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어쨌든 배시시 웃었던 걸 생각하면 효과 있었던 것 같기도. 바로 덤벼들지 않았던 걸 보면 게으르거나, 동료애라는 게 옅거나, 아니면 의외로 냉정하게 판단할 줄 아는 타입이라는 거려나. 솔직히 말하면 조금 꺼림칙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뭐어. 상대는 한 명이고, 괜찮지 않으려나- 하고 넘어가 버린다.
"와아, 이게 다 뭐람."
눈 앞에 흩날리는 재를 보곤 조금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달까. 설마 아까 그 아가씨도 이 정도로 무지막지하지는 않겠지? 그렇지 않길 바라며 그는 계단을 올랐고, 마주치는 적?을 폭발시켜 버리는 드라이의 속도를 당연히 금방 따라잡았다. 전방에만 집중하고 있나? 자신이 뒤따라 온 것을 인식하지는 못한 듯한 그를 따라 계단을 오르던 그녀는 장난기가 발동한 건지 드라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무슨 소리일까. 남자는 충각의 폭풍에도 굴하지 않고 자세를 무너트리지 않은채 옆으로 회피하는 테온에게 맞춰 창의 궤도를 비틀어 추격했다. 스피드 중시의 기술일까, 피하게 두지 않겠다는듯 이미 위력은 꽤나 떨어졌을텐데 창은 집요하게 테온의 움직임에 맞춰왔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거라면 여기서 목이랑 같이 두고가라고."
- 주거구 '알로'
"아니지, 그쪽에게 우리가 나쁜 사람인것처럼. 우리도 그쪽이 나쁜 사람이야. 정당방위? 전뇌도시에 그런건 없어."
루온이랑 비슷한 느낌인가 싶었지만, 여자는 로드의 말에 담담하게 말하면서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로드에게 얼을 송곳을 쏘아보냈다. 얼어붙었던 다리를 얼음을 억지로 깨고 움직인것이라 순간 움직임이 둔해졌으나 이 정도는 금새 회복된다. 그리고 발치에 혈화가 피어나자 그것을 급속도로 냉동시켜 깨트린다. 얼리는 순간 터트릴 생각이었을테지만 그 생각을 상회하는 속도. 바닥이 어는 속도도 그렇고 아마도 꽤 강한 오퍼일것이다.
"너희를 원망하는게 아니야. 피해자 같은건 애초에 없다고.. 이건 그냥 클랜간의 싸움일 뿐이지."
결국 이곳은 약자는 뺏기는 곳이니까. 여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우와 렌을 노리고 회전하는 얼음의 칼날을 날려보냈다. 팅팅 - 렌의 총알은 이 칼날에 튕겨 나갔는데 아무리 그래도 총인데 얼음으로 막다니 저 얼음은 상당히 단단한 모양이다.
"사람이 줄어들면 그만큼 우리의 몫은 늘어나. 오늘 우리 동료가 많이 죽었으니 그만큼 너희 몫은 늘어나." "반대로 사람이 줄어든 클랜은 그만큼 힘들어져. 당연한거잖아?"
디스포는 무한할 정도로 많다. 하지만 당연히도 약한 디스포의 경우 좋은 클랜원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로직봄은 그 경쟁에서 이질적으로 벗어나 있는거고, 약소클랜은 시비가 붙는게 일수에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하다. 그것은 신생클랜들의 숙명이며, '알로'에서 비교적 강해보이는 이 여성도 오래된 클랜들에겐 장애물로 보이지도 않겠지.
"무리지."
여자는 수호의 말에 단답하고 수호를 통째로 얼리려는듯 수호쪽으로 강한 냉기를 뿜었다.
- 린
"....."
드라이는 딱히 놀라지는 않았지만 왜 여기에 있냐는 눈빛 ㅡ 따윈 보이지 않지만 ㅡ 을 보냈다.
"도와줄 필요.. 없는데."
기분 나쁜 기계음이 지직거리며 어느새 최상층에 도착한 드라이는 돌아가보라는듯 손짓하고 앞으로 나섰다. 어떻게 하든 린의 자유다.
