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의 눈으로는 느릿느릿한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디스포가 박살나기까지 몇초도 걸리지 않았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사마귀의 머리통은 단 한순간에 박살났으니까 말이다.
"그거 아냐, 포인트는 원래 레벨업 외의 방법으로 늘어나지 않는거."
하지만 그들은, 요근래 포인트가 복사라고 해도 될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원래라면 3레벨 한명이 30짜리 두마리를 만나면 해야하는 올바른 판단은 도망이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 - 테온의 진동파에 디스포가 살짝 밀렸고, 이어진 진섬에 공격을 막으려던 거미 다리 하나가 슥하고 잘려서 날아갔다. 그 사이 시우는 인간형태의 배 부분의 꽃을 피웠고. 그것에 당황하던 디스포는 미나의 푸른독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기분나쁜 타는 소리와 함께 녹아내리는 거미부분과 다리 두개.
그러나 디스포는 딱히 통증을 느끼는 존재도 아니기에, 디스포는 상관없이 거미줄을 사방으로 뱉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녹아내리는 거미줄이 아닌 끈적한 거미줄. 그것은 바닥을 거의 매울정도로 뿜어져서 움직이는게 불가능할 정도로 펼쳐졌다. 수호의 늑대발은 혼형태라 그런가 거미줄에 속박되지 않았지만 시야가 방해될 정도로 거미줄이 펼쳐져 있다.
그러고있는 사이에도 네세리의 공격이 몸통에 직격해 상처가 났으나. 이미 집만들기는 끝나있었다. 다만 도망이라면. 아슬아슬하게 길이 보였다.
네세리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이미 거미집이 완성된 상태에선 이쪽은 특수한 이동기술이 있는 사람들 외에는 움직이기도 힘들다. 이 상태에서 녹아내리는 거미줄이나 거미 다리가 날아온다면 죽을지도 모른다.
한 송이, 피웠다. 어떤 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장미일까요? 케이크 장식 만들 때 종종 만들었던 모양인 걸 보면 장미인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할 생각치고는 퍽 일상적인 것입니다만, 사실 이렇게 정신을 흩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아서 그렇습니다. 높은 위험도를 지닌 괴물같은 디스포. 공격이 통하긴 했습니다만, 당장에 큰 의미는 없습니다.
끈적이는 거미줄이 이동을 방해합니다. 억지로 떼어내는 건 가능하겠습니다만, 사방천지가 거미줄인 이상에야. 도망치자는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립니다.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입니다. 하지만... 저는 저 뒷편의 클랜원들을 봤습니다. 저와 상관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두고 도망가도.. 그렇더라도..
"..하하.."
생각은 짧게 끝났습니다. 붉은 꽃송이가 하나 더 피어납니다. 노린 곳은 거미 다리, 관절부입니다. 그저 아름다운 꽃이니, 신경쓰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아라크네.
도망치는 게 안전할지 모르고, 자신은 정의로운 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것과 정의로운 건 확실하게 다른 쪽이니. 네세리의 말도, 테온의 말도 모두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렌은 아예 모두의 후방으로 자리를 잡고 백업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앞에서 모두가 공격하는 건 좋은 판단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백업을 자처하는 것도 좋지 않다.
"뭐- 괜찮습니다.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슬쩍 웃어보이는 렌은 돌격 저격총을 소환해서 능하게 자세를 잡고 그대로 연사했다.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나했더니. 알케스는 린에게 허탈해지는 톤으로 적당히 대담하고는 바위에서 일어나서 땅바닥을 툭툭 찼다. 그러자 비밀통로마냥 땅이 열렸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는데..
"지금은 그냥. 알려지면 눈에 띌거라고 알아두면 되겠지."
자연스러운 동작. 아마도 이 통로를 애초에 알고 있었던걸까. 그는 따라오라는듯 손짓하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뭔가 질문이 있다면 물어도 좋겠지. - 테온의 진동파가 아라크네의 입을 틀어막았다. 쏘아내던 거미줄이 입속에서 엉켜서 한동안은 거미줄을 늘리지는 못할듯싶다. 하지만 이미 필드 자체는 거미집이나 다름 없었기에 그것은 변함없었고. 그저 그 사이에 붉은 꽃이 한 송이 더 피어올랐을 뿐이다.
움직임이 불안정해서일까 현우의 주먹은 100퍼센트의 위력은 내지 못했고. 렌의 저격총이 거미부분의 갑각을 벗겨내곤 있었으나. 이런저런 공격이 통하는거 같으면서도 어쩐지 유효타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이어지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필드에 거미줄이 깔려있어서 싸움이 지속되면 불리한건 이쪽. 공중에서 내려온 수호의 공격이 그 신호였다. 늑대의 머리는 적중했으나 파괴력 높은 기술임에도 갑각을 완전히 뚫지 못했고. 거기에 맞춰 아라크네는 사방으로 검은 가시같은것을 발사했다. 공격 자체도 빠르지만 피하기에는 거미줄이 방해라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선물. 땅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더니 곧 거대한 지네형태의 디스포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천천히 출구쪽을 틀어막으며 똬리를 틀었다. 마치 죽음이 다가온것처럼 천천히.
궁금하게 해놓고 답을 해주지 않다니 이런 횡포가! 속으로 그런 말을 하지만 여기서 더 붙잡고 묻는다고 해서 쉽게 답해 줄만한 느낌이 아닌지라 그냥 넘어가기로 한...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알케스가 땅바닥을 차자 땅이 열리고 그 안에는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뭔가 OS가 내가 알던 거랑 다른가? 돌이나 땅을 치면 뭔가 튀어나오는 게 진짜 OS가 아닐까 하고 실없는 생각을 한다.
"설마 잡혀가서 이런저런 일을 당한다거나 그런 검까?"
무서워~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듯한 어투로 그렇게 덧붙인 그녀는 통로를 내려가는 알케스를 따라 계단을 밟았다.
몸을 웅크립니다. 바닥에 몸을 붙이는 건 논외에요. 거미줄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가능한 피격 면적을 줄이는 게 옳습니다. 꽃을 한 송이 더 피우려다가, 주변을 확인합니다. 다친 사람을 확인합니다. 당장에 꽃의 수를 늘리기 보다는, 아군 전선 유지에 도움이 되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왠 지네가 나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