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느끼기로 시대는 빠르게 흘러간다. 변변한 방직도 하지 못하던 인간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손가락 한 번 까딱이는 것만으로도 수만의 인간을 죽일 수 있게 되고, 하늘과 천체를 우러르기만 하던 그들이 어느새 달에 발 디디며 더 나아간 우주에 진출하려는 시도가 있은지도 100여년 정도가 지났다. 근 100년의 시대 동산 있었던 발전은 이전의 수천 년 세월과 비하면 그 속도를 비약이라 이르기에도 모자랄 테다. 겨우 40여년 정도 인세에 직접 내려오지 않은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뒤바뀌고 세워지고 새로운 형태의 가치를 덧입어 창조되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대에 적응하기도 바쁜 풍어신은 보아야 할 거리가 많았다. 하루라도 빨리 요즘 아이들 문화를 알아둬야 인간을 알든 뭘 하든 하지 않겠는가. 수학여행을 온 토미나가 후미카는 본의 아니게 한창 여기저기를 다니며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관광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섬 하나를 통째로 관광시설로 삼은 규모도 신기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플라네타리움이라는 것은 신선한 감상을 안겨준다. 인간의 종이 융성한 만큼 지구는 병든 시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별하늘을 인공적으로나마 재현한 곳이다. 하지만 신선하다고 느낀 것은 처음에 한정했다. 웅장한 장관을 보여준다 해도 결국은 인공이고, 조용한 공간에서의 힐링 컨셉이라는 것은 알겠으나 밤하늘을 보는데도 시원한 밤공기나 밤바다의 소금 내―이건 순전히 본인이 바다에서 지내길 좋아하는 탓이다.―가 나지 않으니 영 감상이 살지 않는 것이다. 결국 후미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이라 해도 워낙에 느긋한 성정의 소유자라 1시간은 족히 앉아 있었지만 말이다. 여기는 충분히 볼만큼 봤으니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제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몇 걸음을 걷던 그의 발 아래에 불현듯 무언가가 꽉 밟혔다. 반사적으로 발 아래를 본 그의 시야에는 누군가의 발이 자리잡고 있었다. 신이라 할지라도 밤눈이 밝은 특성은 타고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그' 풍어신이 무의식적으로 힘 주어 밟아버렸으니 꽤 아플지도 모른다. 후미카는 즉시 발을 떼고는 고개를 들어 자신이 밟아버린 발의 주인을 찾았다. 그러고는 잠깐 말없이 그 얼굴을 쳐다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 플라네타리움을 신기하게 바라보지는 않았다. 현대 일본에서 이 플라네타리움만큼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있으며 적어도 그가 살아 온 기간동안에 그에게 있어 별은 우러러볼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있는 별은 엄청난 과거의 별의 모습입니다 같은 말도 로맨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조금은 신기한 과학적 사실이다.
"흐아아아암."
하지만 이곳의 분위기 자체는 좋았다. 콘도에서 평소에는 즐기지 못하는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건만, 묘하게 '이예이ㅡ' 하고 외치는 괴상한 녀석들이 여럿 모여서 오더니 시끄러운 분위기가 되어서 대피를 한 곳이 이곳이었다. 별을 열심히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그저 하품만 하는 존재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별은 컴퓨터를 켜도 볼 수 있을거라고.."
다른 사람이 다른 장소에서 잘 찍은걸로 말이야. 적어도 그 사진은 실제 별을 찍은것이니 가짜 별을 보여주는 플라네타리움과는 차별성도 있었다. 가짜라곤 해도 별빛이 반짝이는 로맨틱한 장소에서 그것을 부정했기 때문인걸까. 그는 그야말로 신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신벌의 결과는 다리의 엄청난 통증이었다.
"끄아아악!"
뭔데, 라는 말을 할 여유조차 없이 비명을 지르고는 그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분위기를 깨고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한마리의 토끼가 완성되었다.
"괜찮지 않아, 뭐야. 싸움거는건가! 내가 뭘 했다고! 나는 별조차 느긋하게 바라볼 수 없는 인생의 업을 달고 태어난거야?"
"그래. 이 정도면 된 것 같구나. 그런데 아키라. 너무 무리한 거 아니니? 수학여행 전에는 그래도 끝내고 싶다고 해서 조금 빡세게 한 것 같은데 고3이기도 하고 공부도 했고."
"세이 씨가 걱정을 할 정도였으니 무리한 것은 맞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저도 제대로 제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어머니. 저도 시미즈 가의 피를 이어받은 이로서, 호타루마츠리는 언젠간 제가 이어야 하니까요."