조금 설명을 하자면 신생클랜의 취급은 보통. 필드에 나가면 사냥을 하려고 해도 타클랜원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고. (보통은 강한 사람 한두명이 약한 사람들을 데리고 키워주는 방식임)
조금 잘못 찍히면 상위 클랜들이 매일같이 시비를 걸고 (보통 죽이는 정도까진 안감) 그럴듯한 거점을 가지는건 꿈에 가까우며, 실제로 굶어죽는 사람도 나오기 쉬워요. 어쨌거나 디스포를 사냥하는 이들은 당장 내일도 알 수 없는 하층민들이고. 전에 말했듯 클랜간 항쟁은 경찰이 나서지도 않습니다. 클랜을 나가자니 당장 밥먹을 수단도 없고, 클랜에 있자니 여기저기서 치이는 상황. 말이 시비지 이곳이 참치어장이라 표현하기 힘든 일도 많아요.
그래서 보통 신생클랜은 산하취급으로 다른 거대 클랜에게 비호를 요청하는게 보통이랍니다. 대신 납세라는 이름의 삥뜯기를 당하겠지만요.
안 놀라네, 조금 재미없을지도~ 아닌가? 얼굴을 자세히 볼 수가 없으미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웃었다.
"그럴 거라곤 생각했슴다."
펑펑 터트리는 것만 생각해도 자신보다 충분히 강할 테고, 사실상 솔로라고 했던 걸 떠올려 보면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지나온 길의 흔적이 그걸 말해주고도 있고. 그치만 기껏 껄끄러운 듯한 상대를 피해서 이리로 왔는데 다시 돌아가라니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어느새 도착한 최상층, 여기까지 온 게 아깝기도 하고. 할 말도 있고 해서 그녀는 웃는 낯으로 드라이의 뒤를 따라가며 입을 열었다.
여자의 말에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로직 봄이라는 특이한 클랜에 있으면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 곳은 전뇌도시고 갑자기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다. 공공연하게 홍등가가 자리해있는 상황에서 이미 말 다 했다 싶다. 그런 부분에서 여자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영 그렇다. 먼저 쳐들와 놓고 피해자는 없다? 얌전히 사는 사람들 공격해두고 괘변이나 하고 있다. 자기도 이런 상황이니 이해 해달라고? 솔직히 피해를 받은 입장에선 어쩌라는 거지. 라는 생각만 들었다. 싸늘한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본다.
"좀 꼴보기 싷네요."
날아오는 송곳을 팔로 막았다. 얼굴이나 배에 박히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렇게 송곳을 맞는 타이밍을 노려 여자를 행해 총을 쏘았다.
누구냐는 말에 그루트라도 답한 현우는 다른 녀석들과는 격이 다른 거한을 보고 소름마저 들었다. 이 녀석은 강하다. 디스포와 맞먹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강자다.
차라리 우리를 깔보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녀석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강한자가 방심하지도 않으니 승산은 더욱 떨어졌다. 그가 쓰는 창의 속도는 회피를 하기 힘들 정도였다.그러나 공격 자체는 그렇게까지 무거워보이지 않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 힘이라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창의 특성상 날은 가장자리에 있고 그 안쪽은 일반 봉에 가깝다. 그렇다면 놈에게 근접한 다음 창을 막으면 될 일이었다.
과진동에 의해 일순 뇌까지 흔들린 남성이었으나. 집착이라고 해야할지 창은 여전히 테온을 쫓고 있었다. 순간 의식이 날아간것도 같았는데도 그대로 창날은 테온을 베고 지나갔다. 놀랍게도 공격은 테온의 옷같은걸 그대로 투과해서 신체만을 베었고 그렇기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생각보다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위력에 관계없는 스피드 중시형 기술은 이것을 위한것일터. 그나마 자세가 조금은 흔들려서 치명상까진 입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열받는거 보면 내 생각만큼 쿨한건 아닌거 같은데."
그리고 그것을 눈치채기엔 너무 늦었다. 창잡이는 그대로 창을 거둬들이며 현우를 노렸다. 본래 창을 당기는걸로 사람을 베는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남자의 능력이라면 말이 달랐고. 그저 창을 사선으로 당겼을 뿐인데 이미 창의 범위 안으로 들어온 현우는 옆구리가 베이고 말았다. 그래도 자세가 자세이니만큼 테온보다는 피해가 적긴하다.
"윽.."
하지만 테온의 공격은 확실히 통했기에 균형감각이 불안한것이 눈에 보인다.
