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그런걸 물어보는거냐...! 여간 스트레이트한 물음에 당혹스런 표정을 지어버렸다. 윽, 역시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다... 오퍼 중에 특이한 녀석들이 많은 건 알고있었지만, 이런 군상은 거의 처음이다 싶을 정돈데. 날카로운 눈을 얇게 떠서 로드의 눈을 흘긋 본다. 저 기대를 비치는 눈동자...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 것 같잖아.
마침내 한숨을 크게 내쉬는 것으로 숨을 고른 네세리는 한층 차분해진 눈으로 침착하게 이야기를 입에서부터 흘려내기 시작했다.
"...상위 레벨의 오퍼들만 모인 소수 정예 클랜. '스트롱홀드'. 너도 오퍼니까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 나는 원래 그곳 소속이었다고. 여기 로직 봄 녀석들이 전부 뭉쳐도 해치울까 말까 한 고위험도 디스포들을 혼자서 상대하던게 바로 나였어. 원래라면 너희들은 나와 이렇게 앉아서 얘기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다는 거야. 알겠어?"
그랬을 터다. 하지만- 이제 모두 과거의 얘기가 아닌가... 부질이 없다는 거다. 차라리 누군가에게 당한 거라면 그 자식에게 분노를 돌리면 그만이겠지만, 내 경우는 디스포에게 당했다 뿐, 그 원인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그 디스포는 이 사건 후에 동료들에 의해서 바로 배제 되어버렸다고 하니. ...아니, 이젠 동료도 아닌가. 녀석들은 그 후, 그런 나를 바로 버려 버렸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탓할 수도 없다. 오로지 실력과 힘만으로 돌아가던 '스트롱홀드'의 내부규율을 나 또한 잘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억울함이 치미는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이 순전히 내 탓인 것 같아서.
잠시 부풀어오르는 생각 속에 잠겨있던 네세리가, 로드의 물음에 바로 고개를 치켜들고 즉답한다.
"매운 거! 그거야말로 최악이잖아. 생각 해 봐, 가장 평화로워야 할 식사시간에 일부러 고통받기를 선택하다니...!"
매운 음식을 떠올리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진저리가 치는 모양인지 네세리의 뾰족히 솟은 귀는 일찍이 모습을 웅크리고 있었다. 찌푸린 표정으로 몸을 으슬으슬 떨던 그녀가, 이내 더는 안되겠다는 듯 갑자기 속도를 올려 접시 위의 푸딩을 단숨에 퍼먹어 버렸다.
"푸하...! 아무튼 그런거, 난 절대 용납 못 해!"
접시를 소리나게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선언한다. 얼마나 급했으면 입가에 푸딩의 잔재가 남을 정도였을까.
"저도 들어본 적 있어요! 스트롱홀드, 네세리 씨는 거기 출신이셨군요. 그럼 거기로 돌아가고 싶은 거예요? 네시리 씨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아쉬운 일이네요. 로직 봄이 강하진 않아도 재밌는 곳인걸요. 오락실도 있고! 아, 스트롱홀드에도 있을까요?"
스트롱홀드라면 들은 적이 많다.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고는 했으니까, 그때는 클랜에 대한 관심이 없어 대단한 클랜이라는 것만 알았는데 네세리가 그 곳의 출신이라니 신기했다. 아마 유명한 클랜이니 시설도 좋겠지. 우리처럼 한 건물만 쓰는 게 아니라 여러 건물을 쓸지 모른다. 그런 한 건물을 아예 오락실로 쓸 수도 있겠는데. 부럽다. 스트롱홀드의 거점은 멋대로 상상하며 기대하듯 눈을 반짝였다. 네세리가 왜 여기 있는지보단 그곳이 어땠는지가 더 궁금한 모양이다. 로직 봄에는 다양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굳이 물을 마음이 없는 거 같기도 하다.
"아하, 호불호가 많이 갈리죠. 저도 잘 먹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편이에요. 뭐든 자극적인 게 재미있잖아요? 매운 거, 쓴 거, 단 거~"
하긴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하니까. 로드는 자주 찾아먹는 편이었다.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때는 자극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으니 매운 음식을 처음 먹었을 때 신세계를 느꼈다. 돌이켜보면 맨날 간단한 음식만 주고, 배달이라도 시킬 수 있게 해주면 좋았을텐데! 물론 저를 누구하고도 접촉시키지 않으려 하던 아버지니 그런 건 생각도 안했을 거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다 네세리를 보고는 방긋 웃었다. 제 입가를 톡톡치며 말했다.
"글쎄- 그 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해야 할까. 애초에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그렇게 잘 될지도 모르겠고. 오락실 같은 것도 없었네. ...아니, 애초에 그건 로직 봄이 특이한 거야."
나도 모르게 자신 없는 대답을 해버리고 만다. 내가 지금 이 모양이니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는 거겠지. 힘을 되찾을 수 있을지 어떨지는, 그거야 말로 모르는 거니까. 거기에 스트롱홀드는 철저히 힘과 실력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곳이었다. 나름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나를,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자 바로 내쫓아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다지 재밌는 곳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저 로드의 기준에서는 말이다. 그보다 오락실은 진짜 누구 아이디어인 건지. 역시 알케스 놈인가? 누군진 몰라도 이런 건물과 클랜에 그런 시설을 놓을 정도면 게임은 진짜 좋아하는 모양이다.
"응? ...아, 실례."
로드의 말에 그제야 눈치채어, 고개를 획 돌려버린다. 손 끝으로 빠르게 푸딩의 잔재를 훔쳐선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너무 열냈나... 나도 모르게 부주의 해버렸잖아.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이러니까 매운 건 싫다는 거다.
"아무튼...! 너도 싫고 좋음 같은 건 가지고 있는 편이 좋아. 아무거나 좋다고 집어먹다가는 머지않아 탈 날 거다."
"그럴 때가 있죠. 괜찮아요. 적어도 있을 곳은 있잖아요. ...오락실은 없구나. 아쉽네요. 거기 사람들은 게임엔 흥미가 없는 걸까요."
오락실이 없다는 말에 묘하게 실망했다. 그정도로 강한 오퍼들이 모여있는 클랜이라면 하고 싶은 건 다 지을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스트롱홀드에 대한 관심이 시들었다. 생각해보면 네세리의 말대로 오락실이 있는 클랜을 보지 못한 거 같다. 이런 부분에서 로직 봄에 들어온 게 잘한 기분이다. 로직 봄엔 재밌는 사람들도 많고, 리더나 부리더도 깐깐하지 않고, 오락실도 있고! 혹시라도 강해져서 솔로로 활동할 수 있더라도 별 다른 사정이 없는 한 로직 봄을 떠날 거 같진 않았다.
"네세리 씨는 확실한 걸 좋아하는군요. 걱정 고마워요."
대답은 잘했지만 좋고 싫음을 분명히 하라니, 로드의 기준은 재미였다. 재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는 어려웠다. 한때 관심 있던 게 언제 질릴지 모르고, 전혀 신경 쓰지 않던 게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역시 어려운 부분이다. 고민을 하더니 소파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보도록 할게요. 그렇지만, 역시 아직까지만 재미가 제일이네요. 네세리 씨와의 대화도 재미있어서 좋았어요. 다음에 또 운명처럼 만났으면 좋겠네요."
운명이라는 실없는 소리를 하고 웃었다. 아마 농담이었던 모양이다. 손을 흔들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휴게실을 나왔다.