시미즈 가의 현 당주인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아키라는 조금 피곤한 표정을 짓긴 했으나 굳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미즈미 마을의 4대 마츠리 중 하나인 호타루마츠리는 그 특성상, 샘이 고여있는 동굴과 그 옆의 낡은 신사를 관리하고 지키고 있는 시미즈 가문이 직접 개최하는 행사 중 하나였다. 당연히 다음 당주가 될 예정인 아키라 역시 그에 대해서 확실히 배우고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아키라처럼 시미즈 가문에 태어난 그의 어머니이자 현 당주에게 그는 요 며칠간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막 끝을 낸 상태였다. 적어도 수학여행 이전에는 끝을 낼 수 있었기에 아키라는 어느 정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 마츠리에는 저도 시미즈 가문의 사람으로서 돕도록 할게요."
"그래. 하지만 아키라. 네가 모든 것을 다 할 필요는 없단다. 그래. 적어도 첫날 정도는 그런 것 신경쓰지 말고 재밌게 놀도록 하렴."
"네? 그래도..."
"장차 네가 당주로서 오르게 되고 정식으로 모든 것을 진행하게 되면 그땐 놀고 싶어도 놀기 힘들어진단다. 놀 수 있을 때 노는 것. 그것은 어린아이의 특권이자 권리이지. 일은 그 이후에 도와도 괜찮잖니. 후후. 이럴 때 친구랑 놀아도 좋지 않겠니? 그래. 유메라던가 같이 다니면서 반딧불도 보고, 댄스도 추고, 등불을 보면서 기도도 드리고. 좋지 않겠니."
"사이온지는 그 날 일정이 있다고 해서..."
"어라. 그러면 마츠리날에 같이 다닐 이가 없는 거니?"
"그래서 돕겠다고 한..."
"잠깐 정좌하도록 하렴."
"네?"
"정좌하도록 하렴."
어머니의 엄한 목소리에 아키라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혼날 때마다 항상 하게 되는 자세였다. 아키라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아키라를 대하면서 단 한 번도 매를 든 적이 없었다. 오로지 말로만 훈육을 했으며 아키라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그 말에 따르는 일이 많았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상당히 엄격해진 목소리로 변하며 그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녹아내렸고 아키라는 절로 긴장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야, 약속 상대가 없다고 이렇게 하실 것까진..."
"내가 고작 약속 상대가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아키라. 네가 약속 상대가 없는 것은 같이 돌 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호타루마츠리 땐 일을 다 도와야한다는 생각만으로 정할 생각조차 안 한 거잖니. 내 말이 틀리니?"
"아, 아니 그게..."
"시미즈 가문의 사람으로서 시미즈 가문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좋아. 허나 우리 시미즈 가문은 가미즈미 마을의 유지 중 하나로서, 다른 이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하는 법. 무조건적으로 집안의 일만 잘한다고 해서 당주가 될 순 없는 법이란다. 긴 말은 하지 않으마. 마츠리 첫 날에는 일은 신경쓰지 말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이와 시간을 보내도록 해라. 친구건, 모르는 사람이건 아무나 상관없어. 앞으로도 몇 년간은 마츠리 첫 날은 일을 도울 생각을 하지 말고. 아니. 그래. 네가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당주로 오르는 날 이전까진 첫 날에 도울 생각은 하지 말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도록 하렴."
"네? 아, 아니. 하지만...어머니. 저는 딱히 주변 사람들과 벽을 쌓은 적은..."
"누구랑 어울리더라도 이 어미는 크게 간섭하지 않으마. 이 어미는 반려가 될 이가 기본적인 예절도 모르는 양아치만 아니면 크게 신경쓰지 않을 생각이란다. 애초에 네 아버지도 학창 시절 땐 그렇게까지 모범생은 아니었고 이 어미도 그렇게까지 딱딱한 느낌으로만 산 건 아니니까."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어머니. 아까 좋은 관계니 뭐니보다는 지금 것에 더 초점을 두시는게..."
"아니란다. 이 어미는 어디까지나 너의 인간관계가 조금 걱정이 되서 말하는거란다."
정말로 단호하게 아키라의 말을 끊으면서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아키라는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저쪽이 목적 같은데 기분 탓인가. 하지만 어머니가 그렇다고 하니까. 괜히 그렇게 생각을 하며 다시 한 번 납득을 하며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일거야.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는 와중 아키라의 어머니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산풍화가 그려진 부채를 펼친 후에 자신의 얼굴에 살살 부쳤다.