- 주거구 '알로' "안타까운 말이 아니야. 그게 진리니까. 그리고 오늘은 우리쪽이 약자였을뿐."
처음에 기습을 하지 않았던것과 묘하게 애매한 태도에 대한 답은 여자의 말로 알 수 있었다. 거점에 들어서고 판단이 끝난것이다. 이 싸움은 이길 수 없겠다고. 그럼에도 여자는 멈추지 않고 능력을 전개했으나 렌의 다중 사격에 의해 칼날이 깨지며 몇발에 피탄되어 자세가 무너졌다. 자동적으로 시우에게 향하던 칼날도 부러졌고. 오히려 시우의 혈화에 반응하는게 늦어져 반밖에 얼리지 못한채 혈화가 폭발했다.
".... 어차피 이렇게 된거 묻겠어."
"..... 왜, 왜 벗고 있는거야..."
뚝뚝. 모자가 벗겨지고 피가 흐르고 있는 상태로 나온 말은 예상밖의 것이었다. 시우를 가리킨 손을 보아하니 아마 등쪽을 말하는거 같은데.. 아까 변태라고 말했던건 저것 때문일까. 이런 상황인데 꽤 유쾌한 친구일지도. 물론 그런다고 총알 빗나갈리는 없기에. 그 사이에 로드의 총탄이 여자의 배를 뚫고 지나갔다. 저건 꽤 크겠지. 저쪽도 재생능력이 있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의식을 잃지않은 여자는 공중에 얼음방패를 만들어 수호의 공격을 막아냈다. 완벽히 막지는 못해 살짝 밀려나긴 했으나 아직은 살아있다. 그것은 즉 공격한다는 이야기. 어느새인가 벽까지 얼어버린 1층. 여자가 살짝 손짓하자 온 사방에서 얼음의 창이 쏟아졌다.
- 린 "......."
아마도 보스의 방 앞에서 멈춘 드라이는 린의 말에 곰곰히 생각하는듯 싶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들.. 인가?"
아무튼 알겠다고 대답한 그. 그리고는 또 다시 침착하게 문을 폭발시키며 방으로 들어간다. 회사의 사장실처럼 생긴 방에서, 아마도 이 클랜의 리더로 추정되는 중년의 남성이 의자에 앉아있는것이 보였겠지.
그 녀석들이라...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닌 걸까, 싫어하진 않는다던가, 그런 말을 했던 걸 떠올려 보면 좋은 이유로 만나자는 것 같진 않았는데. 뭔가 기억을 더듬는 듯한 답을 통해 미루어 보자면 적어도 여긴 아닌 모양이다!
"위험할 수도 있어 보이긴 함다."
아래서부터 펑펑 터트리면서 온 데다가, 마찬가지로 문 역시 터트리면서 왔는데 아직도 의자에 앉아 있다고? 허세인지 아니면...어느 쪽이든 여우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나러 온 게 된 것 같다는 감각은 피할 수 없었다. 뭐 이럴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우린 인사를 하러 온 게 아니었나 싶다. 이런 식이면 인사를 계속 하다간 사람이 남아나진 않겠는걸.
"이미 늦은 거 아님까?"
그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방향을 돌려 내려갔다면 모를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점에서 저쪽이 무슨 수를 쓴다면 뭐...돌아가는 건 무리 아닐까나. 이대로 다시 돌아가서 여-나 돌아왔다구? 좀 잘 처리했어? 하고 능청스럽게 굴기도 좀 그렇달까. 못하는 건 아니지만!
"기왕이면 왕을 잡는 게 짜릿할 것 같은데, 어떻슴까?"
말은 걱정하는 듯 한 느낌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결국은 걸리적거린다는 거 아닐까, 솔로로 활동하는 이유와도 연관되어 있으려나? 헉, 설마 나 큰일 난 거 아니야? 씨익 웃는 얼굴에서 그런 생각은 알아낼 수 없지만.
자신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격발되는 소음은 상당했지만 눈한번 깜빡이지도 않은 채 렌은 요지부동으로 자세를 유지한 채 칼날을 부수는 것에 집중했다. 총탄을 모두 소비할 때까지 방아쇠에서 손을 떼지 않다가 여자의 자세가 무너지는 걸 확인한 렌은 그저 찰칵 찰칵, 소리만 나는 소총들을 한쪽으로 던져버리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얼음 창을 피해서 뒤로 물러나려는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