을... 가는 사람이 있네.
기억의 정리라고 하기에는 안색이 창백했다. 이전에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래도 어떻게 묻기에는 친한 사이도 아니고 또 안 좋은 기억을 꺼내어 이야기해도 서로 불편해질 것 같아 말을 아꼈다. 물을 마시며 조금 안색이 나아지는 모습에 다행이라고 느끼며 토와의 말에 대답했다.
"다른 이들이 꽤 볼만하다고 해서 와봤어요. 그렇게 별에 지식이 있거나 하지는 않지만요. 토와 선배는요?"
렌이 작게 웃으며 이어 말했다.
"그래도 열심히 놀다가 오면 조금 쉬어가는 그런 코스 인 것 같기도 해요. 눈도 즐거우면서 몸도 편한 그런 느낌?"
확실히 공간이 매우 편안해 보였기에 하는 말이었다. 토와가 졸고있었던 것을 보니 별을 보면서 쉰다는 것이 아예 쉬어버리는 느낌이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