"아무튼 방금 것은 좀 오버했다고 쳐도 올해는 첫날에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놀렴. 그래. 그 이후에도 크게 바쁘지 않을 것 같으면 쉬어도 괜찮단다.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지는만큼, 처음부터 무리할 건 없어. 아까도 말했다시피 놀 수 있을 때 노는 것은 어린아이의 특권이자 권리니까."
"아, 알겠어요. 그럼 일단 그렇게 할게요."
딱히 약속상대는 없었고, 이제 와서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적당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보면 아는 사람 하나 정도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약속 상대가 없으면 그냥 자신과 같이 둘러보자고 말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지금 와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날이 되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정 애매하면 그냥 혼자서 천천히 둘러봐도 될 일이었다.
'그래도 누군가와 만약 돌게 된다면... 샘 가이드 정도는 확실히 해볼까. 시미즈 가문의 사람이 직접 소개하면서 같이 보면 또 다른 느낌일테니."
괜찮니?가 아니라 아프니?부터 물어본 데엔 이유가 있었다. 당연히 아플 것을 상정하고 나온 질문이다. 과연 그 질문을 할 만큼의 강도는 되는지 고요한 좌중은 삽시간에 고통에 찬 비명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후미카는 우선 검지를 세우며 "쉿."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쩌렁쩌렁한 비명에 즉시에 시선이 몰려서 밟힌 상대에게도 좋을 게 없다. 우선은 진정시키려는 듯 조용히 살피다, 후미카는 상대를 붙잡고 의자에 꾹 눌러 앉히려 했다. 앙감질을 하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더 다친다. 자기가 잘못해놓고선 지나칠 정도로 태연한 태도에 관해서는 잠시 논외로 치자.
"부러졌니?"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후미카라면 자칫 부러지고도 남을 수도 있는 일이니 과장은 아니었다. 목소리를 낮추어 그렇게 물은 후미카가 물끄러미 발을 보자는 듯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미안해. 실수해 버렸구나. 내 잘못이니 아직 인생의 업을 논하지는 말렴."
후미카는 몸을 낮추고 테츠야의 발을 붙잡는다. 말리지 않는다면 신발까지 벗겨서 확인해볼 작정이었다.
"시비는 아니란다. 그러니까 괜찮니?"
비슷한 결의 질문을 하며 후미카는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실내에 잠긴 어두운 빛으로 인해 짙은 눈이 더욱 검게 보인다. 가라앉은 천해와 같은 시선임은 물론, 대답을 듣기까지 꿋꿋하게 발의 안위를 확인할 것이라는 집요한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몸을 붙잡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강제로 의자에 앉혀진 그는 이게 무슨 행동이느냐며 눈을 흘겼다.
"모, 몰라. 물어보기보단 일단 사람을 부르는게 좋지 않을까?"
둘 다 평범한 학생인데 외관만 봐서 부러졌는지 안 부러졌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다고 물어보는걸까. 통증은 있긴 하지만 부러졌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서도 그 태연한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연기라도 해서 더 아프다고 해 봤자 또 걱정하지 않는데 그저 예의상 대답하는 그 모습을 보일건 뻔했기에 그저 입을 앙 다물고 그녀를 노려볼 뿐, 더 이상의 행동은 없었다.
"아마도 괜찮아. 그러니 그 잡은 발을 놔줘."
통증이 가셔 이제서야 그 모습을 바라보니 1학년이었다. 태도를 보아서는 어떻게봐도 3학년이라고 생각했는데. 괜찮다고는 했지만 아직 통증이 다 가지는 않아서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여긴 어두우니 발 밑을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알겠지?"
그래도 학교 후배를 향해 선배다운 모습을 보이고자 겨우내 웃어보이며 충고를 해 줬다. 이제 내 발도 더 이상 밟히는 일도 없을거다.
시로하: 괜찮느냐? 약이라도 사와주랴? 테츠야: 배가... 시로하: 아프더냐? 테츠야: 내장에 사는 50명의 검사가 쉬지않고 20면체 다이스 20이 나온 검격을 날리는 느낌으로 아프다.... 시로하: .....당장 병원에 가는게다!!
미즈미: 신이지만 가끔은 나도 고등학생답게 청춘을 즐겨보고싶으니까~ 코노에 : 드라마처럼 등교길에서 멋진 학생회장과 부딪친다거나, 이런건가요? 미즈미 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즈미: 우선 차에서 내려서 다친 정도를 확인하고... 코노에: 걸어서 가시는게...
아키라: 요즘 학생회실에 방향제를 뒀는데 확실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좋은 향기가 났네요. 그런데 오늘 방향제를 열어보니 3개월 째 방향제 입구가 잠겨있었네요.. 그럼 제가 맡은 향기는 대체... 서기: 원효대사에디션이네요~
테츠야: 예전에 드래곤 퀘스트 게임에 빠져서 거의 잠도 자지않고 퀘스트를 깨다가, 아침에 학교에 가야하는데 지갑을 깜박했다. 아무생각 없이 길을 나서며 "가는 길에 몬스터 한마리 잡으면 차비 정도는 나오겠지." 하고 무심코 생각했다. 그 날 뒤로 게임을 끊...지는 못했지.
[귀찮은 사람을 연락처에 저장하는 방법] 엔: ‘00씨’(예의상) 마사히로: 저장 안함 미즈미: ‘받지 마!!!’ 카루타: ‘스팸 메시지입니다.’
테츠야가 한창 흘겨보는 눈을 하고 있을 때, 마찬가지로 저 혼자만의 표정을 짓고 있던 후미카의 시선도 그를 향하여 두 눈이 우연찮게 딱 마주쳐 버렸다. 후미카는 미미하게 가는 눈을 하고 있었는데, 의식적으로 만든 의심의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발을 놓아주었다. 사뿐하게 몸을 일으키고서는 후미카가 다시 의중을 알 수 없는 낯으로 남학생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까닥 기울이며 이렇게 묻는다.
"그럼 나가서 확인해 봐야겠구나. 업히겠니? 아니면 들려가는 편이 좋으니?"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지만 뒷말도 만만찮게 이상한 소리였다. 발 다친 사람을 걷게 할 수는 없으니 들어서라도 데려가겠다는,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사고에서 도출된 주장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자가 겉으로 보기에는 밟힌 남학생보다도 작은 여자아이 모습이니 황당무계한 소리로 들리더라도 억울할 것 없다. 게다가 수상할 정도의 집요함을 보이고 있으니 그것 역시 이상하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인간은 연약한 생물이었다. 평생껏 경험해 본바 여러 방향에서 말이다. 그 육체는 툭 치기만 해도 터져버릴 만치 물렁거리고 마음 역시도, 손끝으로 짓누르면 금시에 으스러져 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후미카는 인간을 조금은 알지만, 신의 몸으로 해한 경우에는 힘 조절이 안 되니 그 정도가 어지간한 것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분별할 수 없었다. 툭 쳐서 안 부러졌다면 이번이 운 좋은 경우일 테다.
"그래,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어. 갑자기 봉변을 당하게 해버렸구나."
후미카는 테츠야의 면색을 살피다 일단은 조용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다시 앉았다. 만약에 테츠야가 나간다 대답하더라도 본의 아니게 소란을 피워 버렸으니 잠시 동안은 주목을 피하고 싶었다. 속삭이듯 낮춘 목소리로 넌지시 물었다. 여전하게도 저 혼자는 예사로워서 미안한지 아닌지도 모를 태도였다.
코로리가 말한 두가지는 둘 다 매우 어려운 일이라 머리가 아팠다. 물론 쉬운 일이라고 한다면 후자였으나 렌은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것은 정말 질색이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쉬운 건 아니네요...."
어머니는 그럼 아버지를 사랑했었던 걸까? 그래서 의식이라는 것도 올렸을까?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에게 상처받고 헤어지셨으니 그럼 어떻게 되는 걸까?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와 헤어지셨는데, 그러니까.... 이혼하셨거든요. 그럼 그 의식이라는 것도 없던 것이 되는 건가요?"
이혼 가정이라는 것을 별로 숨기는 편은 아니었다. 대체로 혼자 살고 있다보니 다들 궁금해하기도 했고 그러다보면 그에 대해 이야기할 일도 있기도 했고. 어머니가 정말로 신이라는 것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제야 생각하게 된 것이었지만. 뭔가 얼떨떨한 느낌도 있었다. 물론 아닐 가능성도 영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조금은 그만 생각하자, 라고 귀결되기도 했다. 어차피 어머니한테 직접 물을 용기도 없어서 코로리에게 상담을 요청한 것이 아니던가.
렌은 어느정도 궁금증이 풀려 편안한 마음으로 케익도 포크로 잘라 입 안에 넣었을 것이었다. 확실히 단 것이 들어가니 근심이나 걱정도 조금 가라앉는다. 어차피 지금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 걱정인 만큼 더더욱.
"아, 코로리 씨 딸기 하나씩 나눠먹을까요?"
궁금한 것이 조금 풀렸기에 렌은 가벼운 주제로 말을 돌렸다. 빙수에 딸기가 하나 케익에 딸기가 하나 있으니 하나씩 먹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런 건 서로 눈치만 보다보니 딸기들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법이었다.
얼굴을 찡그렸다. 이번에는 아픔으로 인한게 아니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모르겠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봐도 평소에 운동도 하지 않을 것 처럼 외소하게 생긴 1학년 학생이 자신을 들고가겠다는 소리를 하는데 정말 엄청난 자신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한 명을 드는건 성인남성도 힘들어할텐데 고등학생이 어떻게 하겠다고 하는건지.
"그럼 해 봐. 어찌되었든 확인을 하는게 가장 좋을테고."
눈 앞에서 여학생이 자신을 들어올려보겠다고 끙끙대는걸 구경할 수 있겠다 생각하며 말했다. 적당히 '그것 봐, 가능할리가 없잖아.' 하고 말해주고 스스로 걸어가거나 부축이라도 받으면 되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축이라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수준이다. 묘하게 발을 밟는건 잘 하는 것 같다만.
"아니. 전혀."
의외로 이곳을 구경하는 사람을 구경했다고 친다면 재밌게 구경했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역시 분위기가 분위기인 장소라 그런지 커플이 가끔 보이곤 했다.
아키라 어머님이 말씀한 것처럼 책임을 키우고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만 아직은 어리니까 놀면서 즐거운 경험을 쌓는 것도 만만찮게 중요하지. 요조라 독백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밤에서 새벽까지의 시간이 '요조라의 시간'이라는 느낌을 서정적으로 표현해서 좋아. 고요하고 평화로우면서도 타인과의 간극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840 만약 둘 사이에 혼인의식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리고 아버지가 외도로 배신을 했다면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천벌이 내려졌겠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끔 볼 수 있는 타르타로스에 떨어져서 고통받는 사람들. 이를테면 목이 마르지만 물을 마실 수 없고 배가 고프지만 열매를 따먹을 수 없는 그런 고통과도 맞먹을 정도의 무언가로 말이에요.
>>841 사이온지 유메. 일단 존재하는 설정상으로는 여러분들이 사쿠라마츠리 때도 본 적이 있는 그 벚꽃나무 근처의 신사에서 살고 있는... 정확히는 그 신사를 관리하는 신주의 딸이에요. NPC고 나올 일이 없어서 안 나왔지만 암튼 여러분들은 봤다인 것이에요! 사쿠라마츠리 때 참배하러 왔으면 봤다는 것이에요.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는 사실은 그도 알았다. 보통의 인간, 그것도 단련하지 않은 현대의 인간은 쌀포대 한 자루 들기도 힘들어하는 게 일반적이고 특히나 이런 작다란 외모로는 더욱 설득력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길 들겠다 한 거냐는 반문에 슬쩍 시선을 피하다가, 한 번 해보라는 말에 다시 똑바로 쳐다보았다. 허락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말이 떨어지자 후미카는 잠시 앉았던 몸을 조용히 일으켰다. 으레 옷이 쓸리는 소리라도 나야 하건만 부자연스러울 만치 몸짓에 소리가 따라붙지 않는다.
후미카는 남학생을 들어버리기에 앞서, 잠시간의 준비 시간을 주기로 했다. 어디에서 보았기로 이맘때의 남고생은 한창 자아가 팽창하거나 혹은 섬세해지는 시기라 했다. 아무리 자신에게 사심이 없다 해도 외간 여자에게 덥썩 들려버리면 남고생의 세심한 자존심이 다쳐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도 그리 생각한단다. 밤바람이 불지 않으니 영 불편해."
남학생의 말에 풍어신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답지만 과하게 인공적이다. 특히나 아득한 별하늘을 직접 올려다본 적 없는 현대의 어린 인간이라면 이곳의 풍경은 더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 주제로 더 깊이 이야기한다면 감상적인 대화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유감스럽게도 후미카에게는 그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럼 들 테니 가만히 있으렴."
후미카는 자리에 앉은 남학생에게 몸을 숙였다. 그리고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테츠야의 무릎 아래와 등 뒤에 손을 넣고 불쑥 들어올렸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아든 것이다. 상대의 체장이 자신보다 기니 어쩔 수 없이 자세가 안락하지 않게 되었지만 영락없는 공주님 안기 자세였다. 들린 사람이 가장 편안할 자세를 고려해서 이렇게 한 거다. 들쳐메거나 끌고 다니면 들린 사람도 아프다.
무르고 말랑하게 보이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팔이 떨리오거나 억지로 힘쓰는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후미카의 눈길이 아래로 향했다. 무뚝뚝하다 못해 무감한 시선이 내리꽂히며, 그와는 반대로 상냥한 말이 그 입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